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54 Game No. 154 승리보다 중요한 것. =========================================================================
Game No. 154
나는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CT와의 경기에서 우리는 패배했다.
솔직히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영우를 잡은 순간 우리 팀이 진다는 것은 상상도 되지 않았다.
경기가 끝난 직후 결과를 받아들이기 너무 힘들었다.
때문에 쉽사리 경기장을 빠져나올 수 없었다. 꿈을 꾸는 것처럼 귀가 웅웅 울리고 눈앞이 어지러웠다.
혹시 몰래카메라는 아닐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마저 들었다.
물론 그럴 리는 없었다.
모든 건 현실이었다.
우리 팀은 패배했다.
그것도 역올킬로.
3킬을 해냈을 때만 해도 우리 팀이 이기는 건 당연해 보였다.
분위기도 좋았고, 설레발 따위가 아니었다. 내가 해낸 3킬엔 이영우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4:3 역전패를 당한 것이다.
순간 화가 났다.
우리 팀의 3명이 나섰지만 김대형 하나 잡지 못하고 3킬을 추가로 헌납하며 상대에게 역올킬의 영광을 안겨 주었다.
경기가 끝난 직후 분위기는 다시 떠올리기 싫을 정도였다.
모든 이들이 CT와 김대형의 이름을 외쳤다.
우리 편은 남아 있지 않았다.
모두 CT의 편이었다.
어안이 벙벙해졌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불과 1시간 전만해도 나를 응원했던 사람들인데.
나에게 쏟아졌던 스포트라이트는 그렇게 김대형에게 넘어갔다.
사실 뭐 그런 것쯤은 상관없다.
어차피 내가 바란 건 팀의 승리였지, 개인의 영광이 아니었으니까.
내가 3킬을 했음에도 팀이 승리하지 못한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 순간 뜨거운 무언가가, 가슴 한구석에서 치고 올라왔다.
경기에서 패배한 후 아무 말 없이 난 차에 올랐다.
팀원들과 대화를 하고 싶지 않았다.
차 안이 고요했다.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심지어 감독님마저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슬쩍 보니 감독님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감독님도 이번 패배에 화가 나신 것 같았다.
“승우야, 잠깐 이야기 좀 하자.”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감독님이 감독실로 나를 부르셨다.
“네 3킬을, 다른 팀원이 지켜 주지 못해서 그렇게 화가 났었니?”
옷을 갈아입고 감독실로 가자마자 내가 들은 감독님의 말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
순간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솔직히 위로 같은 걸 해 주기 위해 따로 불러낸 줄 알았다.
네 승리를 지켜 내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지만 넌 정말 잘했다고.
이런 말을 해 주실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감독님의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오해했음을 깨달았다. 표정이 굳은 건 패배 때문이 아니었다.
패배한 후의 보인 ‘내 태도’ 때문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네, 솔직히 조금 화가 났습니다.”
난 솔직히 내 감정을 말했다.
감독님의 깊은 눈빛을 보니 거짓말해 봤자 아무 소용없을 것 같았다.
“제가 3킬이나 했습니다. 이영우도 잡아내고 박수천도 잡아내고 황정호도 잡아냈습니다. 김대형 1명만 잡으면 되는데 어떻게 다 질수가 있죠?”
마음에 있는 말을 모두 쏟아 내니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내 말을 중간에 자르지 않고 다 들으신 감독님이 답을 내놓았다.
“그럴 수도 있지.”
“네?”
전혀 의외의 답.
“그럴 수도 있다고.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다.”
그렇게 말하신 후 감독님이 푸근한 미소를 지으셨다.
“앉아 봐라. 내가 재미난 이야기 하나 해 주마.”
***
“1시간이나 지났는데 안 나오네?”
“그러게.”
“흠. 도대체 무슨 대화를 하고 있기에.”
아스트로의 감독실 앞에 세 선수가 나란히 서 있었다.
박현우, 신연호, 김승대였다.
그들이 기다리는 건 한참 전 감독실로 들어간 이승우였다.
이승우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 있었다. 그래서 연습실이나 본인의 방으로 향하지 않고 감독실 앞에서 망부석처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안으로 들어간 지 1시간이 넘게 지났건만 나올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말은 딱히 안 했지만 승우도 지금 꽤 화가 났을 거야.”
“그렇겠죠?”
“당연하지. 혼자 3킬이나 했는데.”
박현우가 말을 끝냄과 동시에 고개를 땅으로 떨궜다.
면목이 없다는 표현이 지금만큼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순간이 없을 것이다.
정말 미안했다.
