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07 Game No. 207 출전 =========================================================================
Game No. 207
와우.
여준이가 2승이라니.
경기력도 아주 좋다.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고.
칭찬 백번을 해 줘도 손색이 없다.
일단 전진 화통을 발견하고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정말 침착하게 막아 냈다.
그 상황에서 당황해서 손이 꼬였더라면 발견하고도 피해를 받는 불상사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입이 귀에 걸린 여준이의 모습에 나도 굉장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나무전자에서 진화를 위해 내보낸 선수는 허영우였다.
확실히 허영우는 달랐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무엇보다 노련함이 엿보였다.
성급하게 달려들지 않았다.
오히려 여준이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여준이가 힘을 가지고 있을 땐 싸워 주지 않고 병력을 빙빙 돌렸다.
마음이 급해진 여준이가 달려들었고 전투에서 대패하고 말았다.
조금만 더 침착했더라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었지만 승부에서 가정은 의미 없는 짓이었다.
정확히 23분 만에 여준이는 GG를 선언했다.
땀에 흠뻑 젖어 있는 여준이와 달리 허영우의 얼굴엔 여유가 엿보였다.
흠. 확실히 레벨 차이는 아직 있군.
그래도 여준이가 2킬을 해준 덕에 아직 스코어는 2:1로 우리가 이기고 있었다.
여준이가 0킬이나 1킬로 물러났다면 연호나 승대를 차봉으로 내보냈겠지만, 감독님은 아직 여유가 있다고 판단하셨는지 민규를 차봉으로 내보셨다.
경험을 쌓아 보라는 것 같았다.
-허영우 선수 순식간에 2킬을 따내며 스코어를 2:2 동률로 만들어 냅니다!
-역시 허느님입니다!
-나무전자를 위기에서 구해 내는 허영우!
-이럴 때 해 줘야죠. 이럴 때 승리를 챙겨 주는 것이 에이스입니다.
-2킬을 당했지만 남은 두 선수가 허영우와 송병호거든요!
-제대로 반격을 시작하는 나무전자!
-자. 이러면 아스트로 입장에서 고민이 될 수밖에 없죠. 허영우를 잡을 수 있는 카드라고 하면 생각나는 선수가 한 명밖에 없긴 하거든요!
민규 역시 허영우 앞에 무릎 꿇었다. 확실히 흔드는 플레이가 일품이었다.
비렴의 천벌을 활용한 전투도 굉장했고.
업그레이드 잘된 200병력이 기세 좋게 나갔지만 기가 막힌 천벌 세례에 힘을 잃어버렸다.
순식간의 균형의 추가 맞춰졌다.
확실히 에이스는 다르군.
“승우야.”
그때 감독님이 나를 은근한 목소리로 부르셨다.
“네, 감독님.”
“중견으로 나가고 싶냐? 대장으로 나가고 싶냐?”
엄마가 좋냐? 아빠가 좋냐?
라는 물음을 받은 기분이다.
어떤 기분이냐고?
중견이든 대장이든 둘 다 좋다.
팀에 보탬이 된다면 어디든 상관없다.
“저야 상관없습니다.”
감독님이 씨익 웃으셨다.
“한 번 나가 보자. 너 허영우랑 송병호한테 강하잖아?”
강하다고하기엔 많은 경기를 치르진 않았지만 어쨌든 둘과의 경기에서 패배를 당한 적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럼 그럴까요?”
***
-아스트로에서 중견으로 내보낸 선수는. 아. 드디어 이 선수가 나오네요.
-아스트로도 더 이상 패배를 용납하지 않겠다 이거죠.
-이승우 선수가 나옵니다.
-허영우 선수 입장에서 갚아야 할 것이 좀 있거든요?
MSL 8강 3:0패배.
너무 일방적으로 패배를 당했다.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항복을 선언하고 말았다.
허영우 입장에선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아무리 이승우가 그 전에 김택윤을 잡고 결승에 오르며 물오른 용족전을 뽐냈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같은 육룡이었으니까.
김택윤은 2세트를 잡아내기라도 했지 허영우는 이승우에게 아무런 흠집도 내지 못했다.
오히려 전승 우승이라는 업적을 달성시켜 주는 데 한몫했다.
두고두고 회자될 기록이었다.
MSL에 관련된 스페셜 영상이 제작될 때마다 절대 빠지지 않고 나올 것이고, 연말이 되면 그에 대한 기록을 다시 한번 시끌벅적하게 떠들겠지.
