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89 Game No. 189 MSL 결승. =========================================================================
Game No. 189
“준비 다 되셨어요?”
“아, 네!”
“그럼 지금 시작할까요?”
오늘 난 MSL 결승 오프닝 영상을 촬영하러 왔다.
당연히 형규와도 만나 인사를 나눴다.
만나자마자 형규는 우승 축하한다는 말부터 했다.
고마운 녀석.
표정을 보니 진심이 느껴졌다.
그 말을 한 이후.
“OSL 우승했으니까 MSL은 내가 우승하게 해 줘.”
라고 말했다.
더 큰 진심이 느껴졌다.
이영우와 영상을 촬영했을 때보다 마음이 훨씬 편했다.
두 번째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형규와 함께 촬영하는 것이 더 컸다.
아무래도 마음이 편했으니까.
“자, 이승우 선수 거기서 몸 조금만 더 틀게요.”
“넵!”
신에게 도전하는 도전자 콘셉트로 촬영했던 OSL 결승 오프닝 촬영과 달리 MSL은, 비어 버린 왕좌를 차지하려는 두 강자의 싸움이 콘셉트라고 했다.
나나 형규 모두 진 로열로더였으니까 충분히 고개를 끄덕여진다.
살짝 오글거린다는 생각이 들지만 적절한 CG 한 스푼이면 아주 그럴싸한 영상으로 바뀔 것이다.
이미 한번 경험해 보지 않았는가?
“됐습니다. 잠시 휴식 취하겠습니다!”
1시간 넘게 이어지던 촬영에 지쳐갈 때쯤 휴식 시간이 돌아왔다.
나에게 초코바를 줘. 초코바를!
힘들어서 그런지 단 게 무지 땡긴다.
“OSL도 이런 식으로 찍은 거야?”
“비슷해. 그땐 이영우는 가만히 있고 내가 많이 움직였지.”
신의 엉덩이는 무거웠다.
도전자의 발은 힘들었고.
“하긴. 콘셉트가 달랐으니까.”
보통 결승 오프닝을 찍을 때 양 선수가 대화를 많이 나누지 않는다고 했다.
아무리 친한 사이더라도 그건 마찬가지였고 같은 팀인 경우 한 명이 숙소를 나와 다른 곳에서 지내는 것이 보통이라고 했다.
우리는 예외였다.
그걸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었으니까.
“그나저나 진짜 나한테 우승 양보해 주면 안 돼? 형은 OSL 우승 했잖아?”
……이 녀석.
우승을 아이스크림 하나 처럼 가볍게 이야기 하지마.
“그럼 네가 양보하는 거 어때? 나 양대 진 로열로더 기록 좀 세워 보자.”
“미안. 양보해 달라는 말 더 이상 안 할게.”
우리는 스스럼없이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나저나 계속 거기 있을 거야?”
“어? 뭐가?”
“전에 경기 할 때도 이야기했잖아. 다시 안 돌아올 거냐고.”
“아…… 그거?”
난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곧 임주혁 선배님 전역하시고 수코로 오신다는 이야기가 있어. 잘 생각해 봐.”
“자, 다시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휴식 시간이 끝났다.
에휴. 얘는 머리 복잡해지게 이런 이야기를 왜 또 꺼내는 거야?
***
8월 1일.
MSL 결승전이 열렸다.
일주일 전에 있던 OSL 결승전이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오늘 MSL도 많은 기대를 받고 있었다.
OSL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이승우가 또 한 번 우승을 사냥하기 위해 나서기 때문이었다.
OSL에 이어 MSL도 정복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었다.
이와 함께 관심이 집중된 건 이승우의 전승 우승 여부다.
이승우는 32강부터 4강까지 단 한 번도 패배를 기록하지 않고 MSL 결승에 올라왔다.
만약 오늘 3:0으로 이승우가 이긴다면 역대 최초로 전승 우승자가 만들어지게 된다.
그전까지의 기록은 이제운의 1패 우승이 최고였다.
전승 우승에 양대 진 로열로더.
역대 단 한 번도 없던 영광은 손에 넣을 수 있는 기회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물론 양대 진 로열로더만 해도 새로운 기록을 수립하는 것이긴 하다.
이야깃거리 만들기 좋아하는 이들에겐 이보다 좋은 일은 없었다.
이영우의 이후 최고의 신인이라는 찬사까지 쏟아졌다.
나이가 조금 많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지만.
이제 막 빛을 보기 시작했는데 프로게이머로서 노장에 가까운 26살이다.
