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62 Game No. 162 반환점을 돌다. =========================================================================
Game No. 162
숨 가쁘게 달려왔던 프로리그 3라운드가 끝났다.
정규 시즌 기준이나 위너스 리그 기준 모두 반환점을 돈 시점이다.
그리 오랜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간 많은 일들이 있었다.
정말 내가 한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이번 위너스리그는 이변의 연속이라고 사람들이 평가했다.
그리고 그 중심엔 나와 우리 팀이 있었다.
마무리가 조금 깔끔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저번 시즌, 아니 멀리 갈 것도 없이 2라운드에만 비교해도 장족의 발전을 이뤘다.
내가 위너스리그 한 라운드에서만 거둔 승리가 무려 22승.
역대 3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1등과 2등이 누구냐고?
두말하면 입 아프지.
김택윤과 이영우.
이 둘이 각각 한 라운드 최다승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
1위인 김택윤과 2승밖에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만약 결장을 하지 않았더라면 깰 수도 있었던 기록이다.
이제운은 어디 있냐고?
18승으로 5위에 위치해 있다.
생각보다 낮은 이유가 있었다. 같은 팀의 구성재가 위너스 리그에서 엄청난 활약을 펼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구성재의 위너스리그 라운드 다승 기록은 20승이었다.
잉어스리그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쨌든 공식 홈페이지에 내 이름이 세 번째에 적혀 있으니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물론 기록에 연연하지 않는다.
한 라운드밖에 적용 안 되는 반쪽짜리 기록이라 크게 중요한 기록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위너스 리그가 끝난 직후 시상되는 위너스 리그 다승왕과 최다승 기록이 훨씬 더 의미 있고 값진 기록이다.
위너스리그 역대 최다승은 39승.
바로 김택윤의 기록이다.
이때 같은 팀이 있었는데 진짜 어마어마했다.
위너스 리그 최다승 기록과 함께 프로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한 시즌 70승의 고지를 밟았으니까.
무려 75승 16패.
승률 82.4%로 프로리그를 마감했다.
다승왕을 차지한 건 당연한 일이었고 아직까지 깨지지 않고 있는 기록이었다.
개인리그에선 리쌍이 확실히 앞서가지만 프로리그만큼은 김택윤이 왕이다.
리쌍에 비해 부족한 3번이라는 우승 횟수를 가지고 김택윤이 그들과 어깨를 견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마음 같아선 나도 그 기록에 도전하고 싶지만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3라운드부터 본격적으로 프로리그에 참가했기 때문이었다.
현재 내 기록은 22승 2패.
한 라운드 성적으로 보면 굉장히 훌륭한 성적이긴 하지만 이미 반환점을 돈 상태.
승률은 높지만 승수만 따지면 최상위권 선수들에 비해 적은 수치다.
4라운드에서 모든 팀을 상대로 3킬 이상을 따내지 않는 한 남은 경기에서 75승을 채우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산술적으론 가능해도 현실적으론 불가능에 가까웠다.
마음을 깔끔하게 비우고 그냥 경기를 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았다.
그래도 위너스리그 기록인 39승엔 도전해 볼 만하다.
4라운드에서 17승이나 해야 하긴 하지만 그래도 75승보다는 훨씬 낫다.
우리 팀이 3라운드를 거치며 거둔 승수는 40승.
그중 내 승이 무려 55%나 차지한다.
나를 제외하곤 우리 팀에 두 자릿수 승을 거둔 선수가 없다.
사람들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확실히 우리 팀엔 뒤를 받쳐 줄 수 있는 두 번째 카드가 부족하다.
이에 대해 감독님께서 많은 고민을 하고 계신 것 같았다.
난 불만 같은 건 가지지 않고 감독님의 뜻에 따를 것이다. 얼마나 우리 팀과 팀원을 사랑하고 아끼는지 알고 있으니까.
오늘 프로리그가 열리는 수요일임에도 아무도 TV를 틀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일주일가량 프로리그 경기가 없기 때문이었다. 일주일간의 휴식기가 주어지는 것이다.
이 기간 동안 그간 하지 못했던 휴식을 취하는 팀이 있는 반면 재정비 기간으로 사용하는 팀도 있었다.
우리 팀은 후자였다.
8승 3패라는 걸출한 성적을 거두었음에도 아직 불안정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 다들 점심 먹고 하자.”
현우 형의 말에 팀원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어컨을 하루 종일 돌리고 있어 봄, 가을처럼 서늘한 연습실이었지만 팀원들의 얼굴엔 구슬땀이 흐르고 있었다.
그만큼 집중했다는 뜻이었다.
