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15 Game No. 215 날빌로 흥한 자. =========================================================================
Game No. 215
S1과 아스트로의 위너스리그 4라운드 마지막 경기를 보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관중들이 경기장을 찾았다.
오늘 경기는 1경기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이번 경기 승패로 1등이 가려지는 것이다.
전 경기를 S1이 승리했기에 아스트로가 S1을 이겨도 동률이 된다.
승패가 같으면 그 다음 따지는 것이 승점이다.
승점은 아스트로가 훨씬 높다.
즉 아스트로 입장에선 스코어 상관없이 이기기만 한다면 결승 직행이 확정된다.
그건 S1도 마찬가지다.
이기면 2승 차이로 넉넉하게 결승행을 확정 짓는다.
또한 이승우 더비라는 웃지 못 할 이름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아스트로 입장에선 농담에 활짝 웃을 수 있지만 S1은 똥 씹은 표정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는 말이다.
이승우를 방출하면서 많은 걸 잃었다.
이승우의 손에 탈락한 S1의 선수가 도대체 몇 명인가?
프로리그에서 빼앗긴 승수가 도대체 몇 승인가?
만약 이승우가 여전히 S1의 소속이었다면 그 영광은 오롯이 S1의 몫이었을 것이다.
양대 진 로열로더를 배출한 것도 S1이었을 테고 위너스리그 41승의 주인공도 S1이었을 것이다.
배가 아플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어차피 당장 상황을 돌릴 순 없다.
그렇다면 S1이 해야 할 건 하나.
절대 이승우에게 패배를 당해선 안 된다. 이미 많은 패배를 헌납한 것 같긴 하지만.
이래저래 결코 물러날 수 없는 한 판 승부다.
당장 오늘 1경기로 플레이오프냐, 결승 진출이냐가 가려진다.
각각 선봉으로 내보낸 선수는 도재열과 김승대였다.
대부분 도재열의 승리를 예상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김승대가 도재열로부터 승리를 따낸 것이다.
닷혈풍, 그러니까 닷발귀와 혈풍의 조합으로 비비를 모두 떨구며 화끈하게 1승을 챙겼다.
의외의 결과였다.
혈풍이 하늘을 가득 덮었다.
비비가 도망가려 했지만 뛰어봤자 혈풍 손바닥 안이었다.
왼쪽으로 가도 혈풍이 있었고 반대편으로 몸을 틀어도 혈풍이 있었다.
어깨에 힘 빡 주고 나왔던 비비가 허무하게 잡힌 순간 경기는 기울었다.
본진으로 날아온 닷발귀를 잡을 유닛이 없었다.
용아가 양손에 끼고 있는 칼을 뽑아 공중으로 던질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추가로 비비를 생산하며 어떻게 버텨 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칠룡 중 한 명이 도재열을 상대로 신승을 거둔 김승대.
아쉽게도 김승대의 상승세는 거기까지였다.
그래도 본인의 몫은 확실히 했다.
S1에서 차봉으로 내보낸 선수는 임형규였다.
MSL 결승의 패배 여파는 눈을 씻고 찾아도 찾을 수 없었다.
위축되기는커녕 두 눈엔 독기가 서려 있었다.
그건 경기력으로 연결되었다. 임형규는 투귀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 주었다.
오직 마견만으로 김승대를 사지로 몰았다.
이제운이 생각나는 움직임이었다.
아직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한 임형규는 내친김에 2킬까지 성공했다.
2킬의 희생자는 한민규였다.
초중반 운영은 좋았다.
임형규를 상대로 밀리지 않는 공격력을 보여 주었다.
단순히 앞만 보고 돌진하는 것이 아니라 물러나야 할 때는 정확히 알았다.
선 대장간-4도감으로 임형규의 스타팅 확장을 깼을 때만 해도 한민규가 임형규를 잡아내는 그림이었다.
그때부터 임형규의 진가가 발휘되었다.
한민규가 경험이 많지 않다는 것을 잘 활용했다.
이리 저리 흔들며 난전을 유도하며 손이 어지럽게 만들었다.
과연 결승에 진출한 선수다웠다.
신인의 단점 중 하나가 객관적으로 상황을 보는 눈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본인이 유리한 상황이어도 확신을 잘 하지 못한다. 혹시 빈집 러시가 들어오면 어쩌지?
상대방이 병력을 쥐어 짜내고 기다리고 있으면 어쩌지?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스스로를 괴롭힌다.
혼자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이다.
한민규도 신인이었고 그 실수를 오늘 범했다.
