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58 Game No. 158 리쌍록. =========================================================================
Game No. 158
딱 숙소에 도착할 때쯤 경기가 끝났다. 참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8강엔 누가 진출했냐고? 너무 뻔한 결과가 나왔다.
―이영우 선수 왜 갓영우라고 불리는지 알 것 같습니다.
―전혀 흔들림이 없습니다. 1세트에 지긴 했지만 뭐 그런 거 가지고? 2, 3 세트 이기며 되잖아. 이렇게 정말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더 놀라운 건 그 생각을 실천할 수 있는 실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죠.
어차피 우승은 이영우라는 농담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2, 3세트를 내리 잡으며 이영우가 8강 진출에 성공했다.
화면에 비친 김재만의 얼굴엔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있었다.
1세트를 패배한 이영우는 무서웠다.
2, 3세트 김재만이 숨도 못 쉴 정도로 거세게 몰아쳤다.
보는 내가 숨이 턱 막힐 정도였으니 실제 경기를 펼친 김재만은 오죽할까?
―오늘 경기 결과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김현민 캐스터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오늘 경기 결과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흐흐. 밝게 빛나는 내 이름을 보는 순간 바보 같은 웃음이 절로 새어 나왔다.
―첫 번째 경기에선 이승우 선수가 두 번째 경기에선 이영우 선수가 각각 송병호와 김재만 선수를 잡고 8강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확실히 기세라는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두 선수 모두 OSL 4강에 진출해 있거든요?
―아마 요즘 종족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하고 있는 선수는 꼽는다면 이 두선수의 이름이 절대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 이승우 선수의 성장이 놀랍죠. 프로리그의 활약을 발판삼아 개인리그도 정복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거든요? 이 선수 양대리그 동시 진 로열로더에 도전하는 중입니다. 사실 32강이나 16강까진 이 이야기를 잘 꺼내지 않았던 이유가 아직 우승을 논하기엔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었거든요? 하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8강이면 충분히 우승 가시권에 들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양대 진 로열로더.
그 누구도 가지고 있지 못한 기록.
만약, 정말 만에 하나 내가 하게 된다면 유일무이한 기록이 되어 버린다.
말 그대로 스페셜 원이 되는 것이다.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단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짜릿한 전율이 온몸을 타고 흘렀다.
눈을 감고 우승을 차지한 모습을 떠올렸다.
과거 내가 프로게이머의 꿈을 갖게 해 준 그 무대에 올라 트로피를 번쩍 들어 올리고 싶다.
여태 그래 왔던 것처럼 차근차근 한 계단씩 밟고 올라간다면 언젠가 영광의 자리에 앉을 수 있겠지?
***
다음 날.
침대에서 일어나는 데 몸이 무겁다.
어제부터 몸 상태가 조금 이상하더니 미리 신호를 준 거였나 보다.
어젯밤 숙소로 오자마자 바로 씻고 침대에 누웠다.
맛있는 거 시켜 먹자고 연호가 유혹했지만 너무 피곤해서 그럴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잘한 일 같다.
어제 기름진 음식까지 먹었다면 속까지 탈 날 뻔했다. 손바닥으로 이마를 만져 봤지만 열은 느껴지지 않는다.
목도 아프지 않고 기침, 콧물도 없는 걸로 봐 감기는 아닌 듯싶었다.
하긴 7월에 무슨 감기야.
더워 죽겠는데.
그럼 뭐지?
그때 상태창이 번쩍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보통 업적 달성이나 레벨 업 같은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푸른빛이 번쩍였는데.
확실한 건 어제 진출에 따른 보상은 아니다.
혹시 보상이 주어질까 싶어 어젯밤 꼼꼼하게 확인했으니까.
즉 이번 푸른창은 밤새 일어난 일이었다.
고민해 봤자 답은 안 나온다.
바로 확인해 보자.
난 크리스마스 날 아침 방에 걸어 놓은 양말을 확인하는 어린아이의 기분으로 상태창을 열었다.
[피로.]
[휴식이 필요합니다. 휴식을 취해 주세요.]
[효과 : 최근 너무 많은 경기를 펼친 결과 그 결과 몸에 피로가 누적되었습니다. 충분히 휴식을 취해 주세요. 혹사 시 부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3일간 스킬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중간에 경기를 할 시 시간이 다시 초기화됩니다.]
……이런 것도 있었어?
상태창을 확인한 난 할 말을 잃었다. 거울을 보니 실망 가득 한 얼굴이 보였다.
