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45 Game No. 145 선봉싸움. =========================================================================
Game No. 145
드디어 이영우와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살짝 긴장되었지만 심호흡을 하니 조금 괜찮아졌다.
문득 이영우를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났다.
그때는 정말 떨렸었는데.
나를 자신의 조로 데려간 이영우가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물론 지금도 떨리는 건 마찬가지지만 그때와는 다른 떨림이다.
이로써 세 번째 대결. 겨우 3경기지만 어쨌든 누군가는 우위를 점하게 된다.
그게 내가 되길 바랐다. 그렇게 되도록 만들 것이다.
[날빌러]는 사용하지 않았다.
체력을 아끼기 위한 작전 같은 건 아니다. 그렇다고 스스로를 발전시키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이영우는 그런 식으로 상대할 수 있는 선수가 아니었다.
그냥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왜?
내가 먼저 날빌을 쓸 거였으니까. 이영우 빌드가 무엇이든 상관없다.
어떤 빌드를 써도 준비한 전략을 사용할 것이다.
너무 위험한 전략이라는 생각이 들어, 감독님께 다른 빌드를 쓰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하고 말씀드렸지만 감독님은 단호했다.
이 정도 빌드가 되어야 이영우를 잡을 수 있지 않겠냐고.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었다.
나도 모르게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었다.
그러면 안 된다.
경기력, 컨트롤 같은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해서 운까지 모든 것이 따라야 이영우를 잡을 수 있다.
마인드도 중요하다.
반드시 경기에서 이길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어야 했다.
그때부터 이 빌드를 갈고 닦았고 지금은 어느 정도 자신이 붙었다.
경기가 시작되었다. 이미 화살을 쏘아졌다.
이제 망설이면 안 된다.
불안한 마음도 가져선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건 자신감, 그리고 확신이었다.
4마리의 용안으로 자원 채취를 시키고 기본으로 주어지는 철 50원으로 용안을 생산했다.
원래대로라면 생산된 용안을 바로 철광에 붙여야 한다.
하지만 난 그렇게 하지 않았다.
첫 번째로 생산된 용안이 향한 곳은 철광이 아니라 중앙 지역이었다.
***
―CT와 아스트로의 첫 번째 세트 문이 열렸습니다.
―이승우 선수 7시에 위치해 있구요. 이영우 선수 1시에 위치해 있습니다.
―기분이 왠지 명경기가 나올 것 같습니다. 양 선수 많이 준비했을 거거든요?
―그렇죠. 이건 자존심 싸움입니다. 이영우 선수도 올킬을 예고했기 때문에 진짜 모든 걸 걸고 경기를 할 겁니다. 그건 눈빛에서도 알 수 있죠.
보통 경기 초반엔 별다른 이슈가 없어 중계진끼리의 만담이나 경기를 펼치는 두 선수의 최근 상황을 알리는 것이 보통이다.
―아. 지금?!
―가네요.
―역시. 아.
―가네요. 나갑니다.
하지만 첫 번째로 생산된 용안이 철광은 구경도 해 보지 못하고 곧장 먼 길을 떠나자 중계진들이 동시에 탄성을 내뱉었다.
지금 용안이 나가는 이유는 하나.
전진 건물.
시작과 동시에 경기가 흥미진진해졌다.
―이게 그러니까 사실 조금 예측이 가능했던 거긴 하거든요? 그냥 하던 대로 경기를 하지 않을 거라고. 이승우 선수 도 정말 독하게 준비했나 봅니다.
―정말, 예측하셨던 거 맞습니까?
―네? 네. 예측했었죠.
박상철 캐스터의 의심스러운 눈빛을 받으며 박광춘 해설이 해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마치 칭찬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보였다.
―예측하셨다면 경기가 시작 전에 말씀해 주시지. 혹시 예측하신 게 아니라 그냥 지금 상황을 보고 살짝 수저를 올려 놓으신 건 아닌지?
―저 역시 상당히 의심스럽습니다만.
―……제가 잘못했습니다.
해명을 해 봤자 내놓을 대답은 어차피 같다. 그럴 거라면 빠르게 인정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
―자. 지금 나간 용안은 전진 건물을 짓기 위해서 나가는 거겠죠?
