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66 Game No. 166 마지막을 향하여. =========================================================================
Game No. 166
―아, 문제가 커지는데요? 일단은 생산된 병력 앞으로 전진 시킵니다. 이 병력! 지금 이 병력끼리만 팽팽한 느낌이지 곧 위에서 병력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거든요!
―합쳐지면 상대가 안 됩니다, 상대가!
―그렇습니다. 이승우 선수 정말 승부를 볼 줄 아는 선수예요.
―정말 무지막지한 병력이 곧 쏟아져 내려오는데 김택윤 선수 까마득하게 모를 수밖에 없죠. 초반 정찰로도 확인한 것이 없고 그 후에 용혼으로 선수가 맞부딪쳐 보니까 용혼 움직임도 무언가 소극적인 것 같고. 아, 이거 공격적인 움직임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해서 한 타이밍 빠르게 확장을 했는데 이거 큰일 났습니다. 이승우 선수 이제 제단에 병력 찍혔죠? 이승우 선수 용혼 3기 나오면 가면 돼요!
―그렇습니다. 8시 제단에서 3기의 용혼이 나오는 순간이 공격 타이밍입니다.
어느새 중앙을 지나는 이승우의 병력들. 당장 숫자만 보면 똑같지만 곧 2배로 벌어질 것이다.
―자, 그다음 병력이 추가되기 전에 거대한 데미지를 입을 수밖에 없는 김택윤 선수입니다.
김택윤도 본진에서 2개의 제단을 늘려 주었지만 아직 완성도 채 되지 않은 상황.
반면 이승우는 3개의 제단에서 용혼이 생산돼 앞서 진출한 본대에 합류한 상태였다.
곧 김택윤의 제단도 완성이 되겠지만 그 전에 이승우의 공격이 들어간다.
―이야, 날카롭습니다! 정말 날카로워요!
―지금은 용안이 미리 나와 있지 않은 이상 이길 수가 없습니다.
앞마당 확장이 완성된 것도 아니고 용안이 미리 나와 있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김택윤 선수가 예언가도 아니고 그걸 미리 알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아, 이거 5세트 가나요?
―이건 이승우 선수가 실수하지 않는 이상 절대 못 막습니다.
이승우의 병력이 코앞까지 들이닥쳤지만 김택윤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용혼의 숫자는 이승우가 6기였고 김택윤이 4기였다.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 보이지만 이승우가 일점사만 제대로 한다면 순식간에 2기 이상의 용혼을 잡아낼 수 있다.
그러면 경기는 그대로 끝이다.
―진짜 막기가 힘든 상황입니다.
―이건 막으면 기적이죠!
―자! 들어갑니다! 볼까요?
―솔직히 막으면 말이 안 되는 상황이거든요?
이승우가 용아를 앞세워 거침없이 용혼을 들이밀었다. 이승우의 첫 번째 타겟은 왼쪽에 돌출되어 있는 용혼이었다.
일점사로 순식간에 1기의 용혼을 잡아 주는 이승우.
김택윤도 순간적인 판단이 좋았다. 마찬가지로 앞선 이승우의 용혼을 일점사로 잡아냈다.
이제 용혼의 상황은 5:3.
용아가 1기씩 있긴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큰 의미는 없었다.
무빙으로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으니까.
―아, 이제 안 되죠. 안 됩니다!
―용혼 녹죠. 하나씩!
―이승우, 이승우 집중합니다! 집중하는 이승우!
김택윤의 활약은 거기까지였다. 애초에 지닌 파괴력이 달랐다.
모든 용혼이 잡힌 김택윤.
반면 이승우의 용혼은 아직 3기나 남았다.
―이승우 선수 컨트롤 예술이네요!
―지금 용안 나올 정신도 없습니다. 그대로 밀렸어요!
사실 3기의 용혼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추가 생산되는 병력과 용안으로 어떻게든 막아 낼 수 있었으니까.
더 큰 문제는 후속으로 합류하는 용혼이었다.
만약 본진에 제단이 있었다면 어떻게든 시간을 벌며 막을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김택윤이 유리한 상황이 되었을 거다.
앞마당이 존재했으니까.
4개의 제단이 지어져 있다고 해도 당장 이승우 선수가 돌릴 수 있는 제단은 2개밖에 되지 않는다.
자원을 채취하는 용안의 수가 너무 적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추가되는 후속으로 끝내기보단 첫 6기의 용혼을 얼마나 살릴 수 있느냐가 이번 전략의 핵심이었다.
