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24 Game No. 124 팀플을 합시다! =========================================================================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어보는 김채하 기자.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이다.
순간 머뭇거리다 대답을 내놨다.
“남자의 종족이니까요!”
물론 꾸며진 답이다.
진짜 이유는 이게 아니다.
환국 하다 잘 안 되서 용족으로 종족을 변경했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다.
“역시. 남자는 힘이죠!”
주먹을 불끈 쥐며 얼굴을 찡그리는 김채하 기자.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용족을 선택했으니 일단 기본적인 것부터 해볼까?
그렇게 2시간 정도 기본 빌드를 익혔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를 정도로 김채하 기자는 집중했다.
보통 처음 배울 때 빌드 개념을 익히는 것에 가장 힘들어하는데 김채하 기자는 너무 수월하게 빌드를 외웠다.
아직 경험이 부족해 판단을 내리거나 컨트롤에 약점을 드러냈지만 시킨 대로 건물을 올리고 유닛을 생산하는 건 잘했다.
적어도 생산력 하나는 합격이었다.
기자 일을 하면서 선수들의 플레이를 자주 접하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컴퓨터랑 게임 한 번 해볼까요?”
자. 이제 본격적인 연습이다!
“그럴까요?”
김채하 기자는 곧바로 투혼 전장에서 컴퓨터와 게임을 시작했다.
“보통으로 고르셨네요?”
제대로 배운 건 오늘이 처음이라 가장 쉬움으로 하라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이 정도는 이길 수 있어요!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잖아요. 그래도 취재 다니면서 선수들 플레이 눈 여겨 봤어요.”
“정말요?”
“당연하죠! 거기다 오늘은 직접 프로게이머에게 사사까지 받았잖아요? 이 정도는 해내야죠!”
컴퓨터의 난이도는 가장 쉬움부터 가장 어려움까지 총 5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 신들의 전쟁이 출시되었을 때만 해도 가장 어려움 난이도의 컴퓨터를 이기는 것이 목표일 정도로 사람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신들의 전쟁을 만든 회사에서 가장 먼저 가장 어려움 난이도를 깨는 사람을 위해 상품까지 걸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걸었던 상품이 컴퓨터 였던가?
가물가물하네.
어쨌든 수많은 사람이 도전했고 그만큼 실패도 많았다.
우여곡절 끝에 가장 먼저 가장 어려움 난이도의 컴퓨터를 이긴 사람이 나왔을 때 반응이 뜨거웠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은?
기본 중에 기본이 되었다.
컴퓨터를 이기지 못하는 사람은 래더는 커녕 공방에서도 제대로 게임을 즐길 수 없다.
한번 컴퓨터를 추월한 사람들의 실력은 급속도로 성장했다.
더 이상 컴퓨터는 사람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사람 역시 컴퓨터와 게임을 하며 즐거움이나 긴장감을 얻기 못했다.
컴퓨터가 하는 플레이가 너무 뻔했기 때문이었다.
상황에 맞춰 운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처음 프로그래밍 된 그대로 진행된다.
그렇다보니 그저 너무 쉽고 지루하기만 할 뿐이었다.
심지어 가장 어려움 난이도로 7:1을 깨는 이들도 있을 정도였다.
물론 쉽지는 않지만 노하우만 안다면 프로 게이머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깰 수 있었다.
그렇다보니 요즘은 초보가 빌드를 실험하는 용도로만 쓸 뿐 신들의 전쟁을 즐기기 위해 컴퓨터와 게임을 하는 일은 없어졌다.
신들의 전쟁을 만든 회사에서도 컴퓨터 인공지능을 높인다고 발표하긴 했는데 솔직히 난이도가 높아져도 컴퓨터와는 안할 것 같다.
왜?
재미가 없으니까.
“자. 그럼 시작 하겠습니다!”
전장은 가장 기본적은 투혼이었다.
김채하 기자의 종족은 용족이었고 컴퓨터의 종족은 환국이었다.
사람을 상대론 힘들지만 뻔한 플레이를 펼치는 컴퓨터를 상대하기엔 환국이 무난했다.
어쨌든 용족이 환국보다 앞서는 상성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컴퓨터 멀티 했네요. 따라가요. 아니 하나 더 가도 돼요. 어차피 컴퓨터 나올 타이밍 없어요.”
“넵!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김채하 기자가 게임하는 걸 가만히 보고 있으니 처음 신들의 전쟁을 했을 때가 생각난다.
인구수가 들지 않는다고 군주를 잔뜩 뽑아 러시를 갔을 때가 생각나는군.
