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10 Game NO. 110 감독님과의 면담. =========================================================================
“제가요?”
난 놀란 토끼눈을 뜨며 코치님께 되물었다.
“응. 몰랐어? 난 너 아는 줄 알았는데. 오늘 OSL 있잖아. 마음도 심란할 테니 오늘 경기는 쉬라고 하시던데?”
처음 듣는 이야기다.
코치님 말씀처럼 오늘 OSL경기가 있긴 하지만 내 경기가 아니라 이영우와 김윤호의 경기다.
혹시 감독님이 잘못알고 계신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다.
아. 그게 아니면 혹시?
오늘 경기에 따라 재경기 여부가 달라지니 쉬라고 하신건가?
그렇다면 오늘은 나만 쉬는 것이 아니라.
“현우 형은요? 현우 형도 숙소에 남아 있나요?”
“현우는 나가지.”
현우 형 역시 같은 상황이다.
오늘 경기 결과에 따라 재경기를 할 수도 있고 탈락 할 수도 있는.
근데 나만 숙소에 남는다고?
“저랑 같은 상황 아닌가요? 근데 왜 저는 숙소에 남아있고 현우 형은 경기장에 가는 거죠?”
“나도 모르겠다. 자세한 건 감독님께 직접 여쭈어봐. 감독님이 결정하신 거니까.”
코치님이 검지로 머리를 긁적이며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지었다.
아. 나도 모르게 따지듯 이야기했다.
코치님 역시 들은 걸 그대로 전달하시는 걸 텐데.
“아. 죄송해요.”
“죄송할 것이 뭐 있냐? 우리 팀 특징 알지? 감독님 방 문 항상 열려 있는 거.”
코치님이 검지로 감독실을 가리키셨다.
“네 감사합니다.”
대화를 끝낸 난 곧바로 감독실로 향했다.
****
“그거?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
내 질문에 감독님은 빙긋 웃으며 나를 바라보셨다.
이미 내가 올 줄 알고 계셨다는 표정이다.
하긴. 저번에 S1전에서도 내가 생난리를 친 적이 있긴 했었지.
“일단 너와 현우의 차이점을 말해주지. 현우는 오랜 시간 1군으로 프로생활을 해왔다. 우승을 한 적은 없지만 프로리그든 개인리그든 준수한 성적은 계속 거둬왔지. 지금 승우가 현재 굉장히 좋은 성적을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1군에 데뷔한지는 1달 밖에 안 되었다. 여기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아뇨.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만.
당장 알 수 있는 건 1군 경력의 차이 정도??
애초에 내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다는 듯 감독님은 손으로 본인의 머리를 톡톡 치시며 입을 다시 여셨다.
“멘탈이 달라. 멘탈이. 오랜 기간 활동해온 프로게이머는 그간 무수한 경험으로 인해 힘든 상황이 와도 쉽게 무너지지 않아. 하지만 신인은 달라. 너 그 잘나가던 신인들이 왜 한 번에 무너지는지 알아?”
앞의 질문의 답도 몰랐는데 이 걸 알리가 없지.
문득 궁금해지긴 했다.
생각해보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신인들이 굉장히 많았다.
하지만 그 중 대부분은 반 년 이상 실력을 유지하지 못했다.
GO의 조세욱도 그런 케이스였다.
“너무 앞만 보고 달려서 그래. 쉴 땐 쉬어 줘야하는데 말야. 경기를 하는 것만큼 쉬는 것이 중요하거든. 꼭 경기를 손으로 하는 것이 연습이 아냐. 편하게 쉬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것도 연습이다.”
살짝 이해가 될 것도 같았다.
“아까 현우에 대해서도 물었는데 일단 현우는 우리 팀 주장이다. 주장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실제 그 팀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멘탈이 강한 선수가 하는 거야. 내가 아는 현우는 절대 이번 일로 무너지지 않는다.”
