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49 Game No. 149 물이 오른 경기력. =========================================================================
Game No. 149
―아스트로와 CT의 경기. 이제 겨우 1:0이 되었는데 CT 쪽의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았네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패배한 선수가 보통 선수가 아니거든요.
―1:0이 보통 1:0이 아닌 거죠!
―맞습니다. CT 입장에선 거의 날벼락을 맞은 수준이거든요?
보통 1:0이면 언제든 역전할 수 있는 스코어라고 생각할 것이다.
실제로 중계진들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하지만 지금 CT 벤치의 표정은 하나같이 어두웠다.
패배한 선수가 이영우였기 때문이었다.
전력의 절반 아니 70%를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선수다. 그런 선수가 1세트에서 패배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이 제대로 찍힌 셈.
작은 도끼면 그래도 수습할 수 있는데, 지금은 몸보다 큰 도끼에 찍힌 상황이다.
―CT 입장에선 어떻게든 이 상황을 수습해야하거든요?
―아마 CT도 이렇게 이영우 선수가 첫 경기에서 패배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겁니다.
―아스트로에서 너무 준비를 잘해 왔어요. 전략이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이승우 선수의 칭찬도 빼놓을 수 없죠. 전략이 뛰어나긴 했지만 그건 실행한 건 이승우 선수입니다. 배짱부터 컨트롤까지 이승우 선수가 아니었다면 실행시킬 수 없는 전략일지도 모릅니다. 거의 택뱅을 보는 것 같은 경기력이었습니다.
―맞습니다. 이영우를 상대로 초반 컨트롤 싸움을 안 거는 이유가 다 있죠. 어떤 견제가 와도 막아 낼 수 있으니까! 괜히 피해 주겠답시고 견제 시도했다고 막히고, 어차피 손해 보고 시작할 바에 그냥 비슷비슷하게라도 시작하겠다는 거죠!
냉정하게 신연호였다면 이 전략을 성공하지 못했을 거다.
아마 제단이 깨졌겠지.
이재명 감독 역시 그걸 알기 때문에 이런 전략이 머릿속에 있음에도 선수들에게 주문하지 않았던 것이고.
아무리 좋은 전략이더라도 실행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선수가 있어야 빛을 발한다.
지금이 딱 그런 경우였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CT에서 차봉으로 내보낸 선수는 황정호 선수입니다.
―황정호 선수 굉장히 잘하고 있는 선수이긴 하지만 요즘 김대형 선수에게 조금 밀리고 있죠.
―최근 10전도 4승 6패. 페이스가 조금 떨어져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도 동족전이라는 변수가 있기 때문에 어느 선수가 좋다라고 당장 말할 순 없구요. 다만 과거 기록이나 분위기를 살펴본다면 이승우 선수가 조금 낫겠죠.
―네. 이 두 선수는 MSL 32강에서 한 번 맞붙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이승우 선수가 이겼었습니다.
―상황도 그때와 같네요. 1차전에서 이영우 선수 이기고 승자전에서 황정호 선수 만났었죠?
―참 재미있네요.
―자, 그럼 2세트 전장 나주평야로 다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
“잘했다. 모두가 너를 최고라고 말하고 있다.”
부스에서 나온 직후 감독님께 들은 말이었다. 그 말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화려한 조명.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커다란 함성.
모두가 내 이름을 부르며 엄지를 치켜세우고 있다.
처음 프로게이머를 꿈꿨던 날이 떠올랐다. 언젠가 주인공이 되고 싶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은 내가 주인공이었다. 피로감이 물에 넣은 솜사탕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자리를 대신 채운 건 희열이었다.
다시 힘이 솟았다.
팀원들의 축하도 정말 큰 힘이 되었다. 모두가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 줬다.
이런 좋은 사람들을 또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차봉은 황정호다.”
황정호.
MSL 32강에서 맞붙었었다. 그때 특별한 건 느끼지 못했다.
다시 만나도 이길 수 있을 것 같다 정도? 그건 감독님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무난히 하면, 이길 수 있을 거다. 전투에 있어선 네가 확실히 우위에 있으니까.”
이번에 감독님이 주문하신 건 무난한 운영이었다. 선수들의 운영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공격형, 방어형, 배제형.
공격형은 말 그대로 공격적인 운영을 즐겨 하는 선수를 말한다.
공격형에 가장 적절한 선수는 쇼부봉 아니 승부봉, 최현봉이었다.
조금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말이다. 공격형 선수의 특징은 화끈하다.
이제운도 공격형에 가까운 스타일이다. 중반 닷발귀 컨트롤로 상대를 빈사시키는 경우가 허다했다.
