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43 Game No.143 도발? 도발! =========================================================================
Game No. 143
[엄대엄] 그리고 연이어 사용된 [투신]으로 6시 멀티를 날리는 데 성공했다.
[엄대엄]의 효과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투신]과 콤보로 사용해 봤다.
자연스레 5:5가 되기까지 기다리기엔 상황이 너무 안 좋았다. 겨우 레벨 1인 [엄대엄]이기에 실패할 가능성도 있었다.
스킬만을 믿고 손 놓고 있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었다.
신년 운수가 대길이라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노는 것 같은?
아무리 운수대통이라 하더라도 무언가를 해야 복이 오는 거다.
스킬 역시 마찬가지다.
다행히 의도대로 풀렸다. 숨통은 트였으니까.
물론 안도의 한숨을 쉬기엔 아직 이르다.
6시 멀티를 파괴하긴 했지만 여전히 마수의 상황이 좋았으니까.
원래대로라면 후속타로 비렴과 용혼을 갖춰 바로 나와야 했지만 앞마당 신전이 깨지는 바람에 그럴 수 없었다. 그나마 6시를 깨면서 병력을 많이 살려서 다행이었다.
다시 용아를 생산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고스란히 살려온 용아는 다음 전투에 활용할 수 있다.
이제 내가 해야 할 건 병력을 조합한 후 12시 멀티를 가져가는 것이었다.
아, 동시에 비렴이든 흑완이든 지룡이든 운룡에 뭘 태워서 견제도 떠나야 한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생각해 보니 해야 할 게 엄청 많다.
숙제다. 숙제.
하면 좋은 것이 아니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그래도 어쩌겠어.
다 내 업보지.
처음에 잘했으면 이렇게 까지 상황을 꼴 필요는 없었을 텐데, 견제로 이제운의 공격 타이밍을 늦춘 후 어떻게든 한 방 싸움에서 승부를 내야 했다.
자, 다 잊자.
차분하게 한 번 해보자.
경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
―이승우 선수 정말 대단하네요. 그렇게 불리했던 경기를 이렇게 만듭니다!
―정말 보고도 믿기지 않습니다. 제 눈이 보고 있는 것이 맞나요?!
―정말 요즘 왜 그렇게 좋은 모습을 보여 주는지 알 것 같습니다.
중계진들이 혀를 내둘렀다.
분명 초반 15분까진 이제운이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6시 멀티를 깬 이후에도 마수가 유리한 건 마찬가지였다. 그 정도로 초반에 많이 벌어져 있었다.
비록 6시가 깨졌지만 마수의 장점이 무엇인가! 괴물 같은 회복력 아닌가?
다시 확장 지역에 소굴을 펴며 방어에 집중한다면 이제운의 승리로 경기가 끝나는 건 당연해 보였다.
이미 이제운은 군락이 올라가 망태할배가 나오고 있었고 그슨대와 마견의 업도 충실히 잘해 주고 있었다.
업그레이드 잘된 마수의 기본 유닛은 사기다. 회전력과 효율성 면에서 용족을 압도한다.
거기에 망태할배의 흑운이 더해지면? 용족의 입에선 욕밖에 나올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승우도 그냥 당하고 있지 않았다.
꾸역꾸역 이제운의 견제와 공격을 막아 내며 오히려 자신이 견제를 떠났다.
모든 견제가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아무 피해를 주지 못하고 허무하게 비렴을 잃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승우는 한시도 쉬지 않았다.
어쩔 땐 동시에 2기의 운룡을 보내며 이제운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꼭 큰 피해는 아니더라도 이제운의 손이 한 번 더 가게 만들었다.
그 덕분이었을까?
12시 지역 전투에서 이제운이 다수의 가시귀를 허무하게 잃으며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원래는 힘겹게 가져가야 할 12시 멀티를 이승우가 너무나 쉽게 가겨간 것이다.
순간 이제운의 집중력이 흐트러진 것을 이승우는 놓치지 않았다.
무사히 세 번째 금광을 확보한 이승우는 본격적으로 비렴과 용혼을 생산하며 중앙 싸움을 준비했다.
백만 용족 팬들의 피를 끓어오르게 만드는 한 방 병력이 완성된 것이다.
이승우는 여기에 모든 걸 걸어야 했다.다시 이만 한 병력을 모을 자원이 없었다.
모든 용족 팬들의 염원을 담아 이승우의 병력이 남하를 시작했다.
그리고 연달아 중앙에서 펼쳐진 큰 전투에서 발군의 전투력을 선보이며 이제운의 병력을 싹 잡아내는 데 성공했고 그 기세를 이어 본진까지 밀어 버렸다.
이때 김태영 해설이 목이 터져라 외친 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게 상황이 뒤집어졌다.
승리를 낙관하고 있던 화성 벤치는 그야말로 날벼락을 맞았고 초상집 분위기였던 아스트로 벤치는 흥분으로 들끓기 시작했다.
