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61 Game No. 161 나무전자전(2) =========================================================================
Game No. 161
―김승대 선수 완벽한 군락 운영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마굴까지만 해도 방어하기 바빴는데 군락이 올라가는 순간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나무전자 어떡하죠? 이렇게 무너지라고 내보낸 허영우 선수가 아닐 텐데 말입니다!
―이변입니다. 이변!
이변이라뇨? 실력입니다, 실력.
전 처음부터 승대가 이길 거라 생각했습니다.
부스에 앉아 있는 승대가 몸을 들썩였다. 본인도 지금 경기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아간다는 걸 느낀 것이다.
선수가 신났다.
그러면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쉬운 승부는 아니었다. 초반엔 허영우가 유리했다. 정신없이 얻어터지면서도 승대는 포기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자신이 역전할 수 있는 기회를 노리며 버텼다. 그리고 그 기회는 군락 체제에 접어들었을 때 찾아왔다.
마견과 망태할배가 단 한시도 쉬지 않고 돌아다녔다. 피해를 줄 때도 있었고 주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승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마견에 망태할배 1기씩을 함께 보내 견제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생산과 전투 등 다른 활동을 하면서 운용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허영우도 점점 손이 어지러워졌다.
당연히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전투에 집중하지 못했다.
군데군데 병력을 흘리기 시작했고 노는 병력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사이 승대는 허영우의 본진에 마견을 떨어뜨렸다.
공속업이 된 마견만큼 건물을 잘 깨는 유닛은 없을 거다. 몇 초 때리지도 않았는데 건물들이 펑 소리를 내며 정신없이 터져나갔다.
물론 허영우도 가만히 있진 않았다.
모든 병력을 모아 본진을 향해 진격했고 일점 돌파로 본진을 똑같이 쑥대밭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럼 똑같은 상황 아니냐고?
천만의 말씀.
같은 피해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용족과 마수의 상황은 다르다.
마수의 복구 속도에 반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 용족이다.
이미 개발이 전부 완료된 마수는 기초 병력인 마견과 그슨대만으로 용족의 병력과 충분히 싸울 수 있는 반면 용족은 고테크 유닛인 지룡이나 비렴, 풍백이 있어야 업 잘된 마수의 병력을 상대할 수 있다.
“10분 내로 끝날 것 같은데요?”
“10분은 무슨. 5분이면 끝나.”
허영우의 자원 줄은 한곳. 그곳을 지키기 위해 병력이 떠날 수 없다.
그사이 마수는 확장을 가져가기만 하면 된다.
―허영우 선수 GG를 선언합니다!
―아주 좋은 분위기 만들었는데 말이죠. 정말 아쉽습니다.
―김승대 선수도 칭찬해 줘야 합니다. 다른 선수라면 마굴 단계에서 패배를 선언했을지도 모르는 일이거든요? 하지만 꾸역꾸역 막아 낸 후 군락 단계에서 역전승을 일궈 냅니다.
난 의기양양한 얼굴로 애들을 돌아봤다.
어때? 내 말이 맞지?
경기는 정말 5분이 채 지나기 전에 끝이 났다.
당연히 승자는 승대였다.
승대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기뻤다. 허영우를 이겼다는 것은, 많은 걸 의미했다.
양쪽 날개 중 하나를 꺾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무전자에서 차봉으로 선택한 선수는 차인환 선수입니다.
―마마전에 일가견이 있는 선수죠?
―지금은 그때보다 조금 내려왔다고 할 수 있지만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한때 마마전의 왕자로까지 불렸던 선수입니다.
나무전자에서 차봉으로 차인환이 나왔다.
차인환.
흠, 나로선 절대 잊을 수 없는 이름이지.
―오늘 출전하진 않았지만 이승우 선수와도 스토리가 있는 선수죠.
―이승우 선수가 프로리그에서 여태까지 2패를 했습니다. 1패가 얼마 전 김대형 선수에게 당한 패배였고요. 22연승을 하기 전 데뷔전에서 패배를 안겨 준 선수죠.
마침 중계진들도 그 이야기를 꺼냈다.
잊었다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하니 가슴 한구석이 쓰라렸다.
―이승우 선수가 헤드셋을 거꾸로 쓰고 몰수패를 당했던 경기의 상대 선수가 차인환 선수였거든요?
―김대형 선수 전까지 이승우 선수에게 프포리그 승리를 거둔 유일한 선수로 불렸는데 아마 그 명칭이 꽤나 불편했을 겁니다.
―본인에게 물어보니 스트레스였다고 하더군요. 경기로 이겼다면 전혀 그렇지 않았겠지만 어쨌든 상대방의 실수로 승리를 부전승을 챙기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오늘 이승우 선수와 꼭 붙어 보고 싶다고 했는데 아쉽게도 그건 성사되지 못하겠네요.
생각해 보니 가장 큰 피해자는 나지만 차인환도 피해자였다.
