00288 Game No. 288 50승! 그리고 플래티넘 크라운! =========================================================================
-50승. 정말 대단합니다. 리그에 제대로 모습을 드러낸 건 3라운드부터거든요? 겨우 3라운드 만에, 그 조차 꽉 채운 것이 아닌데 벌써 50승을 찍어버리네요.
-역대급입니다. 역대급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 겁니다.
-이러면 다승왕도 한 번 노려볼만 하죠?
-충분합니다. 지금처럼 승리를 챙겨준다면! 아직 한 라운드가 남아있기 때문에 충분히 다승왕 노려볼 수 있습니다.
이제 위로 남은 선수는 둘.
이영우와 김택윤 뿐이다.
현재 다승 1위인 이영우의 승수는 54승. 패는 11패로 무려 83%의 승률을 보이고 있다.
다승 2위인 김택윤도 만만치 않다.
53승 14패.
이영우보다 조금 승률이 떨어지긴 하지만 80%에 가까운 승률이다.
앞으로 남은 경기는 14경기.
이영우와 김택윤이 한 두 번 미끄러지고 이승우가 모든 경기에 나와 승리를 거둔다면 충분히 역전 가능하다.
만약 오늘 에이스 결정전까지 가 이승우가 승리를 거둔다면 격차는 더욱 더 줄어들게 된다.
아스트로 입장에선 그런 심장 쫄깃해지는 상황까지 가고 싶지 않겠지만 말이다.
설사 다승왕을 차지하지 못하더라도 상관없다.
애초에 2라운드를 날린 선수가 다승왕 경쟁을 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이다.
다른 선수들이 부끄러워해야하는 일이다.
-아스트로에게 가장 좋은 그림은 5세트에 나오는 한민규 선수가 임선묵 선수를 꺾고 승리를 챙기는거죠. 웬만하면 여기서 경기를 끝내고 싶을겁니다. 지금 웅인 선수들 눈빛이 장난이 아니거든요.
-이기겠단 투쟁심은 확실하게 보이지만 객관적인 전력에선 한민규 선수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죠. 한민규 선수가 OSL에서 아쉽게 탈락하긴 했지만 2승 1패를 거뒀거든요.
-MSL은 아직 살아있습니다. 16강에 올라있고요. 반면 임선묵 선수는 올해 한 번도 개인리그 본선에 올라가지 못했고 한 해 승률도 썩 좋은 편이 아닙니다.
임선묵.
마수전 스페셜리스트라는 별명과 함께 마지막 로맨티스트라고 불리운다.
거의 사장되다 시피 한 SK환국을 아직까지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과거 환국의 정석으로 불렸던 SK환국이지만 마수들의 컨트롤과 불가살 운영이 극에 달하면서 자연스레 사장 된 체제다.
불가살의 방어력 업그레이드가 모두 끝나면 풀업 궁병으로도 죽이기 매우 힘들다.
단순 불가살만 오는 게 아니라 망태할배의 흑운과 함께 오기 때문에 궁병으로 죽이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전투가 벌어지기 전 해모수의 천독연을 활용해 불가살의 체력을 반 정도 깎아놔야 어느 정도 싸움이 될 정도다.
물론 그마저 쉽지 않다.
혈풍이 두 눈을 부릅뜨고 해모수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고 혈풍이 없다고 하더라도 망태할배의 토혈과 닷발귀 콤보를 조심해야한다.
닷발귀 공격 한 번에 해모수 두, 셋이 한 번에 날아가며 때 아닌 불꽃 축제를 벌일 수도 있었으니까.
마수가 손이 한 번 가면 SK환국은 손이 두 번, 세 번 가게 되었다.
SK환국의 한계를 느낀 정명혁은 레이트 메카닉이라는 희대의 전술을 만들어냈고 현재는 SK환국의 자리를 대신 하고 있었다.
이미 시대의 흐름은 대 마수전에도 화통도감의 기갑 병력을 활용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었지만 임선묵은 지금도 SK환국 체제를 유지했다.
단순히 유지하는 걸 넘어 한 단계 발전시킨 임선묵식 SK환국을 만들기에 이른다.
그 결과 비록 임주혁과 단 한 번도 같은 팀이 된 적이 없지만 정명혁을 제치고 임주혁의 후예라는 칭호까지 얻었다.
여기까지 임선묵 띄우기였다면 이제 냉정히 현실을 바라보자.
사실 임선묵이 마수전에서 SK환국을 고집하는 건 훈련도감 유닛과 해모수를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기갑병력 운용이 상대적으로 미숙하기 때문이었다.
임선묵은 용막이다.
임천형(천자총통이 똘똘 뭉쳐서 진천형을 하는 걸 말한다. 임주혁이 자주 보여줘서 그의 성 임이 앞에 붙었다.)을 예삿일이고 이동하다 용족 병력에 싸 먹히는 일도 자주 나온다.