감독님의 눈엔 확신이 어려 있었다.
아직 내가 알 수 없는, 현우 형과 감독님이 오랜 시간을 함께하며 쌓아 온 신뢰였다.
“그리고 실제 경기에 출전하고 안하고를 떠나서 경기장 내에 주장의 존재 여부는 사기에 큰 영향을 미치거든. 그래서 현우는 데려 가는 거지.”
“그렇군요.”
“그리고 너 없이 이기는 법도 연구해봐야지. 지금 너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 팀 승리의 70%를 승우가 가져다주었거든? 그러다보니 다른 녀석들이 마음을 편하게 먹더라고. 내가져도 뒤에 승우가 있으니 괜찮다고 생각하는 느낌? 바짝 얼어있는 것도 안 좋지만 긴장의 끈을 놔버리는 것도 안 좋아. 적당히 쪼여줘야지. 그걸 하는 게 내 역할이고.”
감독님의 설명을 들으니 조금 이해가 됐다.
프로리그는 개인이 아닌 팀으로서 참가하는 곳이다. 당장만 보면 내가 많은 경기를 출전해 승리를 따내는 것이 좋지만 장기적으론 팀 전체의 발전을 늦추게 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감독님이 윙크를 하며 말했다.
“저번엔 네 말대로 출전 시켜 줬잖냐? 이번엔 이 감독 말 한 번 들어봐라.”
이 말이 결정적이었다.
난 이미 감독님의 결정을 어긴 적이 있다.
그렇다면 이번엔.
“알겠습니다. 오늘 숙소에 남아 있겠습니다.”
“그래. 실제 연습을 하는 것도 좋지만 일단 머리를 식히는 것이 좋아. 프로리그랑 OSL 가볍게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봐.”
****
이재명 감독이 이승우를 엔트리에서 제외한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는 결코 아스트로가 원맨 팀이 되는 걸 원하지 않았다.
당장의 승리도 좋지만 이재명 감독의 목표는 강한 팀을 만드는 것이다.
언제까지 이승우가 승을 챙겨줄 수 없다.
슬럼프를 맞이할 수도 있고 설사 슬럼프가 없다고 하더라도 위너스리그가 끝나면 혼자만의 힘으로 팀에 승리를 챙겨주는 건 불가능하다.
그 전까지 이승우를 받쳐줄 수 있는 1승 카드를 여럿 육성해야한다.
현재 믿고 출전시킬 수 있는 선수는 이승우와 박현우 밖에 없다.
조금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김승대와 신연호는 불안하다.
확실히 1승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카드가 아니다.
이들을 한 단계 더 성장시키는 것이 그의 역핧이었다.
꼭 이 셋 뿐만이 아니라 조연인 선수들도 주연으로 끌어 올려야한다.
이승우가 없는 오늘 경기 승패는 크게 관심 없다.
상대가 강팀인 GO라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이기면 이기는 대로 좋고 지면 지는 대로 좋다.
어떤 경우든 배우고 느끼는 것이 있을 테니까.
당장의 목표가 우승은 아니다.
내실을 다져야 한다. 모래 위에 성을 짓고 싶지 않다.
튼튼한 땅에 뿌리를 내리고 싶었다.
물론 이승우를 배려하는 마음도 컸다.
요즘 너무 많은 경기를 나가고 있다.
혹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보통 손만 까딱이는 프로게이머가 체력을 소모하면 얼마나 소모하냐고 하겠지만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매 경기 긴장과 집중력을 유지하며 경기를 하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체력을 요한다.
괜히 30분 경기를 끝낸 선수들이 땀으로 흠뻑 젖는 것이 아니었다.
이승우는 아스트로 입단 이후 단 한 차례도 쉰 적이 없다.
프로리그에서 주전을 넘어 에이스로 활약하고 있었고 개인리그 역시 본선에 모두 진출했기 때문이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말이 있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을 기초로 볼 때 이승우는 조금 쉬어야 할 타이밍이었다.
