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60 Game No. 160 나무전자전 =========================================================================
Game No. 160
연호에게 오랜만에 정색했다. 날벼락 같은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어.
죽을라고.
만약 진짜 추첨에서 리쌍이 뽑히면 연호를 가만두지 않을 거다.
흠. 일단 밤새 잠을 자지 못하게 간지럽혀 줄 거고 연습 경기도 안 해 줄 테다.
“미안. 내가 말이 심했지?”
조금 심한 게 아니라 엄청 심했거든?
“리쌍만 만나지 않게 기도해 줘라.”
“알겠다.”
연호를 바라본 순간 풋 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뭐하냐. 지금?”
연호는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은 채 두 눈을 감고 있었다.
“기도하잖아. 기도.”
뻔한 걸 묻는다는 듯 눈에 힘을 주어 한 글자, 한 글자 말하는 연호.
역시 분위기 메이커다웠다.
그 순간 조 추첨이 시작되었다.
―자, 그럼 이제 8강 대진표를 추첨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어떤 매치가 나와도 최고의 경기가 나올 것 같습니다.
제발, 제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신에게 간절히 기도했다. 이번 한 번만큼은 내가 원하는 대진을 달라고.
―8강 첫 번째 조입니다!
화면에 두 사람의 이름이 떠올랐다.
―임형규 선수와 박현우 선수가 8강에서 맞붙게 되었습니다!
그 이름은, 헐!
내가 가장 친한 사람 둘이 8강에서 맞붙게 되었다.
누굴 응원해야 하지?
지금 상황에선 현우 형을 응원하는 것이 맞지만 형규한테도 마음이 갈 수밖에 없었다.
으, 모르겠다.
내 대진도 아닌데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 오네.
―임형규 선수 OSL에선 16강에서 탈락했지만 MSL에선 아직 좋은 모습 보여 주고 있거든요?
―박현우 선수도 마찬가지입니다. OSL에서 미처 보여 주지 못한 실력을 MSL에서 보여 줬으면 좋겠습니다.
―이 두 선수 모두 4강에 진출해 본 경험이 없거든요?
―아. 그러고 보니 그렇군요!
―이번 경기를 통해 누군가는 처음으로 4강에 올라가는 쾌거를 달성하겠네요.
―그렇죠. 본인 최고 기록을 달성하게 되는 겁니다. 아무래도 포커스는 임형규 선수에게 조금 더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 선수도 진 로열로더 후보거든요? OSL에선 조기 탈락하며 꿈을 접었지만 아직 MSL에선 그 꿈이 살아 있습니다. 현재 같은 시기에 개인리그 입성한 절친한 동료 이승우 선수는 OSL 4강에 오르며 본인만의 길을 개척하고 있거든요? 임형규 선수도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습니다.
맞다. 형규도 진 로열로더 후보였지.
순간 까먹고 있었다.
―아마 본인의 실력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임형규 선수가 제일 클 겁니다. 현재 프로리그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여 주고 있긴 하지만 사람들의 뇌리 속에 남는 건 개인리그가 더 크거든요?
A조의 추첨에 이어 B조의 추첨도 이어졌다. 이번에 추첨된 선수는 이영우와 윤영태였다.
오! 다행이다.
일단 이영우는 피해 갔다. 이제 이제운만 피해 가면 되는군.
―자. 이제 C조 추첨을 해 보겠습니다.
―이제운!
―이제운 선수가 나왔네요.
먼저 추첨된 선수는 이제운이었다. 이제 내 이름만 안 나오면 된다!
제발. 제발!
천지신명이시여! 부처님 하느님 저를 도와주소서!
난 두 눈을 꼭 감았다.
―남은 선수는 셋이죠. 어떤 선수가 나와도 재미난 매치가 나올 것 같습니다
―자. 이로써 C조의 대진표가 완성되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D조까지 결정되었죠. 이제 추첨통에 남은 선수의 이름은 두 사람 밖에 남지 않았으니까요.
―C조에서 이제운 선수와 맞붙게 되는 선수는!!!
한쪽 눈을 슬쩍 떠 화면을 바라보았다.
―정명혁 선수입니다!
―결승전 리매치네요. 그때는 이제운 선수가 정명혁 선수를 이기며 우승을 차지했었거든요?
다행이다!
이제운의 상대는 정명혁으로 결정되었다.
난 가슴을 쓸어내렸다.
자연스레 내 상대는 허영우로 결정되었다.
육룡에 속해 있고 준우승을 2회나 한 선수이긴 하지만 리쌍에 비하면 훨씬 나았다.
“16강엔 송병호 만나더니 8강에선 허영우네? 나무전자 선수들 연달아 만나는구만.”
그러고 보니 그러네? 중계진들도 그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D조는 자연스레 이승우 선수와 허영우 선수가 대결을 펼치게 되었네요.
