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75 Game No. 275 조...좋은 경기다. =========================================================================
좋은 선택이다.
단순 용혼과 비렴으로 닷발귀를 잡는 건 쉽지 않다.
용혼의 공격은 소형인 닷발귀에 절반밖에 박히지 않고 빠른 속도로 날아다니는 닷발귀를 천벌로만 대처하는 건 효율적이지 못했다.
한눈만 팔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데미지가 박히기 전에 충분히 피할 수 있었다.
닷발귀가 아예 용안 위에서 싸워 버리면 천벌 자체를 사용하지 못할 가능성도 높았다.
그걸 이승우도 알았다.
그래서 병예를 뽑았다.
현재 닷발귀를 가장 효율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어차피 지상 화력은 용족이 압도적으로 강하다.
-아. 이승우 선수 정말 경기 잘 만들어가네요. 어? 어? 하는 사이에 자연스레 경기가 유리하게 변해 있습니다.
-김재만 선수 진퇴양난입니다.
-이거 들어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습니다. 뭘 해도 불리해지는 거예요.
병예가 나온 이상 닷발귀를 함부로 쓸 수 없다.
괜히 얼쩡거리다 속박이라도 걸리면 거기서 경기가 끝이었다.
많은 걸 해줘야 하는 닷발귀다.
가시귀를 포기하고 간 닷발귀기에 한 방 전투가 벌어졌을 때 비렴 대다수를 끊어 줘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가지고 있었다.
뒤늦게 가시귀를 생산하고 있지만 닷발귀 이후에 나오는 가시귀기에 그 숫자가 많지 않다. 세번째 금광을 가져갈 타이밍도 잡지 못하고 있다.
섣불리 가져갔다가 용족의 공격에 본진이 밀려 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많이 안 좋은 상황이지만 이 상황을 역전하려면 군락가면서 가시귀, 그슨대, 마견, 그러니까 가격이 비교적 저렴한 유닛들을 조합해 효율 높은 전투를 연달아 펼쳐야 했다.
일단 당장 해야 할 건 용족이 종앙으로 진출할 때 병력을 돌려서 용족의 확장 지역을 깨고 앞뒤로 싸먹으며 시간을 버는 것이었다.
-자. 김재만 선수 병력 돌립니다.
-정면으로 부딪쳐선 안 된다는 걸 본인이 가장 잘 아는 거겠죠.
-계란으로 바위치기입니다. 조합이 달라요.
순수 병력 숫자는 마수가 더 많다.
하지만 조합에서 많이 떨어진다. 단순 그슨대에 가시귀 몇 기, 닷발귀 몇 기가 섞여있는 것이 다인 마수. 반면 용족은 용아, 용혼, 비렴, 풍백, 병예가 조화롭게 섞여 있다.
섣불리 달려들었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이었다.
지형의 이점을 가지지 않은 상황에선 전투를 펼쳐선 안 된다.
지형의 이점을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전면전이 되선 안 된다.
어디까지나 시간을 끄는 용도일 뿐 전면전으로 이어져선 안 된다.
서로 눈치 싸움이 치열하게 펼쳐졌다.
이승우도 아직 확장 지역이 안정적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었기에 중앙에 병력을 위치시킬 뿐 당장 러시를 갈 생각은 없어보였다.
이 시간이 김재만에겐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때 모든 걸 해야 했다.
소굴의 숫자도 늘리고 확장도 해야 한다.
일벌레와 가시귀의 숫자도 충분하게 확보해 놓고.
-아. 물량이 마수보다 용족이 더 많습니다.
-6소굴 대 8제단이거든요? 이러면 충분히 싸움이 됩니다. 용족이.
-소모전을 해도 용족이 손해가 아닌 상황입니다. 지금 뭘 해도 돼요. 금광 멀티를 하나 더 가져가도 되고 러시를 가도 됩니다. 뭘 해도 나쁘지 않은 선택입니다. 그에 반해 이재만 선수는 쫓기는 심정으로 경기를 하고 있어요!
그때 김재만이 결단을 내렸다.
이대로 끌려 다니기만 해서 이길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린 것 같았다.
마견으로 이승우의 병력이 본진에서 멀리 떨어져 나온 걸 확인한 김재만이 전 병력을 이승우의 철광 멀티로 진군시켰다.
-자. 갑니다!
-확장을 깼다고 만족해선 안 됩니다. 확장 깨고 고스란히 병력 살려 와야 해요!
이승우도 뒤늦게 김재만의 의도를 파악했다.