내가 유명해진 후에 악플 아닌 악플을 꽤 받았으니까. 의도한 것이 아니라 조금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이승우 선수와 붙을 수 없지만 그래도 아스트로의 선수들을 이김으로써 어느 정도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죠. 일단 오늘 붙게 되는 김승대 선수를 이기고 봐야겠죠. 아직 라운드는 많이 남아 있으니까요. 아무래도 마마전이다보니 차인환 선수가 조금 더 유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성기보다 못해도 과거 재기발랄하던 경기 운영은 아직 남아 있다.
보통 마견과 닷발귀에 집중하는 다른 마수와 달리 차인환은 단단한 수비를 바탕으로 그 밖에 유닛을 적극 활용하는 데 능했다.
―자, 양 선수 준비되었다고 합니다. 그럼 2세트 전장으로 떠나 보겠습니다!
***
―김승대 선수 초반부터 치열하게 몰아치네요.
―전 경기에서 장기전을 펼치면서 체력이 떨어지긴커녕 오히려 더 좋아 보입니다!
―손이 제대로 풀린 거죠. 위너스 방식의 특징 중 하나 아니겠습니까? 손이 완벽히 풀린 상태에서 경기를 치르면서 연습실과 같은 모습을 보여 줄 수 있거든요!
승대가 2세트까지 가져갔다.
차인환이 다른 무언가를 노리기 전 마굴 단계에서 끝내 버렸다.
닷발귀 컨트롤이 끝내 줬다.
비슷한 수의 닷발귀가 전투를 벌였음에도 승대의 닷발귀가 더 많이 살아남았다.
살아 있네, 살아 있어.
벌써 2:0.
흐뭇한 스코어가 나를 기쁘게 했다.
잘한다! 우리 팀!
물론 아직 이긴 건 아니다.
나무전자엔 송병호가 남아 있었으니까.
화면에 짧게 잡힌 송병호의 등 뒤로 거대한 불꽃이 피어오르는 환상이 보였다가 이내 사라졌다.
투지가 불타오르고 있구나. 결코 안심할 단계는 아니었다.
―나무전자의 중견은 박철호 선수입니다!
―송병호 선수를 끝까지 아껴 두는 모습입니다.
―그만큼 송병호 선수를 믿고 있다는 뜻이거든요? 박철호 선수가 반드시 이겨야겠지만 혹 무너지더라도 CT의 김대형 선수처럼 송병호 선수가 충분히 역 올킬을 해낼 가능성도 있거든요.
이쯤에서 송병호가 나오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여름 감독님의 선택은 박철호였다.
여전히 공격적인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광견이라는 별명까지 생긴 상태였다.
승대도 부담스러워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가장 상대하기 힘든 선수가 박철호 같은 부류다.
어디로 튈지 모르니까.
예측이 무의미하다. 어떻게 보면 막무가내라서 잡기 쉬울 수도 있지만 어쩔 땐 그 막무가내 정신이 상대방을 주저앉게 만들어 버릴 때가 있다.
그 예외성에 이여름 감독님은 배팅을 한 것이겠지?
잠시 후 시작된 경기.
―박철호 선수 전진 8도감을 시도합니다.
―초반부터 물어뜯겠다는 뜻이죠!
―역시 박철호입니다. 이런 일관성 있는 태도!
―중요한 건 매번 똑같은 데에 상대가 당한다는 것이죠!
박철호는 역시 과감한 선택했다. 분명 승대도 박철호의 공격을 염두에 둘 것이다.
―박철호 선수 엄청난 공격력입니다.
―김승대 선수 알았거든요! 평상시 안 가는 일벌레 정찰을 통해 도감이 전진되어 있다는 걸 알았거든요!
―기가 차죠. 정말.
―김승대 선수가 못한 게 뭡니까? 정찰도 했고 일벌레도 일찍 나와 궁병을 끊어 줄 준비를 했는데. 아, 피해 너무 받네요!
상대가 알 건 모르건 뚫어 버리는 박철호의 공격력이었다.
무언가를 느꼈는지 빠르게 정찰을 통해 박철호의 전진 8도감을 알아낸 승대였지만 일꾼과 함께 들어온 망루 러시에서 피해를 받고 말았다.
보통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면 본인도 여유 있게 앞마당을 가져가며 후반을 준비하겠지만 박철호의 선택은 달랐다.
―일꾼 쉽니다.
―동시에 훈련도감 늘어나죠?
―본진에 화살탑도 안 짓습니다. 닷발귀 본진 오려면 오라는 거죠!
앞마당을 가져간 박철호는 일꾼을 쉬며 훈련도감을 5개까지 늘렸다.
노리는 것은 뻔했다.
닷발귀가 나오기 전 힘으로 밀어붙이겠다는 것.
방어는 하지 않는다.
닷발귀가 자신의 본진을 쑥대밭으로 만들던 말던 상관없이 상대를 밀어 버리겠다는 것이 박철호의 생각이다.