―이승우 선수 16강에서 송병호 선수를 꺾고 올라왔거든요? 허영우 선수가 팀 동료의 복수를 할 수 있을지.
―복수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을 수도 있죠.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내일 프로리그에서 아스트로와 나무전자가 3라운드 마지막 경기를 갖지 않습니까?
―아. 그렇군요. 거기서 송병호 선수와 이승우 선수가 리매치를 할 수도 있습니다.
―송병호 선수 이를 제대로 갈고 있겠네요.
죄송하지만 내일 복수전이 펼쳐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제가 경기에 나서지 않거든요.
***
“모두 잘 다녀와요.”
“그래. 숙소 잘 지키고.”
“알겠습니다!”
12시가 되기 전 팀원들이 부랴부랴 숙소 밖으로 나섰다. 나무전자와의 프로리그 경기를 치르기 위해서였다.
이미 감독님께 말씀드려 엔트리 제외가 된 난 팀원들을 배웅했다.
역시 오늘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녀석들도 나와 함께 서있었다.
나를 보는 눈빛이 오늘도 무언가를 바라는 눈빛이다.
당연히 사 줘야지.
당연히!
부담스러운 건 전혀 없었다.
연봉보다 많은 돈을 승리 수당으로 받고 있었으니까.
예전엔 몰랐다.
8강, 4강에 올라가면 승리수당과 더불어 진출 수당이 나온다는 것을.
하긴 알 수가 없지.
그땐 예선조차 참가 못할 때인데 말이지.
생각보다 그 금액이 컸다.
“오늘도 맛있는 것 먹자!”
“고마워요, 형!”
“감사합니다!”
애들의 웃는 얼굴을 보니 나까지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원래 인생은 얻은 만큼 베풀고 사는 거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엄마가 그렇게 말했었다.
애들에게 적당히 먹을 것을 시키라고 한 다음 소파에 앉았다.
오늘 나무전자와 경기가 끝나면 프로리그 3라운드가 끝이 난다.
위너스 리그 반환점을 도는 셈이다.
이제 4라운드까지 하게 되면 포스트 시즌에 돌입하게 된다.
현재 우리 팀의 성적은 8승 2패.
저번시즌 3라운드 성적의 정반대라고 했다.
그럼 그때 2승 8패를 했다는 건데…….
팀 분위기가 말이 아니었겠구먼.
4라운드에서 반타작만 해도 포스트 시즌에 진출할 수 있…… 흠. 이건 아닌가?
이번 위너스리그는 작년과 달리 최상위권과 하위권이 확실히 분리되어 있다.
분포가 모래시계 같은 모양이라고 해야 할까?
S1과 CT가 각각 9승 1패로 1, 2위를 달리고 있었고 그 뒤를 우리 팀이 8승 2패로 바짝 뒤쫓고 있다.
화성이 7승 3패로 4위였고 오늘 우리와 경기를 펼치는 나무전자가 6승 4패로 5위를 달리고 있었다.
화성과 4위 싸움을 벌이고 있는 나무전자 입장에선 오늘 경기가 매우 중요할 것이다.
3위에 올라 있는 우리 팀을 끌어내림과 동시에 자신들이 7승 4패로 치고 올라갈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으니까.
일단 여기까지가 포스트시즌 진출권이 유력한 팀들이라고 볼 수 있다.
4라운드에서 말도 안 되는 성적으로 망가지지 않는 한 말이다.
득실에서 밀리지만 나무전자와 같은 6승 4패인 KG도 있구나.
반대로 1승 9패를 거두고 있는 육군이나 9연패 중인 폭스는 포스트 시즌 진출이 좌절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은 경기에서 전승을 한다고 해도 불가능에 가깝다. 솔직히 객관적인 전력도 전승할 정도도 아니고.
현재 가장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건 단연 폭스였다.
전패를 하고 있다는 것도 컸지만 육군이 거둔 1승이 폭스한테 거뒀다는 것이 더 컸다.
폭스 선수들 입장에선 정말 자존심이 상할 것이다.
그래도 뭐 어쩌겠어. 진 건 진건데.
“먹고 싶은 거 골랐어?”
“점심이니까 간단하게 짜장면 어떨까요?”
“짜장면만?”
“탕수육도 있으면 좋고요.”
그렇게 말하곤 해맑게 웃어 버리는 동주.
귀엽구만.
“메뉴판 좀 가져와 봐.”
말이 끝남과 동시에 메뉴판을 가져오는 동주. 전에 남아 있던 강식, 형모, 동주 중 형모는 내 대신 경기를 출전하기 위해 나섰고 나머지 둘은 경기장에 남아 있었다.
“C세트로 시키자.”
“C세트요?”