승리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6시와 9시, 그리고 5시 스타팅 포인트에 가시 촉수를 잔뜩 박아놓고 버티고 있지만 본진의 테크가 완전히 무너진 후라 더 이상 버티는 건 힘들어 보였다.
반면 용족은 최종 조합을 갖춘 상태다. 멀티가 12시 멀티밖에 없지만 차차 늘리면 된다.
마수가 공격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었으니까.
더군다나 망태할배가 없이 용족의 조합된 병력을 상대하는 건 불가능했다.
―정말 아쉽겠네요. 이제운 선수. 거의 다 잡았던 경기거든요.
―이제운 선수가 못한 건 없습니다. 정말 처음부터 지금까지 굉장히 잘해 줬거든요. 이건 이제운 선수를 탓할 것이 아니라 이승우 선수를 칭찬해 줘야 합니다.
병력을 정비한 이승우가 5시 스타팅 쪽으로 공격을 떠났다. 6시와 9시는 가만히 놔둬도 곧 자원이 떨어지는 곳.
가장 자원이 쌩쌩한 5시를 밀면 자연스레 말려 죽일 수 있는 것이다.
가시촉수가 많긴 했지만 이승우는 지룡을 보유하고 있었다. 가시촉수와 함께 싸울 수 있는 유닛이 있다면 모를까 그것이 아닌 지금 지룡을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은 전무했다.
지룡은 너무나도 편안하게 토정을 쏘고 있었다. 움직이지 않는 건물이니 불발 따위도 없었다.
결국 5시가 뚫리는 순간이었다.
―이제운 선수 GG를 선언합니다!
―이승우 선수 정말 대단하네요. 프로리그 19연승을 기록하며 공동 2위의 자리까지 오릅니다!!
그렇게 이승우는 또 하나의 기록을 세웠다.
***
“후.”
경기가 끝나자마자 숨을 깊게 들이 쉬었다 내뱉었다.
어려운 경기였다.
부스 안이 찜찔방처럼 더웠다.
남아 있는 체력은 52%.
정말 아슬아슬했다.
조금만 더 경기를 지체했더라면 능력치가 크게 떨어져 다시 역전을 허용했을지도 몰랐다.
이제운의 공격력은 정말 막강했다. 전투를 치르면서도 놀랄 정도였다.
연달아 [투신]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중앙 싸움에서 패배하는 건 이제운이 아니라 나였을 것이다.
불리한 와중에도 끝까지 견제를 하며 역전의 발판을 마련하려 했다.
“고생했다. 그리고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감독님.”
19연승.
내가 이런 기록을 프로리그에서 세우게 될 줄이야. 이미 1승을 할 때마다 모든 것이 용족의 역사가 된다.
하루하루가 정말 행복하구나!
***
요즘 이스포츠 커뮤니티나 미디어 업체는 이승우 때문에 난리였다.
당연히 좋은 쪽으로의 난리였다.
매일같이 기사거리를 쏟아 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스타가 탄생하는 건, 어느 스포츠나 두 팔 벌려 반길 일이었다.
이번에 이승우가 만든 기록은 프로리그 19연승이었다. 1위는 아니지만 충분히 의미 있는 기록이었다.
단독 2위였던 이제운을 잡고 공동 2위로 올라간 것이었으니까.
더군다나 이제운을 잡아낸 전장은 운랑도라고 불리는 화랑도였다.
9승 무패의 완벽한 전적에 흠집을 내는 데 성공했다.
물론 패배를 당했어도 9승 1패, 승률 90%였지만 이제운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오늘 패배를 당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했으니까.
경기가 끝난 직후 이제운의 눈빛을 사납다 못해 난폭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제 이승우의 시선은 이틀 후에 벌어질 CT전으로 향할 것이다.
만약 여기서 올킬을 해낸다면 23연승. 이영우와 동률이 된다.
한 달 전만 해도 터무니없는 소설을 쓴다는 말이 나왔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다.
이영우만 잡아낸다면 올킬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이승우와 이영우의 상대 전적은 1:1.
이승우가 패배한 경기도 박빙의 승부를 보여 주었다. 둘이 만난다면 승부를 쉽게 예측할 수 없다.
화성전에서 박현우와 이승우가 각각 구성재와 이제운을 상대로 얻은 승리 뒤엔, 이재명 감독이 있었다.
뭐 본인은 모든 공을 선수에게 돌리긴 했지만 말이다.
이승우가 과거 폭스전에서 예고 올킬을 선언한 것 같은 도발이 또 한 번 나올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예측은 맞아떨어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예고 올킬이 또 한 번 나왔지만 팀이 틀렸다.
뭐가 틀렸냐고?
아스트로에서 예고 올킬이 나온 것이 아니다. 예고 올킬 선언한 곳은 CT였다.
