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41 Game No. 241 잘한다! 우리팀! =========================================================================
Game No. 241
“이야. 민규 잘하네.”
“동시 컨트롤이 되게 좋다.”
“그러게. 주 병력 압박하면서 소수 병력 돌려서 멀티 견제한다. 저런 건 누가 가르쳐 준거야?”
역시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민규는 이승우를 거칠게 몰아붙이고 있었다.
움직임이 좋다.
놀고 있는 병력이 없다.
멀티가 겨우 천자총통 3기에 날아가려 하고 있었다. 이영우 입장에선 병력을 보내 지키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다.
환국의 주 병력이 턱밑까지 치고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선택의 기로에 섰다.
민규는 지금 묻고 있었다.
본진 지킬래?
멀티 지킬래?
용족이 낼 수 있는 답은 하나다.
제단이 있는 본진을 지킬 수밖에.
지금 본진이 날아가면 용족은 이길 수 있는 수단이 없다. 어떻게든 테크와 제단을 지켜야 하는 입장이다.
이마저 언 발의 오줌 누기,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제단과 테크를 지키면 무엇하나?
자원이 있어야 병력을 뽑지.
지금 멀티가 동시에 두 군데 날아간 건 정말 치명상이었다.
“곧 끝나겠지?”
“길어야 5분? 버틸 수가 없잖아.”
경기는 끝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민규…….
이 녀석, 날이 갈수록 실력이 일취월장한다.
숫돌에 연마한 칼처럼 점점 더 날카로워진다. 이번에 정말 일 낼 수도 있겠는데?
“다 내가 가르쳐 준 것 아니겠냐? 용족전은 나한테 많이 배웠지.”
연호가 어깨를 으쓱이며 으스댔다.
반박하고 싶지만 사실이다.
민규에게 용족전 기본 개념을 주입시켜 준 건 연호였으니까.
“내가 연습 상대가 되어서 저렇게 잘하는 게 아닐까?”
나도 할 말은 있다.
민규의 용족전 연습 상대가 누구인가?
바로 나다.
양대리그 우승자인 나와 매일 연습했다.
실력이 느는 건 당연한 건 아닐까?
“흠. 인정한다. 너와 나의 협력으로 만들어 낸 것이 민규구나.”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쿨하게 인정하는 연호.
물론 자신의 공을 엮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중에 해설해 봐라. 포장 잘할 것 같다.
-한민규 선수 움직임이 정말 날카롭네요.
-팀에 누가 있습니까? 이승우 선수가 있지 않습니까? 용족전이라면 정말 죽어라 했을 겁니다. 그러니 이런 좋은 경기력이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중계진의 언급에 내가 어깨가 금세 치솟았다.
정말 완벽한 해설이십시다요.
-멀티가 다 밀렸어요. 생산이 안 되죠.
-GG. 이영우 선수 GG를 선언합니다.
-한민규 선수 정말 깔끔하네요. 정말 완벽한 운영으로 1승을 따냅니다.
그사이 경기가 끝났다.
1:0.
아주 기분 좋은 스코어다.
***
“잘했다.”
“경기력 좋던데?”
“완벽했어! 앞으로 지금처럼만 하면 진짜 승률 쩔게 나오겠다.”
쏟아지는 칭찬에 민규가 수줍은 얼굴이 되었다.
“운이 좋았어요. 빌드가 엇갈리는 바람에.”
“운도 실력이다라고 감독님이 전에 말씀하셨지.”
나도 한 마디 던졌다.
“이번 경기까지 이기면 4:0으로 끝날 수도 있겠다.”
2세트엔 연호가 나선다.
상대는 신노철.
만만한 상대는 아니다.
일단 종족 상성에서 밀리니까.
신노철의 별명은 A급 판독기.
별명에서 알 수 있듯 정상급 선수에겐 한 수 접어 주지만 그 밑의 선수들에겐 왕처럼 군림하는 선수가 바로 신노철이다.
심리전에 약한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기본기가 튼튼하다.
“전략이 통한다면 쉽게 이길 것이고, 그게 아니면 힘든 싸움이 되겠지.”
그걸 연호도 잘 안다.
그래서 전략을 준비했다.
신노철의 심장에 비수를 꽂을 수 있는 전략을.
통한다면 생각보다 경기가 싱겁게 끝날 것이다. 아니라면 고전을 펼치겠지.
반대로 쉽게 패할 수도 있고.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저 연호가 이기기를 기도하는 것뿐이다.
