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03 Game No. 203 카레가 끓기 전에 돌아오겠소. =========================================================================
Game No. 203
3분 15초.
차영화가 이승우에게 GG를 선언하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경기가 시작과 동시에 잠시 볼일을 보고 온 사람들은 굉장히 어리둥절해할 것이다.
화장실을 갔든 잠시 라면을 끓이러 갔던 상관없이 갔다 오니 경기가 끝났다.
-아. 용안을 시작과 동시에 밖으로 빼 주면서 자신의 입구 쪽으로 용안이 지나갈 때 흐뭇하게 미소 짓던 이승우 선수의 얼굴이 잊히지 않네요.
-아, 차영화 선수 입장에선 너무 억울한데요.
-정찰 자체를, 상대방을 너무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본인이 해야 할 것만 생각했지 상대방이 무얼 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아마 가장 허무한 사람은 경기를 직접 펼친 차영화 선수일겁니다. 아무것도 해 보지 못하고 졌거든요.
-채 손이 풀리기도 전에 경기에서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마패 아닌 마패의 복수를 하러 나왔는데 쓸쓸히 물러나고 마네요. 너무 아쉽겠습니다.
한종엽 해설의 말대로 차영화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다.
그도 준비해 온 전략이 있었다.
초 패스트 흑완.
그래서 평소보다 빠르게 금광을 캤던 것인데 그것이 오히려 이승우를 도와주는 꼴이 되었다.
결국 아무것도 해 보지 못하고 패배한 차영화.
아쉬움이 잔뜩 남아 있는 얼굴로 쓸쓸히 벤치로 돌아갔다.
-이승우 선수 기세 탔습니다. 완벽히 탔어요. 3:0! 벌써 3킬을 기록하는 이승우 선수입니다.
-아. 이승우 선수 이러다 정말 올킬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무조건 올킬을 한다 이런 보장은 할 수 없습니다. 3라운드 CT전에서 3킬을 했지만 마지막 김대형 선수에게 패배했고 그 경기에서 팀은 역올킬을 당하면서 승리를 헌납했거든요? 오늘도 그런 그림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걸 겪었기에 이승우 선수가 아예 올킬을 해 버릴 수도 있습니다.
-만약 올킬을 한다면 4회 올킬의 위업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역대 최고 기록은 3회로 이승우 선수가 타이기록을 하고 있거든요? 오늘 1승을 더 하면 본인의 단독 기록으로 만들어 버리는 겁니다.
이승우에게 다시 한번 기회가 찾아왔다.
4회 올킬.
이기면 또 하나의 기록을 만들게 된다.
이승우가 지닌 기록은 벌써 한 손으로 세기 힘들 정도로 많다.
몇몇 이들은 이승우를 아예 ‘기록의 이승우’라고 부를 정도였다.
-그걸 그냥 지켜보고 있을 GO가 아니죠. 지금 위치에 어떻게 올라왔는데요!
-아마 GO에선 임동원 선수가 대장으로 무조건 나올 겁니다. 이번 시즌 올킬을 한 적은 없지만 3킬을 기록한 적이 있거든요?
-아마 많은 팬분들이 이 두 선수의 대결을 기다렸을 것 같습니다.
2015 MSL 시즌 1과 시즌 2의 우승자의 만남.
이승우나 임동원 둘이 연달아 승리를 거둔다면 둘은 필연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다.
이승우가 3킬을 했고 GO는 마지막 대장으로 임동원을 선택할 것이다.
만약 GO의 순위가 안정적이라면 임동원이 아닌 다른 선수를 보내며 경험을 쌓게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GO에겐 반드시 승리가 필요한 상황.
원투 펀치 중 한 명인 김재만이 이미 패배했기에 승리를 가져올 수 있는 선수는 임동원밖에 남지 않았다.
***
3세트를 끝내고 부스에서 나온 심정은 뭐라고 해야 할까?
굉장히 후련했다.
너무 짧은 시간에 경기가 끝나서 나 스스로도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처음 [지금 이 순간]이 발동되었을 때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 이 전략이 통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생겼다.
아무리 스킬이 발동되었어도 내가 생각했을 때, 빌드가 너무 터무니없었기 때문이었다.
용안을 차영화의 기지를 보내는 내내 찝찝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 찝찝함이 사라진 건 첫 번째 용아가 나왔을 때였다.
