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84 Game No. 184 마지막 5세트. =========================================================================
Game No. 184
-양 선수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습니다. 마지막 세트까지 왔습니다.
-이제 단 한 경기면 우승자가 정해지는 거죠. 누가 우승해도 아쉽다는 말은 나오지 않을 뛰어난 경기력을 선보였습니다!
-여태까지 수많은 예측을 해 왔습니다. 이제 그런 건 모두 의미가 없습니다. 그저 양 선수의 집념만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짧으면 10분, 길면 1시간 이내에 모든 것이 끝나거든요? 긴 시간일 수도 있지만 굉장히 짧은 시간이기도 합니다. 이 시간에 승자가 패자가 나뉘고, 그 패자가 자신이 된다면 정말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잘해 왔는데! 양 선수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겁니다.
-이승우 선수 데뷔 초반만 하더라도 멘탈에 대한 지적이 계속 이어졌었거든요? 실제로 S1의 현직 코치들도 그러한 점 때문에 이승우 선수가 1군에 데뷔하지 못했다고 말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그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스트로에 들어온 후부터 달라진 모습을 보여 주고 있거든요? 누가 이 선수를 멘탈이 약하다고 했나요? 이승우는 멘탈이 전혀 약하지 않습니다!
엄재웅 해설의 외침은 거의 절규에 가까웠다.
신들의 전쟁을 얻은 후 많이 나아졌지만 사실 이승우는 멘탈이 약한 편이었다.
특히 신들의 전쟁에 있어선 더욱 더 그렇다.
S1에 있을 때 준수한 실력을 가졌음에도 데뷔하지 못한 이유는 다 여기에 있었다.
상대방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한다는 것.
기계적인 플레이는 곧잘 해냈지만 이 정도 수준으로 S1에서 용족 1군을 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만지면 바스러질 정도로 약한 멘탈을 가진 이승우가 프로게이머 생활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다.
가족.
가족이 없었다면 절대 버티지 못했을 거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가족은 이승우의 모든 것이 되었다.
악착같이 버틴 끝에 꿈에 그리던 결승에 올라왔다.
멘탈도, 실력도 모든 것이 더 좋아졌다.
이제 우승까진 한 걸음만이 남았을 뿐이다.
-지금 막 양 선수가 입장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누가 재촉한 것도 아닙니다. 당연히 시간제한 같은 건 없습니다. 얼마든지 준비할 시간을 줬습니다. 근데도 벌써 다 들어왔습니다. 그냥 양 선수 준비가 끝났답니다. 이 한 경기면 모든 것이 나뉘는데 이럴 수 있는 건가요?!
-정말 양 선수가 준비를 많이 해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불안한 마음이 들면 자신이 준비한 것도 다시 점검해 보고 그러는 게 당연하거든요? 하지만 양 선수는 내가 준비한 건 완벽해. 제대로 하기만 하면 무조건 이겨.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폭풍전야처럼 결승전 무대가 조용해졌다.
모두가 숨죽이고 마지막 세트가 시작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결승전이었다.
이제 그 결과가 나오기 직전이었다.
-자. 양 선수가 모두 준비되었으니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지 않겠습니다. 우승자를 결정짓는 마지막 5세트! 왕도! 과연 어느 선수가 왕도를 당당히 걸어 나올 수 있을지! 바로 5세트 전장으로 떠나!!!!!!!!!
“와아아아아아아!”
전현석 캐스터의 샤우팅이 터지는 순간 함성도 함께 터졌다.
-보겠습니다!!!!
***
운명의 5세트가 시작되었다.
마지막이다.
이번 경기를 끝으로 결승전이 끝난다.
가지고 있는 모든 걸 쏟아 낼 것이다.
경기의 주인은 나라는 말이 뇌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일단 마지막 세트다 보니 신중하게 [날빌러]로 추천 빌드를 확인했다.
이영우는 이번에도 도감 더블을 하는 모양이다.
하긴. 무난하게 하면 지지 않는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을 테니까.
나 역시 마찬가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미 4세트에서 확인했다.
신중하게, 그리고 침착하게 전투를 펼친다면 지지 않는다고.
2세트 같은 경우 전장이 안 좋았다.
세로로 늘어져 동서 전쟁을 하는 양상이었다면 환국이 용족의 나가 공격을 막기 힘들었을 텐데 남북 전쟁, 그러니까 비교적 짧은 동선이 형성되어 천룡의 부름을 막기 수월해졌다.
그것만 아니었다면 분명 피해를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아마 이영우는 나가나 흑완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할 것이다.
