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32 Game No. 232 기록 제조기 =========================================================================
Game No. 232
이제 이승우에게 남은 기록은 얼마 없다.
프로리그 연승 기록은 조만간 깰 수 있을 것처럼 보였고 송병호의 환국 연승 기록의 고지도 그리 머지않았다.
개인리그 2회 우승.
위너스 리그 우승.
최고의 커리어다.
적어도 올해 가장 빛난 선수는 그 누구도 아닌 이승우였다.
***
정말 위너스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아직도 꿈만 같다.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그날의 사진이 꿈이 아니라는 걸 말해 주고 있었다.
사진을 보는 순간 그날의 기억이 고스란히 살아났다.
그날의 함성.
그날의 열기.
세상의 중심이 된 것 같았던 시간들.
다시 한번 느끼고 싶은 것들이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우승을 하려고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미소가 그려졌다.
3라운드 초반 연승 행진을 달릴 때 농담처럼 했던 말이 현실이 되었다. 중간 연패를 당하며 위기가 닥치기도 했지만 모두 힘을 모아 슬기롭게 헤쳐 나갔다.
감독님의 우승 소감이 아직도 귓속에 메아리쳤다.
우리는 항상 노력했다.
그 결과가 오늘 나온 것뿐이라고.
앞으로도 좋은 모습을 보여 드리는 아스트로가 되겠다고.
모두의 심정을 대신하고 있는 말이었다.
진심은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힘이 있다.
감독님의 말엔 진심이 담겨 있었고, 그 어떤 파동보다 강력한 울림을 전달하고 있었다.
감독님의 말은 관중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가슴속에도 진하게 새겨졌다.
팀원 모두의 소감을 들었으면 좋았겠지만 사정상 감독님과 주장인 현우 형, 그리고 감사하게도 MVP로 선정된 나까지.
이렇게 셋의 인터뷰만 진행되었다.
현우 형에 이어 마이크를 받게 된 난 앞으로 5, 6라운드에서 좋은 성적을 내서 반드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오늘처럼 정상의 자리에 다시 한번 서고 싶다는 말과 함께.
관중들이 뜨거운 함성에 순간 뿌듯함이 가슴에 차올랐다.
이렇게 우리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너무나 행복했다.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바로 위너스 리그 결승전을 다운 받았다.
직접 그 현장에 있었지만 그때의 감동을 다시 한번 느껴 보기 위해서였다.
역시 이기는 경기는 언제 봐도 짜릿하다.
재밌다.
신난다.
우리는 다시 한번 전율했고 또다시 파티가 벌어졌다.
거실 탁자에 올라가 춤을 추는 팀원도 있었고, 다시 봐도 감격스러운지 말을 잃고 아련한 눈빛으로 화면을 바라보는 팀원도 있었다.
마음 같아선 소리를 꽥꽥 질러대며 기쁨을 표출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시간인지라 그럴 순 없었다.
위너스 리그 우승은 우리에게 확실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무한한 에너지를 제공한 것이다.
다음날 숙소에 새로운 물건이 배송되었다.
바로 장식장이었다.
팀으로서 받은 첫 우승컵을 놓기 위해 특별 제작한 장식장이었다.
가장 위에 위너스 리그 우승컵이 놓였고 그 밑자리를 내 OSL, MSL 우승컵이 위치했다.
원래 다른 곳에 보관되어 있었지만 거실 장식장에 함께 보관하는 것이 더 낫다고 감독님께서 생각하신 모양이었다. 나에게 우승트로피를 여기다 옮겨도 되겠냐고 의견을 구하셨고 난 흔쾌히 수락했다.
혹시 나중에 내가 아스트로를 떠나게 되면 우승컵을 따로 챙겨야겠지만 지금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어디에 있어도 상관없다는 말이었다.
언제든 볼 수 있는 숙소에 있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스스로에게도 동기부여가 되고 그걸 보는 팀원들에게도 동기부여가 될 수 있었으니까.
오늘도 우승컵은 늠름하게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혹 떨어뜨려 깨질까 손 한 번 대는 이가 없었다.
그저 멀리서 바라보며 간간히 흐뭇한 미소를 짓는 것이 전부였다.
