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87 Game No. 187편 진 로열로더. =========================================================================
Game No. 187편
-GG!!! GG가 나왔습니다! 40분간의 대 혈투 끝에 5세트에서 승리를 차지하는 이승우입니다!
-명경기입니다. 정말 명경기가 나왔어요. 3세트가 끝난 후 무너질 수도 있었는데 이승우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끝끝내 4세트를 승리로 만들어 내더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정말 각본 없는 드라마네요. 일부러 각본을 짜도 이렇게는 못할 것 같습니다!
-보통 영웅은 시련을 거치면서 강해지지 않습니까? 이승우 선수가 딱 그런 모습을 보여 줍니다. 2, 3세트 패배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었던 거예요. 왜? 자신을 믿으니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있으니까!
-왕도를 걷는 자가 이렇게 나옵니다. 왕도에서! 이승우 선수가 자신이 새로운 왕임을 선포하는 순간입니다.
-이렇게 잘 쓰는 천왕랑을 왜 이리 꼭꼭 숨겨 왔단 말입니까? 정말 천왕랑 운영에 도가 튼 모습입니다.
천왕랑 이야기는 빠뜨리지 않는 김태영 해설이었다.
오늘 보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천왕랑을 본 것만으로 기쁜 모양이었다.
웃음이 입가에서 떠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가 응원하는 용족이 우승을 차지했다는 것이 컸다.
그동안 용족 우승자를 얼마나 바랐던가.
김택윤이나 송병호 둘에게만 기대를 걸었던 김태영 해설이었다.
이렇게 신예가 우승을 차지할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더 기뻤다.
새로운 용족 강자가 등장했다는 뜻이었으니까.
-결승전에서 쓰기 위해 아껴 둔 모양입니다. 그것보다 진 로열로더입니다. 진 로열로더! 이제운 이후로 맥이 끊겼던 진 로열로더가 탄생했습니다.
진 로열로더.
입에 담는 것만으로 심장이 터질 듯 쿵쾅거리는 업적.
첫 예선 진출에 결승, 그리고 우승까지 차지한 선수에게 주어지는 영광스러운 호칭.
그 호칭의 주인공이 오랜만에 나타났다.
이승우.
올해 초까지만 해도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이름이다.
프로리그 3라운드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승드셋과 몰수패라는 괴기한 별명으로 불렸던 선수다.
두 달이 흐른 지금.
그 선수는 삼족오라는 수식어와 함께 화려하게 날아올랐다.
어떠한 용족 선수보다 뛰어난 경기력과 성적을 냈다.
이런 이승우에게 또 수식어가 붙었다.
2015 OSL 시즌 2 우승자와 2015 OSL 시즌 3 1번 시드.
신들의 전쟁 리그가 없어지는 그날까지 드림 스튜디오 입구에 얼굴이 담긴 액자가 걸리게 되는 것이다.
-동시에 용족 우승자가 나왔습니다. 마지막 용족 우승자가 김택윤이거든요? 김택윤이 도대체 언제 적 김택윤입니까? 네? 심지어 그 우승도 같은 용족을 잡고 우승한 겁니다. 용족이 아닌 다른 종족을 잡고 우승한 걸 찾으면 훨씬 더 뒤로 가야 합니다! 그 후 수많은 용족 선수들이 우승에 도전했지만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준우승을 차지하는 것이 다였습니다! 모두들 용족은 안 된다고 했습니다. 모두가 안 된다고 할 때 된다고 외치는 선수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게 바로 이승우입니다. 그 선수가 오늘 우승을 차지합니다!
-이제 누가 이 선수를 놀립니까? 아무도 못 놀립니다! 우승한 용족 선수가 없거든요! 적어도 올해 기점에선 최고의 커리어를 만들어 내는 선수가 이승우 선수입니다. 올해 가장 잘하는 용족을 뽑는다면 누구나 이 선수를 뽑을 수밖에 없습니다!
중계진의 외침이 경기장 가득 퍼져 나갔다.
***
몸이 들썩이려는 걸 억지로 참았다.
마지막 전투의 결과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었다.
이길 필요는 없다.
둘 다 전멸하면 당연히 이기고 소수의 병력만 살아남게 해도 내가 이긴다.
난 아직 자원과 생산시설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정말 가진 모든 걸 쏟아부었다.
이렇게 집중해서 컨트롤 하는 건 처음인 듯했다.
유닛 하나하나가 말을 걸고 있는 것 같았다.
나를 이렇게 해 달라고.
난 이렇게 써 달라고.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한 외침이었다.
난 그저 그들이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그것이 다였다.
그 덕분이었을까?
마지막 전투마저 승리했다.
지상병력은 다 잡혔지만 아직 천왕랑이 남아 있었다.
5기.
엄청난 수는 아니었지만 지금 경기를 끝내기엔 충분한 수였다.
이미 이영우의 화통도감은 전부 날아갔다.
화통도감뿐만 아니라 본진 자체가 페허가 되었다.