혹시 좋은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였다. 상태 이상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상태 이상엔 처음 걸려 본다. 3일간 스킬을 사용할 수 없다니.
중간에 경기를 하면 다시 시간이 초기화된다니.
정말 끔찍한 소리였다.
청천벽력도 이런 청천벽력이 없구나.
하긴 그동안 엄청난 경기수를 소화했다.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할 정도의 스케줄이라고 해야 할까?
결국 신들의 전쟁 매니저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렸고 3일간 꼼짝없이 경기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송병호 전이 끝난 후 상태 이상을 걸린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어느 정도 예상이 가긴 했다.
그간 쉼 없이 달려왔다.
이대로 경기를 한도 끝도 없이 펼치다간 신들의 전쟁 매니저가 퍼져 버리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날이 온 것뿐이었다.
그나마 3일의 휴식만 취하면 다시 원상태로 복구되니 다행이었다.
어차피 무얼 한다고 달라질 것이 없다. 이럴 땐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상책이다.
그래도 확인해 볼 것이 하나 있지.
난 곧바로 달력을 살폈다.
일정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3일간 개인리그는 없었지만.
“에휴, 하필.”
프로리그 일정이 잡혀 있었다.
상대는 나무전자.
어제 이긴 송병호가 속해 있는 팀이었다.
사실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무리하게 경기를 나갈 이유가 없다.
예전보다 능력치가 많이 오르긴 했지만 스킬 없이 나가는 건 좀 불안하다.
팀에 방해가 될 수도 있었다.
오히려 확실히 휴식을 취하고 상태 이상을 회복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좋았다.
나무전자 전이 프로리그의 끝이 아니었으니까.
또한 당장 다음 주 금요일에 김택윤과 4강 경기가 잡혀 있다.
적어도 그 전까진 상태 이상을 회복해야 했다.
스킬 없이 김택윤과 오전제?
으.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아쉽지만 할 수 없다.
나무전자전에 결장하는 수밖에.
감독님께 말씀드리면 아마 흔쾌히 빼 주실 것이다. 전부터 말씀하셨다. 휴식이 필요할 땐 언제든지 이야기하라고.
뒤이어 성적도 중요하지만 선수의 컨디션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을 덧붙이셨다.
그때 살짝 감동했던 건 비밀.
난 바로 감독실로 향했다. 그리고 나무전자전에 쉬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괜찮다는 대답이 돌아올 걸 알고 있음에도 왜 이렇게 심장이 두근거리는지 모르겠다.
열이 펄펄 끓는 상태에서 조퇴를 하러 교무실에 간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렇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감독님의 대답을 기다렸다.
물론 감독님의 대답은 간단했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이것이 전부였다.
이유 같은 건 전혀 묻지 않으셨다.
대신 오늘 밤 OSL 4강전을 보면서 팀 회식하는 건 괜찮냐고 물으셨다.
그건 괜찮을 것 같았다.
물 먹은 솜처럼 몸이 무겁긴 해지만 속이 안 좋은 건 아니었다.
다시 한번 어제 안 먹고 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설프게 우리끼리 돈 모아서 먹는 것보다 감독님이 사 주시는 것이 훨씬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었으니까.
괜찮다는 의사를 밝힌 후 난 감독실을 나왔다.
***
오늘은 연습실에 들어가 경기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피로]가 말하는 경기에 연습 경기가 포함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저 다른 팀원들의 리플레이 분석을 도와주거나 휴식을 취하며 시간을 보냈다.
“자. 다들 OSL 보러 가자!”
현우 형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팀원들이 우르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펼쳐지는 OSL 4강이 리쌍록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음식이 먼저일 것이다.
뒤따라 가 보니 거대한 상에 엄청난 음식이 올라와 있었다.
최근 겪은 CT전 패배에 대한 위로와 내 8강 진출을 축하하는 의미가 한데 섞여 있는 것이었다.
OSL 4강전이 오늘 펼쳐진다.
그러고 보니 이영우는 이틀 연달아 경기를 펼치는 거네?
단순히 프로리그 경기도 아니고 양대리그 다전제를 연달아 펼치다니.
강철 체력이구나. 강철 체력.
오늘 경기는 나에게도 의미가 있는 경기다.
설레발일지도 모르지만 결승전 상대가 결정 나는 자리였으니까.
이영우와 이제운 둘 중 편한 쪽을 고르라면.
……못 고르겠다.
둘 다 불편하다.
