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22 Game No. 222 폭군의 분노. =========================================================================
Game No. 222
그리고 이 선수가 아스트로를 변화시키고 있었다.
다른 선수도 자극을 받았는지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평소라면 어림도 없었을 성적을 내고 있다.
특히 4라운드부터 그랬다.
이승우 없이도 승리를 많이 거뒀고 전체적인 경기력도 많이 올라갔다.
지더라도 허무하게 지는 경우가 거의 없었으니까.
실제로 4라운드부터 이승우가 하는 경기 수가 조금 줄어들었다.
선봉으로 나올 때를 제외하곤 3경기 이상 한 적이 거의 없었다.
많아야 2경기.
그 말은 앞선 선수들이 2세트를 따내 주었다는 뜻이다.
5, 6라운드에서도 이런 모습을 보여 준다면 승부를 에이스결승전까지 끌고 갈 수 있을 것이고 거기서 이승우가 다시 나오며 승리를 거두는 그림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는 개인리그에도 이어졌다.
모두 예선 통과를 하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모든 선수가 예선을 통과한 팀은 아스트로가 유일했다.
아직 이승우가 팀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위너스리그 초반 지적당했던 ‘이승우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라는 말을 조금은 수그러들게 만들었다.
더도 덜도 말고 오늘만 같아라.
지금 아스트로에게 가장 기분 좋은 덕담이었다.
***
S1전을 끝으로 4라운드가 마무리되었다.
기나긴 대장정의 끝이었다.
아예 프로리그가 끝난 건 아니지만 위너스 리그를 좋은 결과로 마쳤기에 성취감이 엄청났다.
경기가 끝난 후 우리는 색다른 세레모니를 했다.
바로 위너스리그 1위라고 큼지막하게 적힌 플랜카드를 무대에 들고 올라간 것이다.
다들 그랬다.
오늘이 꿈만 같다고.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다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S1이 위너스리그 1위로 결승에 직행 적도 있었지만 그건 나와 상관없는 일이었다.
오직 1군들의 일이었으니까.
우리 2군은 그냥 숙소에서 관람하는 것이 전부였다. 결승무대에 한 번 간 적이 있는 게 그때도 우린 견학생 느낌이었지 하나가 된 느낌을 받진 못했다.
마지막 경기에서 1위를 차지한 건 정말 기적이었다.
3라운드까지만 해도 이렇게까지 올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
격차가 꽤 벌어졌었으니까.
그 차이를 좁힌 것도 모자라 아예 역전까지 해 버렸다.
내 생에 가장 짜릿한 드라마였다.
너무 행복했다.
물론 들뜬 마음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았다.
아직 위너스 리그는 마무리된 것이 아니었으니까.
포스트시즌이 남아있다.
우리도 우승한 것이 아니다.
그저 결승에 미리 가 있을 뿐이다.
조금 더 편하게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위너스리그 결과 1위를 차지한 것도 굉장히 기쁜 일이지만 이보다 결승 무대에서 우승하는 것이 훨씬 값진 결과물이었다.
준우승을 차지해 버리면 3, 4라운드 1위를 차지한 것이 빛을 잃는다.
1, 2, 3위권 싸움만큼 치열했던 4위 싸움의 승자는 화성이었다.
특급 에이스 이제운을 앞세워 연달아 승을 차지하며 4위 자리를 확고히 다진 것이다.
뒤에 따라가던 나무전자와 GO는 지붕위로 훌쩍 날아가 버린 닭을 쫓던 개의 심정이 되었다.
확실히 위너스 리그는 에이스의 역할을 절대적이다.
이제운만 봐도 그걸 알 수 있다.
흠. 나도 그렇고 말이지.
사실 이제운을 제외하고 화성에서 밥값을 한 선수가 드물다.
밥값은 커녕 자신의 밥상에 고춧가루를 뿌린 선수도 많았다.
이제운 입장에선 제대로 혈압이 오를 만한 일이지.
그럼에도 4위를 했다.
정말 놀라운 결과 아닌가?
이제운이 멱살 잡고 끌어 올렸다는 표현이 정확했다. 고군분투하며 끊임없이 승리를 따냈다.
과연 한 시대를 지배한 선수다웠다.
이제 2주간 포스트시즌을 거쳐 결승에 오를 팀이 결정된다.
당연히 그 2주간 우리 팀은 경기가 없다.
일종의 휴가인 셈이다.
이것이 결승 직행 팀이 가지는 이점이었다.
