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63 Game No. 163 OSL 4강. =========================================================================
Game No. 163
“꼭 결승 가자!”
“아스트로 최초 결승 진출자가 나오길 강력하게 희망한다!”
“이제 너 하나 남았다! 결승가자, 결승!”
모두가 나를 배웅해 주러 숙소 1층까지 따라왔다.
여태껏 이런 환대는 없었다.
하긴, 우리 팀에서 최초로 치르는 4강전이었으니까.
30분 전만 해도 팀원 전체가 응원 도구를 싸 들고 직관을 올 기세였다.
누가 보면 지구를 구하기 위해 길을 떠나는 영웅인 줄 알았을 거다.
감독님이 그런 건 결승전에서 해도 늦지 않다는 말을 하시지 않았다면 정말 다 왔을 거다.
그 정도로 모두가 들떠 있었다.
감독님께서 한 말씀해 주셨다.
이놈들은 다 들떠도 너는 들뜨지 말라고.
가슴속에 잘 새기겠습니다요.
“많이 떨려?”
영혼의 파트니 도 수코님이 말을 걸었다.
“솔직히 떨리죠. 4강이라니…….”
“하긴. 나도 떨린다. 야. 우리 팀에서 4강 진출자가 이번이 처음이거든.”
긴장되는 건 선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앞에 있는 백미러로 살짝 보니, 도 수코님의 얼굴이 조금 상기되어 있었다.
“준비는 했어?”
“할 수 있는 건 다했어요.”
언제나 그렇듯 가장 중요한 건 경기별 체력 배분이다.
송병호전은 삼전제라 그것이 수월했지만 김택윤과의 경기는 오전제라 골치가 아팠다.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까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 결과, 윤영태전과 같은 흐름으로 경기를 가져가기로 했다.
일단 1세트는 스킬을 사용하지 않고 체력을 아낄 것이다.
그 후 2세트엔 무조건 스킬을 사용하고 이어지는 세트는 2세트의 결과를 보고서 할 생각이었다.
그사이 능력치도 조금 상승되었지만 결승에 갈 수 있단 확신은 들지 않았다.
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마음을 평온하게 다스리는 일이었다.
***
―안녕하세요! OSL 4강 경기로 돌아온 전현석!
―엄재웅!
―김태영입니다!
―반갑습니다!
―이야. 드디어 오늘 결승 대진이 완성됩니다!
―정말 대단한 매치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엄전김의 화려한 입담으로 OSL 4강 두 번째이자 마지막 경기의 막이 올랐다.
이들의 목소리는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듣는 이의 피를 끓어오르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그렇습니다. 두 명의 용족이 결승 진출을 눈앞에 두고 맞붙었습니다!
―이미 결승에 이영우라는 사상 최강의 선수가 올라가 있거든요? 오늘 경기서 용족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선수가 결승에서 이영우를 만나게 되는 겁니다!
―요즘 양 선수 모두 기세가 장난이 아닙니다만 아무래도 요즘 분위기는 이승우 선수에게 조금 더 기울어져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현재 양대리그를 포함 프로리그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선수가 이승우 선수거든요?
―단지 운이 좋아서 여기까지 올라온 게 아닙니다. OSL만 해도 우승자 출신이 무려 둘이나 포함된 A조에서 살아 올라왔거든요. 그리고 그 후로 최강의 선수들을 맞아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왔습니다.
―양대리그를 포함한다면 잡아낸 선수들의 면면이 아주 화려합니다. 굉장히 주목할 점은 타 종족도 많이 잡았지만 유독 용족을 많이 잡고 올라왔거든요?
이승우가 양대리그에서 만난 선수들 중 특히 용족 선수들이 많다.
OSL 16강 결정전에선 도재열을 잡았고 8강에선 윤영태를 잡고 올라왔다. 그리고 4강에서 김택윤을 만났다.
MSL 16강에선 송병호를 잡고 8강에선 허영우와 마주했다.
김우현을 제외하고 한 시즌 사이에 육룡 중 다섯 명을 만난 상황인 것이다.
―신들의 전쟁 스토리 모드에 이런 설정이 있습니다. 삼족오라고 용족을 잡아먹는 새가 하나 나오거든요? 정말 강력한 영수로 용족 수백, 수천 마리가 덤벼도 쨉도 안 되는, 아주 강력하기 그지없는 존재가 바로 삼족오입니다. 그 삼족오를 보는 순간 이승우 선수가 딱! 오버랩이 되더군요. 실제 상황이 그렇습니다. 모든 용족을 씹어 먹으며 결승으로 향하고 있거든요? 만약 오늘 이승우 선수가 김택윤 선수를 잡아낸다면 진정한 삼족오가 되는 겁니다.
드디어 엄재웅 해설이 이승우의 포장지를 찾았다.
