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로더 신들의 전쟁-164화 (164/575)

00164  Game No. 164 자. 이제 시작이야.  =========================================================================

Game No. 164

“잘했다.”

대기실에 들어온 김택윤을 최연규가 반겼다.

최연규는 S1의 환국 코치지만 수석 코치의 역할도 함께하고 있었다.

특히 개인리그에 출전하는 선수의 멘탈을 관리해 주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현재는 은퇴했지만, 선수 시절 5회 우승을 달성한 전설적인 선수였기 때문이었다.

“아주 잘하고 있어. 지금 이승우의 멘탈은 아예 박살이 났을 거야.”

앞서 말했듯 최연규도 최정상급 선수였다.

표정만으로 상대가 어떤 상태인지 파악해 낼 수 있었다.

“잔뜩 위축되어 있으니까 3세트에선 아예 공격적인 빌드로 끝내 버려. 어차피 안전하게 할 수밖에 없을 거니까.”

“알겠습니다.”

김택윤이 담담한 얼굴로 답했다.

이제 그렇게 꿈에 그리던 OSL 결승을 한 걸음 앞에 두었다.

정말 가고 싶었다.

각종 매체와 커뮤니티에서 OSL 결승에 가 보지 못한 이력으로 안 좋은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속으로 화를 삭이는 것뿐이었다.

김택윤이 무대를 바라보았다.

이제 단 1세트.

1세트만 이기면 꿈은 이루어진다.

***

―경기가 생각보다 일방적으로 흐릅니다.

―예상 밖의 상황입니다. 이승우 선수가 얼마전 MSL에서 송병호 선수를 2:0으로 잡아내면서 용족전에 물이 올라 있는 것으로 아는데요. 오늘 경기는 너무나 무기력한 모습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지금은 반대로 본인이 2:0으로 밀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혹시 이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인간 상성. 이승우 선수의 번뜩이는 센스가 정석 위주로 플레이 하는 송병호 선수에겐 잘 맞아떨어졌지만 본인처럼 본능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감각으로 경기를 운영하는 김택윤 선수에게는 잘 통하지 않는 거죠!

김태영 해설과 엄재웅 해설이 각자 본인의 의견을 내놓았다.

경기장 분위기도 좋지 않다.

치열한 혈전을 기대하고 왔던 관중들은 생각보다 못한 경기 수준에 실망한 상태였다.

특히 이승우를 응원하는 이들 입장에선 짜증이 솟구치는 경기들이었다.

―이제 이승우 선수 물러날 곳이 없습니다. 이제 발 한번 삐끗하면 끝이에요, 끝!

―무조건 이겨야죠. 이제 남은 3세트를 내리 잡아내는 것밖에는 답이 없습니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죠.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것이거든요.

―패패승승승. 그러니까 역스윕이 여태까지 몇 번 있긴 했지만 동족전에선 단 한 번도 없었거든요? 한 번도 없었다고 이번에도 나오지 않는다? 사실 이런 법은 없거든요. 이승우 선수를 부르는 명칭 중 하나가 무엇입니까? 기록 브레이커 아니겠습니까? 이번에도 동족전 최초의 역스윕이라는 대기록을 갈아 치우며 결승에 갈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엄재웅 해설이 축 쳐져 있는 경기장 분위기를 끌어 올리려 애썼다.

―맞습니다. 수치상, 이론상 가능하기만 하다면 언제든 나올 수 있는 거거든요? 그날이 오늘일 수도 있는 겁니다.

김태영 해설이 맞장구를 치며 동의했다. 경기장이 다시 열기를 띄기 시작했다.

엄전김 조합의 가장 큰 장점이 오늘도 발휘되고 있었다.

이제 경기가 ‘끝났다’라고 생각한 양 선수의 팬에게 아직 모른다는 긴장감을 불어넣어 준 것이다.

―이승우 선수 올킬과 3킬을 밥 먹듯이 해낸 선수거든요? MSL에서 송병호 선수를 2:0으로 잡아낸 선수구요! 그걸 본인이 기억해 내야 합니다. 이대로 무너지면 두고두고 아쉽습니다!

―과연 오늘 4강전이 여기서 끝날지, 아니면 4세트로 이어질지! 3세트 전장 우사의 정원으로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도 수코님.

무너져 내릴 것 같던 멘탈을 붙잡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혼자였다면 모든 걸 포기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지금 혼자가 아니다. 나를 응원해 주는 가족과 팀원이 있다.

더 이상 부담감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큰 힘이 되었다.

손도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평온하다.

