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87 Game No. 287 안드로메다로 관광버스 운행합니다. =========================================================================
-잠깐만요? 지금 솟대로 무언가를 쓰고 있는 것 같은데요?
예리한 김정식 해설이 가장 먼저 상황을 파악했다. 솟대는 아무렇게나 지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일정한 법칙에 의해 소환되고 있었다.
좌우 대칭의 모습.
그 것은 바로.
-하트! 하트입니다!
-아니 이게 뭡니까! 제가 보고 있는 것이 맞나요?
-진짜 이승우 선수 오늘도 세레모니를 준비해왔습니다!
하트였다.
조금 삐뚤빼뚤하긴 하지만 중앙에 그려지고 있는 건 하트였다.
중계진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카메라가 웅인의 벤치를 잡았다.
감독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선수와 코치들은 똥 씹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농락.
완벽한 농락이다.
사기를 바닥까지 떨어뜨리는 것도 모자라 지하 깊숙한 곳까지 집어넣으려는 농락.
마치 본인이 당한 것처럼 선수들은 분해했다.
“이야. 저게 뭐냐?”
신연호가 신난 목소리로 외쳤다.
그의 눈이 반달처럼 휘었다.
“진짜 독하게 경기 하는구나.”
박현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최근 2패를 당했다고 저런 세레모니를 준비했을 줄이야.
-완벽히 이겼다는거죠. 동시에 본인의 50승을 자축하는 세레모니이기도 합니다.
플래티넘 징크스.
분명 있긴 했지만 이승우는 3경기만에 극복하는데 성공했다.
경기는 많이 유리하다.
경기가 시작한지 20분이 지났건만 용족과 마수의 확장 수가 같다.
더군다나 중앙을 용족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
마수가 할 수 있는 건 폭탄 드랍 뿐인데 그마저 여의치 않다.
전장 곳곳에 비비가 흩뿌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새로 생산한 비비가 아니었다. 초반에 생산했던 비비가 죽지 않고 아직까지 살아있는 것이었다.
김택윤과 함께 비비 관리는 세계 제일인 이승우였다.
-이건 보통 세레모니가 아니에요. 웅인의 기를 죽이는 세레모니임과 동시에 아스트로의 기를 살려주는 세레모니입니다. 최근 3연패 오늘 탈출해보자. 이거입니다! 뿐만 아니라 경고의 의미도 지니고 있어요. 오늘 경기를 펼치는 김윤호 선수에게 보내는 메시지에요! 너도 험한 꼴 당할 수 있다라는 경고!
박용제 해설이 목에 핏대를 세웠다.
본인도 악마 용족이라 불렸기에 지금 이승우의 심리를 너무나 잘 파악하고 있었다.
흥미진진한 경기가 이렇게 또 만들어지고 있었다.
-정말 대단합니다.
-어? 이승우 선수. 웃어요! 웃고 있어요!
-본인이 생각해도 재미 있는거죠! 지금 이 상황이! 하트라니! 해설 양반 이게 무슨소리요? 전장 중앙에 하트라니!!!!
하트를 차근차근 완성시켜가는 이승우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참아보려 하는 것 같았지만 그게 쉽게 될 리가 없다.
아스트로 팬들에겐 이 상황 자체가 재미있었지만 웅인 팬 입장에선 악마의 미소와 다름 업었다.
****
오늘 모험을 했다.
김진철 전에서 공격형 스킬을 하나도 챙기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김윤호 전에 사용해야하기 때문이었다. [투신]을 제외하고 최대 3번 밖에 사용하지 못하니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마저 [CCTV]와 [숨바꼭질], [폭주기관차]는 레벨 3이라 두 번 밖에 사용하지 못했다. 2단계 스킬은 최대한 아껴둬야 했다.
일단 [날빌러]와 [엄대엄]을 챙긴 후 남은 2칸에 무엇을 채울지 고민했다.
도무지 넣을 만한 스킬을 찾지 못했다. 경기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한 스킬이 대부분이었고 조금 괜찮다 싶으면 왠지 지금 쓰기엔 아까운 느낌이 들었다.
한참 고민하던 난 결론을 내렸다.
[승우네 관광버스]와 [안드로메다]를 동시에 사용하기로.
나쁜 생각은 아니었다. 빈 칸으로 가느니 뭐라도 채우는 것이 나았으니까.
