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6 Game No. 106 염우석 정도는. =========================================================================
****
-왜 이 선수가 안 나오나 했네요! 나올 때가 되었죠!
-드디어 아스트로에서 이승우 선수를 꺼내듭니다.
-지금 상황에서 아주 적절한 기용이죠?
-현재 2:2로 균형이 맞춰져 있습니다. 1승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2세트를 내리 승리하며 경기를 가져올 선수가 나와야야하거든요. 그런 면에서 있어서 이승우 선수의 출전은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선택이죠.
-얼마전 김윤호 선수에게 패배를 당하긴 했습니다만 여전히 좋은 모습 보여주고 있는 선수 아닙니까?
-두 말 하면 잔소리고 세 말 하면 입 아픕니다. 현재 프로리그 15연승 중입니다. 몰수패 이후로 한 번도 지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이승우가 등장하자 경기장이 들끓기 시작했다. 어느새 이승우는 사람들에게 기대감을 주는 선수가 되어 있었다. 하긴 몰수패를 제외하면 21승 2패의 성적을 거두고 있는 선수가 기대감을 주지 않으면 도대체 어떤 선수가 기대감을 줄 수 있단 말인가?
OSL에서 2패로 탈락 위기에 몰리긴 했지만 이미 MSL 16강 진출을 확정지었고 프로리그에서도 15연승을 달리고 있었기에 이 정도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승우의 등장에 MBS벤치 쪽도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분주히 움직이며 염우석에게 작전을 지시했다.
-전장은 영혼의 울림입니다.
-양 선수에게 나쁘지 않은 전장이죠?
-그렇습니다. 서로에게 할 만한 전장이죠. 용족이 조금 더 좋긴 합니다만 크게 차이나는 정도는 아닙니다.
-상대 전적 역시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 밸런스 전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명실상부 팀의 에이스라고 할 수 있는 양 선수가 맞붙었습니다. 정말 중요한 경기죠? 여기서 승리하는 팀이 경기를 가져갈 확률이 높습니다.
-일단 기세 싸움이거든요. 여기서 팀의 에이스가 꺾이면 절대 안 되는 겁니다!
세 번째로 가져갈 수 있는 확장지역에 금이 없고 철만 있는 전장이다. 마수와 용족의 대결에서 세 번째 확장 지역을 가져가기 까다롭다는 점 때문에 마수가 조금 더 좋았지만 환국과 용족의 대결에선 같은 이유로 용족이 괜찮았다.
-어? 박광춘 해설께서 새로운 신발을 신고 오셨습니다?
-그러네요? 저번까지는 나 모 회사에서 나온 신발을 신고 오셨는데 오늘 N사의 신발을 신고 오셨네요.
-이야. 새로운 균형! 무슨 의미가 담겨 있는 건가요?
-해설의 새로운 밸런스를 제시 하겠다 뭐 이런 뜻이 아닐까요? 역시 박광춘 해설입니다. 저희 같은 일반 사람은 따라갈 수 없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에 신었던 신발도 승리의 여신 니케에서 따온 브랜드였거든요? 그땐 승리의 부적이 되겠다는 뜻을 보여준 것이었는데 이번엔 균형이 되겠다 뭐 이런 건가요?? 역시 박광춘 해설입니다! 그릇이 커요. 아주 멀리 보고 있거든요.
박광춘 해설이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 둘의 공격이 무차별적으로 쏟아졌다. 자기 돈으로 신발 하나 새로 샀을 뿐인데 이런 공격을 당하다니. 순간 박광춘 해설이 안타깝게 느껴졌지만 사람들은 당황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를 보며 웃고 있을 뿐이었다.
이들이 이런 농담을 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아직 경기 준비가 완료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참 박광춘 해설을 놀리던 박상철 캐스터가 이제 진행해도 된다는 PD의 싸인을 받고 놀리기를 멈추었다.
-자. 양 선수 모든 준비를 마치고 이제 막 입장했습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바로 5세트 경기를 시작 하겠습니다.
양팀의 운명을 가를 5세트가 그렇게 시작되었다.
****
<이승우 등판요 ㅋㅋㅋㅋ>
<슬슬 나올 때가 되었짘ㅋㅋㅋ>
<그래도 앞에서 2승 챙겨놔서 청년가장 모드는 아님 ㅋㅋㅋ>
<진 다음날 만난 선수 개 뚜까패던뎈ㅋㅋ 과연 오늘도 화풀이 할 수 있을짘ㅋ>
<그래도 오늘은 모르지 않냐?>
이승우의 출전이 확정 된 순간 커뮤니티에 글이 마구 올라왔다. 오늘 승부에 대한 예측이 대부분이었다.