반면 임형규는 너무나도 노련하게 경기의 주도권을 가져왔다.
데뷔 시기를 크게 차이 나지 않지만 경험의 차이가 컸다. 비록 우승을 차지하진 못했지만 결승을 경험해 본 선수가 본선에도 가 보지 못한 선수의 차이는 엄청났다.
임형규의 투기를 진화하기 위해 나온 아스트로의 중견 카드는 박현우였다.
이재명 감독의 노림수는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망루러시로 일벌레를 잡아 주며 초반부터 유리함을 확보하더니 그 차이를 점점 벌리며 가볍게 승리를 따냈다.
한민규와 다른 깊이 있는 운영이 나왔다.
무엇보다 판단이 정확했다.
공격을 가야할 상황인지 멈춰야 할 상황인지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 점이 박현우를 승리로 이끌었다.
스코어는 2:2.
경기가 진행 될수록 경기장의 열기가 뜨거워졌다.
누가 불이라도 붙인 것처럼 말이다.
서로 응원하는 팀의 승리를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동점 상황까지 왔다.
S1의 중견은 정명혁이었다. 각자 팀에서 환국 에이스를 맞고 있는 선수간의 대결.
승자는 정명혁이었다.
아직 본인이 죽지 않았다는 걸 경기력으로 증명했다. 오호에 든 선수의 레벨은 확실히 달랐다.
같은 화차와 천자총통이지만 움직임이 훨씬 빨랐다.
모든 전장을 훤히 들어 보고 있는 것처럼 거점에 미리 병력을 배치 시켜 서서히 전장을 장악해 나갔다.
이제 스코어는 3:2.
분명 S1이 유리했지만 그 누구도 기뻐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긴장한 모습이었다.
아직 아스트로의 수호신이 나오지 않았으니까.
***
-자. 현재 스코어 3:2로 S1이 앞서고 있는 가운데 이제 아스트로에는 대장 한 선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스코어가 밀리긴 하지만 전혀 밀린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스트로에선 아직 이승우 선수가 나오지 않았거든요!
-개인리그 정복 이후 잠시 쉬었던 프로리그도 정복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GO를 올킬 하고 나무전자의 뱅허를 꺾었습니다. 얼마 전엔 CT까지 올킬 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똑똑히 드러내지 않았습니까?
-가장 중요한 건 수많은 경기를 치렀음에도 다 다른 모습을 보여 줬다는 겁니다. 분석하기가 쉽지 않아요. 특정한 스타일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김정식 해설의 말이 정확했다.
이승우는 뚜렷한 색이 없다.
보통 색이 없다는 건 단점이지만 이승우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마치 전성기의 이영우를 보는 것 같았다.
-역시 아스트로의 대장으로 이승우 선수가 나옵니다.
-굉장히 기대되는 매치가 성사되었습니다!
***
다른 팀과 경기를 할 땐 긴장되지 않았지만 유독 S1 선수와 경기를 하게 되면 긴장이 되었다.
프로리그라고 다를 건 없었다.
OSL 4강에서 김택윤을 잡고 MSL 결승에서 형규를 이기도 마찬가지였다.
이상하게 긴장이 되었다.
이기고 싶다.
정말 이기고 싶다.
다른 선수에겐 져도 S1의 선수한테 만큼은 지고 싶지 않다.
내가 어떻게 변했는지 보여 주고 싶었다.
난 잘하고 있다고 알려 주고 싶었다. 그러려면 오늘 경기도 이겨야겠지?
아직까진 잘하고 있었다.
김택윤에게 2경기를 내주긴 했지만 결국 결승에 올라간 건 나였으니 졌다고 할 순 없었다.
정명혁을 이기면 대장으로 김택윤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다녀올게요.”
이 둘을 잡고 팀을 결승에 올릴 것이다.
***
-이승우와 정명혁 선수는 프로리그에서 한 차례 만난 적이 있죠?
-그렇습니다. 3라운드 위너스리그에서 한 번 만났고 그때 이승우 선수가 승리를 거뒀습니다.
-전략의 승리였죠. 3제단을 전진해서 지은 후에 7용혼을 모아 한 번에 뚫어 버렸습니다. 정명혁 선수가 손도 못 써 보고도 당했죠.
-과연 이번 경기는 어떻게 될지 6세트 전장 천공의 눈으로 떠나 보겠습니다.
-자 먼저 환국 정명혁 선수의 진영입니다. 정명혁 선수 7시에 경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살짝 주춤하는 모습을 보여 주긴 했습니다만 다시 살아나고 있죠?