아마추어 같은 실수도 가끔 나올 정도로 임선묵은 기갑병력 운용을 잘 하지 못했다.
환국전 역시 막장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기갑병력을 운용해야하는 경기였기에 마수전에 비해 떨어졌다.
이 점이 한민규에게 웃어주는 부분이었다.
-한민규 선수에게 조금 기우는 대결이지만 결과는 아직 몰라요. 뚜껑을 열어봐야 아는겁니다.
-전 세트를 지켜본 임선묵 선수가 각성해서 복수를 할 수도 있는 것이거든요.
-자. 그럼 저희는 잠시 광고 후에 5세트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
“수고 했다! 근데 너무 잔인한 거 아니냐?”
저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미션이 그랬는걸요.
“그러게. 뒷사람 어떡하라고? 임선묵한테 민규 험한 꼴 당하면 어쩌려고 그래?”
슬쩍 웅인의 벤치를 바라보았다.
“........”
활활 타오른다는 표현을 언제 쓰는 건지 오늘 다시 한 번 확실히 알게 되었다. 웅인 선수들의 눈에서 화염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흠. 사기를 꺾으려고 한 건데 오히려 반대로 자극한 꼴이 되었나?
김연훈의 시선이 이 쪽을 향하는 것 같아 바로 고개를 돌렸다.
눈 마주쳐서 좋을 것 하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본능이었다.
난 어깨를 으쓱였다.
“에이. 민규가 이기면 되죠. 그러면 끝나는 거 아니에요?”
“.....꼭 이겨야겠네요.”
민규가 각오를 다졌다.
제대로 동기 부여가 되었군!
진다면 보통 험한 꼴로 끝나지 않을거란 걸 직감한 듯 싶었다.
역시 민규는 똑똑해.
“그래도 잘했어. 좋은 도발이었다. 이런 것도 있어야 승부가 재미있어지지. 그리고 50승 축하한다.”
감독님은 언제나 내 편이다.
“아. 맞다. 너 50승 했지? 축하한다!”
연호가 내 등에 매달리며 호들갑을 떨었다. 연호를 떼어내며 조용히 말했다.
“...오늘 진 사람은 빠지시지?”
“헐. 승우 너 그렇게 안봤는데.”
연호가 충격에 빠진 얼굴로 멈췄다.
저 표정에 속으면 안 된다.
저거 연기다. 연기.
얼마 안 있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다시 장난을 걸어댈거다.
처음엔 몇 번 속아 넘어갔지만 이젠 속지 않는다.
서로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면 나도 이런 농담을 건네지 않았을거다. 상처가 될 수 있으니까.
팀에서 나와 가장 친한 사람을 꼽자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연호의 이름을 댈 것이다.
같은 방을 사용하는 룸메이트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동갑이라는 것이 컸다.
예전에 연습실에서 비밀을 공유한 사이이기도 하고.
그 일이 결정적이었던 것 같다.
그 날 이후 연호도 나에게 마음을 많이 열었고 나 역시 연호가 편해지게 되었다.
“억울하면 이겨라. 이겨서 놀려라. 저번에 놀림 받은 거 생각하면 내가 아직도 밤에 잠을 잘 못잔다.”
난 연호에게 눈을 흘겼다.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나무전자전에서 2패를 하고 연호의 놀림을 얼마나 받았는지 모른다.
하필 그날 연호가 승을 따내는 바람에 놀림의 강도가 훨씬 심했다.
자나 깨나 놀려댔으니까.
기침도 송병호의 이름을 넣어서 할 정도였다.
그때 결심했다.
이기면 반드시 복수를 해주기로!
그 날이 이렇게 빨리 돌아올 줄 몰랐지?
쌤통이다. 이 것아!
말은 이렇게 하고 있어도 연호에게 고마운 마음이 더 컸다.
오히려 그렇게 언급해주지 않고 쉬쉬했더라면 마음이 불편해졌을 것 같다.
“자. 이제 경기 지켜봅시다!”
여유로운 몸짓으로 팔짱을 끼고 의자에 앉았다.
스킬 포인트 조각은 조금 있다 확인하고 일단 경기에 집중할 생각이다.
민규야. 반드시 이기렴.
그래야 험한 꼴 안당한다.
****
-한민규 선수 금와 7기! 우회합니다! 임선묵 선수 아직 못봤어요. 얼른 파악해야죠!
-자.자. 천리안으로 화살탑 위치 확인하고! 본진으로! 본진으로! 날아가는 위치가 너무 좋아요!
-어? 어? 저거 떨어지면 임선묵 선수 위험해요!!!!
전 경기의 여파 때문이었을까?
의외로 초반 주도권을 먼저 잡은 건 임선묵이었다.
평소와 달리 천자총통 사거리 싸움에서 이득을 본 임선묵이 유리한 지형을 선점하는데 성공했다.
자칫하다간 그대로 조이기를 당할 수 있는 상황.
