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75 Game No. 175 최초의 기록. =========================================================================
Game No. 175
이스포츠가 15년이 넘게 유지되면서 각종 기록이 쏟아졌다.
더 이상 무슨 기록이 남아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그런데 오늘 15년 역사상 최초의 기록이 탄생했다.
이 기록이 아직 탄생하지 않았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 이런 선수가 나타날까 생각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첫 예선에 양대 결승 진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최초의 본좌인 임주혁도 하지 못했고 그 뒤의 본좌들도 하지 못했던 기록이다.
택뱅리쌍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각각 5, 6회 우승 기록을 지니고 있는 이영우와 이제운도 첫 시즌에 양대리그 결승에 가진 못했다.
이영우는 양대 결승은커녕 로열로더조차 하지 못했다.
워낙 선수들의 실력이 상향 평준화되어 있어 신들의 전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시뮬레이션 게임에서나 가능한 일이라 생각했다.
또한 운도 따라 줘야 했다.
이영우 같은 경우 첫 시즌 4강에 진출했지만 해당 시즌 우승자를 만나면서 탈락하고 말았다.
그런데 오늘 그 기록을 달성한 선수가 나왔다.
이승우.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선수다.
데뷔전에 헤드셋을 거꾸로 쓰는 우스꽝스러운 행동과 몰수패로 오히려 프로게이머의 자질을 의심받았던 선수.
그런 선수가 첫 예선에 양대 리그 결승에 진출했다.
만약, 정말 만약에 양대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한다면 양대 진 로열로더라는 소설 같은 기록을 수립하게 되는 것이다.
이미 이스포츠와 관련된 모든 곳이 난리가 났다.
새로 탄생한 스타에 대한 이야기를 폭포수처럼 쏟아 냈다.
올해 최고의 화젯거리였다.
이영우의 2연속 결승 진출도 이승우 앞에서 빛이 바랬다.
특히 이제운을 3:0으로 이긴 경기는 말 그대로 압권이었다.
전략적인 움직임으로 가볍게 1승을 따내더니 이제운의 공격을 막고 2연승을 거뒀다.
절정은 마지막 3세트였다.
날빌만 할 줄 아는 선수가 아니라는 걸 모두에게 알리 듯 뛰어난 전투력과 운영으로 이제운에게 승리를 거두는 데 성공했다.
6기의 지룡을 섞어 마수의 물량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전투가 예술이었다.
보통 후반 전투에서 지룡의 공격력을 십분 활용하기 힘들다.
비렴이나 다른 유닛을 컨트롤 해 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는 컨트롤, 일부는 자동 전투를 하게 두는데 그럴 경우 같은 적 유닛에게 토정을 발사해 지룡의 효율이 떨어지게 된다.
하지만 이승우는 그렇지 않았다.
지룡 6기가 각기 다른 마수의 병력을 노렸다. 공격력이 흩어지는 걸 방지한 것이다.
폭죽이 터지 듯 붉은 피를 토하며 터져나가는 마수의 병력들.
아무리 멀티를 많이 먹어도 화력에서 상대가 안 되었다.
회전력으로 용족의 병력을 죽여야 하는데 그게 되지 않으니 차츰 멀티를 내줄 수밖에 없었고 결국 경기마저 내주고 말았다.
고개를 푹 숙인 이제운은 아무 말 없이 부스를 빠져나갔다.
완벽한 패배였다.
이런 신기에 가까운 컨트롤을 할 수 있는 용족 선수가 누가 있을까?
생각나는 이가 거의 없다.
송병호?
김택윤?
이 둘이 전부다.
오늘 한 명이 추가되었다.
이승우.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 너무 부족하지 않냐고?
아니다.
그는 자격이 충분히 있다.
아직 우승을 차지하진 못했지만 역대 양대리그 결승에 동시에 올라간 용족 자체가 1명도 없다.
애초에 양대리그 우승을 차지한 용족이 강명 1명밖에 없을 정도다.
만약 이승우가 양대리그 우승을 차지한다면 육룡에 지각변동이 아주 크게 일어날 것이다.
어쩌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니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OSL은 재경기라는 굴곡을 거치며 결승에 올랐지만 MSL은 전승을 달성하며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정말 양대 우승을 할 기세였다.
아무리 결승 상대가 이영우라 해도 말이다.