가장 연습에 집중하는 사람은 단연 현우 형이었다.
당장 내일 MSL 8강 경기가 기다리고 있다.
저번 주 토요일, 그러니까 우리가 나무전자와 프로리그를 한 날에 첫 번째 MSL 4강 진출자가 정해졌다.
주인공은 이영우였다.
이변 같은 건 없었다.
윤영태를 3:0으로 무자비하게 밟으며 4강 진출을 마무리 지었다.
저번 시즌 MSL에서의 부진을 깔끔하게 지우는 경기력이었다.
이로써 이영우는 양대 4강을 또 한 번 달성했다.
몇 번째인지 셀 수도 없다. 양대 4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영우는 밥 먹듯 해냈다.
이번 시즌만 해도 OSL은 이미 결승에 올랐고 MSL도 4강에 오른 상태.
슬럼프라는 것이 도통 없는 선수 같았다.
OSL이 마무리를 향해 달려가는 만큼 MSL도 부지런히 따라오고 있었다.
당장 내일이면 또 한 명의 4강 진출자가 나오게 된다.
현우 형과 형규가 8강 경기를 펼치게 되는 것이다.
으, 마음 같아선 둘 다 올라갔으면 좋겠는데 그게 안 되니…….
“형, 연습은 잘돼 가요?”
“뭐. 그냥저냥 하고 있지. 넌? 너도 이틀 후에 경기 있잖아.”
사실 나도 여유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이틀 후, 그러니까 현우 형의 MSL 8강 다음 날에 나와 김택윤과의 4강 경기가 잡혀 있다.
그날 이기면 결승 무대에 서게 되는 것이다.
사실 아직 현실감이 없다. 4강에서 이긴 것이 아니었으니까.
현우 형과 개인리그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할 때였다.
“이야, 둘이 아주 엄청 사이좋아 보이는구만!”
시샘 어린 눈빛을 한 연호가 우리 앞에 텅 소리가 나게 그릇을 내려놓으며 앉았다.
나와 현우 형은 웃음으로 연호를 맞이했다.
질투가 진심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긴 네가 낄 자리가 아니다.”
“뭐?”
“여긴 8강에 오른 사람만 올 수 있는 자리다.”
“헐. 대박.”
내 농담에 연호가 벙 찐 얼굴이 되었다.
“내 더러워서 다음 시즌엔 8강 가고 만다.”
그렇게 말하곤 음식을 푹 찍어 먹는 연호였다.
“임형규랑 많이 경기 해 왔어?”
“아. 형규요? 네, 많이 해 봤죠.”
함께 지내 온 세월이 햇수로만 4년이다. 내 마수전 연습 상대 넘버원이 형규였다.
“어떤 스타일이야?”
현우 형의 물음에 형규에 대해 떠올려 보았다. 전반적으로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드는 플레이를 펼친다.
상대방을 속이거나 하는 식의 경기라고 해야 하나?
형규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현우 형에게 말해 주었다.
둘 다 응원하는 상황이긴 하지만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아무래도 현우 형에게 더 마음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변칙적인 플레이에 무너질 때가 있다는 거지?”
“네. 운영은 되게 잘하는데 초반 올인 같은 것에 무너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어요. 그게 복구가 안 되고 후반까지 망가지는 느낌? 본인이 틀을 만들어 놓고 상대가 그 안에 들어오면 그 누가 되었든 상관없는데 그 틀이 깨어지면 조금씩 삐걱대는 것이 느껴져요.”
형규는 판짜기가 좋다.
본인이 원하는 대로 경기가 진행되었을 경우 김택윤이나 정명혁을 상대로 높은 승률을 보여 주었다.
박수가 절로 나오는 경기력.
반대로 조금이라도 변수가 생기면 흔들리는 모습도 많이 나왔다.
형규 상대로 99제단 같은 찌르기는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OSL 16강전까진 그 약점을 아직 가지고 있었다.
“진짜 고맙다.”
“에이. 이게 뭐 별거라고.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죠.”
“그래도 가장 도움이 되었어. 옆에서 직접 보고 느낀 걸 말해 주었으니까. VOD 분석 가지고는 한계가 있더라고. 아직 경기수가 많은 것도 아니고.”
형규가 최근 잘나가고 있긴 하지만 수백전을 펼친 노장이 아니다.
아직 50전도 치르지 않은 신인.
환국전으로 한정 지으면 경기 수가 20개도 채 되지 않는다. 그 경기로 선수를 분석하는 데엔 분명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말해 주니 기분은 또 좋네요.”
“허허. 잘들 노네요.”
좋았던 기분은 연호의 말에 와장창 깨졌다.
“뭐?”