한민규가 우측 돌파를 성공해 그나마 숨통이 트이게 되었지만 여전히 불리한 건 사실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전장의 70%가 임선묵의 차지가 된다는 걸 알고 있던 한민규는 빠르게 트리플 지역을 가져가며 대규모 금와 드랍을 준비했다.
그 수가 무려 7기.
목적은 하나다.
임선묵의 화통도감을 완벽히 장악하는 것.
떨어지는 순간 주변이 초토화 될 어마어마한 화력을 지닌 병력의 수였다.
한민규가 준비한 마지막 일격이기도 했다.
이게 통하면 이긴다.
막히면?
진다.
아마 임선묵은 쉽게 끝내려하지 않을 거다.
온 전장을 먹고 세레모니를 준비하겠지.
금와의 이동 경로가 좋다. 임선묵의 시야를 교묘하게 빠져나갔다.
웅인 벤치에선 안타까움이 아스트로 벤치에선 환호가 터져나왔다.
-아. 이대로면 떨어져요! 떨어집니다!
-임선묵 선수 아차 싶을거에요. 병력 본진으로 돌아오지만 걸어오는 병력이 날아오는 병력을 어떻게 쫓아옵니까!
본진 근처에 둘러진 화살탑에 금와 1기가 터지긴 했지만 6기에 탄 병력이 무사히 내리는데 성공했다.
-진천형! 진천형!
-한민규 선수가 울분이 이렇게 터져나오나요!
1부대에 가까운 천자총통이 불을 뿜었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붉은 색 체력으로 변한 임선묵의 건물들.
한민규가 가장 먼저 노린 건 창고였다.
화통도감이 있어도 창고가 파괴 되어 인구수 제한이 걸리면 병력을 생산 할 수 없다.
좋은 판단이었다.
체력이 더 적기 탓에 순식간에 창고 여러개가 파괴되었다.
그때 임선묵의 병력이 본인의 앞마당 쪽에 도착했다. 하지만 언덕에 절묘하게 배치 된 한민규의 병력 때문에 쉽사리 언덕위로 올라오지 못하고 있었다.
-아. 언덕 입구가 잡혀서 못올라오고 있어요!
-이게 지금 누구 본진입니까? 임선묵 선수 본진 아닙니까? 본인의 본진인데 못 올라가요!
-임선묵 선수 낭패한 표정 짓고 있죠.
-분명 유리했거든요. 승리를 굳힐 수 있었거든요. 한민규 선수가 정말 영리했습니다. 풍운청을 숨겨 지어 금와를 모으고 있다는 걸 들키지 않았어요. 만약 금와를 몰래 모으고 있다는 걸 알았다면 임선묵 선수가 지금보다 훨씬 많은 화살탑을 지었을 겁니다.
-전략의 승리입니다. 이건!
-아스트로 연패에서 탈출하나요?
한민규의 기갑 병력에 의해 본진이 완벽히 장악 당했다.
본진을 둘러치고 있는 화살탑 장벽도 사라진 상황이라 추가 병력이 오기도 쉬워졌다.
아직 병력의 수 자체는 임선묵이 많았지만 역전당하는 건 시간 문제였다.
병력 생산이 중지 된 임선묵.
적은 자원을 먹고 있지만 아직 화통도감을 돌릴 수 있는 한민규.
타 스타팅에 창고와 화통도감을 지으며 부랴부랴 복구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지만 그걸 그냥 두고 볼 한민규가 아니었다.
-자! 뚫습니다! 뚫어요!
-지금 상황 좋거든요? 계속 움직여야죠!
한민규의 두 번째 목표는 앞마당 앞 쪽의 라인을 걷어내는 것이었다.
어차피 본진은 확실히 장악했다.
거기에 추가병력을 보내는 것보다 라인을 완벽히 깨뜨리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앞마당이라도 사수하기 위해 임선묵은 병력 일부를 뒤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 공백을 한민규가 잘 노렸다.
-걷어내나요?
-이대로면 걷어내죠! 이거까지 걷어내면 임선묵 선수가 유리한 것이 하나도 없어져요!
일꾼도 함께 동원한 한민규.
반드시 뚫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이 라인이 뚫리게 되면 한민규에게 지상으로 움직일 수 있는 통로가 생긴다.
답답하게 금와로 이동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 것이 무엇을 의미하느냐?
임선묵이 전처럼 전장을 장악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조이기 라인이 완벽히 걷어지는 순간 임선묵이 GG를 선언했다.
-GG! 임선묵 선수 GG를 선언합니다.
-정말 값진 승리를 따내는 한민규!
-이 선수 신예선수 맞나요? 판단이 뭐 이리 완벽합니까?
-아직 20살에 불과한 선수가 역전을 하는 법을 알고 있어요. 그냥 힘으로 부딪치는 것이 아니라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경기를 역전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어요!
5세트에서 깔끔하게 경기를 마무리한 한민규가 환하게 웃으며 부스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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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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