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23 Game No. 223 위너스리그 결승. =========================================================================
Game No. 223
S1에게 너무나 허무한 패배였다.
마지막 경기에서 우리 팀에게 패배하며 결승 직행이 좌절되더니 플레이오프에선 미쳐 날뛰는 폭군 이제운을 만나 3위로 위너스리그를 마치게 되었다.
마수 팬들은 열광했다.
이제운이 부활했다고.
양대 4강.
누군가에겐 인생 시즌이 될 수도 있는 성적이지만 이제운에겐 조금 부족한 성적이다.
그것도 라이벌인 이영우와 결국 우승을 차지하긴 했지만 올해 데뷔한 나에게 3:0으로 완패.
자존심이 상했겠지.
무너질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이제운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그 분노를 경기 중에 발산했다.
특유의 전투 본능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고 어느새 폭군의 모습을 온전히 되찾았다.
상대를 제압하던 강렬한 눈빛도 되찾았다.
나도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를 보며 느꼈다.
정말 살벌하구나하고.
화성이 결승에 오른 순간 감독님이 전장을 고르셨다.
화성이 CT를 이긴 후부터 감독님은 화성이 결승에 올라올 거라 예측하셨다.
그 예측이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역시 감독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프로리그는 2001년에 생겼지만 그땐 위너스리그는 없었다.
1, 2, 5, 6라운드처럼 단판만이 존재했고, 칠전제가 아닌 오전제로 프로리그가 치러졌다.
또한 지금은 사장 된 팀플이 2, 4세트에 들어 있었다.
위너스리그가 처음 생긴 건 2008년이다.
2010년 CT가 우승을 차지한 이래 작년까지 CT와 S1 중 한 팀은 항상 결승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심지어 이 두 팀의 대결만 두 번이 치러졌다.
이 둘이 아닌 새로운 팀이 결승에 오르는 걸 보고 싶다는 사람들의 소망이 드디어 2015년도에 이뤄졌다.
햇수로 6년 만에 CT와 S1이 없는 결승전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 주인공이 우리라니.
기분이 매우 좋다.
어린 아이처럼 심장이 두근거렸다.
우리 팀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일단 양대 개인리그를 모두 뚫은 팀원이 나왔다.
OSL은 16강, MSL은 32강에 당당히 진출한 것이다.
누구냐고?
연호도 승대도 아니었다.
놀랍게도 그 주인공은 민규였다.
성난 파도처럼 상대를 끊임없이 몰아붙이더니 양대리거라는 쾌거를 달성했다.
요즘 프로리그에서 좋은 모습 보이더니 그 기세가 개인리그까지 제대로 이어졌다.
양대 리그를 통과한 팀원은 민규 한 명뿐이었지만 그나마 연호와 승대가 각각 OSL과 MSL 본선에 안착하며 체면을 세웠다.
만약 모두 떨어졌다면 민규와 얼굴을 마주하기 조금 부끄러웠을 수도 있었다.
어쨌든 다행이었다.
결과적으로 프로리그 주전으로 나가는 이들은 모두 개인리그에 합류하게 되었다.
경사였다.
마음 같아선 축하 파티를 하고 싶었지만 당장 내일이 결승전이라 그럴 수 없었다.
내일 우승을 차지한 후 샴페인을 터뜨려도 늦지 않는다고 감독님께서 말씀하였다.
옳은 말씀이다.
내일 우승을 한다면 기쁨은 배가 된다.
내일 우승하고 코가 삐뚤어지게 마셔 보자고 했다. 당연히 찬성이다.
내 우승파티는 팀의 행사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내 개인적인 행사에 더 가까웠다.
팀원들이 진심으로 축하해 주긴 했지만 보이지 않는 막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위너스리그 우승은 다르다.
내가 잘해서가 아닌, 팀원 전부가 잘해서 이룩해 낸 성과다.
그간의 노력이 내일 결실을 맺는다.
개인리그만큼 위너스리그 결승전도 많이 준비했다.
연습 도중 코피를 흘리는 팀원도 있을 정도였다.
선수와 코치를 가리지 않았다. 선수들에게 더 좋은 전략을 짜주기 위해 밤을 새워 화성 선수의 경기를 분석했다.
힘들었지만 즐거웠다.
에너지를 온전히 쏟을 수 있는 걸 찾았으니까.