모두 짝사랑에 빠진 소년 같았다.
개인리그 우승만큼, 아니 그보다 훨씬 기뻤다. 혼자 이룬 것이 아니라 팀원 모두와 함께 이룬 성과라서 그런지도 몰랐다.
다음 날.
얼추 상황이 정리된 우리는 바로 MT를 떠났다.
우승을 했으니 그에 걸맞은 보상이 따른 것이다. 곧 개인리그가 시작하니 시간은 지금 밖에 없다.
이 시간을 어영부영 보내면 나중에 후회한다.
‘그때 놀걸’ 하고 말이다.
개인리그에 프로리그까지.
앞으로 미친 듯이 바쁠 것이다.
이렇게 단체로 휴가를 가는 건 팀에 입단하고 처음이었다.
좋은 일로 가는 것이기에, 당연히 놀러가는 장소도 모두의 마음에 쏙 드는 곳이어야 했다.
가장 먼저 장소는 투표로 결정되었다.
몰표를 받은 행선지는 바로 강릉이었다.
모두 피 끓는 청춘.
조금 늦었지만 바다가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 여름은 바다지.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바다 그 너머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역시 우리는 이십 대 남자들이었다.
갖은 기대를 하고 경포대로 떠났지만 아쉽게도 우리가 원하는 광경은 볼 수 없었다.
이미 시즌이 지났기 때문이었다.
대학교도 개강했을 테니 사람이 없는 건 당연한 노릇이었다.
모든 걸 체념한 우린 모든 걸 내려놓고 미친 듯이 놀았다.
그래. 우리끼리 놀려고 온 것이 목적이잖아?
눈에서 흐르는 것이 바닷물인지 땀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원없이 놀았다.
먹는 것도 장난 아니었다. 먹고 싶은 건 다 먹었다. 회를 질리도록 먹은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한동안 입에 회를 대지 못할 것 같았다.
당연히 우리를 알아보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하긴. 이삼십 대 남자들이면 모를까 부모님뻘 되시는 분들이 우릴 알아볼 리가 없었다.
무언가 섭섭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자유를 만끽 할 수 있다는 것이 더 기뻤다.
1박 2일의 여행.
짧다면 짧은 기간이었지만 우리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또 하나 만들었다.
“으아. 죽겠다.”
승대가 허리를 뒤로 우둑 꺾으며 앓은 소리를 냈다.
물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왜?
저 녀석 배가 불러서 그런 거거든.
말 그대로다.
배가 불렀다.
어제부터 미친 듯이 먹어 댔다. 난 승대 몸속에 또 다른 공간이 있는 줄 알았다. 어떻게 그렇게 음식이 끝도 없이 들어가지?
지금도 탈이 난게 아니다.
음식에 탈이 날 위장이 아니다. 승대의 위장은.
그냥 말 그대로 배가 부른 거다.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 만큼.
끙 하는 소리를 내고 있긴 했지만 표정은 더없이 행복해 보인다.
허허.
나중에 먹고 싶은 거 마음껏 먹으려면 돈 많이 벌어야겠다.
“아까 소화제 사 놨으니까 먹어.”
승대가 손바닥을 보이며 괜찮다는 시늉을 했다.
“그거 먹으면 배 속에 있는 거 다 소화되잖아요. 괜찮아요.”
……지독한 녀석.
일반 사람과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
승대를 뒤로 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어제 감독님과 연봉 협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아직 시즌이 끝나지 않았지만 위너스 리그 결승을 끝마치며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으니까.
위너스 리그 우승.
팀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금자탑을 쌓았다고 했다.
저번 시즌을 생각해 보면 당연했다.
거의 꼴찌를 도맡아 하는 팀이었으니까.
개인리그라고 다를 바 없었다.
4강에 진출해 본 선수가 한 번도 없는 팀.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프로리그와 개인리그 모두 우수한 성적을 낸 덕에 후원사도 많이 늘어나고 나를 개인 후원하고 싶다는 기업까지 생겼다고 했다.
개인리그 2회 우승을 하고 위너스리그 우승에 가장 큰 공신인 나의 연봉이 큰 폭으로 오르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다른 팀에 너를 빼앗기기 싫은 것이 솔직한 이유라고 덧붙여주시기도 했다.