C세트라는 말에 아이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C세트는 단순히 탕수육만 있는 게 아니라 각종 중화요리가 포함되어 가격이 꽤 나가는 세트였다.
사실 나도 따로는 먹어 본 적이 없다.
그러니 이럴 때 한번 먹어 봐야 하지 않겠어?
“이왕이면 맛있는 거 먹자.”
“감사합니다!”
“형! 사랑해요!”
아이들의 격한 반응에 흐뭇한 미소가 절로 떠올랐다.
***
―나무전자에서 1세트에 나서는 선수는 허영우 선수입니다.
―처음부터 강력한 선수를 내보냈습니다.
―사실 나무전자의 위치가 많이 불안하거든요? 최대한 승점 손실 없이 승리를 따내겠다는 마인드입니다.
오. 처음부터 허영우가 나왔구나?
MSL 8강에서 맞붙게 될 상대라 그런지 더 눈길이 갔다.
나무전자는 송병호와 허영우가 버티고 있는 용족 라인이 강력한 팀이다.
육룡을 둘 보유한 팀이기도 하고.
그래서 보통 S1과 많이 비교되곤 한다. S1도 육룡을 둘 보유하고 있었으니까.
사실 나무전자는 뱅허를 제외하고 나머지 종족은 그 힘이 약한 편이다.
환국에서 에이스라고 불리는 이성표는 이재성처럼 마수전은 뛰어나지만 극악의 용족전을 보유하고 있다. 즉 상대 종족에 따라 승률이 널뛰듯 달라진다는 말이었다.
결국 확실한 1승 카드로 생각하기엔 부족했다.
박철호 역시 마찬가지다.
공격적인 운영으로 빛을 발하고 있긴 하지만 언제까지 그 스타일이 통할지는 미지수다.
또한 경기 중에 흥분을 하면 냉철하게 판단을 하지 못하고 시야를 가린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질주한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마수라인은 더 암울하다.
내 데뷔전 상대였던 차인환이 나무전자에서 가장 성적이 좋은 마수였다.
몽환마수라는 꽤나 멋진 별명을 지니고 있었는데 마마전에서 거의 볼 수 없던 군락 운영을 활용하여 결승까지 올랐을 때 붙여진 별명이었다.
그 밖에 타 종족전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전략을 들고 나와 승을 챙기며 본인의 별명을 확고히 했다.
사실 이번에 만나서 복수 아닌 복수를 하고 싶었는데 아쉽게 되었다.
지금 만나면 무조건 이길 수 있는데 말이다.
어쨌든 타 종족이 약한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뱅허가 워낙 강력한 덕에 나무전자는 프로리그 2회 우승, 위너스 리그 1회 우승을 차지한 명문 중의 명문 팀이었다.
그런 나무전자에서 1세트에 내보낸 선수는 허영우.
나름 강력한 수를 앞서 배치했다.
최소한 2킬 이상을 따내겠다는 의미다.
―아스트로에선 김승대 선수를 선봉으로 내놓았습니다.
―아무리 전장이 마수에게 좋은 곳이라고 해도 객관적인 전력을 비교하면 아무래도 허영우 선수의 손을 들어 줄 수밖에 없죠?
―그렇습니다. 최근 허영우 선수 MSL 8강에 진출하면서 다시 살아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거든요?
그에 맞서는 우리팀 선수는 승대였다.
중계진은 우려를 표하고 있었지만 난 별로 걱정되지 않았다. 승대의 용족전 실력을 믿기 때문이었다.
전장 역시 마수가 용족을 상대하기에 어렵지 않다.
승대의 용족전 운영이 최근 좋아졌다. 도가 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말이다.
다 내 덕이라는 말을 하고 싶지만 원래 자기 칭찬은 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으니 참겠다.
―어떻게 보면 나무전자에선 오늘이 기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스트로에서 이승우 선수가 오늘 결장했거든요?
―분명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송병호 선수 입장에선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인터뷰 내용에서 알 수 있든 리매치를 상당히 원하고 있었거든요? 반드시 복수하겠다는 마인드였는데 이승우 선수가 결장하면서 매치가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허허. 굉장히 무섭구만. 인터뷰 기사는 나도 봤다.
송병호가 도끼눈을 뜨고 있는 모습도 함께 말이다.
이번 프로리그 경기에서 반드시 나를 만나고 싶다며 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도발을 해 왔다.
나도 나가고 싶었다.
근데 어쩌겠어?
신들의 전쟁 매니저가 말썽인데.
다음 위너스 리그 땐 절대 피하지 않고 나가겠습니다요.
―오늘도 뱅허의 법칙이 성립할 것인지! 1세트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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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우가 안나왔으니 다음편이면 나무전자전 끝나고 새로운 에피소드 들어갑니다.
내일도 역시 2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그럼 모두 좋은 하루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