―100%죠.
―1,2,3,4,5,6,7. 7 솟대입니다. 상당히 빠른 속도예요.
전진 7솟대.
본진 신전을 보니, 용안을 아예 쉬고 있었다. 그 말은 제단 역시 7기의 용안을 유지한 채 가겠다는 뜻이었다.
그 어떠한 빌드보다 용아가 가장 빠르게 나오는 빌드.
이영우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용아 1기가 생산된다.
―이승우 선수 승부사 기질이 있네요!
―이런 모습을 가지고 있기에 지금과 같은 성적을 보여 주고 있는 거예요! 제가 이 입장이면 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가슴이 떨려서 말이죠.
―네. 박광춘 해설은 아마 그럴 겁니다. 제 생각 역시 그렇습니다.
그렇게 박광춘 해설이 의문의 1패를 당하는 사이.
―자. 다시 경기로 돌아와서 이영우 선수 감이 좋기로 소문난 선수거든요? 충분히 의심할 수 있습니다.
―어? 정찰? 정찰 갑니다!
창고가 완성되기도 전 이영우가 일꾼을 본진 밖으로 보냈다. 단순히 상대 본진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앞마당 근처를 꼼꼼히 확인하고 있었다.
전진 건물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는 것이었다.
―촉이 장난 아닙니다! 역시 이영우 선수네요.
―느낌 왔어요, 느낌. 원래 이 타이밍에 절대 정찰 안 합니다. 지금 정찰한다는 건 무조건 전진 시리즈를 찾는다는 거예요!!!
“진짜 맵핵도 아니고 눈치 왜 이렇게 빠르냐?”
“그러게. 이영우한테 날빌은 안 쓰는 게 낫것다.”
몇몇 관중들의 대화처럼 이영우의 촉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원래 타고난 감이기도 했지만 계산된 것이기도 했다.
자신을 상대로 이승우가 그냥 나왔을 거라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전진 건물이 있다면 발견해서 좋고 없으면 무난히 경기를 끌어가면 된다.
어떤 경우에도 이영우는 자신이 있었다.
무난히 가면 이긴다.
이런 믿음이 머릿속에 확실히 들어 있었다.
―자, 이대로 가면 발견하죠!
―이거 지금 찾고 있는 거예요. 진짜 이영우 선수도 정말 대단하네요.
―지금 일꾼과 용안 마주쳤죠.
―이영우 선수 이제 확신할 겁니다. 어? 왜 용안이 위에서 내려와? 100% 전진 건물이구나!!!
그 순간 이영우 일꾼 시야에 건설되고 있는 제단이 눈에 들어왔다.
―이야! 발견했어요!
―자. 봤습니다. 이영우!!
―위치가 조금 아쉽네요! 조금 더 숨겨 지었다면, 용안을 잘 숨겼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조금 들거든요?
관중석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전진 건물은 들키는 순간 그 위력의 절반을 잃어버린다. 상대가 모를 때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는 것이지 뻔히 아는 상태라면 의외로 쉽게 막힐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CT 벤치 쪽에선 안도의 한숨이 아스트로 벤치에선 우려를 드려내는 것이 정상.
하지만 아스트로의 분위기는 전혀 다운되지 않았다. 오히려 반기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 모습을 CT의 이정훈 감독이 발견했다.
‘뭐지?’
분명 분위기가 좋다.
그런데 이 알 수 없는 찝찝함은 무얼까? 이정훈 감독이 다시 화면을 바라보았다.
무난한 상황.
그럼에도 불안감이 뱀처럼 몸을 슬금슬금 휘감으며 올라왔다.
***
제단이 발견되었지만 난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겼다.
역시 이영우를 잡으려면 보통 빌드로는 안 된다.
감독님의 추천 전략이 아닌 내가 원하는 전략을 선택했으면 죽도 밥도 안 되었을 것 같다.
작전대로 되고 있다.
감독님의 말씀대로 경기가 진행되었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완벽하게 맞아 떨어졌다.
일단 판은 만들어졌다.
여기서 약간의 운과 엄청난 컨트롤이 필요하다.
여차하면 [투신]을 써야 할지도 몰랐다. 아낄 생각은 없다. 이젠 초 단위 싸움이다.