몇 년 지나지 않아 군대에 가야 한다는 소리였다.
적어도 그전까지 우승 한두 번은 더 하고 싶어 하겠지.
어쨌든 일주일 전에 이영우를 잡고 우승을 했기 때문인지 상대적으로 이승우를 응원하는 이들이 많았다.
임형규를 악당처럼 생각하는 이들조차 있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분위기가 과열되었다.
어느 정도 이해는 되었다.
환국이나 마수는 저번 시즌에 각각 우승을 차지했다.
반면 용족은?
나오는 건 한숨이고 흐르는 건 눈물이다.
100만 용족 팬들이 이처럼 단결된 건 오래간만이었다.
승패 설문 조사에서도 7:3으로 압도적인 결과가 나왔다.
팬심이 작용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이승우의 경기력이 물이 올라 있다는 뜻이었다.
2주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택뱅리쌍을 모두 다전제로 꺾었다.
그중 송병호는 오전제가 아니고 삼전제이긴 했지만 어쨌든 다전제는 다전제였다.
임형규도 이영우를 4강에서 꺾긴 했지만 명함을 내밀 수준이 아닌 것이다.
MSL PD는 결승 며칠 전부터 싱글벙글, 사람 좋은 웃음을 하고 다녔다.
저번 시즌 마마전 결승, 속된 말로 망한 결승으로 강소주를 기울이던 그에게 한 줄기 빛, 아니 태양이 나타났다.
진 로열로더록.
개인리그 역사상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
그런 일은 본인의 손으로 만들어 낸 것에 감격하고 있었다.
누가 이기든 진 로열로더가 나온다.
그게 양대 진 로열로더가 될지 또 하나의 진 로열로더가 될지는 지켜봐야 알 일이다.
***
“두 번째 결승전 기분이 어때?”
“기분이요? 생각보다 편안하네요.”
“벌써 적응된 거야? 대단한데?”
“그래도 한 번 우승해 봤으니까요.”
“짜식.”
일주일 전과 사뭇 다른 모습.
난 감독님과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마음 역시 한결 편안했다.
우승을 하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더니.
정말이었다.
물론 이것이 자만으로 이어지면 안 된다는 걸 난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추락한 선수들을 몇 봐 왔거든. 절대 그렇게 안일하게 살지는 않을 것이다.
연습도 꼬박꼬박할 거고, 어디 싸돌아다니지도 않을 거고.
“컨디션은 어때?”
“끝내줍니다.”
감독님을 향해 엄지를 지켜 세웠다.
정말 컨디션은 좋았다.
잠도 잘 잤고 식사도 잘했다.
불과 일주일 전, OSL 결승전만 하더라도 걱정에 밤잠 설치고 제대로 식사도 하지 못했다. 그래도 아예 굶을 순 없어 소화가 잘되는 죽을 먹고 결승 경기장으로 갔었다.
그때와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을 이뤘다.
아까 들어오는 길에 만난 가족들과 손 인사도 나눴다.
내가 한결 편해진 만큼 엄마와 동생의 얼굴도 편안해 보였다.
어쨌든 오늘 매우 좋다.
굿이다, 굿.
이렇게 된 데엔 멘탈 능력치 상승이 컸다.
평균 수치가 70에 달할 정도로 크게 높아졌다.
프로리그 경기보다 개인리그에서 훨씬 큰 폭으로 상승했다.
8강에서 4강에 올랐을 때보다 4강에서 결승에 올랐을 때가 더 스탯이 많이 상승했고. 이보다 결승에서 우승했을 때 훨씬 더 많은 스탯이 올랐다.
그 결과 지금은 생산력이나 수비, 밸런스, 시야보다 오히려 멘탈이 높은 기이하다면 기이한 상황에 처해있었다.
지금이야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처음 상태창을 봤을 때가 생각난다.
정말 처참한 멘탈 능력치가 나를 반겼지.
육감이 5였던가?
판단력도 10이었던 것 같다.
얼마나 그때 받은 충격이 크면 그 수치를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을까?
현재 육감은 65고 판단력은 71이다.
두 달 사이 많은 발전이 있었군.
“자신은 있어?”
“어느 정도는요. 준비한 대로 하면 무난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솔직히 이영우 전보다 훨씬 낫다.
마수가 무얼할지 모른다는 것이 용족의 가장 큰 걱정거리다.
하지만 난 그걸 완벽히 해결할 수 있다.
바로 [날빌러]로.