그 순간 직감했다.
이 경기는 질 수가 없다고.
“마지막은 임동원이다.”
예상대로 대장은 임동원이었다.
반드시 이기고 싶었다. 이겨서 경기를 끝내고 싶었다.
CT전과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팀원을 못 믿는다거나 그런 게 아니다.
그냥 내 손으로 경기를 마무리 짓고 싶은 것이 더 컸다.
“너무 이겨야겠다고 부담가지지 않아도 돼. 우리도 열심히 연습했고, 실제로 너 없이 이긴 적도 있으니까.”
현우 형은 내가 부담스러워할까 걱정인 모양이었다.
괜찮습니다, 현우 형.
그때 일은 다 잊었습니다.
“이왕이면 이기는 게 좋죠. 절대 팀원들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에요. 그냥 이기면 4회 올킬 기록도 세우고 깔끔하게 퇴근하고. 좋잖아요?”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좋다.
사실 김대형에게 패배한 것도 체력의 부족이 컸다.
오늘은 그런 불안 요소가 전혀 없다.
앞에서 스킬을 잘 아껴 쓴 덕에 쓸 만한 스킬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3세트에서 [지금 이 순간]이 발동된 것이 컸다.
[날빌러] 하나로 경기를 끝낼 수 있었으니까.
[투신]과 [날빌러] 그리고 [CCTV]까지.
마지막 경기니 쓸 수 있는 스킬은 전부 다 활용할 생각이었다.
[폭주기관차]도 쓰면 좋겠군.
[투신]과 [폭주기관차]를 따로 쓰는 것도 좋지만 함께 쓰면 어마어마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것 같다.
만약 [폭주기관차]가 먼저 적용이 된다면 [투신]으로 오르는 능력치는 엄청나게 커진다.
거의 뻥튀기 수준.
비슷한 병력을 가진다면 전투에서 거의 지지 않을 것이다.
진정한 전투의 신이 되는 것이다.
[폭주기관차]의 스킬 레벨이 1이라 1번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조금 아쉬웠다.
빨리 레벨을 올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레벨 1을 올리려면 스킬 포인트가 무려 2개나 필요하다.
사용 횟수를 2번으로 늘리는 레벨3까지 필요한 스킬 포인트는 무려 4개.
1단계 스킬을 MAX까지 찍을 수 있는 개수다.
업적으로 한 번에 많은 스킬 포인트를 얻으면 모를까 1개씩 얻게 되면 일단 1단계 스킬부터 MAX까지 올려야겠군.
“그럼 가 보겠습니다.”
어느새 부스에 올라가 스킬을 슬롯에 장착하고 경기를 준비할 시간이 되었다.
팀원들과 마지막 파이팅을 외친 후 부스로 향했다.
반드시 경기를 끝낸다.
그렇게 투지를 다지며 컴퓨터 앞에 앉았다.
***
조현남 감독이 모든 선수를 불러 모았다.
3:0으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도 그의 얼굴은 덤덤했다.
“재만이도 유철이도 영화도 고생 많았다. 경기력에 문제가 있었다기보단 운이 나빴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내가 조금 더 적재적소에 너희를 출전시켜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의외로 경기의 패배를 선수에게 돌리는 감독이 있다.
조현남 감독은 그런 감독이 아니었다.
선수보단 자신의 엔트리를 탓했다.
조현남 감독은 채찍으로 선수들의 경기력을 끌어 올리는 스타일이 아니다.
따뜻하게 지켜봐 주고 장점을 찾아 주는 것이 그의 스타일이다.
“마지막으로 나서는 동원이. 네 어깨에 짊어진 짐이 무겁다는 건 알고 있다. 이승우만 이긴다면 아스트로에게 넘어갔던 운이 우리 쪽으로 넘어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그거면 되었다.”
조현남 감독이 따뜻한 미소와 함께 임동원의 어깨를 어루만졌다.
***
-자. 마지막 세트가 될지도 모르는 4세트가 시작되기 직전입니다.
-4세트 전장은 나주평야로 용족이 하기 괜찮은 전장이거든요?
-러시거리도 가까운 편이기 때문에 이승우 선수가 또 한 번 공격적인 수를 꺼내 들 수도 있습니다.
-오늘 이승우 선수가 아주 독하게 마음먹었습니다. 2세트 마패에 이어 3세트 본진 제단 러시까지! 눈빛 좀 보세요! 저게 사람 눈입니까? 호랑이 눈이지!