확장 방어를 위해 병력을 뒤로 돌리는 이승우.
일사분란하게 퍼진 그슨대가 방어용으로 배치된 비렴의 천벌을 피함과 동시에 일점사를 통해 비렴을 순식간에 잡아냈다.
비렴이 사라지자 마수의 병력이 성난 파도처럼 달려들었다.
그대로 철광 멀티를 휩쓸어 버리는 병력.
건물을 파괴하는데 그슨대는 최고의 유닛이었다.
용광포가 여럿 소환되어 있었지만 몇 초도 버티지 못했다.
-자. 이제 빼야 해요. 괜히 늦었다간 다 싸먹……. 아! 왔습니다. 이승우의 병력이 왔어요!
-확장이 깨지는데! 그 급한 상황에 병력을 이렇게 차분히 갈무리하는 선수가 어디 있습니까?
신전이 깨지기 전, 그러니까 용광포가 정리되던 타이밍에 용족의 병력은 도착해 있었다. 하지만 기다렸다. 속도가 느린 비렴이 도착하지 않았으니까.
먼저 도착한 용아로 달려드는 것이 아니라 조합이 완벽히 갖춰질 때까지 기다렸다.
동시에 생산된 병력으로 좁은 길을 막아섰다.
마수의 병력이 본진으로 돌아가려면 이승우의 병력을 반드시 지나쳐야 했다.
-자. 이제 닷발귀의 활약이 중요합니다. 어차피 싸우면 져요. 최소한 비렴을 다 잡고 가시귀나 그슨대를 거의 다 살려 와야 합니다. 체력이 1이 되든 10이 되든 상관없어요. 살려 오기만 하면 됩니다! 살려 오기만!
닷발귀도 쉽사리 달려들 수 없었다.
병예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닷발귀가 날아오길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수 팬 입장에서 한쪽 가슴이 답답해 오는 상황.
작게 한숨을 내쉰 김재만이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본진 쪽에서 온 추가 그슨대로 상황 역전을 노렸다.
역 샌드위치가 목적이었지만 사실 그렇게 말하기엔 초라한 병력이었다.
구원요청에 응답한 병력의 수는 용아와 비렴만으로도 정리할 수 있을 정도로 적었다.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나았다.
-자. 달려듭니다!
-그슨대 부채처럼 확 퍼지죠!
보통 이런 전투가 벌어질 때 닷발귀가 가장 먼저 나서 비렴을 끊어 주지만 지금은 그슨대가 먼저 달려들었다.
닷발귀가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 주기 위해서였다.
어느 정도 효과는 봤다.
어쨌든 이승우도 사람이다.
동시에 2가지를 입력할 수 없었다.
결국 닷발귀가 속박에 묶였지만 그슨대가 달려든 사이 2기의 비렴을 끊어 줄 수 있었고 그로 인해 그슨대에 떨어지는 천벌의 수가 확연히 줄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김재만이 병력을 본진 쪽으로 쭉 뺐다.
용아가 뒤 따라와 그슨대를 끊으려 했지만 맞고 있는 그슨대를 가시귀알로 변신시켜 주며 용아가 그슨대 본대에 달라붙지 못하도록 해 줬다.
극에 달한 컨트롤.
애초에 큰 차이가 있었기에 온전히 이득을 거뒀다고 보기엔 힘들었다.
일단 닷발귀가 전멸했다.
가시귀 역시 뒤따라오는 병력을 견제하기 위해 놓고 올 수밖에 없었다.
도마뱀이 재생할 수 있는 꼬리를 자르고 도망간 것이 아니라 다리 하나를 내놓고 간 셈이었다.
살기 위한 희생.
그래도 확장을 깨고 절반의 병력을 살려 온 건 대단한 일이었다.
김재만이라 할 수 있던 일.
이런 움직임을 상상하는 건 쉽지만 실제 손으로 구현해 낼 수 있는 마수 선수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을 것이다.
-그래도 절반가량 살려 갑니다.
-이러면 엄청난 이득이라고 할 수도 없거든요? 이제 믿어야 할 건 마수의 회복 능력입니다! 그것만이 유일한 답입니다.
엄재웅 해설의 목소리가 경기장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이미 진출자와 탈락자가 나뉜 선수들 간의 경기라 기대를 하지 않고 있던 관중들이 태반이었다.
하지만 양 선수가 보여 주는 경기력은 8강 진출 티켓을 두고 벌이는 싸움만큼 뛰어났다.