시작과 동시에 두 스킬을 사용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떤 미션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사건을 기다리는 코난의 심정이 이랬을까?
차례로 미션이 떴다.
확실히 [안드로메다]의 미션이 [승우네 관광버스]의 미션보다 어려웠다.
[승우네 관광버스]의 미션은 이무기를 생산해 3킬 이상을 기록하는 것.
스킬 레벨이 올라가다보니 단순 생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추가 미션이 따라붙었다. 3킬은 전체 킬 수가 하닌 한 이무기가 달성해야 할 킬수다. 그러니까 3기를 뽑아서 각각 1기씩 1킬을 하면 미션을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1기를 뽑아 3킬을 달성해야한다.
뭐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그리고 대망의 [안드로메다] 미션은.
[전장 중앙에 15개 이상의 솟대를 이용해 하트를 그리세요. 관광조건 : 하트의 완성 혹은 하트를 본 김진철의 GG 선언.]
.....잔...잔인하잖아?
하트라니. 하트라니!
옥상 시멘트 위에 핀 민들레꽃처럼 전장과 하트는 쉽게 매치가 안 되었다.
경기를 치르면서 하트를 만들어본 적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건 아마추어 시절 때도 그랬고 연습생 때도 마찬가지였다. 괜히 멱살잡이를 하고 싶진 않았다.
조금 미안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 그래도 미션이니 어떻게든 성공시켜야했다.
다행히 상황이 잘 풀려 중앙에 하트를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초반 찌르기가 결정적이었다.
마수의 기세를 확 꺾는데 성공했다.
만약 그 것이 없었다면 주도권을 잡는데 실패했을 거다.
전장이 전체적으로 마수에게 좋다.
드랍을 하기에도 좋고 확장을 방어하기에도 좋았다.
흔들릴 수 있는 여지를 사전에 차단한 것이 주효했다.
솟대가 하나씩 완성 될수록 하트의 모습이 나타났다. 약간 모양이 일그러지긴 했지만 이거 가지고 미션 실패라고 하면 조금 짜증이 날 것 같았다.
마지막 15번째 솟대가 지어지며 솟대가 완성되는 순간 다행히 미션 성공 창이 떠올랐다.
[[안드로메다] 미션 달성에 성공했습니다. 보상으로 스킬 포인트 조각을 획득했습니다.]
야호!
드디어 첫 [안드로메다] 성공이구나!
[안드로메다]는 [승우네 관광버스] 진화형 스킬.
레벨 1이지만 꽤 많은 스킬 포인트 조각을 줄 것이다. 상상만으로 행복해지는구만!
아직 경기 중이라 확인할 수 없었지만 꽤 많이 줬겠지?
이제 남은 건 [승우네 관광버스]를 성공시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성공시키면 최소 포인트 조각을 50개 이상은 받지 않을까 싶다.
스탯 포인트 1개는 보너스!
이 두 가지 세레모니는 스킬 포인트 조각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팀원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불타올라라. 아스트로여!
이 세레모니에 모두 웃고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 역효과가 나면 큰일이지만 뭐 좋은 쪽으로 풀리겠지?
자. 그럼 슬슬 마무리를 지어야겠다.
****
-지금 김진철 선수의 본진 쪽으로 날아가는 거 뭐죠? 운룡인가요?
비비보단 속도가 확실히 느린 무언가가 날아가고 있다.
견제를 위한 운룡인가 싶어 봤더니.
-이무기!
-이무기입니다!
-세상에서나 마상에나! 한 달에 한 번 보기도 힘든 이무기가 오늘 나오네요!
중계진이 합창을 했다.
하트 세레모니가 끝이 아니었다니.
아직 더 한 것이 남아있었다니!
-쉽게 가지는 않겠다 이거죠!
-이승우 선수 오늘 진짜 마음 독하게 먹고 나왔는데요? 2연패에 대한 복수를 여기서 하는건가요?
-웅인 입장에선 정말 억울할 것 같네요. 아니 패배는 나무전자에게 당하고 왜 화는 우리 팀에다 푸는거야?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것 같습니다!
세레모니 종합 선물 세트다.
앞마당 방어하기 바쁜 김진철이 본진에 하늘 촉수 지었을리 없다.
-다다다다다!
