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38 Game No. 238 나도 자신있다. =========================================================================
Game No. 238
임형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본인의 이름을 A조에 가져다 붙였다.
우승자 이승우가 있는 A조에 말이다.
관중들이 흥미로운 눈빛으로 A조를 바라보았다.
역시 임형규.
싸움 귀신 답다.
나란히 붙어있는 이승우와 임형규의 이름.
전 시즌 MSL 결승 리매치임과 동시에 전 시즌 OSL 16강의 재판이기도 했다.
두 대결에서 승자는 모두 이승우였다.
MSL 우승을 차지함과 동시에 OSL 16강전에서 임형규만 2번을 잡아내며 8강에 진출했다.
임형규 입장에선 이승우는 복수의 대상이었다.
이렇게 빠르게 원할 줄은 몰랐지만.
-대박입니다. 대박!
-거침없이 본인의 이름을 붙이는 임형규 선수입니다.
-자. 자세한 이야기는 임형규 선수에게 직접 들어보도록 하죠.
****
“오. 쟤가 너랑 붙고 싶데.”
형규가 A조에 이름표를 붙이자 마자 연호가 귓속말로 속삭였다.
얼굴을 보니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이다. 이게 그렇게 재미있냐?
아. 그리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돼.
나도 눈이 있고 귀가 있거든?
쟤가 이름표 붙이는 거 똑똑히 봤거든?
설마가 사람잡는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싶다.
아까 형규와 대화를 했을 때 스쳐지나가는 말로 그렇게 말하긴 했다.
A조에 이름표 붙일거라고.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다.
굳이 16강에서부터 만날 이유는 없다.
조금 더 높은 자리면 모를까.
난 농담하지 말라며 형규의 어깨를 두드렸지만 눈빛을 보니 단순히 농담 같지는 않았다.
긴가민가하던 차에 무대로 나서던 형규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확실히 알았다.
저 녀석.
내 이름 옆에 이름표를 붙일 생각이구나 하고.
그래서 전 시즌 16강 같은 조가 되었을 때와 달리 조금은 담담하게 무대를 바라볼 수 있었다.
형규가 무섭거나 그런 건 아니다.
그냥 굳이 여기서 붙어야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뿐이다.
준비만 한다면 언제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형규가 못해서가 아니다.
그간 함께 연습을 한 시간이 워낙 길기 때문이었다.
형규의 스타일이 어떠한지 거의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다. 갑자기 스타일을 180도 바꾸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유리하게 경기를 이끌어가는 건 나일 것이다.
이미 나와 경기를 치르고 싶다고 한 이상 피하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아까 인터뷰 떄 말했다.
나와 붙고 싶은 사람은 얼마든지 이야기하라고.
언제든지 붙어주겠다고.
거기에 형규가 있을 줄 몰랐던 것 뿐이다.
-본인의 이름을 A조에 붙이셨는데요. 이승우 선수와 다시 맞붙고 싶다 뭐 이런 겁니까?
“정확합니다. 제가 저번 시즌 이승우 선수에게 조금 많이 데였거든요. 이번에 확실히 복수를 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말하곤 내가 있는 쪽을 바라보는 형규.
와. 쟤 눈빛 봐.
왜 이렇게 살벌해?
완전 잡아먹을 것 같은 눈빛이네?
아까까지만 해도 형 하면서 달려들던 형규의 모습은 없었다.
물러설 수 없는 대결을 기다리는 전사의 눈빛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좋아. 네 도전 받아주지.
미친 듯이 준비해야 할거다. 안 그럼 그떄보다 더 처참하게 무너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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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규의 한 마디에 장내가 술렁거렸다.
여태까지 나온 도발 중 가장 큰 도발이었다.
-그렇죠. 용족 팬들 입장에선 이승우 선수는 완전 영웅이지만 마수나 환국 팬들이 보면 철천지원수나 마찬가지거든요. 저번 시즌만 해도 최정상급 선수들에게 모두 승리를 거두며 우승을 차지하지 않았습니까? 그 중 임형규 선수도 포함되어 있었고요. 본인의 진 로열로더를 방해했을 뿐만 아니라 OSL마저 탈락하게 만든 이승우에게 복수를 하겠다는거죠.
-임형규 선수도 보통이 아닙니다. 올해의 이승우는 이영우와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인 힘을 보여주고 있거든요? 그런 선수를 상대로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복수를 하겠다고 하는 것이 정말 대단합니다.