그만큼 클래스가 있는 선수들의 대결이고 그만큼 자존심이 걸린 대결이란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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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겼다가 아닌 김재만이 GG를 치고 나가면 어떡하지였다.
다행히 김재만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조금 숨을 쉬게 만들어 줘야겠군.
지금 러시를 가면 큰 피해를 줄 수 있지만 조금 더 안전하게 가기로 했다.
압박을 조금 느슨하게 했다.
아예 숨통을 트여 준 건 아니다. 정확히 금광 멀티 하나 확보할 수 있는 여유만 줬다.
지금 판단도 나쁜 건 아니다.
오히려 다른 용족 선수들이라면 자연스레 공격보다 방어를 생각할 것이다.
당장 병력은 많지만 확장이 없다.
상대 병력을 꽤 줄여 준 덕에 지금 러시를 가면 큰 피해, 어쩌면 경기를 끝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막히면?
상대가 그걸 알고 가시 촉수 늘리고 가시귀 배치에서 어떻게든 꾸역꾸역 막는다면?
이러면 정말 상황 애매해진다.
자원을 원활하게 채취하지 못했기에 처음 병력만큼의 후속타가 나오지 않는다. 이제 본진 금광도 떨어져 용혼과 비렴의 수를 복구할 수가 없다.
이러면 어떻게 되냐고?
5:5가 돼 버리는 거지.
마견은 아예 금이 들지 않고 그슨대도 금이 별로 들지 않는 유닛이니까.
이 두 유닛은 철광 유닛만 먹어도 뽑아 낼 수 있다.
어차피 난 갈 생각이 없었다.
확장을 복원하며 [승우네 관광버스]를 준비할 생각이었다.
차라리 잘되었다.
김재만이 경기에 나가지 않게 되었으니까.
[승우네 관광버스]를 시작과 동시에 사용하면 마음이 편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신경 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아까 전투에서 병예를 살린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병예를 뽑은 건 닷발귀를 견제하기 위해서인 것도 있지만 [승우네 관광버스]를 위한 것이 더 컸다.
처음 미션을 봤을 때 황당했다.
병예의 현혹으로 일벌레를 빼앗으라니.
여기서 끝이었으면 황당해하진 않았을 거다.
빼앗은 일벌레로 소굴을 짓는 것까지가 미션이었다.
이게 조금 애매한 것이 성공 조건이 소굴을 완성시키거나 상대방이 소굴의 존재를 눈치채고 GG를 치는 것이었다.
김재만이 건설되는 소굴의 존재를 확인하지 못하고 GG를 치고 나가면 미션은 실패다.
뭐 이렇게 복잡해?
김재만이 알건 말건 소굴을 완성시킨다면 상관없겠지만 소굴이 완성되지 못했을 때 미션에 성공하려면 어떻게든 김재만에게 소굴의 존재를 알려야 했다.
여기까지 봤을 때 이런 생각을 했다.
러시를 가서 밀어 버린 후 앞마당 근처에 소굴을 지으면 되잖아?
하지만 이 생각은 정확히 1분 후 휴지통으로 향했다.
조건이 하나 더 있었다.
파괴되지 말 것.
아. 진짜 사람 귀찮게 하네.
레벨이 올라서 그런가? 되게 복잡해졌다.
이렇게 사람 귀찮게 만들어 놓고 스킬 포인트 조각 조금 주기만 해 봐라.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내가.
흥쳇뿡.
흠. 어쨌든 상황은 좋게 만들었다. 파괴된 철광 멀티와 금광이 있는 멀티 지역에 동시에 2개의 신전을 소환했다.
현재 자원을 채취하는 곳은 앞마당 한군데.
자원을 빨리 확보하는 것이 나에게도 중요하다.
조합된 병력이 유지되고 있어 당장 병력을 충원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김재만도 복구하느라 바쁠 테니까.
일단 안정을 꾀한 후 압박을 한번 갈 예정이다.
아예 밀어 버리겠다는 의도는 아니다.
시전을 붙잡아 주려는 것이다.
진짜는 운룡이다.
운룡에 병예를 실어 본진에서 금을 채취하고 있고 일벌레를 빼앗는 것.
단독으로 시도했다간 막힐 수 있다.
앞에서 신나게 북을 칠 때 운룡이 살며시 돌아가 일벌레를 빼앗아 온다.
일벌레야.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난감하겠지만 내가 잘해 줄 테니까 용족에 순순히 귀순하지 않으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