뿐만 아니라 역대 공식전 최다 연승 기록도 깨졌다.
오늘 3연승으로 무려 17연승을 기록했다.
기존 기록보다 2연승이나 추가 된 기록이었다.
현재 기세를 보았을 땐 더욱 더 치고 나갈 수 있을 듯 보였다.
***
모든 경기가 끝났다.
결과는 3:0.
스코어로 보면 완벽한 승리였다.
이기긴 했지만 3세트는 정말 힘들었다.
스킬을 정말 아낌없이 사용했다.
[엄대엄]부터 시작해서 [투신]까지.
쓸 수 있는 스킬은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사용했다.
김택윤 전에서 많은 걸 느꼈다.
아끼면 똥 된다고.
[날빌러]도 초반뿐만 아니라 후반에도 사용해 주었다.
지룡을 섞은 것도 [날빌러]의 도움 덕이었다.
[날빌러]가 아니었다면 끝까지 지룡을 생각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이제운이 원하는 대로 경기 양상이 흘러갔을 테지.
마지막에 [날빌러]를 사용한 것이 오늘 최고의 선택이었다.
경기가 끝난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가족이었다.
묵묵히 날 응원해 주던 가족들.
언제나 내 편이 되어 주었던 가족들.
존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목이 메고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릴 것 같았다.
지금 울어선 안 된다.
아직 울 때가 아니다.
간신히 울음을 참았다.
그다음 감독님의 얼굴이 나타났다.
감독님이 아니었다면 결승에 진출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신들의 전쟁 매니저가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다전제에 어떤 마인드로 임해야 하는지, 그리고 과감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전략들을 함께 밤을 새며 만들어 주셨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 잊지 않을게요.
[버프가 생성되었습니다.]
[양대 결승 진출자의 위엄.]
[양대 결승 진출자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첫 예선 진출에 양대 결승 진출까지! 위엄이 콸콸콸.]
[효과 : 보름간 체력을 포함한 모든 능력치가 30% 상승합니다.]
그 순간이었다.
대박.
모든 능력치 30% 상승이라니!
비록 [결승 진출자의 위엄]이 사라졌지만 이번엔 체력까지 상승되니 훨씬 좋은 버프였다.
적용되는 기간도 사기다.
OSL, MSL 결승전에 모두 적용이 된다.
지금보다 30%가 높은 능력치는 진짜 사기다, 사기.
무려 80%의 체력을 사용할 수 있다.
5경기 내내 스킬을 때려 부어도 충분한 양이다.
[업적이 생성되었습니다.]
동시에 생성된 업적.
그래 이것도 나와야지!
아마 여기에도 앞에 양대가 붙겠지?
[양대 결승 진출]
[첫 예선 진출에 양대 결승에 진출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보상으로 스탯 포인트 50개와 스킬 포인트 7개가 주어집니다.]
흐흐흐.
역시 이제 척이면 척이다.
예상이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보상도 훨씬 좋다.
무려 50개의 스탯 포인트와 7개의 스킬 포인트라니.
도대체 레벨업 몇 번을 해야 얻을 수 있는 포인트인지 모르겠다.
혹시 스킬까지 주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이번엔 스킬은 생성되지 않았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
이 정도면 만족한다.
새로운 스킬은 생기지 않았지만 현재 지니고 있는 스킬을 MAX까지 올린다면 진화형 혹은 연계형 스킬이 새로 생성될 테니까.
자, 그럼 분배는 집에 가는 차에서 하고 이제 인터뷰를 하러 가 볼까?
***
“헐. 승우 형 양대리그 결승 진출했네?”
“진짜? 대박.”
눈치 없이 큰 소리로 떠들던 S1 2군 선수들이 코치들의 서슬 퍼런 눈빛에 자라처럼 목을 움츠렸다.
MSL 결승 진출자를 배출했음에도 S1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다 이승우 때문이었다.
사실 S1입장에선 억울할 일도 아니었다. 방출한 건 그들의 선택이었으니까.
하지만 주운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S1의 코치들이 모두 회의실로 들어갔다. 하나같이 표정이 심각했다. 주운 감독의 소집령이 떨어진 것이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다들 어떤 이유로 모이는지 아는 눈치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이가 있었다.
임형규였다.
눈빛이 굉장히 복잡했다.
우스갯소리처럼 했던 말이 현실이 되었다.