만약 전투 결과 살아남은 이승우의 용혼이 3기가 아닌 2기였다면 추가 생산된 김택윤의 용혼과 용안 비비기에 막혔을지도 모른다.
전투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면 절대 쓸 수 없는 전략인 것이다.
하지만 이승우는 뛰어난 컨트롤로 용혼을 3기나 살려 냈다.
더군다나 전진된 위치에 이승우의 제단이 지어져 있어 본진에 있을 때보다 배 이상 빠른 속도로 용혼이 합류할 수 있었기에 김택윤이 바라는 상황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동시에 나온다고 해도 김택윤이 한 번에 갖출 수 있는 용혼의 숫자는 최대 3기.
아무리 다친 용혼이 있다 하더라도 추가된 2기까지 합쳐서 5기의 용혼을 잡아내는 건 무리였다.
4기의 용혼 이었다면, 제단이 전진되어 있지 않았다면 조금 아슬아슬했을지도 몰랐다.
―하나 더 잡고 압박에 들어갑니다. 그러면서 병력 끊고요.
―완벽한 전략의 성공입니다.
―아무리 전략이 완벽해도 그걸 아무렇지 않게 실행시킬 수 있는 강심장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는 거거든요? 보통 선수라면 굉장히 떨렸을 겁니다. 잔 실수가 나왔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이승우 선수는 그런 거 없습니다. 그냥 우직하게 해냅니다!
―아, 이 선수가 데뷔전을 치를 때 가장 지적이 되었던 부분이 멘탈 부분 이었거든요. 그것을 완벽히 극복한 모습입니다.
―단순히 극복이 아니라 이건 멘탈왕이에요, 멘탈왕!
김택윤의 본진으로 입성한 이승우의 용혼이 솟대를 때리기 시작했다.
아예 추가 병력이 생산되는 걸 끊겠다는 것이었다.
좋은 선택이었다.
용아가 용혼을 감싸며 어떻게든 방해하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빙글빙글 돌면서 솟대를 때리는 용혼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아! 요즘 전력 수급에 문제가 있다는 말을 들었거든요? 이승우도 아예 김택윤의 전력을 끊어 버리겠다는 거예요.
―솟대! 제단 근처에 하나밖에 없거든요? 이거 파괴되면 모든 제단 정전입니다. 정전!
―이러면 경기 끝나는 거죠!
―어렵습니다. 자원이 많으면, 용안이 많으면 뭐합니까? 당장 4기의 용혼을 잡아내지 못하는데요!
이윽고 솟대가 깨졌다.
바로 옆에 김택윤이 솟대 하나를 다시 소환했지만 채 절반이 완성되기도 전에 다시 깨졌다.
그사이 1기의 용혼을 더 줄였지만 큰 의미가 없었다. 김택윤은 더 이상 용혼을 생산할 수 없었으니까.
오직 용안으로 모든 용혼을 잡아내야 했으나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용안 속수무책으로 터져 나가죠!
―정말 깔끔하게 준비해 와서, 준비한 그대로 깔끔하게 경기를 끝냈습니다. 이 선수 4세트까지 안 왔으면 어쩔 뻔했습니까? 준비한 것도 제대로 보여 주지 못하고!
제대로 필살기를 준비해 왔다. 모르며 당할 수밖에 없는. 심리전부터 컨트롤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김택윤 GG! 김택윤 선수가 GG를 선언합니다.
그 순간, 김택윤이 경기를 포기했다.
동시에 커다란 함성이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순간 지진이 난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함성이었다.
명경기.
3:0 쉬운 승부로 끝날 것 같은 경기가 2:2 상황까지 왔다.
김택윤의 경기력이 아쉬웠지만 그보다 이승우의 선택이 더 대단했다.
부스에서 나오는 이승우를 향해 관중들이 아낌없이 박수갈채를 보냈다.
***
“전략 기가 막혔다. 정말. 이제 2:2다, 2:2.”
“통해서 다행이에요.”
난 대기실 소파에 몸을 묻었다. 순간 긴장이 풀리며 피로감이 온몸을 덮쳤다.
용혼 싸움이 시작되기 전까지 심장이 어찌나 쿵쾅거리는지 그대로 터져 나가는 줄 알았다.
다행히 내가 건 심리전에 김택윤이 말려들었다.
그 순간 경기는 끝이었다.
이번 경기에서 사용한 스킬은 [투신] 1번뿐이었다.
남은 체력은 70%.
5세트에서 최대 25%까지 사용할 수 있으니 상당히 여유가 있는 양이었다.
생각보다 3, 4세트에서 체력을 얼마 사용하지 않았다.
정말 다행이었다.
