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21 Game No. 121 김치찌개 장인.(수정) =========================================================================
****
“다녀왔습니다!”
숙소로 돌아온 난 곧 바로 감독실로 향했다. 감독님은 경기 분석에 한참이셨다.
내가 들어오자 모니터에서 눈을 떼는 감독님.
“오냐. 잘 다녀왔냐? 조금 더 놀다오지. 왜 이렇게 일찍 왔냐?”
“충분히 잘 놀았습니다.”
“그래도 가족 봤다고 얼굴이 밝네. 어머니는 잘 가셨고?”
“네. 주신 돈을 정말 감사히 썼습니다.”
“그게 뭐 별거라고. 얼마 되지도 않는다. 우승해서 그 것보다 100배는 받아야지. 그때 한턱 쏴라. 다시 한 번 축하한다. 8강 진출한 거.”
8강리거.
생각만 해도 뿌듯해진다.
프로리그 30승만 달성하면 이번 시즌 A급 활약을 펼쳤다고 할 수 있다.
“아. 감사합니다.”
그 밖에 여러 조언들을 감독님께서 해주셨다.
모두 뼈와 살이 되는 좋은 이야기들이었다.
특히 경험이 부족한 나였기에 더 그랬다.
흔들리는 멘탈을 잡는 법, 다전제를 준비하는 법 등등 다양한 걸 말씀해주셨다.
“뭐 더 궁금한 거 있으면 얼마든지 물어봐도 좋다.”
궁금한 것이 있긴 하다.
근데 그게 신들의 전쟁과 관련 된 것이 아니긴 했지만.
내가 주저하자.
“말해봐. 뭘 그렇게 고민해?”
감독님의 말에 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가 오늘 점심에 문자를 하나 받았는데요.”
****
잠시 후.
감독님과의 대화가 모두 끝났다.
“쉽지 않았을 텐데 고생했다. 당분간 푹 쉬면서 체력 보충하고. 옷 갈아입고 쉬어라.”
이번엔 제대로 쉴 수 있다.
한 동안 프로리그 경기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 동안 매주 빡빡하게 경기가 들어차 있었는데 앞으로 8일간 경기가 없다.
휴가같은 기분이군.
“넵!”
난 힘찬 대답과 함께 감독실을 나왔다.
그와 동시에.
“형. 축하드려요.”
“야. 우리 팀에서 8강 진출자가 나오네. 이러다 진짜 4강가면 대박이다. 대박.”
“이러다 우리 팀에서 우승자 나오는거 아냐?!”
그대로 팀원들에게 둘러싸여 정신없이 축하 인사를 받았다.
어? 잠깐만?
뭐하는거야. 지금?
누군가 내 다리를 잡아 들어올렸다. 또 다른 누군가는 내 어깨 죽지에 손을 끼워 넣었다. 안정적으로 팀원들의 손에 의해 들려 있는 나.
그리고.
“하나. 둘 셋. 으쌰!”
“으억!”
이어진 헹가래에 입에서 비명소리가 절로 나왔다.
천장이 이렇게 가까웠구나.
그리고 헹가래가 이렇게 어지러운 것이었구나.
그래도 좋았다.
팀원들이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피곤한 애 괴롭히지 말고 쉽게 좀 둬.”
오. 역시.
우리 주장님.
감사합니다.
현우 형의 말은 곧 법이었다. 질문 폭격을 퍼부으려던 녀석들이 한발 물러났다.
이제 진짜 휴식이구나!
그대로 방 돌아온 난 침대에 누웠다.
‘휴. 아까 따로 답 안 보내길 잘했다.’
아까 감독님에게 여쭤본 건 김채하 기자에게 온 문자에 관한 것이었다.
놀랍게도 감독님도 이미 알고 계셨다.
솔직히 조금 설렜다.
월요일에 시간이 되냐니.
이게 바로 데이트 신청?
하지만 그런 게 아니었다.
김채하 기자가 시간이 있냐고 물은 건 개인적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날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였다.
김채하 기자가 속해있는 게임피아에서 특별 기획으로 올해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신인 선수들을 종족별로 1명씩 뽑아 인터뷰를 진행한다고 했다.
듣기로 마수는 형규가 뽑혔고 환국엔 박철호가 뽑혔다고 했다.
용족엔 내가 뽑힌 거고.
팀에다 먼저 연락해 허락을 구했고 감독님은 나만 괜찮다면 얼마든지 인터뷰를 해도 좋다고 답했다고 하셨다.
결국 김채하 기자가 나한테 따로 연락한 건 인터뷰 여부를 묻기 위해서였다.
하긴 생각해보니 알려주지도 않은 내 연락처를 알고 있는 것이 이상했다.
그땐 왜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내 인생이 그렇지 뭐.
자세한 사정도 모르고 괜히 김칫국부터 한 사발 들이킬 뻔 했다.
만약 착각해서 진지하게 답장을 보냈다면?
나도 모르게 나가는 이불킥.
팡하는 소리와 함께 이불이 높게 튀어 올랐다. 이불킥 한 번에 모든 부끄러움이 사라지면 좋으련만. 아직 부끄러움은 남아있었다.