-저번 시즌에서도 이영우가 속해있는 A조에 본인의 이름을 가져다 붙인 선수 아닙니까? 역시 패기가 장난 아니네요.
-그런 패기가 있었기 떄문에 MSL 준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겠죠. 투귀 답습니다. 정말!
임형규의 발언에 중계진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중계진들이 가장 좋아하는 유형의 선수가 바로 이런 선수였다.
자신감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선수.
그리고 그 자신감을 받쳐주는 실력이 있는 선수.
항상 스토리를 만들고 앞으로 나아가는 선수.
임형규가 딱 여기에 해당되는 선수였다.
이승우의 라이벌로 이영우가 엮이고 있지만 임형규도 만만치 않은 라이벌 후보였다.
일단 스토리가 좋다.
수년간 같은 팀에서 2군 생활을 했었고 절친한 사이에 이미 결승에서 한번 맞붙었다는 점까지.
올해 데뷔한 신예라는 것도 공통점이었다.
이승우가 워낙 빛나고 있어서 그렇지 마수 선수만 따지면 임형규의 활약도 눈이 부신 정도였다.
이제운의 데뷔 첫해에 맞먹을 정도로.
그러니 이 둘의 대결에 기대감을 드러내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이 대진이 완성 된 대진은 아닙니다. 아직 시드권자의 권한이 남아있거든요.
물론 변수는 남아있다.
전 시즌 우승자인 이승우가 나는 다른 선수와 붙고 싶다고 해버리면 끝이다.
그때 임형규가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쐐기를 박을 요량이었다. 본인의 의지를 다시 한번 강하게 드러내는 것이기도 했고.
“이렇게 붙고 싶다고 말했는데 설마 피하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저를 다른 조로 보내신다면 무서워서 피하는 거라고 생각하겠습니다.”
말을 끝낸 임형규가 선수석을 바라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이승우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한 번 붙어보자.
그렇게 눈빛으로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상대방에게 아무 것도 해보지 못하고 무너지는 경우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난다.
하나는 그런 상대를 은연중에 두려워하고 피하는 것.
대부분이 이 반응을 보인다. 그러고 싶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다시 한 번 부딪치는 것.
임형규의 반응은 이 쪽이었다.
날 이겼어?
그래. 또 해보자. 내가 널 이길 때까지.
상대가 어떻든 주눅들지 않는 근성.
이것도 재능의 일부였다.
임형규를 결승전까지 이끈 원동력이기도 했고.
이런 임형규를 두고 사람들은 제2의 이제운이 나왔다며 크게 기뻐했다.
-아. 이거 조금 쎈데요?
-무난한 조 지명식에 불을 확 붙이는 느낌입니다.
-역시 화끈하네요. 보통 성격에 따라 경기 스타일이 나오거든요. 임형규 선수 지금 별명이 뭡니까? 투귀 아닙니까? 투귀? 부스 밖에서 본인의 스타일을 거침없이 보여주네요.
역시 투귀라는 별명은 그냥 얻은 것이 아니었다.
처음보다 훨씬 강한 도발이다.
반드시 16강에서 붙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그저 그런 선수가 도발을 했다면 관중들도 무시했을거다. 하지만 임형규는 전 시즌 준우승자.
이런 도발은 오히려 두 팔 들고 환영했다.
빅 매치를 볼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
-과연 이승우 선수는 임형규 선수의 도전을 받아들일지. 마지막으로 각오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번 시즌은 일찍 떨어진 감이 없잖아 있습니다. 이루지 못했던 우승을 반드시 이루고 싶습니다. 그리고 좋은 경기력으로 팬분들의 사랑에 보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뒤 이어 시드권자들의 권한행사 시간이 돌아왔다.
지금까지의 조를 송두리 채 바꿔버릴 수 있는 아주 소중한 시간이었다.
김택윤에 이어 이제운까지 모두 권한을 행사하지 않았다.
행사 할 이유가 딱히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한 번 결승에 대한 의지를 밝히는 것으로 인터뷰를 마무리 지었다.
두 눈에서 불꽃이 튀기는 것이 이번 시즌에 임하는 각오가 보통이 아닌 것 같았다.
이들의 모습에 가장 기뻐한 건 관중들이었다.
재미있는 경기를 볼 수 있게 되었으니까.