체력도 체력이지만 손목에도 무리가 갈 수 있다.
‘승우가 알아주길 바래야지.’
이재명 감독은 승우가 섭섭하지 않기를 바랐다.
****
“잘 다녀오십시오!”
“그래. 숙소 잘 지키고 있고 좀 있다 보자.”
“꼭 승리를 담아 오마!”
프로리그가 있는 날 숙소에 남아있는 것이 어느새 어색해졌다. 프로리그에 출전하는 팀원들이 빠지자 숙소엔 몇 사람 남지 않았다. 나를 포함해서 3명만이 숙소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이 것 참 휑 하구만.
“형. 식사는 어떻게 하실 거 에요?”
“아. 지금 숙소에 누구누구 있지?”
“저랑 형모 형이랑 동주 형 남았어요.”
나에게 질문을 했던 애의 이름은 유강식.
종족은 환국으로 우리 팀의 막내였다. 사실 실력으로는 2군이나 연습생 정도지만 사정 상 1군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남은 2명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 뭐하는데?”
“연습 하고 있을걸요?”
“그래? 다들 불러와.”
잠시 후 숙소에 남아 있는 선수들이 모두 보였다.
“배고프지?”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아니기는.”
군대 안처럼 딱딱 하게 대단한 녀석의 이름은 최형모.
종족은 용족으로 선이 굵은 외모로 잘생겼다는 말을 꽤나 듣는 녀석이다.
팀 입장에서야 당장 프로리그에 내보내 얼굴간판으로 내세우고 싶어 했지만 아쉽게도 프로리그에 나갈 실력이 되지 않아 한 번도 방송 경기에 나간 적이 없었다.
장담하건대 프로리그에 나가 5할 승률만 해도 이 녀석은 엄청난 인기를 끌 것이다.
그 것도 여자들한테.
에이. 부러운 놈.
“저는 조금 배고픕니다.”
옆에서 활짝 웃고 있는 녀석의 이름은 임동주.
종족은 마수다.
팀 내에서 리틀 신연호라는 말을 듣고 있었다.
이 한 단어면 임동주에 대한 모든 설명이 끝난다.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다.
별명처럼 굉장히 밝고 재미난 녀석이다.
“우리 맛있는 거 시켜먹을까?”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3명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났다.
재정 상황이 좋은 팀 같은 경우 식사를 준비해주는 이모님이 계시지만 우리 팀 같은 경우 선수들이 알아서 밥을 해먹어야했다.
감독님이나 코치님이 반찬가게에서 반찬을 사다주시긴 하지만 20대 남자들이 만든 식사의 퀼리티는 그리 높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 녀석들은 집밥보다 외식이 더 좋을 나이.
이와 같은 반응은 당연한 것이지.
모두 눈을 빛내고 있긴 했지만 먼저 입을 여는 녀석은 없었다.
아무래도 먼저 나서기 부담스러운 모양이었다.
“내가 말을 잘못했구나?”
“아. 그게 아니라.”
“죄송합니다.”
내가 화가 났다고 생각했는지 녀석들이 깜짝 놀라며 입을 열었다.
살짝 굳은 얼굴에서 지금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표정은 10초도 가지 않았다.
“그냥 우리 맛있는 거 시켜먹자.”
****
-지금부터 아스트로와 GO의 대결을 시작 하겠습니다!
“배달 왔습니다.”
실로 적절한 순간에 주문한 음식이 도착했다.
중국집에서 넉넉하게 음식을 시켰다.
요즘 자금 사정이 좋다.
연봉만큼 승리 수당이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불과 몇 달 전만해도 이 돈을 쓰려면 두 손이 벌벌 떨렸는데.
지금은 전혀 아무렇지 않다.
계산을 하고 음식을 가져오는 순간 경기가 시작했다.
“여준이가 가장 먼저 나오네?”