다시 마음의 평온을 되찾았다. 동시에 눈앞을 가렸던 뿌연 안개가 걷히며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되었다.

승부는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다.

2:0이란 스코어는 잊었다.

1세트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김택윤을 3:0 셧아웃 시켜버리겠다는 각오로 경기에 임할 생각이다.

―옵저버 : 경기 시작하겠습니다.

그렇게 마인드 컨트롤을 끝냈을 때, 세트가 시작되었다.

전장은 우사의 정원. 내 위치는 11시였다.

‘[날빌러] 사용.’

경기 시작과 동시에, [날빌러]를 사용했다. 추천해 준 빌드를 보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어느 정도 예상했다.

3세트에서 김택윤이 칼을 뽑아 들 것이라는걸.

예전에도 그랬다.

김택윤은 경기를 질질 끄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본인이 앞서 나가고 있다면 더욱더 그런 것이 반영되었다.

끝낼 수 있을 때 확실히 끝내는 것이 김택윤의 스타일이었다.

이번 3세트에도 그런 스타일이 여지없이 반영되었다.

같은 팀이 아니었다면, 함께 연습생 시절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결코 눈치채지 못했을 거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

[날빌러]가 추천해 준 빌드는, [패스트 흑완]이었다.

***

―김택윤 선수 과감한 빌드 선택하네요.

―용의 신전이나 황룡성지 안 보이죠? 제단 늘리겠다는 거예요!

―이미 정찰은 완벽하게 차단했거든요! 정말 화끈한 선택입니다!

전현석 캐스터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김택윤의 제단이 3개 더 늘어났다.

김택윤이 선택한 빌드는 4제단 올인이었다. 압도적인 용혼의 수로 밀어붙이겠다는 뜻이었다.

한쪽에선 탄성이 반대편에선 탄식이 터져 나왔다. 탄성을 터뜨린 쪽은 김택윤을 응원하는 관중들이었다. 그들은 벌써부터 경기가 끝난 것처럼 좋아했다.

김택윤의 심리전이 너무 탁월했기 때문이었다.

이미 2:0으로 앞서나가는 스코어 자체가 상대방의 행동을 얽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고 있는 선수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몇 가지 없다.

그 몇 가지를 모두 이길 수 있는 빌드를 꺼내 든 것이었다.

컨트롤에 자신감이 있기에 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김택윤 선수 정말 영리합니다. 지금 빌드는 이승우가 흑완은 선택하지 않으면 무조건 유리하게 가져갈 수 있거든요? 2:0으로 밀리고 있는 이승우 선수가 흑완을 선택한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수거든요?

―맞습니다.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있는 상황에서 도박수인 흑완보단 안전한 빌드를 선택함으로써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고 할 겁니다.

―특히 이승우 선수처럼 개인리그 경험이 부족한 선수일수록 그런 모습이 잘 드러나죠. 아, 김택윤 선수 경험이 무엇인지 잘 보여 줍……. 어?

한참 말을 잇던 엄재웅 해설이 말을 멈추었다. 동시에 경기장에도 적막이 찾아왔다.

옵저버가 비춰진 이승우의 화면.

―1제단 상태에서 빠르게 황룡성지를 확보합니다?

황룡성지가 지어지고 있는 상태였다. 지금 타이밍에 황룡성지가 지어질 이유는 단 하나.

―이승우 선수 흑완을 선택했어요! 이건 정말 엄청난 선택입니다.

흑완을 뽑기 위해서였다.

김태영 해설이 절규하듯 소리쳤다.

―이야. 저, 정말 대단하네요! 흑완이라니. 전혀 예상도 못했습니다. 이야, 정말!

엄재웅 해설로 크게 놀랐는지 순간 말을 더듬었다.

―2:0에서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이승우 선수가 선택한 빌드는 패스트 흑완입니다. 이게 쉽지 않거든요? 왜냐? 막히면 끝나니까! 뒤가 없으니까! 만약 김택윤 선수가 안정적으로 현룡을 확보하는 빌드를 선택했다면 이건 너무나도 쉽게 막히는 빌드거든요? 지금처럼 공격적으로 생산하는 흑완은 막히는 순간 경기가 6:4 아니 7:3이 되어 버립니다! 그런데도 이승우 선수는 망설이지 않고 흑완을 뽑았어요. 이 선수 정말 강심장입니다, 강심장!

엄재웅 해설이 이승우의 칭찬을 쏟아 냈다. 더 이상 경기에 관련되어 해설할 것이 없었다.

이미 경기는 끝났다.