경기가 없다고 노는 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프로리그 경기가 없는 것이지 OSL 예선은 계속 치러지고 있었으니까.
얼마 전 OSL 2차 예선을 치렀다.
1차 예선처럼 모두가 통과했으면 참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승대와 연호, 민규만 2차 예선을 통과했다.
확실히 개인리그의 벽은 높았다.
본선보다 예선 통과가 어렵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예선에선 온갖 날빌이 등장했다.
어떻게든 예선을 뚫어 보겠다는 의지였다.
중견 프로게이머들도 신인의 올인에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 줬다.
그걸 보며 다시 한번 느꼈다.
절대 예선으로 가면 안 되겠다고.
온갖 날빌을 상대할 생각을 하니 몸이 절로 떨렸다.
OSL 예선을 치른 후, 우리 팀은 바로 프로리그 결승 대비에 들어갔다.
어느 팀이 올라올지 아직 결정되진 않았지만 그냥 손 놓고 기다릴 수만은 없었으니까.
그래도 우리에게 전장 선택권이 있어서 결승을 준비하는 것이 한결 수월했다.
전장 선택권은 말 그대로 결승 1세트부터 7세트까지 전장의 순서를 정할 수 있는 권한이었다.
위너스 리그 1위를 차지하면 주어지는 것이었다.
결승만 진출하는 줄 알았더니 이런 좋은 점이 또 있었군.
내가 이런 걸 어디서 경험해 봤어야 알지.
S1에 있을 땐 2군이라서 구경도 제대로 못 했다.
그냥 2층에서 조촐한 축하 파티가 벌어졌을 뿐이다. 그마저 1군에서 보내 준 음식으로 한 것이지만.
같은 층에서 축하 파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분리되어 축하 파티를 한다는 것이 지금 생각해 보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지만 그땐 전혀 느끼지 못했다.
오랜만에 치킨과 족발 같은 음식을 먹어서 좋았을 뿐이었다.
아직 전장 선택권은 행사하지 않았다.
어떤 팀이 올라올 줄 몰랐으니까.
다만 화성, CT, S1을 전부 대비할 수 있는 전략은 조금씩 짜고 있었다.
누가?
당연히 우리 감독님이!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정말 능력이 대단하신 것 같다.
전략이면 전략, 용병술이면 용병술.
감독을 위해 태어난 분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요즘 팀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 감독님이셨다.
오히려 선수들은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연습을 하고 있었고 감독님은 외부 매체 인터뷰하랴, 결승 준비하랴 정신이 없으셨다.
난 정말 오랜만에 제대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렇게 오랜 기간 경기 없이 쉬는 건 아스트로 온 이후 처음인 것 같았다.
결승이 끝난 후에도 일주일 만에 팀에 복귀해 GO전에 나섰었으니까.
이렇게 결승을 준비한다는 것이 꿈만 같다.
내가 그 무대에 설 수 있을 거라 전혀 생각도 못했다.
개인리그 결승도 기분이 좋았지만 프로리그 결승도 그 못지않게 좋았다.
정규 시즌이 아닌 위너스 리그라는 것이 조금 아쉬웠지만 정규 시즌이 끝난 것도 아니고 기회는 아직 남아 있었다.
지금처럼 팀이 하나로 뭉친다면 정규 시즌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지금처럼 결승 진출을 하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이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22승 22패, 5할 승률이 되었기에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게 되었다.
***
시간은 정말 빠르게 흘렀다.
흐르는 물과 시간은 잡을 수 없다더니 정말이었다.
어느새 위너스 리그 결승전이 내일로 다가왔다.
포스트시즌을 뚫고 결승에 오른 팀은 놀랍게도 4위의 화성이었다.
CT와 S1을 차례대로 격파하고 결승에 오른 것이다.
그 중심엔 이제운이 있었다.
나한테 MSL 4강을 패배한 이후 갑자기 각성이라고 했는지 미친 경기력을 시도 때도 없이 보여 주더니 팀을 결승으로 이끌었다.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 5경기에서 거둔 승수만 무려 11승이었다.
그중엔 이영우와의 대장전과 S1과의 플레이오프 2차전 올킬도 포함되어 있었다.
S1과의 대결은 2차전으로 끝났지만 CT와의 준플레이오프는 3차전까지 갔다.
그 3차전 대장전에서 이제운과 이영우가 만났다.
많은 이들이 이영우의 승리를 예측했다.
종족 상성도 상성일뿐더러 최근 만난 4강 경기에서 이영우가 더 좋은 모습을 보여 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반대였다.
