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83 Game No. 283 (수정) =========================================================================
-오늘 경기가 이렇게까지 오네요.
-정말 흥미진진합니다! 이런 경기를 다들 바라고 경기장에 직관을 하러 오신게 아니겠습니까?
-양 팀 오늘 모든 걸 불태우네요. 멋진 경기력이 모든 세트를 가득 메웠습니다!
중계진이 흥분해 소리쳤다.
이들의 말처럼 오늘 양 팀의 경기력이 준수했다.
OME라고 불릴만한 경기가 하나도 없었다.
OME는 Oh My Eyes의 줄임말로 눈뜨고 보기 힘든 경기를 말하는 것이었다.
프로게이머라고 하더라도 컨디션 난조에 따라 좋지 않은 경기력을 보여줄 때가 가끔 있었다.
다행히 오늘은 그런 경기가 나오지 않았다.
모두 박수를 받기에 충분한 경기들이었다.
-만약 나무전자에서 승리를 따낸다면 오늘의 MVP는 누가 뭐래도 송병호 선수입니다.
두말할 필요가 없다.
가장 중요한 시점에서 1승을 챙겨준 선수가 MVP를 받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에이스 결정전에 다시 출전해 승리한다면?
주간 MVP까지 노려볼만한 활약이다.
-과연 양 팀에선 어떤 선수가 나오게 될 것인지!
-일단 아스트로에선 이승우 선수가 나올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괜히 아스트로의 수호신으로 불리는 것이 아니죠.
-전장이 환국에게 괜찮은 심판의 날이기에 변칙적으로 박현우 선수를 내보낼 수도 있거든요?
금광 확장을 가져가라면 개방 된 지형까지 진출해야하는 다른 전장과 달리 심판의 날은 두 번째 확장을 가져가기가 비교적 쉽다.
방어 역시 용이하다.
심시티와 소수의 병력 배치로 상대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다.
금광까지 딸려 있어 환국이 안정적으로 여기까지 확보하다면 풀업 병력 200을 모을 수 있게 된다.
-나무전자에서도 고민이 클 겁니다. 전장이 환국에게 괜찮거든요?
-박철호 선수가 있긴 하지만 에이스 결정전에 내보낼 수 있는 카드는 확실히 아닙니다. 아직 안정감이 부족하거든요. 그럼 5세트에서 나왔던 이성표 선수가 나와야하는데 만약 아스트로에서 이승우 선수가 나온다면 조금 힘들거든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성표는 용막이다.
-나무전자 입장에선 허영우나 송병호 선수를 꺼내들 것 같습니다. 1세트에서 패배한 허영우보단 송병호가 카드가 확실히 나아보이거든요?
송병호가 4세트를 이기지 못했더라면 경기는 4:0.
아스트로의 완승으로 끝났을거다.
그걸 막은게 송병호다.
그리고.
-자. 에이스 결정전에 나오게 될! 팀의 승리를 책임 질 선수가 공개됩니다!
-먼저 나무전자에선!!!!!
-송병호! 송병호 선수를 선택했습니다. 역시 가장 믿고 쓸 수 있는 카드죠!
-4세트의 승리가 컸나봅니다. 어떤 선수가 나와도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는 표정이네요.
승리를 가져오기 위해 다시 한 번 에이스 결정전에 출전했다.
-송병호 선수와 부딪치는 선수는 과연!
뒤이어 아스트로의 에이스 카드도 공개가 되었다.
거의 대부분의 예측대로 이승우가 에이스 결정전에 나왔다.
자청했을 수도 있고 감독의 지시일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4세트의 리매치가 완성 되었다는 것이 중요했다.
-이승우입니다. 이승우!
-4세트에서 패배하긴 했습니다만 이승우 선수 만큼 확실한 실력의 선수는 없거든요!
-CT전에서도 4세트에서 이영우 선수에게 패배했었지만 에이스 결정전에서 만나 승리를 따낸 기억이 있거든요! 오늘도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하루 2패를 허용하기엔 이승우 선수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못하겠죠.
