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77 Game No. 177 OSL 결승. =========================================================================
Game No. 177
상황 자체는 그 어느 때보다 좋다.
양대 결승 진출을 하면서 얻은 스탯 포인트와 스킬 포인트가 어마어마하다.
새로운 스킬도 몇 개 생겼고 버프 역시 든든히 나를 지켜 주고 있다.
무엇보다 체력이 30% 늘었다는 점이 크다.
100%의 체력으로 이영우를 오전제에서 상대한다는 건 무리가 있었다.
지금보다 더 전략을 짜는 데 집중했을지도 모른다.
“잘할 수 있겠죠?”
“당연하지. 더 잘하려고 노력할 필요 없다. 그냥 지금처럼 하면 된다. 지금처럼만.”
감독님과 대화를 계속 나눴다.
10분, 20분 시간이 지날수록 감정이 안정되는 걸 느꼈다.
울렁대던 것이 서서히 진정되었다.
전부터 느낀 것이지만 감독님은 상대방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능력을 지녔다.
감독과 이렇게 허물없이 대화를 할 수 있는 팀은 별로 없다.
아무리 친하다하더라도 위치에 따른 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재명 감독님은 예외였다.
감독님이라는 생각보다 주장이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나쁜 뜻이 아니다.
조금 더 친근감이 느껴진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아무런 부담 없이 정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었다.
그 점이 너무 좋았다.
혼자 가지고 있을 땐 너무나 무거운 짐이었는데 그걸 나누니 혼자서도 충분히 짊어질 수 있는 무게가 되었다.
천막을 살짝 걷어 밖을 바라보았다.
아직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관계자들만이 최종점검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관객들의 입장은 1시간 후에 시작된다.
그때 VIP석에 있는 팀원들과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할 수 있는 가장 큰 동작으로 팔을 휘젓는 팀원들.
그들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래. 난 혼자가 아니다.
하나의 팀에 속한 구성원이었고 모든 팀원이 나를 위해 힘을 보내 주고 있다.
그거면 되었다.
아직 엄마와 동생은 도착하지 않았지만 별로 초조하진 않았다.
결승전의 시작이 2시간 후라는 것이지 경기 시작이 2시간 후라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본격적으로 경기가 펼쳐지기 전 축하 공연과 이벤트 시간을 가진다.
이벤트 중 백미는 상품 추첨이었다.
시즌마다 물품이 조금씩 바뀌지만 대부분 굉장히 좋은 것들로 채워 넣는다.
저번 시즌은 자동차였고 이번 시즌은 해외 여행권이었다.
정확히 듣진 못했지만 유럽 쪽 관련 패키지라고 들은 것 같다.
유료로 진행하는 만큼 팬들에게 돌려주는 것도 화끈했다.
추첨 방식은 간단하다.
본인의 좌석표만 가지고 있으면 된다. 그 좌석표가 곧 추첨 번호다.
그리고 당첨자가 발표 될 때 중앙 화면을 주시하면 된다.
그게 끝이다.
“컨디션은 어때?”
“컨디션은 괜찮아요.”
“그럼 다행이군. 직접 손으로 경기를 하는 건 가볍게 몸 푸는 정도만 하고 나머지 시간엔 경기 운영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더 좋을 거다.”
“저도 그렇게 하려구요.”
손을 푸는 건 좋지만 연습에 너무 열을 올려도 좋지 않다.
지나친 연습은 오히려 악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그럼 휴식 취하고, 난 잠깐 나갔다 오마.”
“네! 다녀오세요,”
****
이재명 감독이 이승우의 대기실에서 나왔다.
홀로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시간을 주려는 것이었다.
이미 전해야 할 말은 모두 전했다.
반복해서 전하는 건 오히려 선수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 있었다.
밖으로 나온 이재명 감독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크게 심호흡을 했다.
티를 내지 않았지만 그도 이승우처럼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
선수 앞에서 긴장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선수가 더 크게 동요할 수 있다.
그래서 애써 참았다.
평소와 같은 모습을 보이려 무던히 애썼다.
다행히 날씨는 좋다.
비가 쏟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 덥지도 않았고 습도도 높지 않았다.
7월 말이라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우리 팀에서 정말 결승 진출자가 나왔구나.’
처음 예선장에서 이승우를 보는 순간 감이 왔다.
최고의 선수가 될 거라고.
그런데 이렇게 빠르게 성장할 줄은 몰랐다.