“어이쿠. 광탈자가 실수를 했습니다.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요.”
내가 도끼눈을 뜨고 연호를 쳐다보자, 깨끗하게 비운 그릇을 들고 종종 걸음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에 나와 현우 형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
―임형규 선수 3:1로 박현우 선수를 누르며 4강 진출에 성공합니다!
―박현우 선수 분전했습니다만, 아쉽게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역전패를 당한 첫 경기가 너무나 아쉽겠습니다. 너무나요!
―정말 그 경기 무난하게 이겼으면 3:1로 승리를 가져가는 건 임형규 선수가 아니라 박현우 선수였을 겁니다.
현우 형의 경기가 끝났다.
결과는 3:1.
형규의 승리였다.
현우 형의 경기력은 매우 좋았다. 하지만 그보다 형규의 경기력이 더 좋았다.
승부의 세계가 그렇다.
아무리 내가 잘해도 상대가 더 잘하면 어쩔 수 없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혹은 다른 날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는 것도 부질없다.
만약이라는 가정만큼 무의미한 건 없었으니까.
아무도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부스 엔에서 양손에 얼굴을 묻은 현우 형의 모습 때문이었다.
아쉬움이 여기까지 전해진다.
보는 우리도 이런데 부스 안에 있는 당사자는 얼마나 더 아쉬울까?
옷마저 축축하게 젖어 버린 모습에서 얼마나 이번 경기에 많은 걸 쏟아부었는지 알 수 있었다.
―임형규 선수 진 로열로더의 꿈을 이어 가네요.
―OSL에선 같은 진 로열로더 후보인 이승우 선수에 밀려 그 꿈을 접었거든요? 하지만 MSL에선 아닙니다! 그 누구보다 화려하게 4강에 올랐습니다.
형규도 진 로열로더 후보다.
나처럼 말이다.
이번 경기에서 본인의 가치를 제대로 증명했다.
진 로열로더가 될 수도 있다는 걸 모두의 뇌리 속에 선명히 새겨 넣었다.
―오늘 임형규 선수가 4강 진출에 성공하면서 첫 번째 매치가 완성되었습니다.
―아주 어마어마한 대진이죠?
―그렇습니다. 리벤지 매치이기도 합니다.
형규도 가는 길이 순탄치만은 않다. 형규가 4강에서 만나게 된 상대는.
―이영우 선수와 결승행 티켓을 두고 겨루게 되었습니다!
―OSL 16강에선 이영우 선수가 완벽한 모습을 보여 주며 승리했죠?
―그렇습니다. 이번 프로리그에서도 이영우 선수가 임형규 선수를 잡으며 좋은 기분을 여전히 가지고 있거든요!
이영우였다.
참 기구하다 싶었다. 이영우를 또 만나다니.
보통 이영우도 아니고 OSL에서 이제운을 3:2로 꺾으며 기세가 한참 올라와 있는 이영우를 말이다.
나도 남 말할 처지는 아니긴 하다.
OSL에선 김택윤을 MSL에선 허영우를 만난다.
이겨도 뭐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결승에 간 기쁨을 누리기도 전 이영우에 대한 파훼법을 찾기 위해 골머리를 앓아야 한다.
MSL도 상황은 마찬가지.
4강에 오르면 상대는 정명혁 아니면 이제운이다.
어째 쉬어 가는 경기가 한 번도 없다.
이번 시즌은 16강부터 시작해서 실력자들만 개인리그에 올랐다.
랭킹 30위권 밖의 뜬금 진출자들이 꽤 껴 있기 마련인데 이번엔 그런 것도 없었다.
요즘 잘나간다는 선수들은 모두 개인리그 본선에 진출했다.
괜히 역대 최강의 네임벨류 시즌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4강 역시 마찬가지다. 뜬금 4강이라는 전통이 이번에 거침없이 무너졌다.
보통 4강은 시대의 지배자들이 올라가지만 사람들이 기대하지 않았던 1명이 속할 때도 많았다.
이번엔 그런 것이 없다.
나나 형규가 뜬금 4강이려나?
흠,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건 아닌 것 같다.
자뻑 같은 것이 아니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본 결과다.
OSL 16강에서 멈추긴 했지만 형규 역시 프로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고 나 역시 프로리그 각종 용족 기록과 MSL 8강에 진출한 상태니 뜬금이라고 하긴 좀 그렇지.
이제 우리 팀에 남은 개인리그 진출자는 나 하나뿐이다.
반드시 좋은 성적을 거둬 숙소를 축제 분위기로 만들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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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내일 osl 4강, 김택윤 전으로 돌아오겠습니다.
그럼 모두 좋은 하루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