이승우의 3킬을 지켜 주지 못한 것이.
주장이자 대장으로 나선 박현우는 더욱더 그랬다.
경기에 나서기 전 자신을 바라보던 이승우의 시선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믿음이 가득 담겨 있던 눈동자.
원해서 그런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그 믿음을 배신하고 말았다.
그때의 실망감이 얼마나 큰지 박현우는 잘 알고 있다.
과거 자신이 겪었던 일이었으니까.
원체 티를 내는 성격이 아니라 겉으로 꺼낸 적이 없지만 팀원들을 미워하던 때가 있었다.
1승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어차피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패배.
위너스 리그도 마찬가지였다.
2킬, 3킬을 해 봤자 연이어 나온 팀원들이 무너지면서 승리를 상대팀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언제나 주인공은 상대팀이었다.
자신은 그저 비운의 캐릭터였을 뿐이고.
입술을 지그시 깨무는 박현우를 신연호가 바라보았다.
미안함은 박현우 못지않았다.
‘바보같이 그 상황을 역전당하다니.’
바로 다음 경기에서 자신이 경기를 끝냈다면 이렇게 상황이 꼬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유리하다는 생각에 너무 들떴었다.
김승대 역시 한숨을 내쉬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그렇게 모두가 초조해 하고 있는 그 순간이었다.
덜컥.
감독실의 문이 열렸다.
***
“그럼 나가 보겠습니다.”
“그래, 오늘은 푹 쉬고.”
감독님과의 면담을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1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이렇게 오래 대화했다고?
감독님의 이야기에 빠져 시간이 흐르는 것도 몰랐다. 대화를 하면서 내가 얼마나 잘못 생각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이야기를 하시는 내내 감독님의 목소리는 일상적인 대화를 하듯 잔잔했다.
절대 혼내거나 화를 내는 목소리가 아니셨다.
그래서 좋았다.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반성할 수 있게 해 주셨으니까.
누구나 그럴 수 있다는 말이 가슴에 가장 와 닿았다. 실제로 내가 겪었던 일이기도 했고 말이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문을 열고 나온 순간.
어라?
왜 다들 여기 모여 있는 거야? 현우 형과 연호, 승대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미안하다. 우리가 조금 더 잘했어야 했는데.”
“분명 유리하게 경기 이끌었는데 거기서 판단 미스 해 가지고.”
“저도 마찬가지예요.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어요.”
현우 형을 시작으로, 연호와 승대가 기다렸다는 듯 연달아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들의 말엔 미안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 고개를 들어 그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확실히 깨달았다.
과거 몰수패를 당했을 때 얼굴과 연호의 얼굴이 순간 겹쳐 보였다.
아까 감독실에 들어가기 전에 봤던 내 얼굴이 떠올랐다.
그때 내 눈빛은, 몰수패 당시 나를 바라보던 코치님들처럼 매섭게 변해 있었다.
그 낯설음에 순간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날 정도로 평소와 너무 다른 눈빛이었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더니.
그게 딱 내 짝이었다.
감독님께서 해 주신 말씀이 다시 떠올랐다.
굉장히 좋은 이야기였고 도움이 되는 이야기였다. 만약 그런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면 난 이들을 미워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원망스러움은 이제 남아 있지 않다.
그런 마음이 들지 않게 해 주신 감독님이 너무나 고마웠다.
이들은 최선을 다했다.
다만 결과가 안 좋았을 뿐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완벽할 수가 없다. 오늘 이들이 실수를 했지만 다음엔 내가 실수할 수도 있다.
그 점을 생각하지 못했다.
“다음에 잘하면 되죠!”
난 환하게 웃으며 팀원들을 바라보았다. 무엇이 더 소중한지 잠시 잊고 있었다.
***
CT전이 끝난 지 3일이 흘렀다. 어느새 7월, 여름이 무르익어가는 시기가 되었다.
문득 그동안 있었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시간 참 빠르구나.
거의 매주 경기를 펼치다 보니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잘 모르겠다.
이번 주 역시 경기가 꽉 잡혀 있었다.
그래도 행복했다. 매일매일 연습실에서 눈치 보며 지내던 때보다 훨씬 나았다.
적어도 지금은 희망이 있었으니까.
CT전 패배로 살짝 어색해졌던 팀 분위기도 다시 괜찮아졌다.
조금 걱정했었는데 잘되었다.
어쨌든 8승 2패로 여전히 좋은 성적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 사건 이후 오히려 내가 팀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너무 예민하게 굴었던 것이 계속 마음에 걸린 것이다. 팀원들은 괜찮다며 그럴 수도 있다고 말했지만 내가 안 괜찮았다.