-양 선수 모두 물러설 수 없습니다. 이번 경기의 승자가 최후의 승자가 됩니다.
-자존심과 함께 팀의 승리가 걸린 경기입니다.
-양 팀의 벤치 그 어느때보다 진지한 얼굴로 선수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럼 심판의 날에서 두 선수의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관중들의 뜨거운 환호 속에 에이스 결정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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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스 결정전.
언제 들어도 긴장감이 넘치는 말이다.
CT전에 이어 다시 한 번 에이스 결정전을 맞이하게 되었다.
대장전과 다른 긴장감이 전신을 타고 흐른다.
팀원들이 만들어 준 소중한 기회다.
결코 놓칠 수 없었다. 꼭 보답을 하고 싶었다.
이미 팀원들이 잘 차려놓은 밥상을 걷어찼다.
하루에 두 번 그럴 순 없었다.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그런 상황은 만들어지지 말아야했다.
반드시 이기고 싶었다.
이기려면 어떤 빌드를 써야할까?
수 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동족전이라 변수가 너무 많았다.
4세트에서 송병호는 과감하게 배를 쨌다.
이번엔 정석으로 갈 가능성이 높았다.
그럼 내가 과감하게 배짱을 부려볼까?
심판의 날은 앞마당 입구가 좁아 방어하기에 용이한 전장이다.
4세트에서 송병호가 그런 것 처럼 빠르게 확장을 가져가도 괜찮다.
좋았어.
이번엔 내가 배를 제대로 불려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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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의 날에서 나무전자와 아스트로의 운명이 결정 됩니다.
-나무전자에겐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4세트가 시작 되었을때만 해도 에이스 결정전까지 오리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중계진 뿐만 아니라 나무전자의 팬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을거다.
4세트에 나오는 선수가 이승우였으니까.
아마 경기가 그대로 4:0으로 마무리 될 거라 많이들 생각했을거다.
송병호도 대단한 선수이긴 하지만 이승우는 그가 여태껏 단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선수.
다시 한 번 만난 순간 부담감이 그를 짓눌렀을 거다.
하지만 송병호는 이겨냈다.
그리고 에이스 결정전에 다시 한 번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엔 이승우 선수가 빠르게 앞마당을 가져갑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송병호 선수의 선택입니다. 4세트의 이승우처럼 안정적인 운영을 가져갈지 아니면 똑같이 확장을 가져갈지. 그 것도 아니면 공격적인 빌드를 선택할지.
아직까지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서로 제단은 하나씩 보유하고 있는 상태.
다른 건 이승우는 확장을 가져갔다는 것뿐이었다.
그때 송병호가 움직였다.
제단 옆에 지어지는 또 하나의 제단.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 위에 제단이 지어졌고 다시 그 옆에 제단이 하나 더 소환되었다.
총 4제단.
극단적인 공격형 빌드였다.
-제단 4개입니다! 4개!!!!
-송병호 선수 이렇게 과감한 선택을 하다뇨!
-아. 큰일났어요. 이승우 선수. 아무 것도 모르고 확장을 가져가고 있는데 발견되는 순간 성난 송병호 선수의 병력에 밀릴 수 밖에 없어요!
송병호가 빌드에서 이겼다.
완벽하게 먹고 들어갔다.
용혼을 2바퀴만 돌려 러시를 가도 이승우는 막을 수 없다.
용혼의 차이가 배 가까이 날거다.
앞마당을 포기하고 본진으로 병력을 올린다고?
당장 경기는 지지 않겠지.
하지만 경기가 끝나는 순간까지 언덕 아래를 밟아 볼 수 없을 것이다.
본진에 영영 갇히고 말거다.
시간을 끌 필요도 없다.
언덕 위로 올라가서 경기를 끝내버려도 된다.
용혼이 조금 상하긴 하겠지만 괜찮다. 추가 생산되는 용혼이 있었으니까.