남아 있는 것이 전혀 없었다.
아무리 이영우라도 지금 상황에서 역전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
역전이란 무언가 남아 있어야 가능한 것이었으니까.
그렇단 이야기는?
이 경기는 내가 잡았다는 뜻이겠지.
동시에 이 승리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깨달았다.
‘우승이구나.’
알 수 없는 희열이 온몸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희열을 주체하지 못했다.
우승.
멀게만 느껴졌던 일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아니 현실이 되었다.
-이영우 : GG.
그 순간 이영우가 GG를 선언했다.
그걸 눈으로 확인한 순간 난 그대로 부스의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
이승우가 부스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화려한 조명과 함께 폭죽이 터졌다.
아스트로의 팀 색인 붉은색 폭죽이었다.
하늘을 가득 수놓는 폭죽은 그야말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화려한 폭죽을 배경 삼아 이승우가 걸어 나왔다.
“이승우! 이승우!”
“멋있다!”
“경기력 최고였다!”
장엄한 음악을 뚫고 우레와 같은 응원이 쏟아졌다.
모두 이승우의 이름을 외쳤다.
오늘의 주인공이었으니까.
-오늘의 우승자가 나오고 있습니다!
-전설이 이루어졌습니다!
-이영우를 상대로 역전 드라마를 써 냅니다!
-진짜 OSL 우승은 하늘이 내립니다. 정말 이승우. 대박! 더 할 말이 없습니다.
-높은 하늘의 상징 천왕랑으로 승리를 따냅니다. 가장 클래식한 운영으로 우승을 차지하는 이승우 선수입니다
-그렇죠! 용족이 환국을 잡으려면 천왕랑이 있어야 합니다. 천왕랑이!
-백만 용족 팬들의 간절한 기도가 기적을 만들어 낸 것 같습니다! 정말 너무도, 너무도 멋진 역전승입니다.
-여러분. 다시 한번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2015 OSL 시즌2 영광의 우승은! 신도 아닌! 폭군도 아닌! 택뱅도 아닌 이승우 선수가 차지했습니다!
아직 이영우는 아쉬운지 부스를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마지막 5세트 리플레이를 확인하고 있는 것 같았다.
결국 이정훈 감독이 들어가 이영우를 다독이며 데리고 나왔다.
화려한 무대로 향한 이승우와 달리 이영우가 향한 곳은 무대 뒤편의 작은 계단이었다.
그 누구도 이영우를 바라보지 않았다.
이미 관중의 시선은 오로지 이승우에게 쏠려 있었다.
이것이 현실이었다.
아무리 신이라 불리는 이영우지만 오늘은 패자였다. 쓸쓸히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이승우! 이승우!”
가장 먼저 아스트로의 팀원들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이승우를 향해 샴페인을 뿌려댔다. 이승우도 샴페인 세례를 피하지 않았다. 그저 웃으며 맞고 있을 뿐이었다.
금세 온몸이 샴페인으로 젖었다.
곧바로 다음 이벤트가 이어졌다.
“야. 잡아.”
“다리, 다리. 안 넘어지게 조심히!”
아스트로 선수들이 이승우를 들어 올리더니 그대로 헹가래를 했다.
횟수가 거듭될수록 이승우의 몸이 높게 솟았다.
“축하한다!”
“멋있다!”
“승우야. 한 턱 쏴! 난 한우 좋아한다!”
다양한 방식의 축하가 이어졌다.
이윽고 땅에 내려온 이승우가 향한 곳은 인터뷰를 기다리는 전현석 캐스터가 아닌 VIP석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의 어머니가 있는 곳이었다.
***
부스에서 나온 순간 정신이 없었다.
샴페인 범벅이 되고 곧바로 공중으로 들어 올려졌다.
잠깐. 이것도 좋지만 해야 할 것이 있다고!
우승을 한다면 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세리머니.
그것도 가족을 향한 세리머니.
아까부터 엄마가 있는 곳을 거듭 확인했다.
바닥에 내려온 난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중간에 계단을 헛디뎌 넘어질 뻔했지만 간신히 균형을 잡았다.
고개를 들어보니 엄마가 보였다.
나만큼, 아니 나보다 더 기뻐하고 있다는 것이 보였다.
엄마. 제가 해냈어요.
우승 했다고요!
그대로 큰절을 하고 엄마를 힘껏 안았다.
-헹가래에 방향 감각을 잃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어머니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합니다!
일단은 여기까지.
자세한 이야기는 시상식이 끝난 후 할 것이다.
난 그대로 뛰어서 무대 위로 올라갔다.
-자. 오늘의 우승자 이승우 선수를 뜨거운 박수로 맞이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졌다.
나도 모르게 깜짝 놀라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이렇게 큰 소리를 들은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영광의 우승자 이승우 선수와 한 말씀 나눠 보겠습니다. 새로운 전설이 태어났습니다! 진 로열로더! 일단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본인이 우승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셨습니까?