삼족오(三足烏).
신들의 전쟁 설정에 나오는 전설의 영수 중 하나이다.
사람들끼리 게임을 할 땐 생산할 수 없고 오직 스토리 모드에서만 등장하는 유닛이었다.
엄재웅 해설은 이승우가 4강에 오른 순간 별명을 짓기 위해 고심했다.
이미 진 로열로더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었지만 그보다 더 화려하게 꾸밀 수 있는 별명을 찾고 싶었던 것이다.
이승우의 경기 스타일 분석부터 시작해서 신들의 전쟁 스토리까지 싹 훑어본 후 엄재웅은 삼족오라는 별명을 만들어 냈다.
이제 별명은 엄재웅의 손을 떠났다.
사람들이 계속해서 불러 주면 이승우의 별명은 삼족오가 될 것이고 불러 주지 않는다면 사장되고 새로운 별명이 생겨 날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양 선수 모두 OSL 결승 진출 경험이 없다는 점입니다. 즉 누군가는 OSL 최초 결승 진출이라는 본인의 기록을 수립하게 됩니다.
알려져 있는 것처럼 김택윤은 3회 우승자로 용족 최다 우승을 차지한 선수다.
하지만 그중 OSL 우승은 하나도 없다.
오직 MSL 우승뿐이다.
그렇기에 항상 반쪽이라는 말로 실력을 폄하당했었다.
함께 비교되는 리쌍은 양대리그에서 우승을 모두 차지했던 선수들이라 더 그랬다.
심지어 리쌍과 택뱅은 같이 묶이는 것이 아니라 따로 불려야한다는 이들도 있었다.
사실 할 말이 없었다.
용족 중 양대리그 우승을 차지한 선수는 강명 1명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용족을 응원하는 모든 이의 한을 풀 수 있는 기회가 이번일지도 몰랐다.
―김택윤 선수도 OSL 결승에 대한 갈망이 상상도 못할 만큼 클 겁니다. 그간 숱하게 도전했지만 4강의 문턱을 넘지 못했거든요? 이번에마저 발목이 잡힌다면 정말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승우 선수도 쉽사리 물러서지 않을 겁니다. 진 로열로더. 16강 때부터 이야기했던 것이 정말 현실이 되기까지 얼마 안 남았거든요? 로열로더라는 기록 자체를 지금밖에 할 수 없습니다. 나중에 승률 100%로 우승을 해도 로열로더란 칭호는 얻을 수 없거든요? 이대로 4강에서 머무르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을 겁니다.
―올해 수많은 용족이 활약을 했습니다만 우승은 다 환국과 마수가 하며 용족은 조연에 머물고 말았거든요? 심지어 결승조차 올라가지 못했습니다. 이번엔 용족이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용족의 최강의 적은 환국도 아니고 마수도 아닌 바로 상대편에 앉아 있는 또 다른 용족입니다! 일단 눈앞에 있는 상대를 끝장내고 결승에 올라야 합니다.
―양 선수 모두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럼 1경기 시작하겠습니다!
***
1세트는 스킬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고 실제로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다.
오직 내가 가진 감에 의지하며 경기를 펼쳤다.
15분간의 혈전 끝에 1세트를 김택윤에게 내주고 말았다.
딱 15분 경기를 했을 뿐인데 사우나에 1시간 있었던 것처럼 온몸에 땀으로 흠뻑 젖었다.
김택윤은 윤영태와 달랐다.
1경기가 끝난 후 느낀 것이었다.
스킬을 사용하지 않으니 그 차이가 더 크게 느껴졌다.
초반부터 심리전이 장난이 아니었다. 김택윤이 무엇을 할지 신경을 곤두세우느라 내가 해야 할 것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것이 무거운 돌덩이가 되어 가슴을 짓눌렀다.
가슴이 답답했다.
호흡이 가빠지고 머리가 하얘졌다.
김택윤이 이끄는 대로 정신없이 끌려다니다 보니 어느새 경기가 끝나 있었다.
이어진 2경기.
이번엔 스킬을 사용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날빌러]를 사용했지만 큰 이득은 없었다. 김택윤이 무난한 빌드를 선택한 것이다.
먼저 앞마당을 가져가며 우위를 점했지만 그 후에 이어진 김택윤의 지룡 견제에 혼이 쏙 나갔다.
본진과 앞마당의 용안이 피해를 받으며 상황은 5:5가 되었다.
다른 스킬을 쓰기엔 상황이 애매했다.
그저 병력을 모으며 [투신]으로 한 방 싸움에서 대승을 노려야했다.
하지만 김택윤은 쉽사리 싸워 주지 않았다.
견제를 하며 차이를 조금씩 벌리려 했다.
이대로 시간이 가면 안 된다.