그 정도로 빌드가 심하게 갈렸다.
이승우가 지금 3제단을 빠르게 확보한다면 어떻게 버텨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승우의 선택은 제단이 아닌 용의 신전이었다.
4세트에서 송병호가 선택한 빌드였다.
그 순간 나무전자 벤치에 앉아있던 감독과 코치, 선수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팬들 역시 기대감 가득 한 표정으로 송병호를 바라보았다.
반면 6세트에서 패배하는 순간까지 평정심을 잃지 않았던 아스트로의 벤치는 우울함 그 자체로 변해버렸다.
****
나무전자와 아스트로의 경기가 끝났다.
모든 이들이 충격에 빠졌다.
그 정도로 이번 경기 결과의 파장이 어마어마했다.
결과는 4:3.
나무전자의 승리였다.
마지막 경기서 송병호가 승리를 거둔 것이다.
사람들은 이승우가 하루 2패를 했다는데에 큰 충격에 빠졌다.
그 대상이 같은 선수라는 것도.
하루 2승으로 팀의 승리를 지켜낸 송병호는 당당히 MVP를 받으며 이번 경기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쳤음을 인정받았다.
사실 하루 2패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오늘 경기에서 승리한 송병호도 하루 2패를 당한 적이 있다.
갓이라 불리는 이영우 역시 그런 적이 있었고 이제운, 김택윤도 그런 적이 있다.
이승우는 오늘 운이 나빴다.
서로 정찰에 실패했다.
빌드를 하나를 결정해야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모든 빌드를 이기는 빌드는 없다.
약점은 존재한다.
4세트에서 이승우는 빠른 확장을 배제한 빌드를 사용했고 송병호는 흑완을 배제한 빌드를 선택했다.
가위바위보 싸움에서 완벽히 이긴 것이다.
타 종족전이면 중후반 운영으로 역전이 가능하지만 동족전 같은 경우 그러한 그림을 그려나가는 것이 매우 힘들다.
에이스 결정전도 마찬가지다.
이승우는 4제단을 배제했고 송병호는 빠른 확장을 노렸다.
4세트보다 더 한 차이가 발생한 것이다.
심리전에서 졌다.
용용전은 빌드의 차이가 승패로 이어지는 경우가 특히 많은 경기다.
전성기의 김택윤과 송병호도 신예 선수에게 빌드에서 먹히며 진 적이 있다.
그럼에도 이렇게 사람들이 놀라는 건 그만큼 이승우가 보여준 경기력이 압도적이었다는 뜻이었다.
49승 5패.
오늘 패배를 당했어도 승률은 여전히 90%를 넘었지만 49승 고지에서 무너져서 그런지 유독 플래티넘 징크스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이승우의 패배와 함께 아스트로의 팀 순위가 7위로 떨어졌다.
아직 남은 경기가 많아 언제든 6위로 치고 올라갈 수 있지만 현재 순위가 3연패로 인해 주저앉은 것이라 우려를 표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러다 예전처럼 곤두박질쳐 포스트시즌 진출의 꿈이 좌절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 있었다.
물론 이런 말을 하는 이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오늘 2패로 이승우가 부진하긴 했지만 개인리그에선 아직 건재한 이상 언제든 다시 연승행진을 나아갈 가능성이 높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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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돌아오자마자 씻고 침대에 누웠다.
시간은 오후 5시.
점심도 제대로 못 먹었지만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저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6위도 IBX에게 빼앗겼다.
안좋은 일은 연달아 일어난다더니.
조상님 말씀치고 틀린 건 거의 없었다.
에휴. 어쩌다 이렇게 됐냐?
양 손으로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이미 머릿속은 고양이가 가지고 논 실타래처럼 잔뜩 엉켜 있었다.
마지막 에이스 결정전 경기를 머릿속으로 다시 한 번 떠올려봤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전투도 괜찮았고.
다만 송병호가 더 잘했을 뿐이다.