“으...”
승드셋에 버금가는 흑 역사가 만들어질 뻔 했다.
잠시 정신을 추스른 난 김채하 기자에게 답장을 보냈다.
-감독님께 관련 내용 전해 들었습니다. 월요일 날 인터뷰 괜찮습니다!
****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인터뷰 잘 하고 오고 맛있는 거 먹고 와라!”
“네. 알겠습니다!”
김채하 기자에게 문자를 보낸 지 10분 만에 답이 왔다.
곧장 인터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월요일 점심때 보기로 했다.
일단 식사를 한 후 인터뷰를 한다고 했따.
“데이트 잘해라!”
방에 있던 연호가 불쑥 얼굴을 내밀며 짓궂게 놀렸다.
“데이트는 무슨. 방 잘 지키고 있어라.”
데이트였으면 좋겠다.
나도.
약속 장소까진 도 수코님이 태워다주셨다. 이번에도 혼자 갈 수 있다고 했지만 기어코 태워다 주신 도 수코님이셨다.
“오셨어요?”
도착하니 김채하 기자가 먼저 나와 있었다.
혹시 늦은 건 아닐까 싶어 시계를 바라보았지만 오히려 10분 빨리 도착했다.
도대체 김채하 기자는 얼마나 빨리 온거야?
“순간 늦은 줄 알았네요.”
“아니에요. 빨리 오셨어요. 저도 혹시 늦을까봐 일찍 출발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빨리 왔어요.”
그렇게 말하고 밝게 웃는 김채하 기자.
오랜만에 보는 김채하 기자는 여전히 예뻤다.
그야 말로 여신 강림이 따로 없...정신 차리자!
인터뷰야. 인터뷰! 혼자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괜히 김채하 기자를 곤란하게 만들지 말자!
“늦었지만 8강 진출하신 거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경기력이 장난 아니던데요?”
“운이 좋았죠 뭐.”
김채하 기자의 칭찬에 절로 어깨가 으쓱였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만든다더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에이. 운도 실력이죠! 참! 배고프시죠? 일단 밥 먹으러 가요. 제가 맛집 찾아놨어요!”
부지런도 하셔라.
“참! 혹시 싫어하시는 음식 있으세요?”
“아뇨. 못 먹는 거 없어요.”
뭐든지 없어서 못 먹는다.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먹을 수 있다.
“덮밥 좋아하세요? 이 근처에 정말 덮밥 잘하는 집 있데요!”
덮밥이라.
“저 덮밥 좋아해요.”
“그럼 그리로 가실까요?”
신이 난 듯 히죽 웃는 김채하 기자.
원래 이렇게 수다스러운 성격이었구나.
대기실에서 인터뷰했을 땐 딱딱하게 얼어있었는데.
그때보다 훨씬 밝은 느낌이다.
“저야 좋죠.”
“그럼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
“여기에요?”
“네! 여기에요!”
안에 들어가기 전 잠시 가게를 올려다 보았다.
내가 생각했던 덮밥집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분식집 같은 분위기를 생각했는데 정 반대의 느낌이었다.
덮밥집이라기엔 너무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창으로 보이는 실내 역시 마찬가지였다.
덮밥집보단 카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들이 좋아할 것 같은 분위기?
무언가 내가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그 것이 더 확실하게 느껴졌다.
“어서 오세요.”
푸근한 아주머니 대신 잘생긴 남자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다른 아르바이트생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긴 얼굴 보고 뽑나?
다들 예쁘고 잘생겼다.
손님들 역시 대부분 커플이나 여자들 위주였다. 몇몇 여자들은 음식보다 아르바이트생들을 보는데 더 집중하고 있었다.
“고르세요!”
그때 눈앞에 불쑥 나타낸 메뉴판.
자. 어떤 걸 먹어 볼...에엑?
여기 왜 이렇게 비싸?
덮밥이라고 하면 비싸야 8,000원이고 보통 5~6000원하지 않나?
분식집에 가면 4,000원에도 먹을 수 있고.
하지만 이 곳의 가격은 내 상상을 초월했다.
가장 싼 덮밥이 12,000원이라니.
조금 고급스러운 덮밥은 15,000원을 훌쩍 넘었고 가장 비싼 건 20,000원이 넘었다.
이 돈을 주고 덮밥을 먹느니 차라리 고기를 사서 구워먹겠다.
내가 망설이는 걸 느낀 걸까?
“먹고 싶은 거 다 시키세요. 오늘은 제가 쏩니다!”
“아. 정말 괜찮은데....”
내가 무어라 말을 잇기도 전에 김채하 기자가 말을 끊어 버렸다.
“진짜 제가 다 쏩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는 김채하 기자.
카드였다.
“짜잔! 법인 카드입니다! 오늘 전 공적인 목적을 가지고 이승우 선수를 만난거니 법인카드를 받을 수 있었죠! 어차피 오늘 쓰는 건 다 법인카드로 쓸 거니까 마음껏 써요!”