어차피 피해를 받아도 상대를 뚫어 버리면 경기를 이길 수 있었으니까.
살을 주고 뼈를 친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구나 싶었다.
뭐 이리 무식한 방법이 다 있나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초반에 피해를 주지 못했다면 촉수에 막힐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충분히 통할 법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 공격이 통했다.
―촉수 5개가 이렇게 약했나요?
―뚫리네요. 뚫습니다. 오늘도 뚫어뻥처럼 시원하게 뚫어 버립니다!
―막힌 데 뚫는 데엔 박철호 선수가 최고네요!
막혀도 박철호가 할 만한 상황. 하지만 박철호는 뚫는 데 성공했다.
어떻게 저러지?
보는 나도 이렇게 황당한데 당하는 승대는 어떤 기분일까?
이여름 감독님도 황당해하는 모습이 화면에 잡혔다.
순식간에 뚫려 버린 앞마당.
지형의 이점이나 촉수, 마견 없이 단독으로 싸우는 닷발귀는 궁병―의원 조합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
결국 공중에서 모두 산화한 닷발귀.
―김승대 선수 GG를 선언합니다!
그렇게 승대는 2킬로 본인의 경기를 마무리하며 부스에서 나왔다.
아쉬움이 가득 한 승대의 얼굴.
이런 식으로 지면 기분이 참 그렇지.
그래도 잘했다. 2킬이면 본인의 역할을 완벽히 해냈다.
―스코어가 2:1이 되면서 나무전자가 한숨을 돌립니다.
―정말 박철호 선수의 플레이는 박수가 절로 나옵니다. 저게 될까 싶은데 됩니다.
―그게 이 선수의 매력이죠.
―아스트로에선 박현우 선수를 내보냈습니다.
―이승우 선수가 없는 지금 에이스죠. 더 이상 추적을 허용하지 않고 경기를 끝내 버리겠다는 의지가 강력히 담겨 있습니다.
―자, 그럼 저희는 잠시 광고를 본 후에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박철호와 현우 형의 4세트 대결은 현우 형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현우 형의 노련한 운영에 박철호가 스스로 말리며 경기를 내주고 말았다.
이제 스코어는 3:1.
매치스코어다.
1경기만 잡으면 우리 팀의 승리로 경기가 끝난다.
―드디어 이 선수가 나오네요.
―오늘 잔뜩 벼르고 있었거든요?
―물론 오늘 이긴다고 떨어진 MSL에서 올라가는 건 아니지만 그냥 이대로 물러가기엔 자존심이 상하거든요.
―아마 오늘 가장 만나고 싶었던 선수는 이승우 선수였을 겁니다. 아쉽게도 오늘 나오지 못했지만 보여 줘야죠. 송병호가 어떤 선수인지!
나무전자의 대장 송병호.
그가 부스로 향했다.
***
아스트로가 오늘도 패배했다.
3:1로 나무전자를 궁지로 몰았으나 송병호에게 3킬을 허용하며 4:3으로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뱅허의 법칙은 통하지 않았다.
허영우가 졌음에도 송병호는 지키는커녕 3킬이나 해냈다.
이승우에게 패배한 걸 제대로 분풀이한 것이다. 아직 3위에 올랐지만 적신호가 살짝 들어왔다.
4~5위권 팀의 추적을 허용한 것이다.
오늘 나무전자에게 승리했다면 나무전자와 승수를 3승으로 벌리며 저 멀리 달아날 수 있었지만 오늘의 패배로 승수 차는 이제 1승으로 좁혀졌다.
한번 삐끗하면 순위가 바뀔 수도 있게 된 것이다.
4위에 올라 있는 화성과도 마찬가지다.
화성과 승수 차이 없이 승점 차이로 아스트로가 3위에 올라 있는 상태.
화성과 나무전자라는 추격자를 허용한 상태로 4라운드를 맞이하는 것이 뼈아팠다.
2연패가 컸다.
모두 4:3으로 진 경기들.
그리고 이승우가 패배했거나 이승우가 출전하지 않았던 경기였다.
특히 아쉬운 건 CT전이었다.
이승우가 3킬이나 해 줬고 뒤이어 나온 세 선수가 1킬만 하면 되었으니까.
무의미한 가정이지만 1세트씩만 더 따냈다면 아스트로의 위치는 3위가 아닌 단독 1위였을 것이다.
곧 바로 전문가들의 분석이 이어졌다.
8승 3패라는 좋은 성적으로 3라운드를 마무리 지은 아스트로지만 호평만큼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아스트로에서 이승우가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높다는 것.
이승우 없이도 승리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숙제가 아스트로에 주어졌다고 모든 이가 입을 모아 말했다.
위너스 리그 방식인 4라운드까지야 이승우가 나온다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겠지만 당장 5라운드부터 승리를 거두기 힘들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아스트로가 정규 시즌 포스트 시즌을 놓친다면 반드시 4라운드 전에 이러한 문제점을 반드시 고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