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59 Game No. 159 명불허전. =========================================================================
Game No. 159
경기를 보는 동안 회식이 진행되었다.
1시간 반이 지났음에도 상 위에 놓인 음식은 거의 절반 가까이 남아 있었다.
너무 많이 시켜서 못 먹는 것이냐고?
그럴 리가.
우리 팀원들의 식성을 잘 모르는 사람이 하는 소리다.
평소라면 이 정도 양은 1시간 전에 다 해치웠을 거다. 하지만 오늘은 많은 팀원들이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아직까지 음식이 남아 있는 이유는 단 하나.
“지린다. 지려.”
“저게 진짜 사람이 하고 있는 거라고? 2명 들어가 있는 거 아냐?”
“네 눈으로 보고도 모르냐?”
“야. 내가 진지하게 말한 건 줄 알아?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눈치 없기는.”
“쉿쉿. 경기 내용 놓친다.”
리쌍록에 눈을 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음식을 먹으려고 하면 계속 명장면이 펼쳐지는 통에 음식을 입에 넣을 시간이 없었다.
그저 숟가락 위에 올리고 있거나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그 먹을 것 좋아하는 승대조차 입을 떡 벌린 채 중앙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녀석의 종족이 마수였기에 더욱더 그런 것 같았다.
확실히 주종이 용족인 팀원보다 마수나 환국인 이들이 경기에 더 집중하고 있었다.
이영우와 이제운이 하는 플레이가 얼마나 수준 높은 것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잠깐 시선을 돌리는 것만으로 경기 양상이 훅훅 바뀌었다.
보는 것만으로 따라가기 힘들 정도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은 틀렸다.
이건 뭐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산해진미가 몰려 있는 것 같다.
―정말 박빙이네요. 박빙입니다.
―최고의 라이벌이라 불릴 만합니다!!
―매 경기가 역대급입니다. 내가 이영우다! 내가 이제운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중계진들의 흥분한 목소리에서 경기장 분위기가 전해져 왔다.
사우나를 방불케 하는 뜨거운 열기가 가득 차 있는 경기장.
―어느 누가 결승에 올라가도 그 자격이 충분히 있습니다! 역대급 경기들이 연달아 나오고 있습니다.
―누가 최강의 선수들 아니랄까 봐 정말 박 터지게 싸우네요. 박 터지게!
서로 승패를 나눠가지며 온 5세트.
이제 마지막 경기의 승자가 결승에 진출하게 된다.
엄재웅 해설위원님의 말처럼 1~4세트 전부를 역대급 경기라 말해도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경기력을 쏟아 낸 두 선수였다.
첫 시작은 이제운이 끊었다.
5일꾼 마견 러시.
4강에서 쉽게 선택할 수 없는 빌드였다.
뛰어난 마견 컨트롤로 가볍게 1세트를 가져간 이제운.
이영우 역시 그냥 당하고 있진 않았다.
일꾼 비비기와 궁병 컨트롤로 많은 수의 마견을 줄여 주었다.
서로의 상대가 서로만 아니었다면 각자 이겼을 만한 경기였다.
2세트에선 이영우가 먼저 움직였다.
전진 8도감.
1세트의 복수였다.
1, 2 세트가 초반에 끝났다면 3, 4 세트는 후반 운영 싸움으로 전개되었다.
3세트는 이제운이 미친 마수 전략으로 승리를 따냈고 4세트는 장기전 끝에 이영우가 승리를 따냈다.
궁병이 미친 듯이 날 뛰고 금와가 정신없이 마수의 본진과 멀티를 농락했다.
이 둘의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옵저버조차 화면을 놓칠 정도였다.
그 결과 2:2란 스코어가 나왔다.
산 넘어 산이라는 말이 어떤 말인지 오늘 확실히 느낀다.
김택윤이라는 용족 최강자를 넘어서면 저 둘 중 하나를 결승전에서 만나게 된다는 소리지?
허허허.
헛웃음이 절로 나오는구나.
―그럼 마지막 5세트 전장 왕도로 떠나 보겠습니다.
그러는 사이, 둘의 운명을 가를 대망의 5세트가 시작되었다.
5세트는 정말 치열했다.
초반부터 중반, 후반까지 한시도 쉬지 않고 전투가 벌어졌다.
