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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로더 신들의 전쟁-235화 (235/575)

00235  Game No. 235 가을의 전설.  =========================================================================

Game No. 235

무려 3번이나 선수들의 위치를 변경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져 있으니까.

그것도 가장 마지막에 말이다.

어차피 우승을 했기에 내 위치는 고정이다.

A조 첫 번째 자리.

즉 세 번의 권한을 오롯이 팀원을 위해 쓸 수 있다는 말이었다.

아무리 중간에 우리 팀원을 한 조에 몰아넣으려고 노력해도 소용없다.

마지막에 내가 교통정리를 해 버리면 되니까.

물론 각자 원하는 조가 있긴 하다.

정확히 말하면 B조를 피하고 싶어 했다.

왜 피하냐고?

간단하다.

저번 시즌 준우승을 차지한 이영우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우리 팀원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여러 인터뷰에서 언뜻 봤는데 이영우가 우리 팀을 향해 칼을 갈고 있는 것 같았다.

뭐라고 해야 할까?

‘만나면 모두 씹어 먹어 주겠다’ 뭐 이런 느낌?

그냥 이영우를 만나는 것도 꺼려지는 일인데 화난 이영우라니.

MSL 32강에서 한 번 보지 않았는가?

상상만으로 몸서리가 쳐진다.

물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A조에 내가 있으니 당연히 여기엔 들어올 수 없고.

그렇다면 남은 건 B, C, D조에 1명씩 들어가는 것이 최선이다.

이영우를 피해 한 조에 2명이 속하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글쎄?

별로 추천할 방법은 아닌 것 같다.

같은 팀원이 같은 조에 속하는 것만큼 불편한 일이 없었으니까.

연습부터 경기까지.

모든 것이 다 신경 쓰인다.

그리고 C, D조라고 만만한 선수들이 있는 것이 아니다.

C조엔 이제운이 기다리고 D조엔 김택윤이 기다리고 있다.

차선책으로 선택하기엔 너무 쟁쟁한 선수들이다. 일단 팀원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할 생각이었다.

공교롭게도 각각 환국, 마수, 용족의 선수들이 1명씩 B, C, D조에 자리 잡고 있다.

어차피 선수로 따지면 만나고 싶은 종족은 없다. 상대하기 편한 종족으로 가는 것이 최선이었다.

“난 진짜 이영우는 피하고 싶다. 차라리 김택윤이랑 붙을래.”

연호가 몸서리를 치며 말했다.

연호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이영우의 용족전은 그야말로 사기 중에 사기다.

역상성을 상대로 80%가 넘는 승률을 보여 주는 선수는 이영우밖에 없을 거다.

반대로 연호가 자신 있어 하는 종족전은 동족전인 용족전.

스킬을 사용해도 위기가 느껴질 때가 있을 정도로 연호의 용족전은 일품이었다.

감독님과 함께 전략만 잘 짠다면 김택윤과 붙어도 어느 정도 해 볼 만한 것이다.

안 그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네 생각도 그렇단 말이지?

그래, 한 번 고려해 보지.

“그나저나 공개된 오프닝 영상 보니까 너 진짜 멋지더라.”

화제가 전환되었다.

오프닝 이야기를 왜 꺼내?

부끄럽게.

부러운 듯 말하는 연호의 말에 난 말 없이 그냥 웃었다.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나 역시 어색한 영상이었으니까.

얼마 전 양대리그 오프닝 영상을 촬영했다.

저번에 이어 두 번째 촬영.

분위기가 그때와 많이 달랐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땐 이제 막 양대 예선을 통과한 햇병아리였지만 지금은 어엿한 양대리그 우승자였으니까.

이번 오프닝 영상의 주제는 가을의 전설이었다.

가을의 전설.

신들의 전쟁 리그, 정확히 말하면 용족 선수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스토리 중 하나였다.

가을에 펼쳐지는 시즌3의 우승을 용족이 차지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더라도 타 시즌에 비해 유달리 용족이 큰 힘을 발휘했다.

그 시작은 현재 육군 타이거즈의 소속되어 있는 박효석이었다.

내 우상 임주혁을 꺾고 처음으로 박효석이 우승을 차지했던 시즌이 바로 가을 시즌이었다.