-1세트에서 한민규 선수가 이영우 선수를 잡으며 기분 좋게 앞서가는 아스트로입니다. 박현우 홀로 버티고 있던 환국 라인에 든든한 카드가 한 장 생겼네요.
-이 기세를 신연호 선수가 이어갈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사실 신연호 선수 공식전 연패를 거듭하면서 힘든 시절을 보냈거든요? 저번 라운드부터 살짝 살아나기 시작하더니 OSL 본선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충분히 기대해 볼 만하다는 소리거든요?
-외모 때문에 우직하고 곰 같은 플레이를 할 거라 예상하지만 신연호 선수는 오히려 여우과에 가깝거든요?
옆에서 풉 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감독님과 코치님들이 내는 소리였다.
감독님 뒤에서 어린 선수들이 웃음을 억지로 참아 내고 있었다.
연호의 외모가 조금 둔해 보이긴 하지. 물론 실제 플레이는 전략을 기반으로 상대를 흔드는 경우가 많다.
-자, 양 선수 준비되었다고 합니다.
-지금 바로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2세트 전장은 태백산맥.
2인용 전장이다.
상대가 신노철이라는 걸 안 연호는 과감한 전략을 준비했다.
그게 뭐냐고?
-신연호 선수 용안 더 안 뽑죠? 바로 제단 지을 기세입니다?
-단순 선제단 찌르기가 아닙니다. 하나 더 지어서 밀어 버리겠다는 거예요!
-이승우 선수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99제단이 신연호의 손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바로 99제단이다.
화면을 바라보는 내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내가 자주 써서 그런 게 아니라 99제단은 정말 남자의 빌드 같다.
뒤를 거의 돌아보지 않고 상대를 몰아치는 것이 아닌가?
승부가 결정 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복잡하지도 않다.
매우 간단하다.
뚫으면 무조건 용족이 이긴다는 것.
순수 컨트롤로 승부를 보는 전략이기도 하고.
오늘 경기를 위해 연호는 수도 없이 99제단을 연습했다.
그 연습 상대가 돼 준 이는 승대.
투덜거리면서도 끝까지 연습을 도와준 착한 녀석이다.
-아. 신노철 선수 무난하게 12번째 일벌레에 앞마당을 가져가네요.
-이 전장 러시 거리가 멀기 때문에 초반 공격은 배제하고 있어요.
-이러면 통할 수도 있죠!
-그래도 아직은 봐야 합니다. 컨트롤 여하에 따라 애매하게 막혀 버리면 용족도 굉장히 불리해지거든요?
신노철의 별명이 A급 판독기인 이유는 항상 무난하고 안정적인 빌드를 선택하기 때문이었다.
운영으로 상대를 미는 걸 좋아한다는 뜻이지.
그래서 본인보다 높은 수준의 선수에겐 맥을 못 추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한 수 아래의 운영 실력을 가진 선수에게 강한 모습을 보여 주고.
냉정하게 말하자면 연호는 신노철보다 운영 능력이 떨어진다.
장기전으로 경기를 끌고 간다면 조금씩 밀리고 말 것이다.
그래서 연호는 초반에 칼을 뽑아 들었다.
뻔히 자신이 밀릴 걸 아는데 후반 지향으로 경기를 펼치는 바보가 어디 있겠는가?
-일단 2인용 전장에서 99제단을 꺼내 들었다는 건 통할 자신이 분명 있다는 겁니다.
정확히 맞히셨습니다.
김정식 해설 위원님. 확실히 경기를 꿰뚫는 눈을 지니고 있다.
2인용 전장은 첫 서치에 상대방의 기지를 확인할 수 있다.
러시 거리가 멀긴 해도 중간중간 언덕 지형이 구비, 구비 있어서 그런 것이지 직선거리, 그러니까 공중으로의 거리는 그렇게 멀지 않다.
즉 추가 일벌레 정찰 없이 군주의 정찰만으로 99제단을 빠르게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초반 전략이 안 통한다.
반대로 그래서 초반 전략이 통할 수 있다.
상대방이 초반 올인에 대해 어느 정도 마음을 놓으니까.
특히 신노철처럼 같은 빌드만 주야장천 하는 선수라면 더욱 더 그렇다.
상대의 초반 공격을 예상하기보단 본인이 준비해 온 것을 펼칠 공산이 더 컸다.
연호의 공격이 통할 수도 있다는 말씀!
연호의 가장 큰 장점은 사고의 유연함이다.
쉽게 떠올릴 수 없는 전략이나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불쑥 찌르고 들어오는 걸 잘한다.