방어형은 일단 선방어, 후 역습을 하는 운영이고 배제형은 상대방의 지룡이나 흑완 같은 걸 아예 배제하고 배를 째 버리는 운영을 말한다.
방어형의 대표적인 예는 철벽이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는 웅인의 김진철이 있었고 배제형엔 GO의 최영화가 대표적인 선수라고 볼 수 있었다.
모두 통한다는 가정하게 파괴력이 가장 강한 건 단연 배제형이다.
배제를 한 만큼 병력이나 자원 등에서 상대보다 훨씬 앞서게 될 테니까.
단 치명적인 단점도 가지고 있다.
배제를 잘못하면, 그러니까 흑완 배제를 했는데 상대가 흑완을 선택하면 아무것도 해 보지 못하고 GG다.
정말 배짱 있는 선수가 아니면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운영은 아니었다.
셋 중 무엇이 가장 좋은 거냐고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기가 힘들다.
가위, 바위, 보처럼 상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수비형은 공격형에 강하고 공격형은 배제형에 강하고 배제형은 수비형에 강하고.
상황에 따라 조금씩 유불리가 달라진다.
물론 선수들마다 선호하는 스타일이 있긴 하다.
보통 한 가지 색을 띄는 경우가 많지만 리쌍 같은 경우 세 가지 운영에 전부 능하다.
초반엔 공격형으로 하다가 중반엔 수비형으로 자유자재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거겠지. 수년간 최정상을 오래오래 해 먹을 수 있는 이유!
으, 나도 그렇게 해 먹고 싶다.
용족은 어떠냐고? 용족은 조금 애매하다.
리쌍과 같이 용족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택뱅은 각각 두 가지에 능하다.
김택윤은 공격형과 수비형 운영을 잘하지만 배제형 운영은 잘하지 않는다. 대부분 빌드를 보면 굉장히 안정적이다.
반대로 송병호는 수비형과 배제형 운영은 잘하지만 공격형 운영은 그 묘가 조금 떨어진다.
그래서 아직 용족엔 완벽한 선수가 나오지 않았다는 말이 있는 것이고 동시에 환국, 마수와 달리 2명의 선수가 종족 대표로 꼽히는 이유였다.
물론 이 세 가지가 전부는 아니다.
그때그때 본인의 감에 따라 경기를 운영하는 즉흥형도 존재한다.
일반적인 틀을 벗어나기에 상대하기 까다롭다는 것이 장점이었지만 들쭉날쭉한 경기력을 보인다는 단점을 지니고 있었다.
대부분 뜬금 우승자들이 이런 성향을 지니고 있었는데 경기가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흘러가기에 사람들이 좋아하는 유형 중 하나였다.
감독님이 말하는 무난한 운영은 어느 한쪽에도 치우지지 않은 중간 형태였다.
달리 말하면 애매한 운영이기도 했다.
하지만 동족전에 자신이 있는 선수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이기도 했다.
왜?
무난히 후반까지 가게 되면 이길 자신이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요즘 황정호 페이스도 별로 안 좋고 너한테 저번에 지기도 했었으니 긴장만 안 하면 된다.”
도 수코님도 힘을 복돋아 주셨다. 그래, 차분하게만 경기하자.
“그럼, 들어가겠습니다.”
“파이팅!”
“아자아자!”
난 팀원들의 응원을 받으며 다시 부스로 들어갔다.
***
박상철 캐스터의 힘찬 함성으로 시작한 2세트. 황정호와 이승우의 경기는 초반부터 치열했다.
용아 1기가 나옴과 동시에 전투가 시작되었다. 뛰어난 컨트롤 싸움이 중앙에서 펼쳐졌다.
전 판의 열기가 아직 남아 있던 걸까?
서로 간 초반부터 공격을 펼치며 계속해서 빈틈을 노렸다.
화끈한 경기에 관중들의 열기도 점점 뜨거워졌다.
―이승우 선수 전투마다 지지 않습니다!
―황정호 선수 이로써 2경기나 이승우에게 내주게 되네요.
둘의 빌드는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았다. 그렇다면 남은 건 컨트롤과 운영 싸움.
운영은 비슷했지만 컨트롤, 특히 전투에 있어선 이승우가 황정호보다 한 수 위였다.
커다란 전투가 총 2번 벌어졌다.
처음 용혼―지룡 싸움과 중, 후반 비렴이 합류된 이후의 싸움. 두 싸움 모두 이승우가 대승하며 승리를 손쉽게 챙기는 분위기였다.
전투 구도도 완벽했고 비렴의 천벌도 적재적소에 떨어졌다.
자잘한 전투 역시 이승우가 계속 우위를 가져갔다. 중간에 견제를 성공한 것도 컸다.