-그렇습니다. 프로리그에서 굉장히 좋은 모습을 보여 주며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원체 뛰어난 선수다 보니 개인리그도 기대를 걸어 볼 만할 것 같습니다.
-자신과 함께 결승을 치렀던 이영우 선수는 2회 연속 결승에 진출했거든요? 아마 본인도 피가 굉장히 끓고 있을 겁니다. 저 자리에 서고 싶다는…….
정명혁에 대해 더 이야기하려는 찰나.
-어우. 일꾼 벌써 나갑니다.
-아무리 이승우 선수가 뭘 할지 모르는 선수라고 하지만 벌서부터 정찰을 가는 건 아닐 겁니다.
-아마 센터 쪽에 훈련도감을 짓겠죠. 굉장히 독한 걸 준비해 왔습니다.
-초반부터 세게 나오는데요?
벌써 정찰을 갈 필요가 없다.
가 봤자 볼 수 있는 건 신전과 부지런히 철을 캐고 있는 용안이 전부일 테니까.
본진을 출발한 일꾼이 전장의 중앙으로 향했다.
그리고 바로 훈련도감을 지었다.
-8 훈련도감인가요?
-정명혁 선수가 전진 훈련도감을 준비하는 사이, 5시의 이승우 선수도 바쁘게 돌아갑니다.
-본진 일꾼 숫자 좀 보고 싶은데요. 정명혁 선수. 7도감인지 8도감인지. 2, 4, 6, 7도감. 정말 극단적인 수를 준비해 왔습니다. 8도감도 아니고 7도감을 준비해 왔습니다. 이건 망루 이어가기로 지난 김우현 선수에 이어서 시즌 2를 보여 주겠다는 겁니다.
똑같은 전략을 정명혁이 한 차례 선보인 적이 있었다.
어중이떠중이 용족이 아닌 칠룡 김우현이 그 상대였다.
본진 입구에서 지어진 망루를 시작으로 총 3개의 망루가 연달아 건설되었고 망루를 밀어내지 못한 김우현은 결국 GG를 선언하며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마수도 아니고 용족을 망루 러시로 끝내는 모습에 모든 이가 경악했다.
정명혁이 그때의 빌드를 다시 한번 들고 나왔다.
이를 제대로 갈고 나왔다는 소리였다.
-이승우 선수도 한 전략하는 선수거든요? 그런 이승우를 상대로 초반 전략을 준비해 왔습니다.
-사실 이 전장이 러시 거리도 있고 뒷마당이 있는 전장이라서 생더블이 자주 나오거든요? 만약에 이승우 선수가 뒷마당에 신전을 소환하면 그냥 경기 끝납니다.
-망루의 강력함을 다시 한번 보여 줄 수 있을지.
-중후반에 튀어나올 변수를 제거하겠다. 뭐 이런 거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선수니, 그냥 초반에 끝내겠다는 거예요. 끝내지 못하더라도 큰 상처를 입히고 시작하겠다. 뭐 이런 거죠.
-정명혁 선수의 컨트롤이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2기의 화차로 달려드는 용아를 피해 가며 앞마당의 모든 용안을 싹 잡아준 적도 있지 않습니까? 상대방 입장에선 욕 나옵니다.
-욕만 나오면 다행이죠. 마우스 집어 던질 수도 있습니다.
-자. 과연 이승우 선수가 어떤 빌드를 선택할지 궁금합니다.
-만약 뒷마당에 신전을 올리면 게임 터집니다. 날카로운 빌드에 흥한 자는 날카로운 빌드에 망한다는 말이 있거든요!
-일반적인 플레이를 해도 큰 피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정명혁 선수 초반 소수 컨트롤 예술이거든요!
임주혁과 최연규가 있던 팀답게 전략적인 움직임에 능한 모습을 보여 주는 정명혁.
과연 그가 준비한 노림수가 제대로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경기를 끝내면 좋지만 용안을 줄여 주기만 해도 성공입니다. 어차피 앞마당에 망루 짓고 군영 지어 버리면 되거든요! 용아를 몇 기 찍어야 하기 때문에 용혼의 사업이 되는 시간이 굉장히 늦어져 버립니다!
그사이 궁병이 나오기 시작했다.
2기가 나왔음에도 궁병은 제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치 땅에 뿌리가 박힌 양 가만히 있었다.
정명혁이 신경을 못 써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모아서 갈 생각인 것이다.
정말 독한 초반 공격을 준비해 온 정명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