빌드가 완전히 엇갈렸다.

1기의 흑완은 공격을 가고 나머지 1기의 흑완은 수비를 하면 된다.

이승우가 흑완을 생산하고 있다는 것을 김택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하나 이젠 눈치채도 늦었다.

용무관을 짓는다고 해도 그전에 흑완이 본진에 도착한다.

―진짜 어떻게 이런 빌드를 선택할 수가 있죠? 보통 일반적인 선수 같으면 본인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운영을 택하기 마련인데. 이야 정말 할 말이 없습니다, 할 말이.

―이런 배짱이 이승우 선수를 만든 것이죠. 높은 승률을 가진 데엔 다 이유가 있는 겁니다. 단순히 운영을 잘하는 선수였다면 지금같이 높은 승률을 보유하지 못했을 겁니다. 이렇게 중간중간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전략을 사용할 줄 아니까 지금과 같은 모습이 나오는 겁니다!

―송병호란 거함을 운으로 쓰러뜨린 것이 아니네요. 실력입니다, 실력!

그 순간 김택윤이 본진에 들어온 흑완을 발견했다.

―김택윤 : GG.

흑완이 용안을 써는 그 순간, 김택윤이 GG를 선언했다.

성급한 GG가 아니었냐고?

아니다.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GG를 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볼 수 있어야 싸울 것이 아닌가?

4제단을 선택해서 용혼의 숫자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많이 보유하고 있었지만 흑완을 잡을 수 있는 수단이 전무했다.

방법은 하나.

역러시를 가서 이승우의 모든 건물을 깨 엘리를 시키는 것인데 그마저 입구에 흑완 1기가 떡하니 버티고 있으면 수포도 돌아갈 수밖에 없다.

GG를 선언한 김택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부스 안에 있는 물을 벌컥 벌컥 마셨다.

그런 김택윤의 얼굴엔 짜증이 잔뜩 묻어 있었다.

―아, 스코어가 2:1이 되었습니다!

―이승우 선수 지옥에서 돌아왔네요. 벼랑 끝에서 떨어진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어요! 아직 매달려 있던 겁니다!

―이제 올라와야죠. 올라와서 다시 정면 승부로 맞붙어야죠.

―김택윤 선수 표정도 안 좋죠. 이런 일격을 맞을 거라고 생각도 못했을 겁니다.

―안 좋을 수밖에 없죠! 제대로 한 방 맞았습니다.

―자, 그럼 저희는 잠시 후 4세트 경기로 다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

“이겼다! 이겼어!”

“대박!”

“내가 뭐랬어? 승우가 해낼 거라고 했지?”

연호가 커다란 목소리와 함께 가슴을 주먹으로 팡팡 치며 외쳤다.

어째 본인이 승리했을 때보다 더 기뻐하는 것 같았다.

2:1.

이승우가 1점을 따라붙는 순간 아스트로 숙소가 축제 현장으로 변했다.

불과 30분 전만 해도 장례식장 같던 아스트로 숙소였다.

김택윤을 상대로 2:0으로 뒤지고 있으니 이제 경기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했다.

개인리그 4강.

‘그래, 그 정도면 많이 올라간 거지. 첫 진출에 말이야’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이승우는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1점을 따라붙으며 4세트로 이어졌다.

모두가 만세가 부르고 있는 상황.

이재명 감독도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눈빛이 변했다.’

그도 2세트 경기가 끝나는 순간 경기 결과를 회의적으로 바라보았다.

스코어 때문이 아니었다.

이승우의 눈빛 때문이었다.

죽어 있는 눈.

아직 경기가 끝나지 않았음에도 모든 걸 포기한 것처럼 거무죽죽하게 변해 버린 이승우의 눈 때문이었다.

하지만 휴식 시간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눈빛이 변했다.

용광로처럼 활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눈빛이 되살아난 것이다.

그리고 그건 바로 경기력으로 연결되었다. 과감한 선택으로 승리한 것이다.

이승우는 이제 이재명 감독이 눈여겨보던 시절의 모습으로 완전히 돌아왔다.

김택윤이라는 거물 앞에 위축되었던 모습을 깨고 진정한 자신으로 돌아온 것이다.

비록 스코어가 1점 뒤져 있었지만 이건 아무렇지도 않다.

‘역스윕도 충분히 가능해.’

지금의 모습을 유지한다면, 이승우가 결승에 진출할 가능성은 아직 남아 있었다.

============================ 작품 후기 ============================

오늘은 여기까지.

그럼 내일 4강전을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모두 좋은 하루 되시길.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