이제 이영우의 차례가 다가왔다.
역대 최강의 선수.
하지만 저번 시즌 이승우라는 신예에게 무너지며 우승을 놓친 선수.
비록 우승을 하지 못했지만 현역 중 최고의 커리어를 지닌 건 여전했다.
6회 우승 3회 준우승.
전 시즌에 준 우승을 추가하며 이제운의 9회 결승 진출과 타이를 이루었다.
이영우도 권한을 행사하지 않았다.
딱히 조에 불만이 없었다.
동시에 누가 상대가 되도 좋다고 생각했다.
누가 되어도 다 이길 자신이 있었으니까.
이영우의 목표는 오직 이승우 1명 뿐이었다.
당장 붙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그럴 수 없다. 각각 A조와 B조의 1번 시드로 자리를 옮기는 건 불가능했으니까.
이번 시즌 각오를 밝히는 것으로 인터뷰를 마쳤다.
그의 목표는 우승.
너무나도 당연한 목표였다. 이영우라면 응당 우승을 노려야한다. 실제 그럴 실력이 되고 말이다. 이승우에게 빼앗긴 왕좌를 다시 되찾아오겠다는 말을 남겼다.
이승우와 이영우.
투우록이라 불리는 이 둘의 대결은 벌써부터 많은 이들의 관심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상대전적은 6:3으로 이승우가 더블 스코어로 앞서간다.
이번 시즌에 과연 복수를 성공할 수 있을지?
아니면 천적의 관계가 확고히 만들어질 것인가?
어느 쪽이 되어도 재미있는 결과일 것이다.
이제 마지막 순서만이 남았다.
우승자 이승우의 권한 행사.
웅장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예전의 이승우라면 어울리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양대 우승을 하고 위너스 리그 우승마저 거머 쥔 지금의 이승우에겐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음악이었다.
-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전 시즌 우승자! 이! 승! 우! 선수를 바로 이 자리에 모셔보겠습니다!
동시에 터져나오는 우레와같은 박수.
이승우의 인기는 이 정도였다.
****
전현석 캐스터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무대로 나갔다.
차라리 먼저 하고 빠지면 괜찮은데 지금처럼 가장 마지막에 하려니 몸에 좀이 쑤셔 죽는 줄 알았다.
-자. 앞선 선수들은 권한을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이승우 선수는 어떻게 하실 예정입니까?
“일단 권한을 행사하지 않겠습니다.”
현우 형과 연호, 민규와 모두 다른 조가 되었다.
굳이 퍼트릴 필요 없이.
아주 좋은 결과였다.
어쨌든 각자 원하느 자리를 찾아 갔다.
모두 죽음의 조로 보일 정도로 만만해 보이는 조가 하나도 없다.
일단 A조엔 송병호, 김재만, 형규가 들어왔다. 모두 결승을 경험해보았고 나를 포함해 셋은 우승을 경험해본 선수들이었다.
아까 전에 한 말을 지킬 생각이다.
도전을 피하지 않겠다는 말.
“다만 저와 경기를 치르고 싶은 선수가 있다면 얼마든지 손을 들고 이야기해주세요. 저희 조로 옮겨 드리겠습니다.”
피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형규가 아까 그랬지?
다른 조로 옮긴다면 무서워서 피하는 걸로 생각하겠다고.
미안하지만 처음부터 옮길 생각은 없었단다.
네 도전에 화끈한 경기로 대신 답해주마.
-그 말은 지금 누가 와도 상관없다 이겁니까?
질문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난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실리와 명분?
애초에 생각하고 오지 않았다.
그저 강한 선수들과 대결을 펼치고 싶다는 것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또한 전 시즌 우승자의 위엄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습니다. 누가 와도 상관없습니다. 저와 대결을 원한다면 얼마든지 말씀해주십시오. 더 절박한 이유가 있다면 얼마든지 바꿔드리겠습니다.”
난 말을 마치고 선수석을 바라보았다.
자신감이 있는 건 너희들 뿐만이 아니다.
나 역시 이 자리를 또 다시 지켜낼 자신감이 넘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 작품 후기 ============================
이영호 선수 아프리카 방송보다가 글 못올릴 뻔 했네요.
오늘 감동 받았습니다.
전 그럼 마저 이영호 선수 방송 보겠습니다.
아. 새시즌 구상은 주말에 끝냈습니다.
그럼 모두 좋은 하루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