더 이상 잘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열심히 했다.
감독님의 말씀 한 마디.
“드디어 내일이 결승이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조용해졌다.
모두 결연한 눈빛으로 감독님을 바라보았다.
지금 우리는 하나였다.
“내가 항상 말했지. 후회가 남지 않게 즐기다 오자고. 내일도 마찬가지다. 우승도 좋지만 즐기자. 일단 최대한 즐기고 오자!”
너무나 당연한 말씀입니다!
맞지? 내가 팀원들을 하나씩 바라보며 눈으로 물었다.
모두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후회 없이 모든 걸 쏟아붓겠다는.
***
프로리그는 양대 방송사에서 함께 치러진다.
OSL이나 MSL은 한 방송사에서 독점을 하는 방식이라 문제가 없지만 프로리그 같은 경우 결승은 어느 방송사에서 주관하느냐의 문제가 생긴다.
이에 대한 문제는 진작 해결했다.
아주 공평한 방법으로.
번갈아 가며 주최하는 것이다.
올해 MBS게임에서 위너스리그 결승전을 주관했다면 정규리그 결승은 온게임TV에서.
올해 온게임 TV에서 위너스리그 결승전을 주관했다면 정규리그 결승은 MBS게임에서.
올해 위너스리그 결승은 MBS게임에서 주관한다.
개인리그보다 훨씬 큰 경기장을 결승전 무대로 빌렸다고 한다.
개인리그든 프로리그든 보통 결승전 장소가 매번 바뀌지만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결승전 장소가 있다.
광안리.
프로리그 결승전이 펼쳐지는 광안리는 2005년부터 지금까지 프로리그 결승전 무대로 활용되었다.
그렇기에 광안리는 프로팀들에게 성지나 마찬가지였다.
은퇴하기 전에 한 번쯤은 꼭 가 보고 싶은 곳.
오늘도 바다가 훤히 보이는 곳에 무대가 설치되었다.
좌석 규모도 어마어마하다.
개인리그 결승전보다 훨씬 많다.
신들의 전쟁을 좋아하지 않는 이도 웅장함에 입을 벌릴 정도다.
야외에서 진행되기에 각종 효과도 개인리그보다 훨씬 많이 들어간다.
폭죽부터 시작해서 불기둥까지.
대형 콘서트에서 볼 수 있는 효과는 다 있다고 보면 된다.
실제로 찾는 이들도 개인리그보다 훨씬 많다.
10만 명.
이보다 많은 이가 올 때가 많다.
작은 시의 전체 인구와 맞먹는 어마어마한 숫자다.
이스포츠 최고의 축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료인 개인리그 결승과 달리 무료로 진행된다는 점도 있지만 두 선수가 아닌 여러 선수의 경기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이 더 컸다.
위너스리그 결승전은 이 정도까진 아니다.
그래도 개인리그보다 훨씬 많은 관중이 찾아온다.
못해도 수만 명이다.
경기가 시작되기 2시간 전인데도 대부분의 좌석에 사람들이 앉아 있다.
그들의 얼굴엔 기대감이 어려 있었다.
팀간의 대결이기도 하지만 에이스 간의 대결이기도 하다.
이승우와 이제운.
MSL 4강의 리매치다.
그땐 이승우가 3:0으로 이겼다.
이제운이 그때의 복수를 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었다.
MSL 4강에선 이승우가 쉽게 이겼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다.
변했다.
기세가 변했고 경기력이 변했다.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말이 축구에만 적용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 주었다.
이미 정상을 찍은 프로게이머답게 빠르게 경기력을 끌어 올렸다.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를 걸치며 그 속도에 불이 붙었고 지금은 최전성기와 비슷한 경기력에 도달했다.
화성의 팬들은 대놓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지금의 이제운이라면 이승우에게 쉽게 당하지 않을 거라고.
우승을 하려면 둘이 만나는 건 필연이다.
누가 이기든 명승부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
“자. 이제 결승이다. 후회 없이 우리가 가진 건 모두 쏟아 내자. 그거면 된다.”
모두 긴장했다.
감독님의 말을 듣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입 안이 바짝바짝 마르는지 연신 물을 삼키는 팀원들.
몇몇은 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몸을 흐느적거렸다.
어떤 기분인지 안다.
사전 인터뷰에서 도발이 난무했다.
