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63 Game No. 263 다시 찾아 온 기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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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했다! 대박!”
“최고다! 진짜 최고야. 이승우를 그렇게 쉽게 잡더니.”
“타이밍 진짜 지렸다. 와. 보고도 말이 안 나오더라.”
“이승우 표정 봤어? 개 빡쳐 보이던데.”
CT의 벤치는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프로리그 우승을 거머쥐었을 때만큼 좋아하는 것 같았다. 감독 역시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모두 이영우를 얼싸안으며 기쁨을 표출했다.
이영우도 미소로 화답했다.
이승우의 GG를 보는 순간 온 몸의 힘이 탁 풀렸다. 그 자리를 대신 메꾼 건 희열이었다.
이겼다.
그 것도 완벽하게.
밖에 나가서 소리를 치고 싶을 정도로 기뻤다.
그건 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간 이영우가 이승우를 이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는지 옆에서 봐왔다.
그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사실 오늘 이긴다고 바뀌는 건 없다.
프로리그 결승 직행을 확정 짓는 것도 아니고 개인리그 우승을 거머쥔 것도 아니다.
그저 프로리그에서 1승을 거둔 것이 전부다.
하지만 이영우에게는, 그리고 CT에겐 이보다 더 큰 의미가 있었다.
준비하면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그걸 얻은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간의 고생이 물 안에 넣은 솜사탕마냥 사르르 녹아 없어졌다.
스코어는 비록 2:2였지만 아스트로의 에이스인 이승우를 꺾었다.
반쯤 아니 80%는 승기가 넘어 온거나 마찬가지였다.
요즘 기세가 좋은 한민규도 1세트에 나왔고 주장 박현우 역시 3세트에 나왔다.
이제 5,6세트에 남은 선수 중 조심해야할 선수는 없다.
5세트엔 신예인 임형주가 6세트엔 신연호가 나온다.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다.
둘 중 한 선수만 이겨도 최소 에이스 결정전이다.
이승우가 다시 한 번 나올 수 있다는 말이다.
상처입은 맹수는 강하다.
이승우도 그럴 것이다.
무조건 그 전에 끝내는 것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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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입이 10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상대가 이영우면 조금 더 조심했었어야했다. 평소처럼 하면 안되었다. 하지만 난 그렇게 하지 못했다. 너무 안일하게 대처했고 결국 아무 것도 해보지 못하고 져버렸다. 그 것이 나를 더 괴롭게 했다.
30분 대 혈전 끝에 패배를 했다면 이렇게 자책하지 않았을 거다.
내가 한 게 없었다.
너무 무기력하게 패배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패배라고 다 같은 패배가 아니었다.
아쉬움이 남는 패배가 있는가하면 패배했지만 내가 가진 건 모두 쏟아냈다는 생각에 미련이 안 남는 패배가 있다.
지금은 철저히 전자였다.
당장 생각나는 실수만 해도 손가락으로 세기 힘들었다.
“죄송하긴. 질수도 있고 이길 수도 있는 거지.”
“그래. 오히려 여태까지 맨날 이겨서 인간미가 없었다. 난 네가 신들의 전쟁하려고 만들어진 기계인줄 알았거든. 오늘 경기 보니까 그 것도 아니네. 사람 맞네. 사람.”
“그러게. 지금 보니까 사람 맞네.”
“사람이니까 질 수도 있는 거야. 너무 다운 되지 마. 그 동안 네가 우리 팀에 해준게 얼만데.”
연호가 농담을 던지며 가라앉은 띄우려 애썼다. 다른 팀원들도 맞장구를 치며 분위기를 살렸다.
사람이니까 질 수도 있다는 말이 가장 와 닿았다.
다시 한 번 느낀다.
내가 정말 좋은 팀에 있다는 걸.
모두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있다.
얼마 전에 살짝 삐졌던 거 다 사과합니다. 제가 속이 좁았네요.
이렇게 저를 생각해주는 줄도 모르고.
“항상 이기면 무슨 재미냐.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어야지. 그 잘하는 이영우도 전성기 때 승률이 90%가 안 되었어. 그리고 아직 경기 끝난 것도 아니잖아.”
맞다.
신이라 불렸던 이영우도 최 전성기 때 승률 90%가 안 되었다.
80% 후반.
우스갯소리로 9할도 못 찍는 쓰레기, 구못쓰라고 불린 적도 있었다.
오늘 이영우에게 패배했긴 하지만 이번시즌 내 프로리그 성적은 45승 3패.
그야말로 역대급 성적이다.
승률도 9할을 훌쩍 넘는다.
여태 이보다 나은 승률을 보유한 선수는 1명도 없었다.