“방금 감독님이랑 전화 통화했는데 숙소도 난리가 났단다.”
“그래요?”
“당연하지! 김택윤이랑 2:2인데. 아주 그냥 2002 월드컵 4강 갔을 때보다 더 난리라고 한다. 진짜 잘했다. 이제 이번 고비만 넘으면 결승이다, 결승.”
숙소의 모습이 머릿속에 훤히 그려졌다.
팀원들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연호는 아마 오버하고 있을 테고, 승대 역시 붉게 상기된 얼굴로 목이 터져라 응원하고 있을 테지.
생각하는 것만으로 가슴 한구석이 따뜻해졌다.
“꼭 이기고 싶네요.”
나를 위해서도 그리고 팀원들을 위해서도.
TV로 지켜보며 응원하는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결승에 가고 싶다.
‘결승’이란 두 글자에 동기부여가 제대로 되었다. 여기서 떨어지는 건 너무 억울한 일이다.
동시에 앞서 이긴 2세트가 무용지물이 된다.
3세트가 시작하기 전 정신을 붙잡은 것이 가장 컸다. 만약 그러지 못했다면 아무것도 해 보지 못하고 3:0으로 졌을 것이다.
패배한 1, 2세트는 경기 내내 머릿속에 복잡했다.
김택윤이 이렇게 하면 어떡하지?
저렇게 하면 어떡하지?
이렇게 하면 못 막을 텐데?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손이 꼬였고 자신감이 떨어졌다.
그래서 뭘 해도 조금씩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3, 4세트는 달랐다.
마음을 비우고 정말 하고 싶은 플레이를 했다.
‘지면 어쩔 수 없다. 적어도 후회 없는 경기를 펼치자.’
이런 마인드였다.
그러자 오히려 경기가 술술 풀렸다.
위풍당당하던 김택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롭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점점 자신이 붙었다. 그 결과 2:2 동점 상황이 만들어졌다.
남은 1세트에 내 모든 걸 쏟아부으리라.
***
―결국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영우와 이제운의 4강 경기도 그렇고 쉽게 결승 진출자가 나오지 않네요.
―분명 2세트가 끝난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아, 이영우의 결승 상대는 김택윤이겠구나. 동시에 맥이 빠졌을 겁니다. 이승우 이거 뭐야? 진 로열로더 후보라고 그렇게 치켜세우고 삼족오라고 그렇게 칭찬을 해 줬는데 3:0? 여태 운이었나? 이런 이야기가 분명 나왔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그 사람들을 찾아가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있을 겁니다. 2:2. 동점을 만들어 냈거든요!
―정말 예술입니다. 이번 OSL은 정말 예술 그 자체입니다.
―이승우 선수 칭찬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아직 모든 경기가 끝난 건 아니지만 2세트를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2세트를 따라붙었습니다. 최초로 역스윕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네요.
―보통 김택윤을 상대로 2:0이면 무너지기 마련이지만 이승우 선수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진 로열로더 후보기 때문이에요! 진 로열로더는 아무나 될 수 없거든요! 16강에서 처음 만난 상대가 누굽니까? 이영우입니다! 저번 시즌 우승자이자 이번 시즌 결승 진출자! 갓에게 무릎을 꿇고 무너지기 직전 재경기라는 한 줄기 빛을 뚫고 4강에 왔더니. 이게 뭐야? 김택윤? 역대 최고의 용족이 상대잖아? 좌절할 법도 하지만 이승우는 그러지 않았어요. 오히려 넘기 일보 직전입니다. 이 정도 시련과 고난을 겪어야 진 로열로더 아니겠습니까!
엄재웅 해설이 잔뜩 흥분했다.
스토리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너무나 많다.
1세트부터 4세트까지 모든 경기가 역대급이었다.
이제 1세트만 끝나면 결승 대진이 완성된다. 어느 누가 이겨도 최고의 스토리가 나온다.
용족 학살자 이승우를 누르고 김택윤이 최초로 OSL 결승에 진출할 것인가?
삼족오라는 별명답게 송병호에 이어 김택윤까지 먹어 치우며 이승우가 결승으로 갈 것인가?
―이제 1세트를 남겨 두고 있습니다. 이번 1경기로 결승 진출자가 가려집니다. 그간의 불운을 딛고 김택윤 선수가 화려하게 비상할 수 있을지 아니면 이승우 선수가 진 로열로더의 영예를 유지한 채, 최초의 동족전 역스윕을 하며 결승으로 갈지! 마지막 5세트 왕도에서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전현석 캐스터의 우렁찬 외침과 함께 4강 마지막 경기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