마수가 올인을 하는지 안 하는지만 알아도 반은 먹고 들어가는 것이다.
내가 먼저 뭘 준비한다기보단 역 카운터로 끝낼 생각이다.
올인을 한다면 완벽한 방어로.
배짱부리는 플레이를 한다면 그 배를 찢는 식으로 말이다.
마수의 운영을 크게 세 분류로 나눌 수 있다.
이제운의 공격적인 운영.
김연훈의 안정적인 운영.
김윤호의 변칙적인 운영.
물론 이제운은 안정적인 운영과 변칙적인 운영도 잘해 내기에 윈탑이라 불리지만 굳이 색을 나누자면 공격적인 쪽에 가까웠다.
데뷔할 때도 투신 박성주와 줄곧 비교되었으니까.
형규도 자신의 옷을 찾기 위해 다양한 스타일의 경기를 펼쳤다.
프로리그, 개인리그 가리지 않고 말이다. 공격적인 운영도 했고 안정적인 운영도 선보였다.
빈도가 적긴 하지만 변칙적인 운영을 한 적도 있다.
숱한 시도 끝에 형규는 본인에게 잘 맞는 옷을 찾았다.
공격적인 운영.
형규는 리틀 이제운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공격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이제운처럼 마마전의 승률이 가장 뛰어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용족전에서도 김연훈처럼 타 스타팅을 먹는 6소굴 운영보다 일명 옆구리, 중립 확장 지역을 가져가는 5소굴 그슨대 운영을 즐겨 사용했다.
[날빌러]를 가지고 있는 입장에서 가장 상대하기 편한 스타일이다.
진화장과 소굴로 입구를 막고 뒤에 가시촉수를 깔며 군락 이후를 대비하는 마수에겐 [날빌러]가 큰 효과가 없었으니까.
“이승우 선수 입장 준비해 주세요!”
그사이 축하 공연이 다 끝났나 보다.
이번에도 걸그룹이 축하 공연을 했다고 했다. 학창 시절부터 신들의 전쟁만 하느라 가수엔 일절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예쁘구나 정도?
긴 팔다리로 저렇게 춤을 추는 것도 신기하고 저런 격렬한 춤을 추는 동시에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건 더 신기했다.
“감독님 그럼 저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오늘도 떨지 않고 잘해라!”
***
이승우와 임형규의 결승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이번 경기는 꽤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임형규 개인에게도 평생 한 번뿐인 진 로열로더를 하느냐 마느냐가 달려 있는 있음과 동시에 S1 입장에서도 반드시 이승우의 우승을 저지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보는 눈들이 그렇다.
실제로 S1 내부의 생각도 그렇고.
어쨌든 이승우는 S1에서 방출된 선수다.
방출된 선수가 양대 우승을 차지한다?
그것도 S1의 선수를 이기고?
그건 S1이 선수 보는 눈이 없다는 걸 만천하에 광고하는 꼴이 된다.
최강 S1의 자존심에 제대로 상처를 입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승우가 이렇게 잘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프로리그에서 헤드셋을 뒤집어쓰고 경기 하고, 몰수패를 당했던 선수인데.
S1입장에서도 나름 억울한 측면이 있었다.
아무도 들어주진 않겠지만.
그래서 MSL 결승대진이 완성된 후 임형규는 특훈에 들어갔다.
S1의 그 어떤 선수보다 특별 대접을 받으며 결승을 준비했다.
S1의 운영이 임형규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S1의 용족이 모두 나섰다.
김택윤은 물론 도재열까지.
임형규의 연습을 위해 두팔 걷고 나섰다.
임형규에게 얼마나 열과 성을 다했는지 그사이 프로리그에서 연패까지 할 정도였다.
그 정도로 S1은 임형규의 우승에 목을 메고 있었다.
이승우가 OSL을 우승하는 순간 더욱 더 집중 된 훈련을 받았다.
최연규도 매일 같이 새로운 전략을 들고 나왔다.
환국 출신 선수라 환국의 전략에 가장 능했지만 타 종족전 전략을 짜는 데에도 일가견이 있는 최연규였다.
보완할 것이 있으면 보완하고 단점이 뚜렷하게 보이면 바로 폐기처분했다.
적어도 지금만큼은 임형규의 S1의 중심이었다.
임형규도 스펀지처럼 모든 걸 쭉쭉 흡수했다.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느는 것이 보였다. 주운 감독도 만족스런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릴 정도였다.
이승우가 자신 있는 만큼 S1과 임형규의 자신감도 충만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