수십 마리가 넘는 군주를 보내며 어찌나 흐뭇해했던지.
당시 받았던 비웃음이 아직까지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때 그 친구는 뭐하고 살고 있으려나?
경기는 김채하 기자가 거의 잡았다.
조합 된 병력으로 컴퓨터의 앞마당을 밀어버리는 김채하 기자.
“역시 용족은 이 맛이죠!”
용아가 지뢰를 단 채 천자총통에게 질주했다.
그 뒤를 용혼이 뒤따랐다.
의외로 빠르게 적응한다.
보통 여자들은 우왕좌왕하기 마련인데 김채하 기자는 그런 것도 없이 말하는대로 빠르게 움직였다.
멀티테스킹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다.
느릿느릿하긴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동시에 두 화면을 신경 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이제 승부는 기울었다.
사람이라면 GG선언이 나왔겠지만 컴퓨터다보니 엘리를 시켜야 게임이 끝난다.
마지막 건물까지 깨자 중앙 화면에 승리라는 글씨가 떠올랐다.
“야호! 이겼네요!”
“오. 대단하신데요?”
“대단하긴요. 프로게이머 선수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직접 게임을 해보니 알겠어요. 눈으로 볼 땐 쉬워보였는데 마음처럼 그게 잘 안되네요.”
“바둑도 직접 하는 사람보다 옆에서 훈수 두는 사람이 시야가 넓다고 하잖아요. 그런 거죠 뭐.”
한동안 컴퓨터와 연습경기가 계속 되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관심이 있어서인지 실력이 쭉쭉 늘었다.
어느새 어려움 난이도까지 깰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그래. 이 정도면.
“우리 팀플 할래요?”
함께 경기를 할만 했다.
투혼에 이어 연습한 전장이 국민 팀플 전장인 사냥터였다.
다 팀플을 염두에 두고 한 것이었다.
사실 이제 막 빌드를 익힌 사람과 팀플을 진행하는 건 무리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프로게이머 아닌가?
이 정도는 커버할 수 있어야지.
“좋아요! 저야 영광이죠!”
내 제안을 김채하 기자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아이고. 기분 좋아라!
우린 곧바로 배틀넷에 접속했다.
원래 아이디를 쓸까하다가 그냥 아무렇게나 쳐 새로 아이디를 만들었다.
혹시 누군가 알아볼 수 있었으니까.
“방 팔게요. 들어오세요.”
전장은 당연히 사냥터.
팀플의 성지라 불리는 곳이었다.
방제는 2:2 사냥터 왕초보만[email protected]@@으로 만들었다.
양심에 살짝 찔렸지만 팀플 프로게이머는 아니라며 스스로를 설득했다.
“들어왔습니다!”
가장 먼저 김채하 기자가 들어왔다.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굳은 의지가 목소리에서 엿보였다.
힐끗 바라 보니 표정 역시 전장에 나가는 전사의 표정 같았다.
아이디는 cogk111.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영타로 쳐보니 그냥 채하였다.
그때 사람 한 명이 들어왔다.
아무리 왕초보라고 달아도 실제 왕초보가 방에 들어오는 일은 거의 없다.
방금 들어온 사람의 전적도 1500승 1000패.
2500경기나 한 사람이 왕초보일 수가 없다.
그래도 공개방, 일명 공방에서의 경기다보니 긴장은 전혀 되지 않았다.
내가 사용하는 키보드와 마우스가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어디서 봤다.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고.
과자 먹고 만져 대서 끈적끈적한 키보드와 마우스지만 괜찮다.
흠. 정말 괜찮은가?
그때 또 한 사람이 들어왔다. 이번 사람 역시 전적이 나쁘지 않다.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중고수 정도?
하긴. 출시 된지 이렇게 오래 된 게임에 초보가 있다는 것도 신기한 일이지.
자. 이제 시작이구나!
김채하 기자는 용족을 골랐고 나는 랜덤을 골랐다.
팀플을 많이 한 건 아니지만 용족 두 명의 조합이 그리 좋지 않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김채하 기자가 다른 종족을 잘 할 수 있을리 없으니 내가 다른 종족을 골라야했다.
용족이 주 종족이긴 하지만 난 프로게이머다.
다른 종족 역시 수준급으로 한다.
나도 용족이 나와서 용족 2명이 되는 건 아니겠지?
상대 역시 모두 랜덤을 골랐다.
“자. 그럼 시작합니다!”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고 경기가 시작되었다.
“둘 다 용족이네요.”
랜덤으로 나온 종족은 용족.
주 종족이긴 하지만 기분이 묘했다.
시작부터 뭔가 불안해지는데?