그다음 해에 강명이 가을의 전설을 이었고 박용제, 최영종 등이 가을 시즌에 우승을 차지하며 가을의 전설은 용족의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최영종이 임주혁을 꺾고 로열로더가 된 날.

엄재웅 해설위원님께서 가을의 전설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만들어 냈다.

그 이후 가을의 전설은 용족 팬들에게 있어 신화와도 같은 이야기가 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 한동안 가을 시즌에 용족 우승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일명 3대 본좌라 불리는 환국 절대 강자 최연규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다음 본좌인 4대 본좌 역시 마수 종족이었기에 용족이 우승을 차지하는 건 요원하게만 느껴졌다.

더군다나 마수는 용족의 상성 종족이었고 4대 본좌 또한 ‘마에스트로’란 별명이 생길 정도로 경기 운영 능력이 뛰어났기에 용족의 재앙이라는 말이 뒤따를 정도였다.

그나마 강명이 항전하며 용족의 자존심을 세우려 노력했지만 시대의 강자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이 둘의 대결은 성전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임팩트 있는 이름과 달리 상대 전적은 한쪽으로 압도적으로 쏠렸다.

물론 강명이 많이 졌다.

용족을 하는 입장에서 입맛이 쓴 결과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재능이 미친 듯이 꽃을 피우는 환국, 마수와 달리 용족은 제대로 된 신예가 등장하지 않았으니까.

강명도 언제 적 강명인가?

수년 전 우승을 차지했던 강명이 선전해 주는 것만으로 대단한 일이었다.

한동안 시들하던 가을의 전설은 택뱅의 등장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먼저 우승을 차지한 건 택, 김택윤이었다.

3.3 혁명이라 불리는, 아직까지도 용마전 최고의 명경기로 꼽히는 결승전이었다.

김택윤에게 혁명가라는 별명을 만들어 준 경기이기도 했다.

4대 본좌 마영찬을 결승에서 3:0으로 꺾으며 침묵하게 만든 것이다.

모두가 경악했다.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2.69%.

김택윤이 마영찬을 잡아낼 수 있는 확률이었다.

더군다나 이 스코어는 3:0이 아닌 3:2를 가정한 것이었다.

당시 커뮤니티에선 마영찬을 1세트만 잡아도 엄청난 것이고 2세트를 잡아낸다면 최강의 용족이라 불릴 만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모두 마영찬의 우승을 점쳤다.

그 정도로 마영찬의 기세가 무서웠다.

불과 일주일 전 OSL 우승을 차지하고 왔기 때문이었다.

이제 막 예선을 뚫고 올라온 김택윤이 마영찬을 잡아내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김택윤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3:0으로 마영찬을 잡았고 양대 동시 우승을 노리던 마영찬에게 7일 천하라는 잊을 수 없는 굴욕을 선사했다.

그때 커뮤니티가 아주 뒤집어졌다.

나도 그때를 똑똑히 기억한다.

내가 용족 유저였기에 더욱더 감정을 이입해서 봤었다.

저 자리에 내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는데 어느새 현실로 이루어졌다.

5년의 세월이 흐르긴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전대 본좌를 끌어내리고 본인이 새로운 왕좌를 차지한 일대의 사건이었지만 아쉽게도 가을의 전설은 아니었다.

3.3 혁명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가을 시즌인 시즌3가 아닌 시즌1에 치러진 결승전이었으니까.

그래도 마수 시대를 종결시키고 용족시대를 열었기에 아주 큰 의미가 있었다.

그 후 송병호가 정명혁을 꺾고 OSL을 우승하며 가을의 전설에 다시 한번 붙을 지폈고, 그다음 해 시즌3에서 김택윤이 허영우를 MSL 결승에서 꺾으며 아직 가을의 전설이 죽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이때가 용족의 전성기였다.

육룡도 이때 등장했다.

윤영태를 제외한 모든 육룡이 이 시즌에 결승에 한 번씩 모습을 드러냈다.

그야말로 용족 최고의 시기였다.

4강 전부가 용족으로 채워지기도 했고 프로리그에서도 다승 순위 10위에 용족이 무려 5명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 후로 가을의 전설은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우승하기 전까지 용족의 마지막 우승자가 김택윤일 정도로 암울한 시기를 보냈으니까.