제시받은 연봉은 1억.
물론 세금 떼면 이보다 줄긴 하겠지만 불과 몇 달 전에 이야기했던 연봉보다 4배가 많은 액수다. 동시에 팀 내 최고 연봉이기도 했고.
얼떨떨했다.
내가 1억을 받는다고?
물론 최정상급 게이머는 이것보다 더 받는다.
우승을 차지한 선수라면 더욱 더 그렇겠지.
내가 이룬 업적이 그 선수들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하진 않다.
이에 대해 감독님께서도 확실히 짚고 넘어가셨다.
아마 다른 팀 그러니까 S1이나 CT같은 대기업을 후원사로 가지고 있는 팀이었다면 이보다 2배 이상 많으면 3~4배까지 연봉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우리 팀이 사정이 나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여기까지가 한계라고 덧붙이셨다.
나도 잘 알고 있었다.
S1에서 2군으로 모든 세월을 보내긴 했지만 나도 눈이 있고 귀가 있다.
어떤 선수가 어느 정도의 연봉을 받는지 거의 다 알고 있었다.
나 정도의 커리어를 쌓은 선수는 S1에서 정명혁 정도 될 거다.
개인리그만 따지면 내가 정명혁보다 낫다.
결승 진출 횟수는 내가 적지만 우승은 1번 더 했다.
실제 정명혁이 받는 연봉은 4억이 훌쩍 넘는다. 이에 비하면 내 연봉은 굉장히 적은 수준이다.
그럼에도 1억이란 금액은 아직 얼떨떨하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숫자라 그런지 나에겐 너무 크게 다가왔다.
우승을 해야 받을 수 있는 돈을 그냥 팀에 있는 것만으로 받을 수 있다니.
물론 2016 시즌의 성적이 떨어지면 연봉이 줄어들긴 하겠지만 적어도 1년은 유지된다는 뜻이다.
더 좋은 성적을 거두면 연봉도 상승할 테고.
앞으로 팀 사정이 좋아지면 당연히 더 챙겨 주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 시간까지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고도 덧붙이셨다.
그럼에도 약간 망설이는 듯한 나의 표정을 읽으셨는지 감독님이 다른 팀원들은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역시 감독님.
내 표정을 정확하게 읽으셨다.
정확한 액수를 밝힐 수 없지만 시즌이 끝난 후 연봉이 모두 조금씩 상승한다고 했다.
후원사가 늘어 선수들에게 돌아갈 몫이 더 커졌기 때문이었다. 활약이 좋았다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었다.
그제야 마음이 편해졌다.
위너스리그 우승은 함께 이룩한 것이다.
3라운드에서 내 비중이 높았던 건 인정한다. 하지막 4라운드부터 결승까진 팀원들의 비중도 컸다.
개인리그 때문에 프로리그에 나가지 못하는 일이 많았으니까.
마지막 결승도 이제운을 6세트에 불러내지 않았더라면 상황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른다.
결승에서 내가 한 건 1승뿐이 없다.
그게 이제운을 잡은 것이라는 점이 조금 크긴 하지만.
그리고 개인리그도 100% 나만의 공이 아니다.
전략을 짜 주신 감독님부터 훈련 일정을 도와주신 코치님과
연습실에서 나와 밤을 새워 가며 연습 경기를 해 준 팀원들이 있었기에 할 수 있던 성과다.
나 혼자였다면 절대 하지 못했을 거다.
팀원들의 연봉도 오른다니 정말 다행이다.
이제야 마음이 한결 놓인다.
모든 것이 좋다.
모든 것이.
팀이 좋아지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다.
확확 바뀌진 않았지만 숙소의 가전제품들도 하나둘 새 걸로 바뀌었고 식사의 질도 높아졌다.
연봉 역시 모두 오를 예정이고 말이다.
후원하는 기업이 하나둘 늘고 있다는 뜻이었다.
아주 긍정적인 방향으로 팀이 나아가고 있다는 소리지.
이번 위너스 리그 우승이 결정적이었다.
후원사에게 가장 큰 홍보가 되는 무대였으니까.
아참. 신들의 전쟁 매니저에도 변화가 생겼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