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48 Game No. 248 기분좋은 시작. =========================================================================
Game No. 248
서로의 화면을 모두 보고 있는 이들이라면 모를까 본인의 화면, 즉 한정된 정보만으로 이런 과감한 결단을 내리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혹 마견을 추가로 더 생산해 냈다면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중간에서 싸 먹힐 것이다.
동시에 앞마당은 다시 위기에 빠질 테고.
하지만 이승우는 더 이상 마견은 없다는 확신에 찬 얼굴로 러시를 떠났다.
지금 할 수 있는 최고의 판단이었다.
정찰 목적으로 이승우의 앞마당 근처에 마견을 세워 놓았던 임형규.
용아가 나오는 걸 확인하자마자 부랴부랴 2개의 가시촉수를 앞마당에 지었지만 러시 거리가 워낙 가까운 탓에 용아가 더 빨리 도착했다.
가시 촉수가 완성되기 직전.
이승우의 판단은 임형규의 본진으로 용아를 들이미는 것이었다.
용아를 다 잃더라도 본진으로 올라가 피해를 주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조금만 망설였다면 2개의 가시촉수가 완성되었을 테고, 본진 난입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찰나의 순간이 경기의 흐름을 바꿨다.
본진 언덕으로 올라간 용아가 철광 쪽으로 가서 일벌레를 사냥하기 시작했다.
1기. 2기, 3기, 4기.
일벌레가 계속 잡혀 나갔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당황한 임형규의 일벌레가 우왕좌왕했다.
동시에 광풍협곡이 올라가고 있다는 것도 눈으로 확인한 이승우.
감으로 생각하는 것과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건 천지차이다.
뒤늦게 마견을 생산해 용아를 정리하려 했지만 철광 뒤로 숨어들어간 용아 5기를 정리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결국 생산된 닷발귀가 바로 이승우의 본진으로 가지 못하고 용아를 정리하는 데 먼저 쓰였다.
그 시간을 번 이승우는 앞마당을 복구하는 건 물론 본진과 앞마당에 용광포를 소환하며 닷발귀를 대비할 채비를 끝냈다.
비비 역시 하나둘 생산되고 있었다.
지금이야 비비의 수가 적어 적극적으로 전투에 임할 수 없지만, 4기 이상 뭉친다면 용광포를 벗어나 닷발귀의 뒤를 쫓을 수 있게 된다.
앞서 말했지만 임형규도 자원 상황이 여유롭지는 않다. 비효율적인 전투를 벌이면서 소모전을 펼칠 수 없다.
일벌레를 더 찍은 것도 후반 운영을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닷발귀를 한 번에 찍어 내기 위해 최적화 한 것에 불과하다.
그마저 방금 용아 난입으로 깨졌다.
결과적으로 원하는 만큼의 닷발귀를 생산하지 못한 임형규.
비비와 용광포의 서슬 퍼런 기세에 밀려 제대로 활약을 하지 못한 닷발귀.
여기서부터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관중들도 웅성이기 시작했다.
임형규에게 확 기울었던 경기가 5:5까지 오게 된 것이다.
임형규의 팬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상황이 이렇게 된거지라고 얼굴에 쓰여 있었다.
이제 누가 이길지 모른다.
그때 임형규가 마지막 칼을 뽑아 들었다.
3소굴 그슨대 러시.
본인도 무리수라는 걸 알 거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후반을 노리라고?
터무니없는 소리다. 일벌레를 추가 생각하는 걸 들키는 순간 조합을 갖출 때까지 본진에서 나오지 않을 거다.
차라리 그슨대를 뽑는다는 걸 보여 주며 계속 공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 낫다.
이쪽이 이길 확률이 그나마 높다.
둘다 그리 높지 않다는 건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비비로 임형규가 일벌레 추가 생산 없이 그슨대를 계속 찍는다는 걸 확인한 이승우는 곧바로 앞마당에 용광포를 마구 건설하기 시작했다.
전혀 돈을 아끼지 않았다.
이것만 막으면 이긴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 수가 무려 7개.
임형규가 보는 순간 힘이 쫙 빠지는 숫자였다. 그래도 들어가야 했다. 어쨌든 기회는 남아 있었다.
초반 마견 공격에 앞마당 신전이 깨졌었고 닷발귀를 막기 위해 비비를 모은 통에 보유하고 있는 금이 적다.