1, 2초 망설이는 순간 경기의 주도권은 이영우에게 넘어간다.
생각하는 즉시 행동에 옮겨야 했다.
지금 상황을 지켜보면서 차분히 감독님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
“전진 제단 지을 때 위치는 잘 보이는 곳, 그러니까 상대가 쉽게 정찰할 수 있는 곳에 지어라. 그냥 네 본진을 우클릭 했을 때 지나가는 곳이 제일 좋다.”
선봉으로 출전하기에 따로 감독님 면담이 있었다. 그때 전진 제단 전략을 추천 받았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백산맥은 2인용 전장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후 덧붙이신 말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잘 보이는 곳에 지으라니?
전진 건물은 들키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보통 정찰통로보단 조금 빗나간 곳에 짓는 경우가 많다.
상대방을 속이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오히려 반대로 하라는 말이었다.
“이해되지 않겠지. 근데 그렇게 해야 오히려 이영우를 이길 수 있어. 이영우라면 아마 우리가 전진 건물을 쓸 수도 있다는 걸 100% 생각하고 있을 거다.”
자연스레 드는 의문.
“그렇다면 다른 전략을 쓰는 것이 낫지 않나요?”
굳이 상대가 조심하고 있는 빌드를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킬을 때려 박는다면 단순 물량전으로도 이길 가능성이 높았다.
이제운전처럼 말이다.
이렇게 되면 올킬은 물 건너가지만 적어도 이영우라는 큰 산을 무너뜨릴 수 있을 거다.
그것만으로 팀에 큰 보탬이 된다.
내가 2킬 정도로 물러나고 나머지 2킬을 다른 동료들이 맡는 것.
불가능한 작전은 아니다. 이영우만 잡는다면 말이다. 하지만 감독님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셨다.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난 이쪽이 낫다고 본다.”
감독님께서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조금 고민이 되었다.
“그런가요?”
“이영우가 생각할 수 없는, 아예 새로운 걸 하면 정말 좋겠지만 아마 그런 건 없을 거다. 정찰을 빨리하며 전진 제단 유무를 확인하겠지. 이영우 같은 최정상급 선수는 무난하게 가면 이긴다는 생각이 들어 있거든. 실제로 그런 경우가 많기도 하고.”
감독님이 검지로 본인의 머리를 톡톡 치셨다.
“단순 전진 제단이면 100% 아무것도 못하고 막힌다. 이영우를 무너뜨리려면 거기서 한 번 더 꼬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전진 제단을 이영우가 오히려 빨리 발견해야 하지.”
흠. 아직 내 머리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들키기 위해 하는 전진 제단이라니.
내 표정을 읽으셨는지 감독님이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 나가셨다.
“제단의 위치는 들키기 쉬운 위치여야 함과 동시에 애매한 위치여야 해. 보는 순간 이겼다는 생각이 들기보다 고민이 먼저 되겠지. 이걸 깨러 가야 하나 뭐 이런 생각? 아마 그 고민이 굉장히 짧을 거야. 이영우니까.”
맞다.
이영우니까 분명 최적의 판단을 내릴 것이다. 여태까지 그래 왔으니까.
“최소 4기? 많으면 5기 이상의 일꾼이 튀어나와서 제단을 때리겠지. 거리가 애매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너무 가까우면 빠르게 부수고 본진으로 돌아가 자원을 채취하겠지. 만약 너무 멀면 깨는 걸 포기하고 본진에서 방어를 준비하겠지. 애매한 곳에 짓는다면 이영우 입장에서 깨러 나올 수밖에 없다. 용아가 나오면 큰일이니까.”
감독님의 전략을 이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오히려 상대의 움직임을 역이용하는 전략.
“제단을 부수러 일꾼을 나오게 하는 것이 우리 전략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일꾼이 조금이라도 먼 곳까지 와서 오랜 시간 자원 채취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피해지.”
말을 끝낸 감독님이 모니터에 떠 있는 태백산맥의 한 부분을 가리키셨다.
“네가 7시라면 여기에.”
손가락이 다시 움직였다.
“1시라면 여기에 지으면 된다. 두고 봐라. 이영우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아마 내가 말한 대로 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