마지막 5세트는 한 번 꼬을 작정이었다.
***
-이번 세트에서도 이승우 선수 과감한 선택을 합니다. 또 생더블이죠?
-이영우 선수도 만만치 않은 선택을 했습니다만, 초반 빌드에 있어선 이승우 선수가 한 수 위네요.
-완전 강심장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살 떨리는 경기에서 생 더블을 선택할 수 있는지.
-그러니 여기까지 왔겠죠. 그런 선택이 이승우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 됩니다.
양 선수가 무난하게 앞마당을 가져가며 중, 후반 이후의 물량 싸움을 다시 한번 예고했다.
-어? 이번엔 이승우 선수 지룡 사원을 선택했습니다?
-지룡을 쓸 생각인 모양이죠?
-의외입니다. 지룡이라니. 잘못 올린 게 아닙니다.
-이 선수가 지룡을 쓰는 모습이 잘 상상이 가지 않네요. 그동안 지룡보다 제단 유닛으로 환국의 진출을 막는 모습을 많이 보여 줬거든요?
-확실히 결승전 5세트이다 보니 본인이 보여 주지 못했던 모습을 보여 주며 상대방을 당황하게 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정말 신중하게 결정해야 합니다.
양날의 검이다.
새로운 전략으로 상대를 당황하게 만들 수 있지만 오히려 손에 익지 않은 칼을 사용하여 자신의 손을 베는 꼴이 될 수도 있다.
이승우의 선택이 좋게 작용할지 나쁘게 작용할지는 조금 지켜봐야 했다.
하나 확실한 건 그동안 했던 경기 운영에 변화를 꾀했다는 점이다.
-이거 통할 수도 있습니다. 이영우 선수 계속 지룡은 배제하면서 플레이 했거든요? 갑작스럽게 지룡이 날아오면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이승우 선수 아예 제대로 준비를 하네요. 운룡의 속도 업까지 할 생각이죠?
-이러면 무조건 피해를 줘야 합니다. 그냥 살려 두는 것만으로 이득이 아니에요.
보통 지룡의 역할은 하나다.
일꾼이나 천자총통을 잡으면 좋지만 죽지 않고 무사히 환국의 본진을 빠져나오는 것.
화차가 빠져나가는 걸 견제할 수도 있고 환국이 타이밍을 잡고 나오는 걸 늦출 수 있다.
절대 나오지 말아야 할 상황이 허무하게 지룡을 잡히는 것이다.
그 순간 환국은 타이밍을 잡는다.
지룡에 큰 힘을 쏟은 터라 용족은 환국의 진출을 방해 할 병력이 부족하다.
-마지막 세트에 천왕랑 쓸 생각인 것 같죠?
김태영 해설의 목소리가 살짝 높아졌다.
그 목소리에서 기대감이 언뜻 묻어 나왔다.
천왕랑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흥분 상태에 빠져든 것이다.
그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천왕랑이 나와야 합니다. 천왕랑만이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사실 그는 오늘 천왕랑을 볼 거라 전혀 생각지 않았다.
이승우의 운영 특성 상 천왕랑을 가지 않을 것 같았으니까.
여태까지 이승우가 천왕랑을 방송 경기에서 적극 활용한 적은 없었따.
실제로 1~4세트 내내 천왕랑의 천자로 보이지 않았다.
근데 지금은 느낌이 다르다.
물론 지룡 견제 후 나가를 갈 수도 있지만 그보다 천왕랑이 더 자연스러운 연결이었다.
-역시 용족은 천왕랑이 있어 줘야 합니다. 지금 상황에서 이승우 선수를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유닛은 천왕랑입니다! 이영우 선수 머릿속에 이승우의 천왕랑은 전혀 들어 있지 않거든요!
아직 천왕랑의회가 지어진 것도 아닌데 김태영 해설은 벌써부터 천왕랑이 나오는 걸 확정 짓고 있었다.
그 모습에 전현석 캐스터와 엄재웅 해설이 웃음을 참지 못했다.
-김태영 해설위원께서는 미래가 보이시나 봅니다?
-네? 그게 무슨?
순진한 김태영 해설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갸우뚱 하는 사이.
-자. 운룡에 지룡 태우고 이동하죠! 운룡 속업 되었습니다. 제대로 견제를 주겠다는 겁니다. 과연 이번 견제에서 어떤 피해를 줄 수 있을지!
이승우의 희망을 실은 운룡이 이영우의 본진을 향해 날아갔다.
***
운룡이 이영우의 본진에 도달한 순간 바로 [투신]을 사용했다.