***
씻고 침대에 누우려는데 연호가 말을 걸었다.
“기사 봤냐?”
“무슨 기사? 오늘 이제운 이긴 건 아까 봤지.”
“얘가 정보가 느리네.”
연호가 혀를 쯧쯧 찼다.
뭐야? 그 표정은?
뭐 새로운 거라도 있나?
“이미 그건 아까 휩쓸고 지나간 화제고, 지금은 새로운 게 나타났단다. 그렇게 정보가 느려서 어떡할래?”
“그게 뭔데?”
“자. 이리 앉아 보시라.”
연호가 잡아끄는 대로 컴퓨터 앞에 섰다.
모니터에 보이는 화면은 게임피아 사이트. 그중 기사란이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건 이영우의 사진이다.
“뭐야, 이게?”
“왜 이렇게 성격이 급할까? 자 천천히 읽어 봐.”
난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았다.
<[2015 프로리그 위너스리그 3라운드] 이영우! 예고 올킬 선언!>
<현재 신들의 전쟁(이하 신.전) 최고의 프로게이머라 불리고 있는 이영우 선수가 예고 올킬을 선언해서 화제다.>
이영우에 대한 뉴스네?
예고 올킬?
와. 나도 한 번 했었는데 지며 어떡하나 걱정…… 잠깐?
CT 다음 경기가 우리잖아?
그럼 이영우가 예고 올킬을 한 팀이 우리 팀?
기사를 읽어 갈수록 내 얼굴이 조금씩 굳었다.
<……끝으로 이영우는 아스트로를 상대로 반드시 올킬을 해낼 거라며 이승우 선수가 선봉으로 나와 자신과 진검 싸움을 해 봤다는 소감을 밝혔다.>
“…….”
“기분 어때?”
“무슨 기분?”
“이영우의 도발을 정면으로 받은 기분. 그거 쉽게 받는 거 아니다. 일단 이영우가 실력으로 인정했다는 소리고, 복수하고 싶다는 말이지.”
복수라.
저번 MSL에서 패배한 것 때문인가?
아니 그 전엔 지가 나 관광 보내 준 건 잊었나?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거야. 이번에 아예 기를 눌러 주겠다 뭐 이런 거? OSL이든 MSL이든 아직 만날 기회는 많이 남아 있잖아. 프로리그 연승도 끊어 버리겠다는 거고. 맞다. 너 공식전 연승 기록 끊어 버린 것도 이영우잖아. 이야. 벌써 이영우랑 엮이는 레벨이 되었네. 부럽다, 부러워. 그나저나 어떡할래?”
“뭘?”
“결정해야지.”
연호의 말에 난 씨익 웃었다.
고민은 1초도 하지 않았다. 아니 보는 순간 결정을 내렸다.
“결정할 게 뭐 있어.”
“오? 설마?”
“당연히 받아 줘야지.”
피하고 싶은 생각은 1%도 없었다. 굳이 어려운 길을 찾아가진 않겠지만 나를 지목한 도발을 피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이영우가 선봉으로 나온 건 정말 이례적인 일이다.
그간 이영우는 대부분 대장으로 출전했다. 간혹 중견으로 출전한 적도 있었지만 선봉으로 출전한 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CT의 수호신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CT가 패배하기 직전에 나와 팀을 수렁에서 구하는 그런 느낌.
그런 이영우가 선봉으로 나왔다는 건 본인의 의지가 많이 들어간 것이다.
원래 프로리그 엔트리는 1~6세트 까지 출전하는 모든 선수의 이름을 적어 이틀 전까지 협회에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위너스리그는 예외다.
전날까지 각자 선봉으로 나서는 선수들만 적어 내면 된다.
아직 우리 팀의 선봉은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 조금 늦은 시간이었지만 난 거침없이 감독실의 문을 두드렸다.
“들어가도 될까요?”
대답은 즉각 돌아왔다.
“그래, 들어와라.”
역시 감독님은 아직 주무시지 않았다. 선수들보다 먼저 주무시는 걸 거의 못 봤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감독님은 경기 분석에 한참이셨다. 슬쩍 보니 오늘 경기에 관한 것이었다.
정말 부지런한 분이시구나.
“왔냐?”
감독님의 표정을 보는 순간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알고 계신다는 느낌이 들었다.
“네.”
“할 말이 있나 보네?”
“네.”
“네 마음대로 해라.”
“네?”
“선봉. 나가고 싶으면 CT전 선봉으로 나가자. 그런 도발을 받았는데 가만히 있을 순 없지. 네 생각은 어떠냐?”
서로의 눈빛으로 이미 답이 정해졌다는 건 진작 알았다.
“당연히 나가야죠.”
“그래. 멋있는 승부 한 번 해보자.”
그렇게 CT전 선봉이 결정되었다.
============================ 작품 후기 ============================
오늘은 2편입니다.
모두 좋은 하루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