서로가 가진 모든 걸 쏟아 내는 것 같았다.
숨이 멎을 것 같은 긴장감에 나도 모르게 두 주먹을 움켜쥐며 경기를 시청했다.
어느새 경기는 30분이 넘는 장기전이 되었다.
그렇게 얼마나 싸웠을까?
―아. 밀려요. 밀립니다.
―여기 밀리면 이제운 선수 더 이상 자원을 먹는 곳이 없죠?
―폭군이어도 먹어야 싸웁니다. 병력이 있어야 싸웁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 큰일 났어요. 마지막 병력. 이게 전부입니다.
이영우가 서서히 유리해지기 시작했다.
전투에서 조금씩 계속 이득을 보더니 중요한 자원 줄을 끊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제운이 마지막 병력을 끌어모아 총공세를 떠났다.
이제 경기는 간단해졌다.
막으면 이영우가 이긴다.
―이영우 선수 막습니다. 막아요.
―이제운 선수 이제 할 게 없죠. 아. 너무 아쉽습니다. 4경기의 패배가 너무 뼈아프게 다가옵니다.
결국 이제운이 GG를 선언하며 4강의 대단원이 막을 내렸다.
―이영우 선수! 저번 시즌에 이어 또 다시 결승에 오르는 데 성공합니다.
―2연속 결승 진출의 쾌거를 달성해 냅니다.
―또 한번 전성기를 맞이한 느낌입니다. 숙적 이제운을 꺾고 2연속 결승 진출하네요.
―이제운 선수 정말 아쉽겠어요. 저번 시즌 OSL에선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거든요. 오랜만에 온 기회가 이렇게 날아갑니다.
―상대가 안 좋았죠. 결승에서 만날 상대를 4강에서 만났으니까요.
―이로써 결승의 한쪽 날개는 환국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이영우가 5세트를 가져가며 결승 진출을 확정지었다.
2연속 결승 진출.
박수가 절로 나오는 기록이다.
과거 한 해에 열리는 모든 리그 결승전에 올라간 적도 있는 이영우라 사람들이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이지, 실상 2연속 결승 진출도 엄청난 기록이었다.
나도 다음 주에 저 자리에 설 수 있을까?
화면엔 이영우가 승자 인터뷰를 하는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난 이만 가야겠다.”
가장 먼저 현우 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우 형은 내일 MSL 16강 경기가 있다. 방금 이영우의 경기에 많은 자극을 받은 듯 두 눈빛이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슬슬 정리합시다!”
다른 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피가 끓어오르는 듯 빠르게 음식을 정리한 후 연습실로 향했다.
유일하게 승대만이 음식을 보며 입맛을 다셨지만.
“에효. 가야겠다.”
그 것도 잠시 이내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그렇게 모두가 향하는 곳은 연습실이었다.
나 역시 연습실로 향했다. 실제 경기를 하며 연습할 순 없겠지만 리플레이 분석하며 감을 살렸다.
그 후엔 현우 형의 연습을 도와주었다.
직접 상대로 연습 경기를 해 주지 못하는 것이 조금 미안했다.
다행히 형우 형은 리플레이 분석을 도와주는 것만으로 고마워했다.
“여기서 이렇게 하는 것보다 타이밍 치고 나가는 게 더 압박이 된다는 거지?”
“네. 용족 입장에서 환국이 늘어지는 게 눈에 보이면 굳이 병력 안 뽑아요. 그냥 멀티 확 먹어 버리지.”
현우 형의 상대는 김우현.
택뱅에 비해 급이 조금 떨어지긴 하지만 어쨌든 육룡에 포함되어 있는 선수다.
우승을 차지한 적은 없지만 결승 무대에 오른 적이 있다.
결코 방심할 수 없는 상대였다.
“그럼 후반을 노리는 걸 안 들키고 속일 수만 있다면 괜찮겠네?”
“그러면 좋죠. 근데 김우현 플레이가 꼼꼼한 정찰 후 견제를 통해 이득을 얻은 스타일이라서 속이는 것에 집중하는 것보다 그냥 단단하게 플레이 하는 것이 더 나아 보여요.”
김우현의 경기 영상을 보며 우린 의견을 나눴다.
현우 형이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우리는 몇 시간 동안 함께 경기를 분석했다.