우리 팀의 선봉은 여준이었다.
GO의 선봉은 장유철.
쉬운 상대는 아니군.
우리는 음식을 먹으며 경기에 집중했다.
-장유철 선수 정말 날카롭습니다.
-약한 타이밍을 정확하게 노리네요. 천리안이라도 쓸 수 있는 건가요?
-윤여준 선수 너무 안심했어요. 상황을 너무 낙관했습니다.
“아쉽게 졌네.”
첫 번째 경기는 장유철이 승리를 가져갔다.
빌드를 유리하게 가져갔음에도 날카로운 공격 한 번에 무너지고 말았다.
본인이 할 것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미 빌드에서 이겼기에 무난히 후반 운영으로 가면 경기에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정답은 정답이다.
상대가 본인처럼 신인이거나 아마추어라면.
하지만 지금 상대는 프로리그에서 산전수전을 겪은 선수다.
무난히 후반으로 갈 리가 없었다.
끊임없이 정찰하며 장유철의 의도를 파악했어야 했지만 여준이는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그건 곧 패배로 이어졌다.
신인들에게 자주 나오는 패턴이었다.
나도 2군 시절 많이 보여줬던 모습이었고.
그래서 더 안타까웠다.
-아스트로에서 차봉으로 꺼내든 선수는 김승대 선수입니다.
-용족전에서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거든요? 과연 장유철을 잡아낼 수 있을지 지금부터 경기 시작하겠습니다!
배고파서 그랬는지 넉넉히 음식을 시켰음에도 2경기가 채 시작하기도 전에 모두 먹어 치웠다.
누가 보면 설거지를 했나 싶을 정도로 바닥 까지 싹싹.
“더 시켜줄 걸 그랬나?”
“괜찮습니다.”
“배불러요.”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누가 봐도 아직 부족한 얼굴이다.
하긴 쇠도 소화시킬 수 있는 나이다.
고기 뷔페를 거덜 낼 수 있는 위장을 가지고 있는 나이.
나도 겪었기에 잘 알고 있었다.
이왕 사주는 거 더 사줘야겠다.
어설프게 사줘봤자 나중에 좋은 소리 못 듣지.
“기다려봐.”
소파 옆에 있는 배달책을 집어 드는 순간 녀석들의 눈빛이 기대감으로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귀엽긴.’
나와 막내인 강식이와의 나이 차이는 8살.
귀여워 보이는 게 당연한 것이었다.
“이번 메뉴는 내가 고른다.”
“네.”
“넵!”
“상관없습니다.”
대답에서 봄날의 따뜻한 햇살이 느껴지는 건 내 착각일까?
녀석들이 이렇게 부드러운 녀석들이었나?
“이번에 시킬 음식은...”
연호가 항상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있다.
“치킨이다.”
그건 바로 치느님은 언제나 옳다는 것이었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 작품 후기 ============================
아직 마영찬이 대단한 선수로 나온다는 건 아직 그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합니다.(로열로더 기준.)
혹 오해하실까봐 추가설명 올렸습니다.
마영찬 설명 밑에
그 이후 4강 이상의 성적을 거둔적은 한 번도 없지만 그래도 나름 꾸준히 성적을 내긴 했다.
그마저 요즘은 내지 못하고 있었지만.
속된 말로 한 물 갔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마영찬은 형편없는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처음부터 빌드에서 완전 밀리고 시작하는 건 기본이고 유리한 경기조차 어이없는 컨트롤로 역전당하기 일 수 였다.
심지어 해설이 중간에 ‘저 선수 집중 안하나요?’라는 말을 했을 정도다.
더 이상 부활하는 건 힘들어보였다.
이 추가 되었습니다.
99PKO부터 이스포츠를 봐왔습니다.
당연히 그 사건에 연관 된 선수들을 싫어합니다.
소설에서나마 확실한 응징을 가할 생각입니다.
그럼 모두 좋은 하루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