“그렇지. 말 한 번 잘했네. 아직 5,6세트 남아있어. 설마 남은 애들이 다 다고 생각하는거 아니지?”
도 수코님이 도끼눈을 하고 나를 바라보았다.
아. 그런 건 아니에요. 설마 제가 뭐라고....
그저 미안해서 그렇다.
3;1로 벌릴 수 있는 승부를 2:2 동점으로 만들어버렸으니까.
난 빠르게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니에요. 설마요.”
두 소코님의 두 눈이 반달처럼 휘었다.
“그래. 그러면 된 거야. 뒤에 나오는 팀원들 믿어.”
“우리가 경기 끝낼게. 그렇게 못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적어도 둘 중 한 명은 이겨서 너 에이스 결정전에 나갈 수 있게 해줄게.”
연호가 가슴을 손으로 팡팡 두드렸다.
오늘따라 연호가 참 듬직해 보인다.
“형주 자신 있지?”
“네? 아. 네.”
얼떨결에 대답하는 형주. 연호가 형주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얘 경기력 되게 좋아. 아까 하는 거 봤는데 장난 아냐.”
연호가 히죽 웃었다.
“나도 장난 아니고.”
친구라 그런지 그 어떤 팀원보다 나를 더 생각해주는 연호였다. 그 점이 항상 고마웠다.
흔들리던 마음이 조금씩 안정을 되찾았다.
문득 과거 팀원들이 졌을 때 불같이 화가 났던 적이 떠올랐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에게 그런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되었었는데.
난 고개를 들어 팀원들을 바라보았다.
“다들 고마워요. 오늘 형주나 연호가 2연승을 거둬서 승리로 마무리 짓는 것이 가장 좋은 시나리오겠지만 만약 그게 안 된다면 에이스 결정전까지만 가게 해줘요. 경기 지고 나서 말하기엔 너무 염치없는 것 같지만. 에이스 결정전에 제가 나가게만 된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반드시 팀에 승리를 안길게요.”
진심이다.
내가 가진 모든 걸 걸고 싸울거다.
나를 믿는 이들을 위해 내 모든 걸 던질 준비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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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로와 CT의 경기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예전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승리 DNA가 심어진 아스트로는 무서웠다. 5세트에서 임형주가 김대형에게 패배했지만 이어진 6세트에서 신연호가 박수천을 상대로 악착같이 승리를 따냈다.
초반 망루러시를 맞으며 7:3 아니 8:2로 기울어졌던 경기.
사실 그때 GG를 쳐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
하지만 신연호는 처절하게 버텼다.
연이은 공격에 계속 피해를 입으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연습 경기였다면 진작 나가고 새로운 경기를 준비했을 정도로 신연호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원래의 신연호였다면 그저 버티는 것 밖에 하지 못 했을거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눈빛이 달랐고 플레이가 달랐다.
움직임에 날이 서있었다. 초반 피해가 아니었다면 경기가 신연호에게 흘러갔겠구나 싶을 정도로.
슬금슬금 초반의 피해를 복구하더니 어느새 5:5 싸움을 만들었다.
정점은 천왕랑을 띄웠을 때였다.
몰래 확장으로 박수천 모르게 자원을 확보하더니 이내 천왕랑을 띄웠다. 몰래 확장은 발견하지 못했지만 천왕랑을 천리안으로 발견한 박수천이 러시를 감행했다.
용족에게 가장 위험한 타이밍.
아직 천왕랑의 여의주도 완벽히 차지 않았고 천왕랑의 공격력 업그레이드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
초반에 이어 두 번째 큰 위기를 맞이한 것이다.
이때 신연호는 침착했다.
병력을 함부로 쓰지 않고 시간을 끌었다. 싸워봤자 질게 뻔 한 환국의 기갑병력에 주 병력을 들이 받는 대신 박수천의 확장 지역으로 공격을 선택했다.
배짱 싸움이었다.
내 확장을 민다고?
그럼 너도 확장을 내놓아야할걸?
서로 물러나지 않았다.
이득을 본 쪽은 신연호였다.
신연호는 몰래 확장이 하나 더 있었지만 박수천은 확장이 하나 밖에 없었으니까.
만약 신연호의 확장이 하나 더 있다는 걸 알았다면 박수천은 이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 거다.
결과적으로 신연호가 이득을 봤다.
박수천 입장에서 고개가 갸웃거려질만한 일이다. 분명 확장을 전부 날렸는데 신연호가 태연히 천왕랑을 생산하고 있었으니까.
박수천이 신연호의 몰래 확장을 알아 챈 건 경기가 끝난 후 리플을 보면서였다.
