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74 Game No. 174 마지막 한 걸음. =========================================================================
Game No. 174
휴, 이겼다.
정말 간신히 이겼다.
등 뒤로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늘어난 용광포가 길을 막는 바람에 용안에 제 때 튀어나가지 못했다.
조금만 우물쭈물 댔다면 아마 뚫렸을 거다.
뭐 저런 무지막지한 공격력이 다 있지?
떠올리는 것만으로 몸서리가 처질 정도다.
[투신]을 2번 쓴 것 같은, [폭격]이라는 스킬이 있는 것처럼 이제운의 공격은 매서웠다.
솔직히 첫 번째 공격을 막았을 때 안심했다.
이제 내가 유리하다고.
근데 아니었다.
연달아 뚫기를 시도할 줄이야.
마지막엔 정말 뚫리는 줄 알았다.
비렴이 있는데 어떻게 그슨대가 그렇게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려들지?
이래서 이제운, 이제운 하는구나 싶었다. 이제운의 러시 타이밍은 정말 절묘했다.
마치 내 화면을 보고 있는 것처럼 비렴의 천벌 개발이 채 끝나기 전에 러시를 들어왔다.
앞마당에서 자원을 채취하던 모든 용안을 끌고 나왔다.
다 죽어도 상관없었다.
막기만 한다면!
하지만 이제운의 그슨대 무빙은 신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여러 개의 손으로 동시에 컨트롤 하는 것처럼 그슨대가 딱딱 퍼지며 용안과 용아를 끊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든 생각이 뚫릴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용안은 거의 다 죽었고 용아 역시 제대로 접근하지 못한 채 뒤를 빙빙 돌고 있었다.
그나마 용광포가 뒤에서 계속해서 데미지를 넣고 있었지만 그마저 앞선 용아가 정리되면 금방 파괴될, 바람 앞에 등불 같은 존재였다.
이렇게 지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비렴의 천벌 개발이 완료되었다.
정말 천금과 같은 타이밍이었다.
용아가 천벌에 맞든 말든 곧바로 천벌을 뿌렸다. 미리 비렴을 뽑아 둔 덕에 천벌을 쓸 수 있는 술력이 여유가 있었다.
입구 가득 천벌이 쏟아졌다.
그렇게 강해 보이던 그슨대가 천벌 몇 번에 물에 넣은 솜사탕처럼 녹아내렸다.
경기 내내 답답했던 가슴이 뻥하고 시원하게 뚫리는 순간이었다.
대부분의 그슨대를 잃은 이제운이 GG를 선언했다.
진짜 십년감수했다.
놀란 가슴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어쨌든 막았고 난 승리했다.
그것이면 되었다.
2:0.
양대 결승 진출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체력도 여유 있다.
1세트에 비해 2세트에서 많은 스킬을 사용하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남아 있는 체력이 80% 가까이 되었다.
어차피 한 세트만 더 이기면 된다.
***
“……승우 이러다 진짜 양대 결승 가는 거 아니에요?”
연호가 멍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자기가 말하고 믿기지 않는 듯 헛웃음까지 살짝 보였다.
“가면 가는 거지 표정이 왜 그래?”
“우리 팀에서 그런 선수가 나온다는 게 안 믿겨서요.”
“참나. 우리 팀은 언제까지 꼴찌만 할 줄 알았냐?”
이재명 감독이 피식 웃었다.
원하는 스코어가 만들어졌다.
2:0.
중계진은 전략이 좋았다고 하지만 이재명 감독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아무리 전략이 좋아도 그걸 실행시킬 수 있는 선수가 있어야 빛을 발하는 법이다.
이승우는 완벽히 전략을 수행해 내고 있었다.
“이제 한 번만 더 이기면 양대 결승이네요. 대박. 이제운을 잡고 결승에 오르다니. 진짜 꿈만 같아요!”
커뮤니티도 난리가 났다.
뽀록 혹은 운으로 결승에 가는 것이 아니었다.
강자란 강자는 전부다 꺾고 오르게 되는 결승이었다.
아직 경기가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많은 이들은 이승우의 결승진출을 점쳤다.
1, 2 세트에서 보여 준 포스가 압도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 이승우의 예를 들면서 1, 2세트는 이제운이 힘을 쓰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당했지만 3세트부터 다른 모습을 보여주면 내리 세 세트를 따내며 역스윕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다지 힘을 얻지 못했다.
그러기엔 이승우의 지금 경기력이 너무 좋았다.
이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3세트가 시작되었다.
‘마지막까지 침착하게 해라. 마지막까지.’
이재명 감독은 이승우가 진출하는 건 이미 당연한 일이고 3:0으로 이제운을 누를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
―최승원 해설께선 이런 스코어를 예상하셨습니까? 전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천하의 이제운이 2:0으로 밀리고 있다뇨!