-임동원 선수도 만만치 않는 눈빛을 빛내며 부스에 앉아 있습니다!
-절대 이대로 질 수 없을 겁니다. 김재만, 임동원이 나와서 4:0이라뇨! 아무리 상대가 이승우라도 그렇지, 그건 안 될 입니다.
-그래도 GO에서 가장 최근에 우승한 선수가 임동원 선수 아닙니까? 그리 오래 되지도 않았습니다. 바로 전 시즌 우승자가 임동원 선수 아닙니까?
-GO에서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선수도 임동원 선수죠.
올해 임동원의 위치는 이제운과 삼김마수 사이다.
센스면 센스, 경기력이면 경기력.
모든 것이 손에 꼽힐 정도로 뛰어났다. GO에서 올킬을 한다면 그건 임동원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물론 첫 상대가 이승우라 쉽지는 않겠지만.
***
경기 시작과 동시에 [날빌러]를 사용했다.
무난한 빌드를 추천해 주는 걸 보니 임동원이 올인은 선택한 건 아닌 듯싶다.
이번엔 [지금 이 순간]이 뜨지 않았다.
이번 경기도 발동되었으면 정말 빠르게 경기를 끝낼 수 있었을 텐데.
3세트는 나에게도 많은 의미가 있는 경기였다.
정말 오랜만에 시원한 날빌로 상대를 극 초반에 끝냈다.
치열한 수 싸움도 재밌지만 이런 식으로 승리를 거두는 것도 짜릿했다.
이번 경기에 장착한 스킬은 [날빌러], [투신], [폭주기관차], [CCTV]다.
지금 [날빌러]를 사용했으니 이제 남은 스킬은 3개뿐, 그 중 [CCTV]는 패시브 스킬이니 내 의지로 사용할 수 있는 건 [투신]과 [폭주기관차] 뿐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투신]과 [폭주기관차]는 일단 한 번에 사용해볼 생각이었다.
얼마만큼의 파괴력을 지니고 있는지 궁금했다.
물론 중간에 위기가 닥친다면 둘 중 하나를 먼저 쓰긴 해야겠지만.
[CCTV]를 실전에서 써 보는 건 처음이다. 얼마만큼의 효과가 있을지 아직 알 수 없다.
래더에서 사용해 보긴 했지만 상대가 프로가 아니었기에 정확히 판단하는 건 힘들었다.
오늘 경기를 통해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되겠지.
4세트는 어떻게 할까 많은 고민을 했다.
[투신]과 [폭주기관차]의 조합을 알아보려면 대규모 전투 구도로 가는 것이 좋겠지?
***
-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4세트가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보이는 임동원 선수의 진영은 6시입니다. 그리고 지금 보이는 이승우 선수의 위치는 9시입니다.
-이 전장이 러시거리가 가까운 편이라서 마수들이 초반 그슨대에 힘을 많이 주는 편이거든요?
-중반 이후에 용족이 힘을 받는 전장이라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에도 그런 운영이 나올지.
-이승우 선수는 중반 이후 그런 거 안 보고 그냥 99제단 때려 버릴 수도 있는 선수입니다. 상대가 뭘 하든, 그냥 초반에 끝내는 게 가능한 선수입니다.
-충분히 가능한 선수죠. 전 세트에서 확실히 보여 주지 않았습니까? 3분 30초 만에 경기를 이겼습니다. 부스 들어오기 전에 라면에 물 넣고 들어왔으면 딱 적당히 익었을 시간이거든요? 관운장이네요, 관운장.
이승우의 별명이 하나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사실 99제단이 심하게 과감한 빌드거든요? 지금 상황에서? 이미 전 세트를 극단적인 제단 러시로 이긴 상황이라 임동원 선수도 99제단 같은 거 철저하게 대비할 겁니다. 그렇기에 지금 같은 상황에선 오히려 안 가는 것이 좋습니다.
초반은 무난하게 진행되었다.
99제단은 나오지 않았다. 다른 용족과 마찬가지로 앞마당을 가져가는 이승우.
하지만 왠지 그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 정도로 변칙적인 빌드를 자주 사용했던 이승우였으니까.
이승우의 가장 큰 장점은, 변칙적인 빌드가 매우 안정적으로 보인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