자연스레 난 조급해질 수밖에 없었고 원치 않는 구도에서 전투를 펼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투신]이 사기급 스킬이어도 병력이 있어야 제대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이미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는 김택윤의 병력에 들이받는 건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김택윤의 비렴에 쏟아내는 천벌에 내 비렴이 가장 먼저 상했다.
용족간의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건 천벌이다.
적재적소에 얼마나 잘 천벌을 내리 꽂느냐에 따라 전투 결과가 뒤바뀐다.
천벌 한 번 써 보기도 전에 3기의 비렴이 허무하게 잡혔다. 잡힌 비렴이 천벌 2번씩만 썼어도 무려 6번이나 된다.
반면 김택윤은 본인이 원하는 곳에 천벌을 제대로 뿌렸다.
여기서 차이가 생겼다.
전투 결과 병력 차이가 꽤 났다.
채 [엄대엄]을 써 보기도 전에 들이닥친 김택윤의 병력에 GG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눈 깜짝할 새에 스코어가 2:0으로 벌어졌다.
이제 뒤가 없다.
한 번만 더 지면 탈락이다.
순간 눈앞에 깜깜해졌다. 나도 모르게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손발이 잘게 떨렸다.
어쩌다 상황이 이렇게 된 거지?
***
“됐다!”
이승우의 GG가 나온 순간 S1의 숙소는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2:0.
이제 1세트만 더 잡아내면 김택윤은 OSL 결승에 진출하게 된다.
이 순간 가장 기쁜 건 누가 뭐래도 권 코치였다.
정확히 말하면 김택윤의 승리보다 이승우의 패배가 더 좋았다.
‘후…… 이대로 이승우가 결승 갔으면 큰일 날 뻔했네.’
이승우 방출에 있어 가장 큰 목소리를 냈던 이가 권 코치다.
이미 프로리그에서 S1에게 비수를 꼽고 개인리그 4강에 가는 활약을 펼쳤다.
더 이상은 안 된다.
만약 S1의 간판스타인 김택윤을 꺾고 결승에 오른다면?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었다.
권 코치의 입장에선 어떻게든 이승우가 떨어져야 했다. 그리고 다행히 그 시나리오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아직 경기가 끝나지 않았음에도 권 코치가 이승우의 탈락을 확정 짓고 있는 건 다 이유가 있었다.
현재 스코어가 2:0이었기 때문이었다.
2:0에서 2:3으로 경기를 뒤집는 역스윕이 개인리그 역사상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건 아니다.
종종 나오곤 했다.
심지어 결승에서 대인이라는 별명을 보유했던 김영준이 환국을 상대로 역스윕을 보여 주기도 했다.
하지만 여태껏 동족전 역스윕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동족전 이었기 때문이었다.
기본적으로 같은 유닛을 가지고 전투를 펼치기에 변수가 적다.
기발한 전략으로 경기를 뒤집어야 하는데 만약 상대가 작정하고 안전한 빌드를 쓰며 정찰을 꼼꼼하게 한다면 그마저 쉽지 않았다.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일을 이번 시즌 막 데뷔한 신인이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이제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경기를 볼 수 있겠군.’
권 코치는 긴장을 풀고 소파에 편하게 몸을 기댔다.
***
2세트가 끝난 후 잠시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난 터벅거리는 걸음으로 힘겹게 발걸음을 옮겼다.
휴식이어도 전혀 기쁘지 않았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같은 기분이었다.
도 수코님을 볼 면목이 없었다.
나도 모르게 고개가 땅으로 떨궈졌다.
그런 내 어깨를 힘을 주어 잡는 도 수코님.
“이승우. 아직 경기 안 끝났어. 벌써부터 이렇게 포기할 거야?”
“네?”
“2:0이지 경기가 끝난 건 아니잖아. 아직 3세트가 남았잖아. 3세트를 이기면 4세트가 남고 4세트를 이기면 5세트가 남잖아. 2세트만 잡으면 원점이야. 똑같은 상황이 되는 거라구. 그냥 단판과 똑같아지는 거야.”
도 수코님 말씀이 맞다.
굉장히 불리한 상황인 건 맞지만 경기가 끝난 건 아니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난 곧바로 상태창을 열어 남은 체력을 확인했다.
2세트에서만 스킬을 활용해서 그런지 남은 체력이 84%나 되었다.
3경기에 34%.
마지막 경기는 50% 밑으로 떨어져도 되니까 약 40%가량을 쓸 수 있다.
“앞선 두 세트는 네가 간을 보다가 오히려 김택윤의 판짜기에 말렸잖아? 이번엔 네가 한 번 김택윤을 흔들어 봐. 끌려만 다니다가 경기를 지면 억울하지 않겠어?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봐, 한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