화성의 도발에 감독님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맞받아친 결과 경기장은 시작도 하기 전에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너무 뜨거워 손을 대면 화상을 입을 정도로.
이미 결승을 경험해 봤다.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를 느껴 본 적이 있다.
그래서 쉽게 적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무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나도 모르게 무대에 압도되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침을 꼴깍 삼키며 관중석을 바라보았다.
개인리그 결승전보다 훨씬 많은 관중들이 있었고 무대의 규모도 훨씬 컸다.
나조차 이런데 다른 팀원들은 말할 것도 없다.
우승DNA란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
S1의 결승 분위기는 조금 달랐다.
S1이 결승에 올랐을 때 2군들이 견학을 간 적이 있다.
큰 무대를 한 번 겪어 보라는 의미였다.
관중들이 지르는 함성에 귀는 먹먹해지는 몸은 잔뜩 얼어붙었다.
팔을 움직이면 끼익 하는, 기름칠 안 한 경첩 소리가 날 것 같은 나와 달리, 1군 선수들은 편안해 보였다.
억지로 편안한 척하는 것이 아니었다.
정말 편안해 보였다.
마치 숙소에 있는 것처럼.
축제.
즐기자.
무대를 즐기자.
그러면 이길 수 있다.
아주 단순했다. 긴장도 거의 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유가 넘쳤고 서로 장난도 쳤다.
즐기면 이긴다.
하던 대로 하면 이긴다.
수없이 우승하고 결승에 오른 S1에겐 우승 DNA가 새겨져 있던 것이다.
우리 팀은 조금 사정이 다르다.
결승은커녕 포스트시즌도 진출해 본 적이 없다.
개인리그 4강 이상을 경험해 본 선수도 나밖에 없다.
경험이 일천한 상황.
반면 화성은 위너스 리그의 강자다.
위너스 리그에서만 2회 우승을 차지했고, 정규 리그에서도 1회 우승을 차지한 강팀.
커리어만 따지면 상대가 되지 않는다.
선수들끼리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화성엔 우승한 선수는 많지 않지만 개인리그 4강에 오른 선수들은 많다.
모든 것이 화성이 우위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포기할 생각은 없다.
그 모든 걸 넘고 오늘 화성을 이긴다.
그리고 우리 팀에 승리 DNA를 심을 생각이었다.
“현우야. 부탁한다.”
우리 팀의 선봉은 현우 형이었다.
나름 강수를 꺼내 든 것이었다.
작전은 이랬다.
현우 형이 선봉으로 나서고 내가 대장으로 나선다.
처음과 끝에 잔뜩 힘을 준 엔트리였다.
중간 허리가 조금 약하긴 하지만 초반에 2킬 이상을 한 후 나에게 넘겨준다는 것이 감독님의 의도였다.
전체적으로 준비를 하긴 했지만 마수전을 가장 많이 준비했다.
이제운을 3:0으로 이긴 적이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과거의 경기일 뿐이다.
지금도 그렇게 압도적으로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건 오늘의 기세였다.
컨디션?
좋다.
이제는 예전만큼 중요하진 않지만 어쨌든 체력?
역시 좋다.
이제운이 어떤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난 매우 좋다.
그걸로 되었다. 4세트부터 7세트까지.
4개의 전장에서 마수전을 중점으로 연습했다.
어느 전장에서 이제운을 만나게 될 줄 몰랐으니까.
물론 다른 종족전도 게을리한 건 아니다. 다만 스킬의 도움으로 상대적으로 쉽게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오늘 이제운과의 경기를 예상해 보건대 누가 이기든 일방적인 경기가 나올 것 같았다.
무슨 근거로 나온 예상이냐고?
감이다, 감.
순전히 내 감.
“박영오도 공격적인 성향이 짙으니까 정찰 꾸준히 하는 거 잊지 말고.”
화성의 선봉은 박영오였다.
종족은 마수.
종족 상성상 현우 형이 나쁘지 않지만 요새 현우 형의 마수전이 좋지 않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전장이 나주평야라 용족이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아마 노리는 것이 분명 있을 것이다.
“다녀오겠습니다.”
우리들의 주장.
현우 형이 무대로 향했다.
조명으로 인해 순간 몸에서 빛이 나는 것처럼 보였다.
물을 떠 다 놓진 않았지만 제가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현우 형!
저희에게 승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