더 이상 말이 나오는 걸 막으려면, 아니 막지 못하더라도 그래도 허영우는 이승우를 상대로 이기긴 했다라는 말을 들으려면 오늘 이승우를 잡고 나무전자가 포스트시즌 진출의 희망을 계속 이어 나가야 했다.
-이승우 선수 여유 있습니다. 표정 보십시오! 내가 양대 리그 우승자다! 내자 지금 시대의 지배자다!
-오랜만에 돌아온 경기에서 올킬을 기록하며 본인의 건재함을 증명하지 않았습니까? 아직 경기를 이긴 것도, 대장 카드가 결정된 것도 아니지만, 나무전자에서 허영우 선수가 무너지면 송병호 선수가 나오는 건 자명한 사실 아니겠습니까? 지금 이승우 선수가 나왔다는 건 뱅허 전부 잡고 경기를 끝내겠다 이겁니다.
이승우는 차분히 부스 안에 앉아있었다.
긴장이라곤 손톱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그간의 경험 때문이었다.
보통 경험과 시간은 비례하지만 항상 그런 건 아니다.
이승우 같은 경우 데뷔 후 경기를 펼친 기간은 짧지만 그 사이 양대리그 결승이라는 엄청난 경험을 했다.
다른 선수라면 몇 년간 해야 할 경험을 응축시켜 짧은 시기에 해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시간과 정신의 방에 들어갔다 온 것과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이제 프로리그 경기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선수가 되었다.
진정한 에이스가 되었다는 말과 일맥상통했다.
-요즘 인터넷 커뮤니티에 이승우 선수를 찬양하는 글들이 우후죽순처럼 마구 올라오고 있습니다.
-용족 팬들에게 있어 이승우 선수는 요새 신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들어 이승우의 팬이 급격히 많아졌다. 대부분의 용족 남자 팬들을 흡수한 모습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짤방과 드립이 흥하고 있었다.
물론 모두가 좋아하는 건 아니다.
꼴 보기 싫어하는 이들도 있었다.
마수나 환국 선수의 팬이 대부분이었지만 다른 용족 선수의 팬들도 있었다.
-택뱅 양대산맥 체계에서 트로이카 체계로 변했죠! 만약 이승우 선수가 1회 우승만 추가한다면 이영우나 이제운에 버금가는 용족의 유일신으로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러면 진짜 더 이상 말이 안 나올 겁니다.
3회 우승에 양대 우승.
적어도 용족 내에선 개인 커리어 NO.1이 된다.
-어쨌든 지금도 용족 최초이자 역대 최초인 양대 진 로열로더의 업적을 이룬 선수이니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은지 김태영 해설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잠시 떠올랐다 사라졌다.
용족의 부흥을 하루가 멀다 하고 부르짖었던 그였기에 이승우의 등장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자. 어느 팀이 이기든 일단 이번 세트를 통해 한 팀이 다시 앞서 나가게 됩니다. 그 팀이 나무전자가 될지, 아스트로가 될지! 5세트 전장 운명의 갈림길로 떠나 보겠습니다.
***
5세트 전장은 운명의 갈림길이었다.
이번 경기엔 [투신] 2개와 [날빌러], [위너스리그의 사나이]를 장착했다.
용용전에서 가장 괜찮을 것 같은 스킬을 모두 챙겨 넣었다.
경기 시작과 동시에 [날빌러]를 사용했다.
추천해 준 빌드는 무난한 빌드.
일단 허영우가 배를 째는 빌드는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조금 공격적인 플레이를 하려나 보다.
아마 1제단 용신 이후 3제단 찌르기?
이거 아니면 3제단 공격일 수도 있고.
그렇다면 난 1제단 앞마당 이후 3제단을 가야겠군.
추천해 준 빌드가 항상 이기는 빌드는 아니다.
공격적인 빌드를 추천해 줄 때가 아니라면 일단 지지 않는 빌드를 알려 주는 거라고 봐야 했다.
난 [날빌러]가 추천해 준 빌드가 아닌 다른 빌드를 시도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내 예상대로 허영우는 1제단 용.신 이후 3제단 찌르기 운영이었다.
이러면 빌드는 내가 완전히 먹고 들어가지!
지금은 물량이 엇비슷하지만 5분만 지나면 테크부터 물량까지 모든 것이 차이가 나게 된다.
허영우의 표정을 볼 수 없지만 아마 딱딱하게 굳어 있을 거다.
***
-초반 빌드는 이승우 선수가 먹었네요.
-그렇죠. 허영우 선수 평지 전장이다 보니 용혼 싸움을 유도하기 위해 빠르게 3제단 올리면서 찌르기 갔는데 이러면 막히죠.