즉 그슨대에 강한 천벌을 지닌 비렴을 생산하는 게 늦어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용광포의 공격에 체력이 빠진 그슨대를 뒤로 빼 주고 체력이 가득 찬 그슨대로 용광포를 깨주는 컨트롤로 용광포를 줄이려 애쓰는 임형규.
이승우도 파괴된 용광포 뒤에 새 용광포를 건설하면 끈덕지게 버텼다.
서로 간의 처절한 전투였다.
뚫어야 하는 임형규와 비렴이 나올 때까지 시간을 벌어야 하는 이승우.
승자는 이승우였다.
파괴된 것까지 포함해서 거의 15개 가까이 용광포를 짓은 이승우지만 천벌이 개발된 비렴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그슨대가 활약할 수 있는 시간은 이제 끝났다.
그게 바로 지금이다.
-이승우 선수 병력 조합이 되었습니다. 천벌을 무슨 수로 막나요?
-그슨대 수가 많긴 하지만 천벌 앞에서 무용지물이거든요? 그리고 천벌만 무서운 게 아니라 발업 용아 자체도 굉장히 압박입니다.
-아. 못 막죠. 지금 상황에서 부랴부랴 가시촉수 짓고 있는데 저 것도 손해입니다. 철광 캐야하는 일벌레가 촉수라니!
-지어져도 못 막을 것 같습니다. 이건. 너무 완벽했어요.
결국 발업 용아와 비비, 비렴의 조합에 스타팅 앞마당 확장을 내주며 GG를 선언하는 임형규.
헤드셋을 거칠게 벗겨 내는 임형규의 얼굴에 진한 짜증이 묻어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오늘 임형규가 준비해온 운영은 완벽했다.
상대의 약점과 전장의 특징을 잘 활용한 공격적인 경기 운영.
실제로 거의 통할 뻔했다.
5기의 용아에 본진이 털리는 실수만 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거기서 한 번 삐끗한 것이 경기를 내주는 결정적인 패인이 되고 말았다.
그때 일벌레가 잡히지 않았더라면 더 많은 닷발귀가 나왔을 때도 앞마당을 한 차례 더 마비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뒤이어 준비한 그슨대가 힘을 받았을 테고, 비렴이 나오기 전 용광포 라인을 정리하고 앞마당을 초토화시켰을 거다.
거의 다 잡은 경기를 놓치는 선수의 안타까움이 임형규의 얼굴에서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승우 선수 오늘도 이깁니다. 오늘도 이겼어요!
-다시 한번 18연승으로 본인이 세운 기록에 올라서는 이승우 선수입니다!
18연승.
한 번 도달하기도 힘든 기록을 무려 두 번이나 올랐다.
-이제 1승만 더 하면 본인의 기록을 넘어 새로운 연승 기록을 만들게 되는 겁니다.
-동시에 마수전 연승 기록을 15연승으로 새로 써 내려가는 이승우 선수입니다.
기록제조기 이승우.
오늘도 또 하나의 신기록을 만들어 냈다.
***
“고생했다.”
“아니에요.”
“난 처음에 입구 뚫렸을 때 그대로 지는 줄 알았다.”
저도 순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마견이 본진으로 난입하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뒤늦게 용안을 보내 입구를 막으려 했지만 늦었다.
결과적으로 모든 공격을 막아 내고 이기긴 했지만 다시 생각해도 위험한 순간이었다.
패턴을 파악당했다.
내가 선 제단을 한 이후 1기의 용아를 보낼 것을 예상하고 마견 공격을 계획했다.
거기다 전장 연구가 미흡했다. 새로운 심시티를 연구하든가 병력으로 입구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진짜 중간에 용아 안 나갔으면 닷발귀에 쓸릴 뻔했다. 진짜 나이스 판단이었다. 나이스. 판단. 내가 거기서 얼마나 가슴 쓸어내렸는지 아냐?”
도 수코님의 말씀처럼 그때 러시를 간 것이 이번 경기를 역전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용아가 앞마당에 도착했을 때 2개의 가시촉수가 지어지는 걸 보고 다음 공격이 그슨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슨대라면 가시촉수가 있을 리가 없다.
이미 그슨대가 나와 용아를 때리고 있겠지.
쓸데없이 가시촉수를 건설하지 않았을 거다.
사실 그 공격은 이 자체로 피해를 입히겠다기보단 비비가 나오기 전 임형규의 빌드를 확인하기 위해 나간 공격이었다.
결과적으로 성공적인 움직임이었다.