종족 측면에선 이영우가 그나마 낫지만 다전제로 경기를 펼치면 어떻게 판짜기를 해야 할지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그건 이제운도 마찬가지였다.
상성상 앞서있는 마수를 다전제에서 잡으라고?
그것도 이제운을?
할 말이 없다.
할 말이.
둘의 실력 차는 거의 없다.
승부가 컨디션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이 높았다. 실제로도 많이 그래 왔었다.
임주혁과 홍진우 이후 최고의 라이벌 매치라 불리는 것이 바로 리쌍록이었다.
스토리 측면에선 임주혁과 홍진우의 임진록이 더 매력적이었지만 순수 경기력을 보면 리쌍록의 손을 들어 주고 싶었다.
OSL의 마스코트라고 할 수 있는 엄전김 중계진의 인사로 OSL의 막이 열렸다.
카메라가 경기장 전체를 비춰 주었는데 리쌍록이라 그런지 수많은 사람들이 콩나물처럼 빽빽하게 서 있었다.
―오늘 열기가 정말 장난 아닙니다!
―오늘 4강에 앞서 넉넉하게 자리를 마련했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와주신 덕분에 발 디딜 틈 없이 자리가 꽉 찼습니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했는데 이렇게 안했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지금 밖에 따로 마련 된 스크린에서만 거의 100분께서 보고 계시고 그마저 안 돼서, 못 보고 돌아가신 분들도 꽤 많거든요? 경기장까지 찾아 주셨음에도 지켜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분들에게 사과의 말씀 올리겠습니다.
와. 쩐다, 쩔어!
경기장에 들어오지 못하고 돌아간 사람들도 있다니.
확실히 둘의 이름값은 엄청났다. 경기를 펼치는 것만으로 경기장을 마비시켜 버렸다.
온게임TV 입장에서 최악의 사태는 3:0으로 끝나는 것이다.
더욱더 최악은 한쪽이 3연속 날빌을 사용해 그런 스코어가 나오는 것이고.
과거 비슷한 일이 있었다.
3경기 연속 망루 러시를 갔던 3연망 사건.
경기 시작과 동시에 시킨 치킨이 오기 전 3경기가 모두 끝나버린 전설의 경기다.
나 역시 피해자 중 1명이지.
경기 결과를 보면서 뜨거운 치킨을 먹었을 때가 생각이 난다.
한 번 일어난 일이 두 번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었다.
반대로 가장 원하는 건 누가 이기든 풀세트 접전을 펼치는 것이다.
누가 결승에 오르든 포장엔 문제없다. 각각 종족 역대 최강의 선수들이었으니까.
그저 재미있는 경기만 만들어 주면 그만이었다.
―자. 양 선수 최근 분위기가 조금 주춤하고 있습니다만 오늘 경기 결과를 통해 한 선수는 다시 살아날 겁니다.
두 선수의 기세가 예전만큼은 아닌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과거 전성기 시절 본인들과 비교해서 그런 것 일뿐 다른 선수들과 비교하면 여전히 다른 레벨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점은 엄재웅 해설 위원님이 정확히 짚어 주셨다.
―사실 주춤하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 굉장히 준수한 성적을 내고 있습니다. 양 선수 모두 올해 승률이 70%가 넘거든요? 뭐 물론 90%의 승률을 내고 있는 이승우 선수가 있긴 하지만 이승우 선수를 제외하고 이 두 선수보다 승률이 높은 선수는 없거든요.
갑자기 나온 내 이름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입꼬리가 실룩거리는 걸 억지로 참았다.
어디선가 봤다.
이럴 때 대놓고 기뻐하는 것보다 아무렇지 않아 하는 것이 더 멋있어 보인다는걸.
좋은 기록으로 언급되니 굉장히 뿌듯했다.
―맞습니다. ‘리쌍의 라이벌은 스스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모든 기록을 파괴하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자. 양 선수 모두 들어왔습니다. 그럼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전현석 캐스터님의 힘찬 외침과 함께 드디어 4강 첫 번째 세트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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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여담이지만 최근 2달동안 이승우보다 많은 경기를 펼친 선수는 없습니다.
추가로 이승우보다 많은 승을 챙긴 선수도 없습니다.
즉 최근 2달 기준으로 이승우가 다전왕, 다승왕, 승률왕 3관왕 진행중이라는거죠.
역시 이승우!
장하다 이승우!
내일 찾아뵙겠습니다.
그럼 모두 좋은 하루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