김현민 캐스터가 수많은 사람들의 심정을 대변했다.
이승우의 결승 진출을 예상한 사람은 꽤 있었지만 이처럼 2:0으로 앞서가리라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저 역시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혹 스코어가 이렇게 되더라도 치열한 혈전 끝에 나올 줄 알았거든요? 하지만 굉장히 일방적인 경기력으로 어느 한쪽이 밀릴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지고 있을 때 더 무서운 이제운 선수라고 하지만 지금 상황이 너무 안 좋거든요? 3세트를 반드시 잡아내며 분위기 전환해야 합니다. 이대로 3:0으로 지면 본인 스스로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을 겁니다.
―얼마 전 이승우 선수가 2세트를 내준 상황에서 패패승승승으로 대역전극을 펼친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승우 선수 입장에선 반드시 3세트에서 끝내고 싶을 겁니다. 그거 아십니까? 이번 MSL에서 이승우 선수 단 한 경기도 패하지 않았습니다. 3세트를 잡고 결승에 오르면 전승 결승 진출을 하게 되는 겁니다!
아직 전승 우승을 달성한 선수는 없었다.
1패 우승이 최고 기록이었다. 만약 이승우가 3:0으로 이제운을 이기고 올라간다면 전승 우승이라는 전인미답의 기록에 도전장을 내밀 수 있게 된다.
―무조건 MSL에서 진 로열로더가 탄생하게 됩니다. 역대 5명밖에 존재하지 않았던 진 로열로더가 6명이 된다는 말입니다!
동시에 마지막 진 로열로더의 주인공은 이제운이다.
무려 7년 전에 진 로열로더의 업적을 이뤄 냈다. 그 후 수많은 신인이 도전했지만 번번이 무릎을 꿇었다.
MSL 기준으로 따지려면 더 과거로 가야한다.
김택윤 이후 나오지 않았으니까.
신인들의 실력이 좋지 않았냐고?
전혀 아니다.
그중 후에 우승을 차지한 선수도 여럿 있었다.
선수의 자질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진 로열로더가 되는 것이 힘든 것이었다.
이미 MSL 결승전엔 진 로열로더 후보인 임형규가 자리 잡고 있다.
마찬가지로 진 로열로더 후보인 이승우가 결승에 진출하면?
역대 단 한 번도 없었던 진 로열로더 매치가 완성되게 된다.
MSL PD입장에선 쾌재를 부를 만한 일이었다.
―아, 그렇죠. 무조건 탄생하죠. 진 로열로더 후보끼리 결승에서 맞붙으니 이기는 쪽은 무조건 진 로열로더가 되는 거죠!
―여태 이런 일이 없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예선에 첫 출전한 선수가 거대한 별 같은 선수들을 연달아 꺾고 결승에 오르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닌데 그런 선수가 한 시즌에 둘, 그것도 같은 리그 결승전에서 만나는 건 따져 보지 않았지만 확률로는 거의 0에 가까울 것이라 생각 됩니다!
―이제운 선수는 그 꼴을 죽어도 보기 싫겠죠.
―이제 기회가 얼마 남지 않은 이제운 선수. 자그마한 실수가 곧바로 패배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과연 부활의 불꽃을 일으킬 수 있을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3세트 전장 개천으로 가 보겠습니다.
***
1, 2 세트가 짧고 굵은 전략적 선택에 의해 승부가 결정이 났다면 3세트는 정반대의 경기 양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극 후반.
어느새 경기 시간이 30분을 넘었다. 서로 최종 테크는 모두 올라갔다.
이젠 멀티태스킹 싸움이었다.
얼마나 많은 화면을 빠르게 처리하느냐의 싸움.
단순히 공격만 해선 안 되고 방어만 해서도 안 된다.
공격과 방어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거기에 더해 견제도 떠나야 한다.
아직까진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양 선수 모두 최고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1분 간격으로 관중석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이제운은 이제운이었다.
1, 2세트를 내줬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흔들리지 않고 본인의 플레이를 선보였다.
이승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승리가 빌드발이 아니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최고의 경기력으로 이제운을 상대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기대한 경기 양상이 펼쳐진 것이다.
―이제운 선수 어마어마한 물량으로 이승우 선수를 찍어 누르려 하고 있습니다. 이승우 선수 위태로워 보이는데요?
―폭군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이게 진짜 이제운이죠! 눈빛 보세요! 상대를 잡아먹을 듯 이글이글 불타오르고 있지 않습니까?
―이승우 선수도 대단합니다. 상황만 보면 밀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큰 피해 받지 않고 모든 공격을 우직하게 받아 내고 있습니다. 아까 4금광을 가져갔을 때 왜 저런 무리한 선택을 할까 의아했거든요? 근데 이제 확실히 알겠습니다. 모든 구역을 지킬 자신이 있기 때문에 확장을 가져간 겁니다!