<ㅇㅇ 솔직히 개인리그면 모를까 프로리그에서 염우석은 단단하다.>
<괜히 다승 5위가 아니지ㅇㅇ 아무리 이승우가 잘 나가도 프로리그에서 염우석은 힘들지.>
<네 다음 광탈러 아닥 하시구요.>
<ㅅㅂ 이승우는 뭐 진출 확정했냐? 똑같은 2패인데? 그냥 운이 좋아서 탈락확정 안된거지 사실 탈락이라고 봐야함>
승자에 대한 의견이 거의 5:5로 나뉘었다. 아무리 이승우가 잘한다고 해도 프로리그의 염우석을 당할 순 없다는 의견과 그래도 이영우까지 꺾어낸 이승우가 유리하다는 의견으로 말이다.
물론 둘 다 고개를 끄덕여지는 의견이었다.
****
깊게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오늘도 스킬을 사용할 생각이지만 조금은 다르게 쓸 거다. 보통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습관처럼 [날빌러]를 썼었지만 오늘은 그렇게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일단 내 눈으로, 감으로 염우석의 빌드를 예측해본 후 [날빌러]를 사용해 얼마나 맞췄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여태까진 답을 먼저보고 문제를 풀었다. 답안지가 없으면 모를까 눈앞에 있는데 외면하기란 힘들었다. 조금만 손을 뻗으면 너무나 쉽게 답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
어릴 적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답을 보고 문제를 풀면 문제가 너무 쉬워 보인다는 것을.
이미 답을 보았기에 어떻게든 답이란 도착지에 도달할 수 있게 과정을 이끌어 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맞춘 답을 실력이라 생각하면 안 된다.
완벽한 착각이다. 응용 된 문제를 해답 없이 맞닥들이는 순간 머릿속은 다시 백지가 되고 만다. 그 전의 자신감은 온데 간데없이 사라지고 물음표만 가득 떠다닌다.
이는 옳은 방법이 아니다.
조금 느리더라도 답부터 보는 것이 아니라 일단 문제에 먼저 부딪친 후 맞든 틀리든 후에 답을 맞춰 볼 것이다.
처음부터 이렇게 했어야했다. 무의식중에 패배가 두려워 항상 경기 시작과 동시에 [날빌러]를 사용하고 말았다. 이렇게 되면 상대방의 빌드를 바로 확인하고 완벽한 답을 내놓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상대의 빌드를 추리하고 생각해낼 수 있는 시간과 경험을 잃게 된다.
이 시간과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정상급 선수들이 가지고 있는 감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니까.
하지만 난 이런 시간을 갖지 못했다. 즉 스킬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선수가 될 지도 몰랐다. 그런 선수가 되는 건 싫었다.
처음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날빌러]의 도움 없이 상대방의 빌드를 항상 맞출 수 있을까?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실제로 스킬이 없는 다른 선수들도 모두 하고 있는 것이었으니까. 타고난 감이 없다면 연습으로 채우면 된다. 경험이 쌓이고 쌓여 무너지지 않는 벽이 될 것이다.
오늘이 그 첫걸음이고.
‘위치는 나쁘지 않네.’
위치는 1시.
일단 위 쪽 지역에 걸렸기에 나쁘지 않았다. 위에서 아래로 하는 전투가 시각적으로도 좋았고 컨트롤도 편했다.
습관처럼 나오려는 [날빌러]를 억눌렀다.
눈으로 보자.
그리고 판단하자.
일단 준비해온 전략이 있다.
이 전장은 천왕랑을 쓰기에 아주 좋은 전장이다. 여태껏 나는 방송경기에서 천왕랑 운영을 쓰지 않았다. 대부분 나가 운영을 했다. 다른 이유는 없다. 공중 유닛 컨트롤이 낮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보충 된 상황.
[투신]과 함께라면 공중 유닛 컨트롤이 78이 된다.
나쁘지 않은 수치.
전장 역시 천왕랑을 쓰기 좋다.
그래서 이번엔 지룡-천왕랑 빌드를 준비해왔다. 지룡-천왕랑 빌드는 송병호가 가장 자주 쓰는 빌드 중 하나로 그를 환국전 최강자로 만들어 준 빌드이기도 했다.
송병호는 이 빌드를 통해 환국전 승률이 7할 중반을 넘겼고 준우승을 수차례 차지하기도 했었다.
곧 바로 천왕랑을 뽑는 건 위험하다.