***
다음 날.
팀원들이 다시 한번 대형 스크린 앞에 모였다.
MSL 16강 마지막 경기가 열리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오늘로써 16강이 모두 끝나고 8강에 돌입하게 된다.
32강이라는 한 라운드를 OSL보다 더 치러서 그런지 상대적으로 진행이 매우 늦다.
OSL은 이미 결승 진출자가 1명 나온 상황이지만 MSL은 아직 8강 진출자 조차 확정되지 않았다.
그나마 빠르게 8강, 4강이 진행되기에 결승전 자체는 일주일 정도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어제와 달리 긴장한 이들이 꽤 있다. 첫 번째 경기에 현우 형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현우 형에게 오늘 경기는 매우 중요하다. 이기면 시드를 받게 되니까.
OSL은 16강에서 떨어지면서 이미 시드 확보에 실패했다. 시드를 확보하느냐, 확보하지 못하느냐의 차이는 꽤 크다.
상대는 김우현.
방심할 수 없는 상대다.
밤 늦게까지 연습했다고 들었다. 오늘 점심쯤 경기를 하는 걸 슬쩍 지켜봤는데 컨디션이 상당히 좋아 보였다.
“진출했으면 좋겠다.”
“진짜! 어제 현우 형, 감 장난 아니게 좋았는데. 오늘도 그러면 이길 수 있을 듯.”
모두가 간절히 현우 형의 진출을 기도했다.
―박현우 선수 8강 진출에 성공합니다.
―2:1 승부. 정말 아슬아슬했습니다.
―마지막 경기에서 과감한 진출 너무 좋았습니다.
그리고 내 8강 진출에 이어 현우 형까지 8강 진출에 성공했다.
김우현을 아슬아슬하게 2:1로 꺾은 것이다!
첫 세트를 내주며 위기를 맞이하는 듯했지만 연이어 2세트를 따내며 8강 진출에 성공했다.
이로써 우리 팀엔 MSL 8강 진출자가 2명이 되었다.
이 자체도 팀 내 최고 기록이라고 했다.
여태 단 한 번도 2명의 선수가 8강에 오른 적이 없다고 했다.
질투나 시샘이 날 법도 하련만 모든 팀원들은 마치 자신의 일마냥 현우 형의 8강 진출을 기뻐했다.
내가 진출했을 때도 이렇게 기뻐했겠지? 이렇게 순수하고 좋은 사람들에게 별것도 아닌 일 가지고 화를 낼 뻔했다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자, 모두 현우 형이 오기를 기다립시다!”
연호가 자리에서 크게 외쳤다.
앞으로도 이렇게 좋은 일만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뒤이어 치러진 윤영태와 이재성의 경기는 윤영태가 2:0으로 가볍게 승리하며 8강 진출을 확정지었다.
사실 예견된 수순이었다.
이재성은 최강의 마수전, 준수한 환국전, 최악의 용족전 승률을 지니고 있었다.
얼마나 용족전을 못하면 용족전 막장의 줄임말인 용막이라고 까지 불릴까?
솔직히 신기하기도 했다.
마수전에선 이영우 같은 포스를 보이더니 용족전에선 허무할 정도로 어이없게 패배하는 경우가 많다.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마지막 16강 경기가 끝나고 조 추첨이 바로 이어졌다.
“누구랑 붙었으면 좋겠냐?”
연호의 질문에 8강 진출자 면면을 살펴봤다.
일단 형규와 현우 형은 피하고 싶다. 친한 사람과 경기를 치르는 것만큼 곤혹스러운 상황도 없었다.
그렇다면 남는 선수는 이영우, 이제운, 정명혁, 허영우, 윤영태.
흠. 일단 리쌍과 정명혁도 8강에서 만나고 싶진 않았다.
“허영우나 윤영태 만났으면 좋겠다.”
차라리, 같은 종족인 허영우나 윤영태가 경기를 치르는 것이 나아 보였다.
일단 [날빌러]가 가장 잘 먹히는 종족전이었다.
이영우와 이제운과 경기를 치러 봤는데 [날빌러]가 크게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오직 다른 스킬과 실력으로 경기를 치러야 하는데 아직은 부담스러웠다.
“리쌍 만나면 진짜 재밌겠다.”
“그런 말은 농담으로도 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