그때 난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었다.
형규가 그슨대로 압박을 해 온다면 앞마당에 용광포를 늘려야 했고, 후속타가 그슨대가 아닌 닷발귀라면 앞마당에 용광포를 늘리는 대신 빠르게 비비를 확보가고 본진과 앞마당 철광 주변에 용광포를 지어야 한다.
둘 다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러기엔 내 자원 사정이 너무 안 좋았다.
둘 중 하나만 집중해서 준비해도 막을까 말까 할 정도였다.
어느 한쪽을 쉽사리 선택하기 힘들었다.
틀렸다간 그대로 경기가 끝날 테니까.
그래서 용아를 보냈다.
형규의 반응으로 빌드를 확인하기 위해서.
용아로 일벌레를 잡아낸 것도 쏠쏠했지만 닷발귀를 선택한 사실을 알아낸 것이 더 컸다.
이 사실을 알아내지 못했다면 경기를 잡아낼 수 없었을 거다.
“나 그때 진짜 만세 불렀다. 만세. 제발 나가라. 나가라. 한 번만 찔러 봐라 생각했는데 그때 딱 나갈 줄이야. 감독님이랑 전화 통화했는데 계속 네 칭찬하시더라.”
감사합니다, 감독님!
“저도 감이 쎄해서 나가 봤어요. 다음 공격이 뭐가 올지 전혀 감이 안 잡히더라고요. 마견 더 뽑았으면 그냥 GG친다는 생각으로 나간 거예요.”
예전이었다면 [날빌러]를 활용해서 알아차렸겠지.
훨씬 어렵게 알아냈지만 내 능력으로 알아낸 것이라 더 기뻤다.
만약 형규가 일부러 타이밍을 속여 후속 공격으로 다시 한 번 마견을 준비했다면 진출한 용아가 중앙에서 싸 먹힘과 동시에 앞마당이 밀려 버렸을 것이다.
전과 달리 이번엔 본진도 지키지 못했겠지.
어쨌든 운이 좋았다.
“그래도 이번엔 1승으로 기분 좋게 시작하네. 저번 시즌은 2연패로 시작해서 얼마나 가슴 졸였었냐?”
그래, 그랬었지.
하필 개막전부터 이영우를 만나서 우울하게 16강을 시작했었다.
그때 지고 나서 분위기 장난 아니었는데. 그 다음 김윤호 한테 역전패당했을 때도. 으, 다시 생각해도 몸서리가 절로 쳐진다.
결과적으로 모든 것이 잘 맞아떨어졌고 16강에서 먼저 1승을 챙길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건…….
“현우 형, 경기 시작했어요?”
팀원들이다.
팀원들까지 모두 이긴다면 정말 최고의 하루가 된다.
“아. 아직 시작 안 했을걸? 아까 부스로 가는 건 봤어. 곧 시작하겠지.”
“그럼 그 경기 보러 가요. 응원해야죠.”
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도 수코님을 바라보았다.
내 기운을 받아, 모두가 승리하길 바라고 또 바랐다.
***
“고생했다. 이번 판은 진짜 아쉬웠다. 거의 다 잡았었는데 말이지. 그래도 이승우가 완벽한 용족은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다음에 붙으면 잡을 수 있겠어.”
최연규 코치의 위로에 임형규는 아무런 말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언뜻 봐도 충격을 많이 받은 모습이었다.
최연규 코치의 얼굴에 씁쓸한 기색이 떠올랐다가 이내 사라졌다.
이런 반응을 본 것이 처음이 아니다.
몇 년 전 다른 선수에게 똑같은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정명혁.
지금 임형규는 이영우의 벽을 넘지 못하고 무너졌던 정명혁의 모습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정명혁과 이영우의 관계는 지금의 이승우와 임형규와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주목받은 시기부터 성적, 상대 전적 역시 항상 한쪽이 일방적으로 앞선다는 것까지.
최악의 경우 트라우마까지 진행될 수도 있다.
그걸 막아야하는 것이 코칭스태프의 역할이었다.
“오늘은 조금 쉬고 싶어요.”
임형규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머릿속이 터져 나갈 것처럼 뜨거웠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오늘은 그냥 쉬고 싶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래, 가자.”
최연규가 임형규를 데리고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여전히 관중들은 이승우의 이름을 연호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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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내일이나 모레 둘 중 하루 연재 쉴 수 있습니다.
그럼 모두 좋은 하루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