이승우가 선택한 빌드와 허영우가 선택한 빌드에서 나오는 용혼의 수는 같다.
차이가 있다면 이승우는 용의 신전을 늦게 올리는 대신 확장을 먼저 가져갔다는 것 정도?
당장 용.신 병력으로 뭘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에 이승우가 훨씬 좋은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허영우는 현룡사당을 먼저 지었고, 이승우는 현룡사당을 일단 생략하고 지룡사원을 먼저 지었기에 서로간의 용의 신전 건설 타이밍이 조금 차이가 났지만 지룡이 나오는 타이밍은 별로 차이가 나지 않았다.
허영우는 선택해야 했다.
뒤늦게라도 확장을 가져가거나 2지룡을 생산해 한 번 몰아치거나.
허영우의 선택은 전자였다.
-허영우 선수 한 발 빼네요.
-허영우 선수 안전한 선택합니다.
만약 상대가 이승우가 아닌 신연호였다면 과감하게 2지룡을 찍고 공격을 들어가는 선택을 했을 거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그 타이밍만큼은 상대보다 화력에서 앞설 수 있으니까.
허영무도 칠룡인 만큼 웬만한 용족 선수보다 뛰어난 전투력을 지니고 있다.
실제로 전성기 때 김택윤과 송병호를 합친 것 같다고 해서 올마이티, 허느님이라고 불렸던 허영우였으니까.
하지만 상대는 전성기라 평가받는 이승우.
섣불리 들어갔다가 병력을 다 잃거나 뚫지 못하게 되면 이길 수 없게 된다.
이승우란 이름값이 허영우를 망설이게 한 것이다.
그만큼 현재 이승우의 기량은 최절정에 올라 있었다.
-어쩌면 저게 나을 수 있죠. 허영우 선수도 충분히 운영이 가능한 선수거든요?
-조금씩 따라 붙으면 됩니다. 관건은 이승우 선수입니다. 따라오게 하지 않을 거거든요? 상대방이 빠른 걸음으로 쫓아오면 달려 버리고 달려오면 차타고 쌩하니 나아갈 선수가 이승우 선수입니다. 앞마당 간다는 거 확인하면 조금 더 폭발적으로 테크에 돈을 쏟아부을 겁니다.
-자. 이렇게 되면 이승우 선수는 위기를 한 타이밍 잘 넘긴 셈이 되고요. 그 위기는 허영우 선수에게 넘어가게 됩니다.
-어쨌든 병력이나 테크는 이승우 선수가 더 빠르게 확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허영우 선수한테 위기가 한 번 찾아올 겁니다.
이제 공격의 턴은 이승우에게 넘어갔다.
***
혹시 들어올 허영우의 공격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해 놓았지만 먼지 하나 날아오지 않았다.
확장을 가져갔나?
지금까지 들어오지 않은 걸로 봐서 그런 듯싶었다.
허영우가 바보도 아니고 확장도 가져가지 않고 허송세월을 보낼 리는 없을 테니.
한시름 놨다.
러시를 오면 [투신]을 써서 막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 허영우는 확장을 선택했고 [투신]을 아낄 수 있었다.
주도권을 되찾았다.
적어도 10분간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
조금 늦었지만 현룡을 생산해 허영우의 앞마당에 보냈다.
확장을 언제 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이미 완성된 신전을 보고 뭘 파악하냐고?
신전을 보고 파악하는 것이 아니다.
철광을 찍어 봐서 얼마나 채취했는지 보고서 시기를 추정하는 거다.
확실히 늦다.
내 앞마당에 있는 철광보다 평균적으로 100이상 차이난다.
나와 허영우의 자원 차이가 최소 철 800이라는 말이었다.
800이면 제단 5개를 소환하고도 돈이 남을 정도로 큰 차이다.
그만큼은 아니겠지만 금도 꽤 차이가 날 거다.
좋았어.
잡힐까 봐 본진 깊숙한 곳까진 들어가지 못했지만 대략적인 건 전부 파악했다.
곧바로 용무관을 지어 지상 병력의 공격력 업그레이드를 돌렸다.
당장 효과를 볼 수 있는 업그레이드는 아니다. 러시 타이밍은 그보다 빠른 시기가 될 것이다.
일단 비렴의 천벌이 개발 완료되었을 때가 첫 번째 러시 타이밍이었다.
공격력 업그레이드는 일종의 보험이었다.
첫 번째 전투에서 밀어 버리지 못했을 때를 대비한 보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