그동안 방송 울렁증이 그걸 꽉 막고 있었지만 지금은 둑이 터진 강처럼 장점이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오늘도 그런 경기가 되겠지.
-자. 신노철 선수 군주로 제단이 2개 지어져 있는 거 확인했습니다.
-자. 앞마당 소굴 완성되면 바로 촉수 지으면서 방어해야죠. 막아 내기만 하면 유리하게 경기를 운영할 수 있습니다.
아직 앞마당의 소굴은 완성되지 않은 상황.
생산 된 용아가 마수의 기지를 향해 힘껏 땅을 박차며 달리기 시작했다.
올라가는 건 용아뿐이 아니었다.
-아까 미리 3기의 용안을 빼 두었는데요. 용아보다 먼저 마수의 진영에 도착합니다.
-지금 용안의 역할이 가장 중요합니다. 용아의 공 1업 효과를 노리는 건 물론 촉수가 건설되지 못하게 방해해 줘야 하거든요?
-자. 이제 서로간의 컨트롤 싸움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 왔습니다.
-조금 더 침착한 선수가 이기는 거예요!
99제단이 막히는 이유 중 하나가 건설되는 촉수를 막지 못해서다.
우후죽순처럼 여기저기 늘어나는 촉수를 용아로 모두 부수는 건 불가능하다. 한두 개라도 완성되면 골치가 아프다.
마견도 있기 때문에 무리해서 공격하기보단 용아를 뒤로 물러야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은 간단하다.
애초에 촉수가 건설되지 못하게 막아 버리면 된다.
무슨 수로?
용안의 기가 막힌 움직임으로!
연호도 여기에 힘을 실었다.
3기의 용안을 데려왔다.
99제단을 하며 안 그래도 가난한 상황인데 더 가난해졌다.
지금 공격에서 피해를 주지 못하면 뒤는 없다.
-자. 용안 우토 위를 이리저리 헤집으며 일벌레가 촉수를 짓지 못하게 방어해 주고 있습니다.
-동시에 용안을 노리는 마견! 신연호 선수도 마견 컨트롤에 모든 걸 집중하고 있죠?
순식간에 싸움이 벌어졌다.
모두 아무런 말없이 화면만 바라보았다.
실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적막했다.
일단 빌드 자체는 연호가 먹고 들어갔다.
신노철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걸로 뒤통수를 제대로 후려쳤으니까.
상대가 신예라면 어느 정도 마음을 놓았겠지만 신노철이기에 완전히 놓을 순 없다.
실력과 경험을 두루 갖추고 있는 선수였으니까.
“됐다!”
도 수코님이 쾌재를 불렀다.
용안의 움직임이 너무 좋다. 여러 마리의 일벌레가 내려와 어떻게든 가시 촉수를 짓기 위해 노력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미 용아의 수가 많이 쌓였기 때문이었다.
촉수가 가시 촉수로 변태하다가 깨졌다.
다른 촉수도 마찬가지였다.
여태까지 완성된 가시 촉수는 0.
이대로라면 이겼다.
잘했다, 연호야!
부스를 바라보니 연호의 입가에도 옅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지금 상황이 얼마나 유리한지 알고 있는 것이다.
-신연호 선수가 99제단을 이렇게 잘 쓰는 선수였습니까? 정말 놀랍습니다. 거의 완벽해요.
-2인용 전장에서 이렇게 과감한 전략을 쓸 줄 몰랐던 거죠. 그것도 이승우가 아닌 신연호가!
중계진의 말처럼 신노철의 얼굴에 낭패한 기색이 잔뜩 떠올라 있었다. 혀를 자꾸 날름거리는 것이 이런 경기 양상은 전혀 생각해 보지 않은 것 같다.
이 경기는 끝났다.
이제운이 와도 안 된다.
아니 그 누가와도 이길 수 없다.
앞마당 소굴은 밀리기 직전이다.
본진에 가시 촉수를 짓는다면 어떻게든 막을 수 있겠지만 그 후는?
답이 없다.
앞마당을 지키기 위해 이미 본진에서 자원을 채취하던 일벌레가 많이 동원되었다.
물론 성과는 없었다.
촉수로 변태하려다 죽거나 촉수가 되어서도 가시 촉수로 변태하지 못하고 터져 나갔으니까.
앞마당 소굴이 깨지면 남은 소굴은 하나.
일벌레 역시 한 줌밖에 되지 않는다.
용안 3기를 동원한 연호도 가난하지만 신노철은 그보다 배는 가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