하루하루 경기력이 느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무언가를 알려 주면 바로 습득한다. 습득하는 걸 넘어 오히려 발전시키기까지 했다.
이런 재능이 S1에선 왜 발휘되지 않았을까 의문이 들었을 정도였다.
정확한 사정은 알지 못하겠지만 대충 추측하건데 아마 긴장을 심하게 하는 타입이 아닐까 싶었다.
편안하게 해 주면 본인의 실력을 보여주는데 주변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본인이 가지고 있는 것의 절반도 채 선보이지 못하는 유형.
그렇다면 S1은 실수한 거다.
이런 원석을 놓치다니.
이재명 감독이 거대한 애드벌룬에 띄워져 있는 이승우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이번 경기가 고비 아닌 고비다.
오늘 이영우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다면 양대 진 로열로더를 차지할 확률을 9할 이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말이 9할이지 거의 확신한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재명 감독이 보는 승부처는 1세트였다.
이제운 전처럼 1세트에 과감한 전략을 준비해 왔다.
이 전략이 통한다면 3:0까지 가능할지도 몰랐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이미 한 번 당한 바가 있기에 정말 꼼꼼하게 정찰을 할 것이다.
이승우의 연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조금이라도 어색함이 드러난다면 이영우는 금세 눈치를 챌 거다.
결코 같은 전략에 2번 당하지 않는 선수였으니까.
****
시간은 참 빠르게 흘렀다.
어느새 관객들의 입장이 시작되었다.
이제 10분이 막 지났음에도 벌써부터 경기장의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평소 경기장보다 10배 이상은 큰 무대.
관중 수는 10배가 아니라 20배가 훨씬 넘는 숫자다.
아직 반도 입장하지 않았을 텐데 웅성거림이 다르다.
수십만 마리의 벌 떼가 날갯짓을 하는 것처럼 경기장 전체를 진동시키고 있었다.
묵직한 진동.
이래서 결승전에서 긴장을 하고 제 경기력이 나오지 않는 선수들이 있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사이 엄마에게도 연락이 왔다.
30분 후면 도착할 거라고.
굳이 마중을 나갈 필요는 없었다.
VIP석이기 때문에 다른 통로를 통해 입장하기 때문이었다.
어느덧 모든 선수가 입장하고 결승전이 시작되었다.
이미 가족들에게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기에 마음은 편안했다.
****
이승우와 결승을 치르는 이영우 역시 이른 시간에 경기장에 도착해 있었다.
9번째 결승전이면서도 매 결승전마다 느낌이 다르다.
많은 이들이 이승우의 진 로열로더에 집중하고 있지만 이영우도 최초의 기록을 하나 노리고 있다.
바로 한 리그 최초 4회 우승.
양대 리그를 합쳐도 4회 이상 우승한 선수는 손꼽을 정도로 적다. 당연히 한 대회에서 4회 우승을 차지한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최고 기록은 3회.
OSL의 골든 마우스와 MSL의 골든 배지를 지니고 있는 이들이다.
골든 마우스와 골든 배지를 모두 가지고 있는 이는 2명.
그중 1명은 은퇴했고 현역은 이영우 뿐이다.
OSL 기준으로 4회 우승에 도전장을 내밀 수 있는 선수는 냉정하게 말해 리쌍 둘밖에 없다.
MSL의 골든 배지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리쌍에 김택윤이 추가될 뿐이다.
이제운은 2회 우승이지만 언제든 우승 후보이니 들어간 것 이다.
4회 우승은 많은 걸 의미한다.
4회 자체도 최초지만 달성하는 즉시 유일무이한 플래티넘 마우스 도전자가 되기 때문이다.
OSL 5회 우승을 하면 주어지는 플래티넘 마우스.
당연히 주인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골든 마우스를 차지하고 잠시 신들의 전쟁에 흥미를 잃은 적이 있었다.
이룬 걸 다 이뤘다는 허무함 때문이었다.
하지만 곧 그것이 자신의 착각이었음을 이영우는 깨달았다.
공동 최다 우승자가 되었지만 아직 플래티넘을 손에 넣지는 못했다.
더 나아가 다이아몬드까지 욕심이 났다.
다시 신들의 전쟁에 대한 열정이 불타올랐다.
마치 첫 우승을 차지했을 때처럼 열심히 연습했다.
그 결과 다시 한 번 결승에 올랐다.
“몸 상태는?”
“굉장히 좋아요. 경기를 하고 싶어 안달 날 지경이에요.”