피해없이 꾸준히 자원 채취를 한 이승우와 달리 황정호는 견제로 인해 원활히 자원을 채취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업그레이드가 상대적으로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둘의 병력이 중앙에서 격돌했다. 같은 용아였지만 그 위력이 달랐다.
이승우의 용아가 황정호의 용아를 거침없이 찢어 발겼다.
같은 용아였지만 그 위력은 천지 차이였다.
황정호의 용아가 그냥 용아라면 이승우의 용아는 TOP였다. 그의 병력은 이승우의 앞길을 전혀 막지 못했다.
조금 시간을 지체하는 것이 전부일 뿐, 경기 결과를 바꿀 순 없었다.
그나마 나온 병력도 언덕을 내려오는 족족 이승우의 병력에 둘러싸여 잡혀 나갔다.
답이 없는 상황.
벌겋게 달아오른 황정호의 얼굴이 모든 걸 대변해 주고 있었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트럭처럼 황정호의 앞마당으로 돌진하는 이승우의 용아와 용혼들.
전투가 벌어지는 내내 딱딱하게 굳은 황정호의 얼굴만 봐도 이승우가 얼마나 전투를 잘 펼쳤는지 알 수 있었다.
대규모 한 방 전투가 끝난 후 관중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윤영태 부럽지 않은 전투력이 경기 내내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 경기력을 보여 준다면 박수가 절대 아깝지 않다.
―이영우가 잡힌 상태로 2:0이라. 정말 힘든 상황이거든요?
―이승우 선수 정말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최곱니다. 최고!!!
―단순한 날빌만 쓰는 선수가 아닙니다. 오히려 다양한 무기를 갖춘 선수라는 걸, 이렇게 증명해 내고 있습니다. 날빌이면 날빌! 운영이면 운영! 조화가 정말 잘 어우러지네요!
아직 황정호의 GG가 나오지 않았지만 중계진의 발언이 성급한 발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이승우의 병력에 황정호의 앞마당이 밀리고 있었으니까.
당장 GG가 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옵저버가 황정호의 본진 구석구석을 비춰 주었지만 병력은 없었다.
―황정호 선수 GG를 선언합니다!
―이승우 선수 21연승이네요! 21연승! 이제 대기록까지 두 걸음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발군입니다, 발군. 요즘 이승우 선수 물이 오를 대로 올랐어요! 도대체 이 선수를 누가 막나요?!!
***
황정호와의 경기에서 소모된 체력은 15%.
전 판에 비하면 그리 많은 체력을 소모한 건 아니었다.
스킬 역시 [투신] 두 번이 전부였다. 개인리그면 모를까 프로리그라면 용족을 상대로 [날빌러]를 쓰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안전한 빌드로만 가면 나중에 [투신]으로 승리를 챙길 수 있었으니까.
계속 안전하게만 하면 수가 읽힐 수도 있다. 그땐 [날빌러]로 색다른 공격을 섞어 주면 된다.
2승.
앞으로 2명 남았다.
현재 남은 체력은 79%.
[진정한 올킬러]로 총 5%의 체력이 회복 되었다. 이것이 아니었다면 3킬도 무리였을 거다.
아직까진 큰 탈 없이 여기까지 왔다.
이곳이 히어로 센터라는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모든 능력치가 10% 올라가는 [집택신]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었다.
[집택신]이 아니었다면 현재 체력은 69%. 2킬을 하기엔 조금 부족한 수치였다.
얼추 CT의 중견과 대장 카드가 예측되었다.
순서의 차이가 있겠지만 김대형과 박수천이 나올 것이다.
3세트의 전장은 마고본성.
마고본성은 최근에 추가된 전장으로 가까운 러시 거리가 인상적인 전장이었다.
공격적인 스타일을 지니고 있는 선수에게 딱 어울리는 곳.
아마 박수천이 나올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CT 중견 박수천이다.”
박수천.
타임 어태커라는 멋들어진 별명과 유일하게 리쌍을 8강과 4강에서 만나 연달아 꺾고 우승을 차지한 선수.
“자신 있냐?”
“해봐야죠.”
“공격적인 플레이 조심해라. 박수천이 여기서 나온다는 건 무언가 준비한 게 있다는 거다.”
“조심하겠습니다.”
박수천은 공격형 운영을 즐겨하는 선수다.
상대방의 공격을 맞받아치기보단 본인이 적극적으로 공격을 시도하며 이득을 챙기는 스타일이다.
이번에도 그런 운영을 할 가능성이 높았다.
전장 자체도 그렇게 하기에 최적화되어 있었으니까.
이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 역시 공격적인 운영할 수 있는 전장.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번 경기는 맞불 작전으로 나갈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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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모두 좋은 하루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