아낄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더 이상 치를 경기도 없다.
이 경기에 모든 체력을 쏟아부으면 그만이었다.
[투신]이 사용됨과 동시에 손이 가벼워진 걸 느낀다.
매처럼 날카로운 눈으로 빈 공간을 찾았다.
다행히 화살탑은 없었다.
이영우가 지룡을 배제한 것이다.
대장간을 짓는 대신 화통도감을 늘린 이영우.
지금 이 타이밍에 2화통이라는 건 풍운청도 올리지 않았다는 소리.
풍혼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 어디에도 이영우의 지대공 유닛이 보이지 않았다.
기껏해야 궁병 몇 기가 다였는데 속업 운룡으로 궁병을 피하는 건, 식은 죽 먹기나 마찬가지였다.
적어도 신기전이 생산될 때까진 내 세상이었다.
본진 철광 근처에 지룡을 내리는 순간 일꾼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펑.
듣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소리와 함께 일꾼 3~4기가 토정에 폭사했다.
엄청난 대박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충분히 만족할 만한 성과였다.
아예 불발이 나는 경우도 많았으니까.
토정을 발사한 지룡을 곧바로 운룡에 태웠다.
한곳에 오래 있어 봤자 소용없다.
아직 [투신]의 효과가 남아 있는 상태.
피해를 줄 수 있을 때 더 줘야 한다. 운룡의 시야에 궁병이 먼저 오는 것이 보였다.
그냥 지나갈 수 없지.
바로 지룡을 내려 앞선 궁병을 2기 끊었다.
이제 남은 궁병은 2기.
이미 화포연구소가 있는 걸로 보아 신기전이 나오려면 머지않았다.
보통 다른 선수라면 이때 지룡을 빼겠지?
그것이 정상이겠지?
난 전혀 뺄 생각이 없다.
확실한 승리를 위해서 이영우를 더 흔들어 놓을 작정이었다.
‘[투신] 사용.’
[투신]의 효과가 떨어짐과 동시에 또다시 [투신]을 사용했다.
겨우 1기의 지룡인데 과한 스킬 남발 아니냐고?
전혀 아니다.
두 번째 운룡이 이영우의 앞마당에 도착했으니까.
***
-어? 잠시만요? 이영우 선수 앞마당 쪽에 뭐죠?
-이야!!! 한 기의 운룡을 더 찍었어요!
-이승우 선수의 트레이드 마크죠! 동시 2운룡!
-어차피 속업 한 이상 제대로 뽕을 뽑겠다 이겁니다.
-신기전이 곧 나옴에도 운룡을 빼지 않고 적극적으로 써주는 이유가 있었네요!
화끈한 이승우의 선택.
운룡과 지룡을 1기씩 더 찍어 견제를 들어온 것이다.
실로 과감한 전략이었다.
이영우를 상대로 멀티태스킹 싸움을 걸고 있었으니까.
그만큼 컨트롤에 자신이 있다는 것이었다.
화면에 잡힌 이영우가 어깨를 한번 들썩였다.
당황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본진과 앞마당! 동시 2기의 운룡을 컨트롤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혁명입니다, 혁명. 과거 이제운 선수가 동시 2부대 닷발귀 컨트롤을 보여 준 적이 있거든요? 그때를 다시 보는 것 같습니다!
아직 이영우에겐 본진과 앞마당을 동시에 막을 병력이 부족하다.
과감하게 대장간을 생략했기에 더욱 더 그렇다.
관측소를 빨리 달고 신기전을 뽑은 것도 흑완 드랍을 예상한 것이었지 지룡 드랍을 예상해서 한 것이 아니었다.
사실 왕도에서 지룡-천왕랑으로 이어지는 콤보를 선보이는 용족이 많았다.
전장 자체가 언덕이 많아 견제를 하기 쉬웠으니까.
하지만 이영우는 배제했다.
이승우가 그런 플레이를 전혀 하지 않았으니까.
만약 이영우가 지룡 드랍을 생각하고 있었다면 아예 안티 천왕랑 체계로 갔을 것이다.
빠르게 신기전을 확보해서 아예 운룡에서 지룡이 내리지도 못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제대로 허를 찔렸다.
피해가 점점 누적되고 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홍길동이 따로 없었다.
본진 철광 근처에 내려서 일꾼에 한 방.
앞마당 철광 근처에 내려서 일꾼에 한 방.
뒤늦게 따라오는 신기전을 향해 한 방.
따로 떨어진 천자총통을 향해 한 방.
신출귀몰한 움직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