이렇게 경기를 하고 싶었던 적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온몸의 피가 끓어올랐다.
“다행이네. 이승우 보통 아냐. 솔직히 16강 때만 해도 여기까지 올 줄 몰랐는데 그 후에 엄청 발전했어. 실력도 실력이지만 기세를 타고 있다는 게 무서워. 전에 김재만이랑 결승했던 거 기억나지?”
“당연히 기억나죠.”
이영우는 6번 우승하고 2번 준우승을 차지했다.
2번 준우승했을 때 상대는 공교롭게도 모두 마수였다.
한 명은 같은 리쌍의 이제운이었고 다른 한 명은 삼김마수의 김재만이었다.
당시 불사조란 별명을 지니고 있던 김재만은 패패승승승의 스코어로 이영우를 잡고 극적인 우승을 차지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반전의 순간이었다.
걸어온 길이 달랐다.
당시 이영우는 전승으로 결승에 진출한 상태였고 2세트가 끝나는 순간까지만 해도 전승 우승을 확정짓는 분위기였다. 반면 김재만은 16강에서 재재재재재경기 끝에 간신히 8강에 올랐고 8강, 4강에서 풀세트까지 가는 치열한 접전 끝에 간신히 결승에 올라온 상태였다.
반전은 3세트에서 일어났다.
5일꾼 마견 러시.
그때부터 이영우의 손이 꼬였고 4, 5세트를 연달아 내주며 골든 마우스의 영광을 뒤로 미뤄야만 했다.
이영우로선 결코 잊을 수 없는 경기였다.
“아픈 상처를 건드린 건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어쨌든 만반의 준비를 해야 돼.”
이영우가 웃었다.
“전혀 아프지 않아요. 저도 그때 일을 잘 기억하고 있어요. 그리고 용족한텐 언제나 자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이영우의 두 눈엔 자신감이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고 있었다.
****
6시 정각이 되는 순간 모든 무대의 조명이 꺼졌다.
동시에 중앙 화면에서 오프닝 영상이 흘러나왔다.
저번 주에 찍은 영상이다.
조지명식 영상이 처음이었듯 결승 오프닝 영상도 당연히 처음이었다.
그래도 처음 찍었을 때보단 안정적인 모습이다.
눈빛도 좋고 액션도 좋고.
겨우 두 번 촬영만에 이 정도면 재능 있는 거 아냐?
나 배우 해 볼까?
요즘 외모가 다가 아닌 시대니까.
신에게 도전하는 인간의 컨셉으로 촬영이 진행되었다. CG 없이 촬영했을 땐 조금 오글거렸는데 그래도 CG를 입히고 나니 조금 그럴싸하다.
마지막에 서로 부딪치는 장면이 끝남과 동시에 선수를 소개하는 문구가 떠올랐다.
이영우는 신이라 되어 있었고 나는 삼족오라고 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용족을 씹어 먹고 온 상황을 반영하고 싶었나 보다.
100% 마음에 드는 별명은 아니었지만 승드셋이나 몰수로더에 비하면 수십, 수백 배 나은 별명이다.
나름 그럴싸한 별명이지 않은가?
용을 주식으로 잡아먹는 새.
무려 엄재웅 해설 위원님께서 지어 준 별명이다.
하지만 이쪽보다 더 마음에 드는 건 MSL에서 밀고 있는 신룡이라는 별명이었다.
용중의 용.
용들의 신.
신룡(神龍).
S1에서 2군 생활을 할 때부터 육룡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언젠가 나도 저기에 이름을 넣고 싶다는 목표를 항상 지니고 살았다.
그 꿈이 이뤄지기 직전이었다.
이미 커뮤니티 분위기는 육룡을 칠룡으로 늘리거나 그게 아니면 육룡 중 한 명을 빼고 나를 대신 넣어야 한다는 쪽이었다.
한 명을 뺀다면 그 대상은 윤영태였다.
유일하게 결승 진출 경험이 없기 때문이었다.
조금 미안하긴 하군.
설사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래야 한다는 주장이 훨씬 많았다.
하긴. 애초에 육룡 중 우승을 차지한 선수는 단 2명뿐이다.
택뱅.
나머지는 준우승 혹은 4강에 머문 것이 최고 성적이다.
양대 리그 결승에 오른 육룡은 송병호 하나 뿐.
이미 양대 리그 준우승 이상을 확정지었기에 육룡에 들어갈 자격은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