-안 그래도 바닥 난 금광이라 2씩 밖에 채취 못하는데! 그 일벌레를 또 잡아주네요!
-이거 서러워서 일 하겠습니까?!
이무기가 일벌레를 때리기 시작했다.
이무기의 지상 공격력이 아무리 형편없어도 일벌레 정도는 잡아낼 수 있다.
화면에 김진철의 얼굴이 잡혔다.
화조차 나지 않는 듯 헛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 진짜 이러면 나가기 싫죠.
-어떻게든 이승우 선수에게 한 방을 먹이고 싶을 겁니다. 근데 그게 쉽지 않다는 걸 김진철 선수가 제일 잘 알죠!
-반쯤 포기했습니다. 넋이 나갔어요. 일벌레가 잡히는데 병력의 이동이 없습니다!
-당장 보낼 병력도 없어요. 가시귀 위주로 방어를 하고 있어서!
-이 사이에 1킬, 2킬을 넘어 3킬까지 해냅니다.
본진에서 금을 캐고 있는 일벌레를 모두 잡은 후 유유히 사라지는 이무기.
왠지 모르게 뿌듯해 보이는 이무기였다.
****
-김진철 선수 GG를 선언합니다!
-아. 이승우 선수 아주 잔인한 위치에 지어진 솟대에요!
-하트도 모자라 이무기에게 당하기까지 했어요. 김진철 선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습니다.
-아. 진짜 화 날만 하죠! 뭘 해보지도 못하고 졌는데요!
-초반 타격이 뼈아팠습니다. 5분만에 경기가 기울었어요.
4세트의 승자는 이승우로 결정 났다.
경기가 끝나기 10분 전부터 이미 크게 기울어있었다.
어떻게든 역전을 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김진철이지만 판을 뒤집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이무기에 된통 당하다 GG를 쳤다.
이승우는 이무기의 속업을 해주는 여유까지 보여줬다.
그때까지 김진철이 버티고 있던 이유는 하나.
중앙에 지어진 솟대 하트를 파괴하기 위해서였다.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으니까.
하지만 솟대 하나 부수지 못하고 모든 병력이 전멸 당했다.
-도발은 제대로 먹혔네요. 웅인의 벤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흥분했어요. 완전히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이 흥분이 전투력을 끌어올리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역으로 마음만 급해지고. 시야는 좁아지고. 그렇게 될 수도 있거든요? 일단 흥분을 가라앉혀야합니다.
도발의 효과는 확실히 있었다.
차분하기로 유명한 정재균 감독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를 정도였으니까.
-이승우 선수는 오늘 승리로 많은 걸 챙겨가네요. 2연패 탈출과 동시에 50승! 프로리그에서 50승이라는 금자탑을 세우는 이승우입니다!
프로리그 50승.
플래티넘 크라운의 숫자는 한 해에 보통 두 자리를 넘지 않는다.
예외적으로 10명이 넘은 적이 있긴 하지만 그 한 번을 제외하곤 10명 이상 나온 적이 없었다.
위너스 리그가 시작되기 전엔 1명도 나오지 않은 시즌도 있었다.
아스트로 역시 여태 단 한 번도 50승을 배출한 적이 없었다.
40승 고지에 오른 선수도 없었다.
박현우가 기록한 35승이 최고 기록이었다.
50승은 단순히 팀의 에이스가 아니다.
프로리그의 지배자를 뜻한다.
이번 시즌 네 번째로 50승 고지를 점령하며 다승 공동 3위가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프로리그 50승은 전에 달성했다.
위너스 리그 결승에서 이제운을 꺾었으니까.
그 기록은 프로리그 전체 기록엔 들어가지만 해당 시즌 기록엔 포함되지 않는다.
그 기록은 어디로 가느냐?
당연히 없어지는 건 아니다. 사실 포스트 시즌 승수와 승률을 따로 집계한다.
조금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축구로 예를 들자면 포스트 시즌은 컵 대회 같은 거다.
이런 집계 방식 덕에 재미있는 스토리가 생기기도 했다.
정규리그에선 약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포스트시즌만 되면 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선수가 나타나는가하면 반대로 정규리그에선 팀에 승수를 챙겨주며 에이스의 모습을 보이지만 포스트시즌만 가면 유독 악해지는 선수들도 나왔다.
이런 것에 팬들은 재미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