이글거리는 김채하 기자의 눈동자는 순간 몸을 움찔거릴 정도로 강렬했다.
그 동안 쌓인 무언가가 표출되는 것 같았다.
아아. 저 기분이 뭔지 알지.
역시 법인 카드의 위력은 대단했다.
****
시킨 메뉴가 나왔을 때 그 메뉴를 시킨 걸 순간 후회했다.
“여기 오징어가 누구시죠?”
하필 아까 우리를 반겨주었던 잘생긴 아르바이트생이 내가 주문한 오징어 덮밥을 가져온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닌데 무언가 기분이 이상하다.
오징어 자체에 나쁜 뜻이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인터넷에서 못생긴 사람을 흔히 오징어라 부르는 것이 순간 생각난 것이다.
잘생긴 사람한테 그 말을 들으니 놀리는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런 걸 자격지심이라고 하나?
“...저요. 이쪽에 놔주세요.”
난 힘겹게 손을 들어 답했다.
내 앞에 오징어 덮밥을 내려놓은 아르바이트생이 빙긋 웃는 얼굴로 우릴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 맛있게 드세요. 장어 덮밥은 곧바로 가져가 드리겠습니다.”
그러곤 유유히 사라지는 아르바이트생.
난 수저를 드는 것도 잊은 채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다시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된다.
오징어가 누구라니?
오징어 덮밥 시키신 분이 누구시죠라고 말하며 안 되나?
왠지 분하다.
분하며 지는 거라는데.
잘생긴 사람한테 그 말을 들으니 패배감이 온 몸에 퍼져나갔다.
“우와. 되게 맛있어 보이네요!”
내 덮밥을 보며 감탄을 내뱉는 김채하 기자.
기분과 별개로 오징어 덮밥은 정말 훌륭했다. 보통 생각하는 오징어 덮밥과 많은 차이가 있었다.
훨씬 더 고급스럽고 맛있어보였다. 벌써부터 맛있는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나빠졌던 기분이 다시 원래래도 돌아오려고 할 때.
“장어덮밥 나왔습니다.”
방금 전에 내 메뉴를 가져다주었던 아르바이트생이 김채하 기자가 시킨 장어 덮밥을 가져왔다.
법인 카드를 가져온 김에 여기서 가장 비싼 메뉴를 시킨 것이다.
와. 덮밥에 저렇게 큰 장어가 올라가는 건 처음보네.
여태 내가 먹은 장어는 장어도 아니었다.
씹는 맛을 느낄 새도 없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버릴 정도로 얇은 장어가 아닌 고기처럼 두툼한 장어가 덮밥 위에 가득 올라 있었다.
어라?
근데 왜 난 오징어고 김채하 기자는 장어 덮밥이야?
이건 내 착각이 아니다.
저 자식 분명 날 농락하고 있는 거라고!
그렇다고 화를 낼순 없었다.
심증은 확실한데 물증이 없었으니까. 그냥 꾹 참는 수밖에.
“표정이 왜 이렇게 안좋아요?”
“아? 네?”
“아까는 표정이 괜찮았는데 지금은 좀 굳어 있어서요. 너무 제가 원하는 곳에 온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순간 들어서요.”
김채하 기자의 물음에 난 솔직히 답했다.
오징어라고 말한게 농락당하는 기분이 들었다고.
말이 끝나는 순간 김채하 기자가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 오해하지 마세요. 귀여워서 아니 그냥 무언가 흠. 뭐라고 해야 하지. 어쨌든 나쁜 의미는 절대 아니었어요. 기분 나쁘셨다면 사과드릴게요.”
말을 바꾸긴 했지만 원래 했던 말을 똑똑히 들었다.
귀여워서?
이게 무슨 뜻이지?
그때 김채하 기자가 말을 덧붙였다.
“이승우 선수가 오징어라뇨. 이렇게 잘생긴 오징어가 세상에 어디 있어요? 신경 쓰지 말아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만든다고 했다.
립 서비스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어쨌든 이런 말을 듣고 나니 기분이 다시 좋아졌다.
“확실히 비싼 게 제 값을 하네요!”
어느새 장어 덮밥을 먹고 있는 김채하 기자.
표정이 정말 행복해보였다.
나도 오징어 덮밥을 크게 한술 떠 입에 넣었다.
“이것도 맛있네요.”
다행히 음식은 정말 맛있었다.
햇빛에 눈 녹듯 분노가 사르르 사라졌다.
서로 배고팠던 탓인지 고개를 숙인 채 정신없이 식사에 집중했다.
그렇게 식사가 끝나고.
“으. 배부르다. 정말 맛있네요.”
무언가 부족한지 입맛을 다시는 김채하 기자가 너무 귀여워 보였다.
“저도 정말 잘 먹었어요.”
“그럼 이제 자리 옮길까요? 어디가 좋으시겠어요?”
“아무래도 조용한 카페가 좋지 않을까요?”
“그렇죠?”
김채하 기자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갑시다!”
============================ 작품 후기 ============================
오늘은 여기까지!
월요일날 돌아오겠습니다!
그럼 모두 좋은 하루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