마치 버프 +50%가 걸려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평상시 상대했던 송병호보다 훨씬 잘했다.
[안드로메다]나 [승우네 관광버스]를 꺼내들 여유는 조금도 없었다.
휴대폰을 들어 오늘 경기 VOD를 돌려봤다.
내 움직임보다 송병호의 움직임 위주로 봤다.
확실히 평소와 달랐다.
내가 분석했던 송병호보다 더 빨랐고 유연했다.
“에휴.”
왜 졌는지 명확히 분석이 되어버려 더 VOD를 볼 필요도 없었다.
심리전에서 완벽히 말렸다.
난 송병호를 분석하는데 실패했고 송병호는 나를 완벽히 분석했다.
그러니 에이스 결정전에서 4제단같은 도박적인 수를 던진 거겠지.
솔직히 생각하지 못했다.
송병호가 그런 올인을 쓸거라곤.
안정적으로 할 줄알았다.
헌데 아니었다. 예상 밖의 움직임.
어쩌면 지는 건 그때부터 결정되어있었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마음이 차분해졌다. 흩어졌던 퍼즐이 하나씩 맞아가는 느낌이다.
이런 걸 깨달음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 뭐 질 수도 있고 이길 수도 있는 거지.
아예 터무니없이 진 건 아니라서 생각보다 충격이 크지 않았다.
빌드가 심하게 갈렸다.
반대로 말하면 송병호가 나보다 좋은 선택을 했다.
마지막에 4제단 올인을 할 줄이야.
헛 웃음이 절로 나왔다.
송병호도 보통 강심장이 아니다. 그러니 지금까지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거겠지.
어쨌든 이 정도 충격은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다.
아직 경기를 치를 날은 많이 남아 있었다.
갑자기 웃음이 났다.
언제 내가 이렇게 변했지?
예전이었다면 2패를 당한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고 바람 앞에 갈대처럼 멘탈이 이리저리 흔들렸을 거다. 꽤 오랜 기간 무너져 버렸을지도 모르지.
지금은 생각보다 덤덤하다.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
높아진 멘탈 능력치 그리고 [강심장], [강철멘탈]의 효과인가 싶기도 했고 그냥 경험이 많아져서 그런 건가 싶기도 했다.
둘 다 일수도 있겠지.
하루 2패를 당한거?
나 자신은 아무렇지 않다.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다.
다만 팀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은 크다.
팀의 승리를 지켜내지 못했으니까.
내가 2경기 중 1경기만 이겼다면 순위가 떨어지진 않았을텐데하는 진한 아쉬움이 남긴 했다.
그래도 아직 리그가 끝난 건 아니다.
떨어진 순위는 다시 올리면 된다.
올릴 자신이 있다.
오늘 진 건 생각도 안 나게 잘해서 포스트 시즌 안정권까지 팀을 끌어올릴 자신이 있다.
6라운드가 남아있었고 5라운드도 4경기나 남아있었다. 활약할 시간은 아직 충분하다.
저번에 역올킬을 당했을 때가 생각나는구나.
그때 감독님께서 그러셨지.
누구나 질 수 있다고.
지금이 딱 그 느낌이었다. 저번엔 팀원들이 졌고 이번엔 내가 졌다. 그 것 뿐이다.
50승 역시 마찬가지다.
평생 못 찍을 건 아니잖아?
오늘 못 찍었으면 내일 찍으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더 편해졌다. 가슴 한 구석을 짓누르고 있던 무언가가 조금씩 사라지는 느낌이다.
이야. 진짜 많이 변했구나.
PP에 무너지던 모습은 이제 없었다.
성장이라고 표현해도 되는 거겠지?
침대에서 그대로 벌떡 일어났다.
괜찮아졌는데 이대로 계속 누워있을 수 없지. 아직 해야 할 것들이 남아있었다.
문을 연 내가 향하는 곳은 연습실이었다.
============================ 작품 후기 ============================
또 다른 가을의 전설 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