만약 이승우가 네 번째 금광 확장을 가져가지 않았더라면 지금처럼 버티는 것은 힘들었을 것이다.
이미 본진 금광은 바닥이 났고 조만간 앞마당 금광도 모두 채취하게 된다.
철광처럼 채취가 끝나면 사라지지는 않지만 겨우 2밖에 채취하지 못한다.
효율이 1/4로 확 줄어드는 거다.
당연 풍백이나 비렴을 생산할 금이 부족해질 수밖에 없다.
풍백과 비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면 개떼처럼 몰려드는 마수의 병력을 당해 낼 수가 없다.
그렇다고 확장을 문어발식으로 늘리는 것도 위험하다.
난전에 정신 못 차리고 휘둘릴 수도 있으니까.
마수가 기동력을 바탕으로 난전을 걸어 버리면 진짜 답이 없다.
본진을 지키면 어느새 세 번째 멀티에 마수 병력이 와 있고 그걸 따라가다 보면 네 번째 멀티가 견제를 받고 있다.
그렇다고 병력을 분산시킬 순 없다.
마수가 알아차리는 동시에 병력을 한곳에 모아 한점돌파를 시도 할 테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고?
잘.
이게 답이다.
그냥 잘해야 한다.
확장도 잘 가져가고 방어도 잘해야 한다.
그래서 용족이 마수를 상대로 후반 승부를 보면 힘든 거다.
이승우는 후반전 답을 잘 맞히고 있었다.
말 그대로 잘하고 있었다.
―이제운 선수의 기세도 조금 누그러졌습니다. 이승우 선수가 너무 잘 막아 내거든요! 이대로 가면 안 되겠다. 조금 더 다양한 루트로 가든 병력을 모아서 한 곳을 치든 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겁니다.
―이승우 선수도 선택해야 합니다. 곧 철광 멀티 자원이 떨어지거든요? 추가 확장을 가져가든 아니면 모든 걸 걸고 러시를 해야 하든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여태 잘 막은 건 분명 사실이지만 시간 지체하면 그냥 잘 막다가 끝나 버릴 수도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 확장을 가져가며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더 나아 보입니다. 어쨌든 마수도 자원이 무한은 아니거든요?
마수가 전장의 60% 이상을 장악했다.
수많은 소굴이 건설되어 있어 인구수가 줄어도 금세 200이 채워졌다.
자원 역시 빵빵했다.
용족에게 추가 확장을 주지 않는다면 지금처럼 비효율적인 전투를 해도 이득이었다.
반면 용족의 미래는 밝지 않다.
자원이 차츰 떨어지고 있다.
마수의 소모전에 병력이 조금씩 갉아 먹히고 있다. 망태할배의 토혈에 용아가 무용지물이 되는 것도 컸다.
용력만 남은 용아는 마견의 밥이었다.
―이승우 선수 나갑니다!
그 순간 이승우의 모든 병력이 중앙으로 진출했다.
이제운도 그걸 발견했다.
마수의 병력도 슬금슬금 중앙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중앙 지역을 감싸 안는 형태로 둥글게 진형을 이뤘다.
용족의 병력이 더 깊숙이 들어오면 덮칠 생각인 것이다.
―이거 중요합니다. 이승우 선수 입장에서 승부수 던진 거예요. 이 러시가 막히면 집니다!
단순 화력은 용족이 더 강해 보였다. 하지만 추가 병력 도착 속도가 다르다.
인구수 100이 줄면 마수는 금세 차오르지만 용족은 한참이 걸린다.
압도적인 승리를 연달아 거두지 않는 이상 결국 전쟁에서 승리하는 건 마수가 될 것이다.
―차라리 조금 더 여유 있게 경기를 풀어 가는 게 더 나아 보였는데요! 지금 같은 운영이면 충분히 확장과 본진 방어 동시에 가능…… 어? 지금 저거 뭐죠!
중앙 본대에 합류하는 3기의 운룡.
그 순간 마수의 전 병력이 용족의 병력을 향해 진격을 시작했다.
일대 장관이 펼쳐졌다.
―자 전투가 펼쳐집니다! 운룡에 어떤 유닛이 타고 있을지!
―만약에, 만약에 저기에 지룡이 타고 있다면!
최승원의 외침이 끝나기 전 운룡에서 유닛이 내렸다.
―으아! 이승우 선수. 정말 대단합니다!
그건 바로 6기의 지룡이었다.
데미지 업이 완료된 지룡이 달려드는 마수의 병력을 향해 토정을 쏘아 내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내일이면 결과가 나겠군요.
그 사이 우리 승우는 공식전 16연승으로 이영우의 기록을 깨는데 성공합니다.
마수전도 어느새 10연승!
그럼 모두 좋은 하루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