환국에게 진출할 수 있는 타이밍을 주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중간에 지룡을 뽑아 환국의 타이밍을 빼앗아야 한다. 피해를 주면 더욱 더 좋고 말이다.
하지만 절대 무리해선 안 된다. 피해를 입히겠다는 생각에 무리하게 지룡을 운용하다가 잃기라도 한다면?
그 순간 환국에게 진출하라 타이밍을 주고 만다.
그야말로 눈앞이 깜깜해지는 상황.
절대 벌어져선 안 되는 장면이었다.
****
-염우석 선수 안티 천왕랑 빌드를 꺼내들었습니다.
-이 전장은 유독 천왕랑이 자주 쓰이는 전장이거든요? 충분히 쓸 수 있는 빌드입니다.
안티 천왕랑.
과거 이영우가 송병호를 잡기 위해 만들어낸 빌드로 화살탑 건설 없이 신기전을 빨리 뽑는 것이었다. 멀티 역시 평소 타이밍보다 살짝 늦추고 업그레이드를 한 박자 빠르게 돌리는 것도 이 빌드의 특징이었다.
안티 천왕랑을 하고 있는 환국에게 단순 지룡 견제를 갔다간 지룡을 태운 운룡을 잃을 수도 있다. 그랬다간 타이밍을 잡고 나오는 환국의 병력에 천왕랑 구경도 못하고 경기에서 패배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승우 선수는 어떤 빌드를 선택했죠?
옵저버가 이승우의 본진을 훑는 순간 여기저기서 탄식이 새어나왔다.
-이승우 선수 지룡 테크 타고 있습니다.
-아. 최악의 선택이죠! 아무 것도 모르고 날아갔다간 공중에서 폭사할 수도 있습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아무 것도 못하고 신기전에 밀려 쫓겨 날 수도 있어요!
빌드가 갈렸다.
유리한 쪽은 염우석이었다. 지룡과 천왕랑을 겨냥한 빌드를 사용했는데 하필 이승우가 선택한 빌드가 지룡이었다. 만약 무난히 천왕랑 빌드로 넘어간다면 타이밍을 잡고 나오는 환국의 러시를 막기 매우 힘들 것이다.
-단순히 지룡을 썼다간 염우석 선수한테 잡아먹힙니다. 곧 현룡으로 정찰 성공하거든요? 차라리 운룡 속업을 해 아예 힘을 실어버리면 역으로 환국에게 피해를 입힐 수도 있습니다. 안티 천왕랑 체제는 화살탑을 짓지 않거든요? 분명 틈은 있습니다.
-유영준 해설의 말처럼 차라리 지룡에 힘을 싣는 것도 방법입니다. 운룡도 아예 2기까지 뽑아서 말이죠.
-자. 과연 이승우 선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궁금합니다. 일단 현룡으로 염우석 선수의 빌드 확인하죠.
-고민이 될 겁니다. 지금 하는 선택에 따라 경기 승패가 바뀔 수도 있거든요?!
신들의 전쟁은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가위, 바위, 보처럼 역전의 기회 없이 단숨에 승패가 갈리기도 하지만 좋은 판단으로 상황을 역전 시킬 수 있는 기회가 오기도 한다.
지금은 후자다.
이 정도 차이는 얼마든지 메꿀 수 있다.
과연 빌드에서 진 이승우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모두의 시선이 이승우에게 향했다.
****
염우석의 빌드를 확인한 순간 한쪽 얼굴이 살짝 떨렸다. 방송경기에서 빌드를 지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당연했다.
그 전까지 [날빌러]를 계속 사용했었으니까.
불리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어쩌면 위기 극복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되었다. 아예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전장이 전장이다보니 안티 천왕랑이 나올 수도 있다고 충분히 생각했다.
‘[날빌러] 사용.’
[날빌러]가 추천해주는 빌드는 속업 운룡을 2기 뽑아 환국의 본진을 뒤흔드는 것이었다.
분명 좋은 선택이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게 간다.’
[날빌러]가 추천해준 건 분명 답이다. 그대로 따른다면 최소 중간 이상은 가겠지. 하지만 난 다른 답을 구해놓은 상태였다.
어차피 신들의 전쟁에서 답은 하나가 아니다.
내가 생각해낸 방법 역시 정답이다. 생각한대로 실행된다면 말이다.
머릿속으로 한 번 더 점검을 끝낸 난 환국의 본진으로 향하던 운룡의 방향을 앞마당 쪽으로 바꿨다.
순간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번 움직임이 신의 한수가 될지 패배를 자조하는 플레이가 될지 여부는 모두 나에게 달려 있었다.
============================ 작품 후기 ============================
그럼 모두 좋은 하루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