초반부터 시종일관 몰아붙이는 이제운.
마견 하나하나에 영혼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몰래 모은 마견으로 이영우의 궁병을 줄여 주는 데 성공한 이제운.
곧바로 본인의 장기인 닷발귀를 꺼내 들어 이영우의 혼을 쏙 빼놨다.
경기의 백미는 이영우가 1방 병력을 만들어 진출했을 때였다.
보통 마수라면 빠르게 군락을 가며 망태할배를 준비한다.
약한 그 타이밍을 노리는 것이 이영우의 장기였다.
그걸 이제운이 모를 리 없었다.
군락을 늦게 가는 대신 가시귀를 잔뜩 모았다.
그리고 진출하는 환국의 병력을 완벽하게 싸 먹었다.
박수가 절로 나오는 전투력이었다.
그 이후로 경기는 이제운에게 기울었고 망태할배의 흑운이 나오자마자 이영우는 앞마당이 밀리며 GG를 선언했다.
이 경기는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일꾼을 제외한 환국의 병력이 마수의 영역을 경기가 끝날 때까지 한 번도 밟아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보통 환국도 아닌 이영우를 상대로 이런 경기를 선보이다니.
모두가 경악했다.
말 그대로 본진에 가둬놓고 흠씬 두들겨 팼다.
만장일치로 MVP로 뽑히는 건 물론 9월 랭킹도 한 단계 끌어올려 2위가 되었다.
랭킹은 최근 1년의 성적이 반영되어 선정된다.
작년 미친 활약을 펼쳤던 정명혁에게 빼앗겼던 2위 자리를 반년 만에 되찾은 것이다.
나도 랭킹에 이름을 올렸다.
물론 그전에도 상위권에 올랐지만 양대리그 우승한 포인트가 합산된 내 순위는 무려 5위였다.
내 위로 있는 선수가 겨우 네 명밖에 없다는 것이지.
다른 선수들은 1년 치 포인트가 모두 합산되었지만 나 같은 경우 2달간의 성적만 합산되어 상대적으로 불리했다.
그럼에도 5위를 차지했다는 건 차기 시즌에서 좋은 성적을 보여 준다면 얼마든지 위로 치고 나갈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었다.
우승으로 올라간 포인트가 어마어마했다.
이게 아니었다면 10위권 밖에서 놀고 있었을 거다.
랭킹 5위라니.
으흐흐. 이것도 꿈만 같다.
더욱더 좋았던 건 내 위에 있는 선수 중 용족은 한 명도 없다는 것이었다.
용족 랭킹 1위!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그 대단한 택뱅이 내 아래 위치해 있다.
이 랭킹을 계속 유지해야 할 텐……. 흠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본인의 컨디션을 제대로 끌어 올린 이제운의 활약은 S1에서도 이어졌다.
1차전에서 2킬을 하며 팀을 승리로 이끌더니 2차전에선 아예 올킬을 달성하며 본인의 힘으로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1차전에서 패배한 S1은 2차전에서 제대로 칼을 갈고 나왔다.
선봉으로 김택윤을 내보내며 그 의지를 확실히 보여 줬다.
상대 전적에서 우위를 보이며 천적 관계에 있는 이제운이 선봉으로 나왔기에 걱정 따윈 없었다.
하지만 그 기대를 불과 20분 만에 무너졌다.
이제운이 완벽한 운영으로 김택윤을 무너뜨린 것이다.
평소 마수의 악몽처럼 느껴지던 김택윤의 재기발랄한 플레이가 죽어 버렸다.
비비의 움직임이 혈풍에 완전히 묶였고 발업 용아는 쉽사리 앞마당에서 뛰쳐나오지 못했다.
손발이 제대로 꽁꿍 묶인 김택윤은 GG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김택윤답지 않은 패배였다.
S1의 차봉은 형규였다.
투귀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호전적인 모습을 보여 준 형규지만 폭군 앞에선 반딧불에 지나지 않았다.
마견 싸움에서 형규를 철저히 유린한 이제운은 닷발귀가 뜨기도 전에 경기를 끝내 버렸다.
오직 마견으로.
중견으로 나온 도재열 역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꼼짝없이 당했다.
하긴 김택윤도 그렇게 가볍게 요리했는데 도재열이라고 다를 바 없었다.
그나마 대장으로 나온 정명혁이 분투했지만 기세가 하늘을 뚫을 듯 솟아 오른 이제운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화성은 이제운의 올킬에 힘입어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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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회 아스트로는 22승 22패 소오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