랜덤이라고 정말 무작위로 종족이 나오는 건 아니다.
나름 비율이 있다.
4명 중 2명이 용족인 상태.
상대 팀에 용족이 나올 확률은 0%다.
경우의 수는 총 3개.
환국 2명이거나 마수 2명이거나 아니면 환국 1명 마수 1명.
가장 최악은 상대 팀 모두 마수가 나오는 거였다.
그래도 위치는 괜찮았다.
12시에 내가 있었고 11시에 김채하 기자가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갇히는 구도가 되겠지만 그래도 초반에 내가 김채하 기자를 보호하며 경기를 펼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저 본진 쪽에 군주 날아왔어요.”
일단 상대 중 1명은 마수다.
지금 타이밍에 11시로 군주가 날아왔다는 건 마수가 9시에 위치해있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저도 군주 날아왔네요.”
신전 시야에 군주가 보였다.
동시에 상대 위치도 파악할 수 있었다.
1시와 9시.
종족은 둘 다 마수.
내가 생각했던 가장 안 좋은 상황이 벌어졌다.
뭔가 좀 싸한데?
****
불길한 예감은 왜 항상 틀리지 않는 걸까?
“아. 죄송해요.”
“...괜찮아요.”
5분도 채 지나기도 전 김채하 기자의 본진이 쑥대밭이 되었다.
상대가 투 마수라는 걸 확인한 난 용무관을 먼저 지어 11시와 12시의 공동 입구를 막으려고 했다.
일단 후반으로 경기를 이끌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생각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
하필 첫 서치에 들키는 바람에 우리 전략을 훤히 보여 줄 수밖에 없었고 그걸 본 상대는 곧바로 5 일벌레 마견숲으로 응징에 나섰다.
6마리만 와도 힘든데 12마리가 들어오니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었다.
그나마 지어진 용무관 덕에 본진에 용광포를 지을 수 있었던 난 방어가 되었지만 김채하 기자는 무방비 상태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한 손으로 두 손을 막긴 힘들다.
하물며 신들의 전쟁을 한지 얼마 안 된 여자가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꾸준히 용아를 생산하며 안간힘을 써봤지만 추가되는 마견의 양이 훨씬 많았다. 단순히 용아만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마견을 빙글빙글 돌리며 용안을 타격하기도 했다.
아직 제단도 완성되지 않는 나로선 도와줄 방법이 없었다.
완벽한 전략의 실패였다.
GG를 치고 새로운 경기를 하는 것이 낫겠다라는 생각이 든 그 순간.
-개허접들ㅋㅋㅋㅋㅋㅋ
-그러게욬ㅋㅋㅋㅋㅋ방제보고 손 풀러왔는데 손도 안 풀림 ㅋㅋ
-평생 왕초보방이나 파고 노세욬ㅋㅋㅋ
-컴퓨터랑 하는게 낳음ㅋㅋㅋㅋ
상대가, 아니 놈들이 채팅 러시를 해왔다.
컴퓨터랑 하는 게 낫다는 둥 온갖 자극적인 도발을 했다. 심지어 욕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미 이겼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놈들이?!
순간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머리가 차가워졌다.
상황만 놓고 보면 끝난 건 맞다.
두 명 중 한 명이 아웃되었고 남은 하나도 간신히 방어만 하고 있는 상황.
지금은 가난하지만 어차피 상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일벌레 쭉쭉 채워 넣으며 자원을 가져간 후 물량을 폭발시키면 손 쉽게 승리를 가져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놈들이 모르는 것이 있다.
바로 내가 프로게이머라는 것.
내 승부욕에 불을 붙이다니.
한 번 누가 이기나 끝까지 가보자.
============================ 작품 후기 ============================
한 편 더 올리겠습니다.
122편과 123편은 분량 때우기로 쓴 편이 아닙니다.
오히려 쓰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정말 분량 때우기 혹은 시간에 급급해서 썼다면 5000자로 딱 잘라서 썼거나 경기 내용으로 채웠을 겁니다.
현재 글은 131편까지 쓴 상태입니다.
미리 여유분을 가지고 쓰고 있다는 뜻이죠.
유닛 설명한 만큼 글자수를 더 넣으면 되겠지(유닛 설명 부분 빼면 76~100편과 101~125편의 글자수가 거의 같습니다. 즉 101~125편인 5권 분량이 다른 권수에 비해 유닛 설명한 만큼 글자수가 더 많습니다.)라고 생각했는데 보시는 독자 입장에선 그 것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혹 불쾌하셨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앞으로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모두 좋은 하루 되시길.
그럼 모두 좋은 하루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