진 로열로더록.
누군가 1명은 진 로열로더라는 영광을 독차지하고 다른 하나는 그저 그런 준우승자가 되어 버린다.
첫 예선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것도 굉장한 일이지만 사람들은 2등을 기억하지 않는다.
오직 우승자만 기억할 뿐이다.
실제 선수들의 커리어를 나눌 때도 우승을 기준으로 선수들을 나눈다.
‘언제 이렇게까지 마수전을 잘하게 된 거지?’
1, 2 ,3세트 모두 경기를 보낸 내내 소름이 돋았다.
어떻게 이런 판단을 내릴 수 있지?
어떻게 이런 컨트롤을 할 수 있지?
어떻게 이런 전투를 할 수 있지?
물음이 바뀌었다.
나라면 막을 수 있었을까?
임형규는 쉽게 답을 할 수 없었다. 대답이 턱 끝에서 탁 막혀버렸다.
OSL 16강에서 맞붙었을 때보다 한층 더 발전한 것 같았다.
그 짧은 시간에 이리 빠르게 진화하다니.
순간 벽이 보였을 정도였다.
결승까지 남은 시간은 약 10일.
이대로 결승을 치렀다간 웃음거리가 될지도 몰랐다. 단순 연습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오늘 이승우가 보여 준 1세트처럼 날카로운 빌드가 필요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모든 회의가 끝났는지 S1의 코치들이 회의실에서 줄줄이 빠져나왔다.
짧은 시간임에도 얼굴엔 피곤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었다.
임형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코치님.”
“어? 왜?”
“상담을 좀 하고 싶습니다.”
임형규가 찾아간 코치는 빌드 깎는 코치 최연규였다.
***
인터뷰의 내용은 OSL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다만 이미 OSL 결승행을 확정 지은 상황이었기에, 전승으로 결승에 진출한 상황이었기에 나를 띄워 주는 내용이 훨씬 더 많았다.
형규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친한 사이로 알고 있는데 기분이 어떠냐고?
꾸밈없이 솔직히 대답했다.
정말 아끼는 동생인데 결승에서 만나게 돼서 기분이 좋다고.
좋은 승부를 벌이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거짓이 아니었다.
정말 기분이 좋았다.
가장 많은 연습 경기를 했던 형규와 결승에서 만나게 되었으니까.
이런 날이 올 줄 꿈에도 몰랐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그건 속으로 삼켰다.
뭐였냐고?
‘어차피 내가 이기겠지만’이었다.
친한 사이라서 예의를 지키려는 것이 아니다.
쓸데없는 도발로 상대를 불타오르게 만드는 건 사절이었다.
물론 자신감을 내비치는 것 정도는 보여 줬다.
그 정도는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상대해 온 선수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우승자 출신은 기본이고 역대 최고의 선수라 불리는 리쌍마저 꺾고 MSL 결승에 진출했다.
OSL에서 김택윤을 4강에서 꺾었으니 이번 시즌 양대 결승에 오르는 동안 택뱅리쌍 전부를 이긴 것이다.
이걸 정말 내가 한 거라고?
믿기지가 않네.
하루하루 이길 땐 이 정도로 대단해 보이지 않았는데 모아 놓고 보니 정말 내가 한 일인가 싶다.
이게 다가 아니다.
양대 진 로열로더.
생각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나오는 말이다.
처음 본선에 진출했을 때만해도 멀게만 느껴졌던 단어다.
하지만 이제 각각 한 고비만 넘으면 역대 최초의 기록을 써 내려가게 된다.
“이야. 내 뺨 좀 꼬집어 봐라.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다. 우리 팀에서 결승 진출자라니.”
그 어느 때보다 도 수코님은 들떠 있었다.
혹 사고라도 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도 수코님의 기분은 저 우주까지 솟아 있었다.
어째 운전을 맡기는 것이 조금 불안했다. 마음 같아선 내가 하고 싶지만 운전면허가 없는 나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저 얌전히 뒤에 타고 가는 수밖에.
“제가 그렇게 파렴치한 짓을 어떻게 하나요? 이거 꿈 아니에요. 저 오늘 진짜 결승 진출했어요.”
“흐흐흐. 고맙다, 정말 고맙다.”
무엇이 고마운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어쨌든 고맙다고 하시니 기분이 좋았다.
이제 그럼 스탯 분배를 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