결국 어젯밤 팀원들을 위해 치킨을 쐈다.
그럴 필요 없다고 했지만 이래야 그나마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역시 치느님은 위대했다.
치느님이 강림하자 모두의 얼굴에 행복함이 떠올랐다. 역시 기적의 치느님.
연호의 말이 다시 확인되었다.
치느님은 항상 옳다는 그 말 말이다.
팀의 분위기는 다시 괜찮아졌지만 외부에서 싸늘한 반응이 조금 있었다.
아스트로는 이승우 원맨팀 이라는 내용을 담은 글이 우후죽순처럼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단순 커뮤니티만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이 아니다.
각종 이스포츠 관련 매체도 관련 기사를 메인에 걸었다.
내용은 별다른 것이 없었다.
그냥 내가 출전하지 않았던 KG전과 패배한 CT전에서 모두 패배했다는 것과 승리한 경기도 내 의존도가 굉장히 높다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그래프로 보니 프로리그에서 내가 얼마나 활약했는지 새삼 느껴진다.
아스트로 이적 후 프로리그에서만 거둔 성적이 22승 1패.
이거 정말 내 기록 맞는 거지?
당연히 나야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다른 팀원들은 그게 아닌 모양이다.
하긴 프로게이머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이상 이 기사를 그냥 넘기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승리에 보탬이 되겠다는 생각에 평소보다 연습 시간이 부쩍 늘어났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고 하지 않던가.
“연습은 많이 했어?”
“뭐 그냥저냥 했지.”
오늘 오후 5시.
MSL 16강 경기가 있다.
상대는 송병호.
용족의 총사령관이라는 웅장한 별명을 지니고 있는 동시에 역대 용족 선수 중 가장 많이 결승에 오른 경험이 있는 선수다.
결승 진출 횟수만 따지면 전 종족을 통틀어 송병호보다 많은 선수가 몇 없었다.
김택윤 역시 결승 진출은 4번밖에 하지 못했다. 물론 그중 우승을 3번이나 하긴 했지만.
반면 송병호는 무려 6번이나 결승에 진출했지만 그중 단 1번밖에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5번이나 준우승을 한 것이다.
물론 준우승도 잘한 것이지만 아무래도 우승자에 비해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특히 함께 최정상 라인으로 묶이는 택리쌍은 전부 3회 이상 우승을 차지했고 이영우는 6번이나 우승을 차지했다.
몇몇 송병호의 안티 팬들은 겨우 1회 우승가지고 택뱅리쌍 라인에 들어 있는 것이 말도 안 된다며 택뱅리쌍이 아닌 택리쌍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우승 커리어만 놓고 보면 송병호보다 나은 선수들이 있긴 하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었지만 택뱅리쌍 자체가 하나의 고유 단어였기에 빼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승 타이틀이 적긴 하지만 매년 결승 혹은 4강에 오를 정도로 꾸준한 개인리그 성적과 더불어 프로리그에서도 40승을 팀에 꼬박꼬박 챙겨 주었다.
승률 역시 마찬가지다.
데뷔 이래 가장 낮은 1년 승률이 65%일 정도로 고승률을 자랑한다. 물론 택리쌍처럼 한 해 승률이 80%가 넘거나 그에 육박한 적은 없지만 반대로 슬럼프 없이 꾸준한 활약을 펼쳤다.
송병호와 같은 시기에 데뷔한 선수 중 송병호처럼 정상의 자리를 지키며 아직까지 활동하고 있는 선수는 없었다.
그저 레전드로 불리며 대우를 받고 있을 뿐이었다.
사실 그들이 지금 현역으로 활동하는 것조차 박수를 받아 마땅했다.
대부분 은퇴를 하고 제 2의 인생을 살거나 코치를 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송병호는 확실히 부담스러운 상대였다. 그간 경기를 면밀히 분석해 봤지만 약점을 찾기 힘들었다.
윤영태 선수가 새가슴이라 불릴 만큼 멘탈에 약한 모습을 보였다면 송병호는 강철 같은 멘탈을 지닌 선수였다.
============================ 작품 후기 ============================
이야기가 마무리 되는 편까지 올렸어야 했는데 실수했습니다.
그냥 지는 것이 아닌 성장을 하는 방향으로 쓰고 싶었습니다.
애송이라고 하기엔 이승우는 현재 모든 프로게이머 중 최고 승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30전을 넘었기에 공식전으로 인정이 된 상태지요.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 송병호 전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모두 좋은 하루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