김택윤과 송병호, 허영우 등이 4강에 오르며 어느 정도 성과를 내줬지만 이름값에 비하면 조금 아쉬운 결과였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양대리그를 제패했으니 용족 팬들의 입장에선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더군다나 다음 시즌은 가을의 전설이라 불리는 시즌3.

모든 용족 팬들은 내가 아니더라도 용족 선수 중 누군가가 우승을 차지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다.

가을의 전설이 아직 건재하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다.

방송사 역시 그런 기류를 완벽히 읽어 냈다.

그리고 그에 맞는 오프닝 영상을 만들어 냈다.

이번 16강에 오른 선수 중 칠룡에 포함되어 있는 선수는 모두 셋.

칠룡은 아니지만 용족인 연호와 차영화까지 총 다섯 명의 용족이 이번 OSL 16강에 이름을 올렸다.

가을 시즌이라 그런지 이번 오프닝 영상은 용족 선수에게 초점을 맞춰 제작되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내가 있었다.

가장 마지막에 용 장식이 된 의자에 앉아 정면을 바라보는 장면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꽤 멋있게 나온 것 같다.

그나마 전 시즌 우승자인 내가 용족이라 다행이었다. 다른 종족이 차지했다면 아무리 가을의 전설이라고 해도 타 종족 선수들에게 불만이 나왔을지도 몰랐으니까.

조금 어색하긴 했지만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마치 정말 신이 된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오글거리는 것도 있었지만 완성된 영상을 보고 뿌듯한 마음이 가장 먼저 들었다.

OSL 오프닝 영상의 주인공이 되다니.

하나씩 꿈을 이뤄 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MSL도 비슷한 콘셉트로 촬영이 진행되었다.

OSL보다 2배 많은 인원이 본선을 치러서 그런지 용족 선수들도 더 많이 올라와 수월하게 영상을 찍을 수 있었다.

오프닝 영상이 공개되는 날 동생한테 전화가 왔다.

잘 봤다고.

엄마가 굉장히 좋아하셨다고.

효도는 어려운 게 아니다. 자식이 잘 지내고 있다는 걸 보여 주는 것도 충분히 효도였다.

“자, 이제 내리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용산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받아라.”

그때 도 수코님이 자그마한 상자를 주셨다.

얼떨결에 받긴 했는데 이게 뭐지?

“뭐예요?”

“청심환.”

뻔한 걸 묻는다는 얼굴로 대답하는 도 수코님.

아, 기억난다.

저번에도 수코님이 주셨었지. 불과 2달 전 이야기인데 엄청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일을 겪어 그런 듯했다.

그때는 알로 주셨는데 이번엔 상자 안에 청심환을 넣어 오셨다보다.

하긴 총 4개가 필요할 테니까.

“야. 나 그거 빨리 좀 줘라.”

오랜만에 참석하는 조 지명식에 심장이 쿵쾅거리는지 가장 먼저 연호가 청심환을 가져갔다.

“……저도 주세요.”

뒤이어 민규도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청심환을 가져갔다.

체한 사람처럼 창백한 얼굴.

그리고 어디 한곳에 고정되지 못한 불안한 시선.

바르르 떨리는 손.

누가 봐도 긴장한 사람의 모습이었다.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이구나.

딱 2달 전 내가 그랬다. 상황도 똑같구나.

“형은요?”

현우 형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저었다.

“난 괜찮아.”

“그래요? 도 수코님! 여기요.”

“하나. 둘. 어? 왜 2개가 남아? 하나는 현우 거고 다른 하나는…….”

“제 거예요.”

오늘은 청심환이 필요 없다.

용산 스튜디오에 도착했음에도 심장은 크게 뛰지 않았다. 그저 어떤 재미있는 일이 오늘 있을까 기대될 뿐이었다.

“너도 안 먹었어?”

“네, 안 먹어도 될 것 같아요.”

“오? 짜식. 많이 컸다?”

제가 원래 키는 조금 크지 않습니까?

확실히 한결 여유가 생겼다.

전과 다르다.

그땐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 같았는데 지금은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단순히 두 번째 조 지명식이라 그런 건 아니었다.

전 시즌 우승자였기에 생긴 여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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