“처음부터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4강에서 김택윤 선수를 이긴 후 우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MSL 4강에서 이제운 선수를 이겼을 때 우승을 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습니다.”
사실이다.
이렇게 2경기를 하고 버프를 얻었으니까.
-16강에서 2패로 탈락 위기에 처했었던 적이 있거든요? 그때 흔들리지는 않았습니까? 특히 김윤호 선수와의 경기는 유리했던 경기를 역전패 당한 거라 슬럼프가 올 수도 있었거든요?
다시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다.
위기였다.
마지막 날 [어머니의 은혜]가 없었다면 내가 16강을 통과할 수 있었을까?
재경기는 갈 수 있었을까?
“솔직히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날 엄마가 직관을 와 주셔서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그때가 좋은 경험이 되어 4강에서 2패를 당했을 때 빠르게 털고 일어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에게 큰절 올릴 만하네요! 자. 그럼 좋은 이야기로 돌아와서 우승한 기분이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날아갈 것처럼 좋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사랑하는 가족들 앞에서 우승을 차지해서 너무 좋습니다. 사랑합니다!”
VIP석에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엄마와 동생이 보였다.
나도 작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아까 어머니에게 다가가 큰절을 하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솔직히 프로게이머가 된 지 7년째가 돼 가는데 그간 아무 것도 보여 주지 못한 것이 속상했습니다. 그때마다 괜찮다고. 잘될 거라고 다독여 주신 엄마와 동생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저에게 가족이 없었다면 이렇게 버티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이 저한테까지 제대로 느껴지네요. 본인이 어떤 기록을 만들었는지 알고 계십니까?
“잘 알고 있습니다.”
-로열로더입니다. 그것도 진 로열로더! 앞으로 어깨가 무겁습니다. 지금 현역으로 활동하는 용족 중 로열로더를 차지한 선수가 김택윤 선수 밖에 없거든요? OSL로 한정 짓자면 이승우 선수 한 명밖에 없는 겁니다! 유일무이한 존재가 된 기분 어떻습니까?
“정말 힘들게 결승까지와 우승을 해서 많이 감격스럽습니다. 이번 우승이 운이 아니라 실력으로 했다는 것을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다음 시즌, 그다음 시즌에도 좋은 성적을 거둬 그저 반짝이는 선수가 아닌 오랜 시간 강자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만감이 교차한다는 건 이럴 때 쓰는 말이겠지?
기뻤지만 서러움이 순간 복받치기도 했다.
-자. 그럼 마지막 질문. 가벼운 질문이니 꼭 대답을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번 우승으로 상금 1억을 받았거든요? 뭐 세금 문제가 있긴 하지만 일단 그건 뒤로 제쳐 두고. 이 1억! 어떻게 사용하실 겁니까?
이미 생각해 둔 바가 있다.
7년 전부터 지금까지 이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가족을 위해 쓸 생각입니다.”
-역시 가족을 생각하는 이승우 선수였습니다. 여기서 인터뷰를 마무리 짓고 곧바로 시상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이영우 선수도 무대로 자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
어느새 시상식이 끝나가고 있었다.
준우승을 차지한 이영우가 시상을 마치고 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이제 마지막 이벤트만이 남아 있다.
시상식에서 가장 중요한 이벤트이기도 했다.
화룡점정이라고 해야 할까?
이걸 하기 위해서 우승하고 싶어 하는 선수가 있을 정도였다.
-이승우 선수 무대 중앙으로 서 주시기 바랍니다.
옷을 갈아입은 난 전현석 캐스터님의 말에 따라 무대 중앙에 섰다.
그 순간 무대가 암전 되었다.
그리고 중앙 화면을 통해 16강부터 4강까지 내가 했던 경기가 하이라이트로 편집되어 나오고 있었다.
영상이 끝나고 다시 조명이 들어왔다.
아까 전보다 훨씬 화려한 조명이었다.
-2015! OSL! 시즌2! 우승자! 이! 승! 우!
전현석 캐스터님의 외침과 함께 가운데 난 길을 향해 걸었다.
조명으로 환하게 비춰져 있어 그 어느 길보다 밝은 길이었다.
이 길의 끝에 트로피가 있었다.
천천히 트로피를 향해 걸었다.
지금 이 순간은 이 넓은 결승 경기장에 나 홀로 있는 것 같았다.
트로피가 점점 가까워졌다.
어느새 손에 뻗으면 닿을 정도의 거리가 되었다.
잠시 트로피를 바라보았다.
이걸 얻기까지 수많은 일이 있었다.
심호흡을 한 난 바로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팟팟.
그 순간 우리 팀의 색인 붉은색과 검은색의 종이 꽃가루가 터지며 무대를 화려하게 수놓기 시작했다.
꿈만 같은 시간이었다.
들어 올린 트로피에 입을 맞추는 순간.
[업적이 생성되었습니다.]
[진 로열로더.]
[역대 여섯 번째 진 로열로더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영광의 나날이 함께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