어쨌든 천왕랑의 여의주를 채울 수 있는 자원이 아직 남아있던 신연호가 박수천의 신기전을 하나 둘 씩 끊기 시작했다.
신기전의 수가 많았지만 놀라운 컨트롤로 신기전의 수를 하나씩 줄여주는 신연호.
투혼이 장난 아니었다.
그의 몸 뒤로 이글거리는 불꽃이 보이는 것 같았다.
자신이 지면 팀이 진다.
반대로 자신이 이기면 에이스결정전으로 경기를 이끌 수 있다.
눈빛이 달랐다. 책임감에 어깨가 무거울 법도 하지만 신연호는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당당히 승리를 따냈다.
팀을 패배의 구렁텅이에서 구해낸, 그 어느 때보다 값진 승리였다.
-아. 양 팀 징글징글하네요. 이제 남은 건 단 한경기 입니다.
-정말 올 때까지 왔습니다. CT입장에선 정말 황당할 겁니다. 아니 이승우가 잡혔는데 여기까지와? 7세트까지 와? 아스트로에 이승우만 있는게 아니었어? 아스트로가 완벽하게 답을 내놓았습니다. 우리 팀에 이승우만 있는 걸로 알면 오산이다! 신연호도 있고 박현우도 있고 한민규도 있다!
-아스트로가 예전의 아스트로가 아니거든요. 무기력하게 패배하던 아스트로는 더 이상 없습니다. 가장 고무적인 건 이승우 선수가 패배를 했음에도 7세트까지 끌고 왔다는 겁니다.
-물론 이승우 1명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아직도 남아있긴 하지만 이젠 이승우가 1패 정도 당해도 끝까지 올 수 있다라는 걸 확실히 보여준 겁니다.
-CT 쪽에서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이승우를 잡는 순간 이겼다고 생각했을거거든요. 한민규, 박현우 선수에 이어 신연호 선수에게 발목이 잡힐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겁니다.
아마 지금 이 순간 가장 황당한 건 CT일 것이다.
이승우를 잡아냈는데 승리를 거두지 못하다니.
에이스 결정전까지 오다니.
이게 꿈이길 비는 이정훈 감독이었지만 꿈이 아닌 엄연한 현실이었다.
-이스포츠를 대표하는 최고의 리그 2015 신들의 전쟁 프로리그! CT와 아스트로의 에이스 결정전이 화려한 막을 올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캐스터의 외침이 끝나는 순간 무대가 암전되었다.
동시에 웅장한 음악이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모두 긴장한 얼굴로 무대 중앙을 바라보았다.
과연 에이스 결정전에 누가 나올 것인가?
이미 예상되는 선수들이 있긴 하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그 선수들이 무대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누가 나올지 아는 상황에도 이렇게 긴장 된 분위기가 유지되는 건 그만큼 기대감이 크다는 뜻이었다.
이영우와 이승우.
4세트에서 맞붙은 선수들이 다시 나올 확률이 가장 컸다.
내기를 하라면 큰 걸 걸 수 있을 정도로.
이 둘이 붙는다면 어떤 대결을 보여줄까?
4세트의 재현일까?
아니면 이를 갈고 나온 이승우의 역공이 펼쳐질까?
상상만으로도 즐거워하는 관중들이었다.
-자. 과연 어떤 선수가 에이스로 뽑혀 나올지! 사람들의 예상이 맞을지!
-이영우, 이승우가 나와야 하는게 맞긴 맞아요. 양 팀에서 내놓을 수 있는 최고의 선수들이거든요!
무대가 서서히 밝아지며 가운데로 난 길로 2명의 선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의 기대대로 이승우와 이영우였다.
투우록이 또 한 번 성사 된 것이다.
둘이 무대에 올라오는 순간 귀가 터져나갈 정도로 커다란 함성이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역시! 이 두 선수들이 또 붙네요!
-그렇죠. 이런 상황에서 에이스가 나와서 1승을 챙겨 줘야하는 거죠!
관중들을 향해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를 한 이승우와 이영우가 서로 악수를 한 후 부스로 향했다.
그러는 양 선수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물러서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이 엿보였다.
이들의 대결은 이미 시작된 상태였다.
-자.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습니다! 이승우와 이영우! 이영우와 이승우! 이번 경기 결과로 한 팀은 승리를! 다른 팀은 패배를 안고 숙소로 돌아가게 됩니다. 팀의 운명을 가를 마지막 에이스 결정전! 잠시 후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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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격에 무너진 이승우.
과연 그 복수를 할 수 있을지?
그럼 모두 좋은 하루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