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9 Game No. 89 두렵지 않다. =========================================================================
연습시간 대부분을 이영우의 환국전 VOD를 보는데 할애할 정도로 집중했다. 성과는 있었다. 이영우의 빌드를 확실히 알았다는 것. 이영우는 변수를 즐겨 사용하는 선수가 아니다. 그가 변칙적인 플레이를 하는 경기 중 80%는 다전제다.
나머지 20%는 뭐냐고?
상대하기 까다로운 선수를 만났을 때.
송병호라든가 김택윤같은?
이게 아니면 자신을 이긴 선수를 상대할 때 변칙적인 플레이를 사용한다. 종합해보면 본인이 유리한 상황에선 절대 변칙적인 플레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특히 이영우는 리 매치를 한다면 전과 똑같은 빌드를 사용해 찍어 누르는 걸 좋아했다. 괜히 갓이 아니구만.
사실 유레카를 외칠 정도로 엄청난 발견을 한 건 아니다. 이미 이 정도 분석은 다른 팀에서도 다 했겠지. 하지만 누가 분석한 걸 듣는 것과 직접 분석해서 이해한 건 큰 차이가 있다.
어쨌든 나와 경기를 했을 때 사용한 빌드는 도감더블.
이영우 입장에선 정석과도 같은 빌드다. 아마 [날빌러]는 또 제단 찌르기를 알려주겠지. 분명 전진 제단 찌르기엔 도감 더블을 노리고 만들어진 빌드다. 하지만 이영우에게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생더블을 택할 예정이다. 오늘 [날빌러]의 역할을 이영우의 빌드를 알려주는 것까지다. 그 후의 판단은 내가 한다. 만약 이영우가 도감 더블이 아닌 다른 빌드를 택한다면 [날빌러]가 추천해준 빌드를 따르겠지만 도감 더블을 선택했을 땐 생더블을 갈 것이다.
생더블은 통하기만 한다면 종족전을 가리지 않고 최고의 빌드이다. 조금 테크가 느리긴 하지만 상대보다 훨씬 빠르게 자원을 2군데서 채취하면 금방 따라잡을 수 있다.
만약 도감 더블을 하지 않는다면?
별 수 있나. 그때는 [날빌러]가 추천해주는 빌드를 사용해야지.
그나저나 오늘을 포함하여 내일 OSL까지 이틀 연속으로 개인리그가 이어지니 조금 부담스럽긴 하다. 보통 징검다리처럼 하루 이상의 휴식이 주어졌는데 이번엔 그런 휴식이 없었다.
오늘 MSL.
그리고 내일 OSL.
컴퓨터 앞에 앉아서 게임하기만 하는건데 이게 뭐가 부담스럽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듯 싶다. ‘프로’라는 타이틀은 쉽게 붙는 것이 아니다. 20분의 짧은 시간이지만 그 경기를 준비하기 위해서 선수들은 그 수십 배의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 특히 개인리그는 더 심하다. [날빌러]를 가지고 있는 나도 이 정도인데 다른 선수들은 얼마나 고될지 쉬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
확실히 투덜댈 수 있는 불만이긴 하지만 최상위 프로게이머들에게 이 정도 일정은 아무 것도 아니다. 프로리그 포함해서 일주일에 4일 이상을 경기를 치르는 선수들도 비일비재했으니까.
오늘 1경기에서 붙는 이영우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이영우는 프로리그 포함해서 오늘까지 3일 연속 경기가 있었다. 앞선 2경기의 결과는? 말해 뭐해. 입만 아프지. 다 이겼다.
프로리그야 당장 중요한 것이 아니니 일단 제쳐두고 어제 펼쳐진 OSL의 이야기를 먼저 하자면 이영우가 형규를 잡고 2승으로 치고 나갔다. 연습도 중요하지만 다른 선수의 경기를 보는 것도 매우 중요한 훈련과정이다. 보통 개인리그가 열리면 당장 경기가 있는 선수들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은 연습을 중단하고 연습실에 마련 된 커다란 화면 앞에 앉아 개인리그를 관람한다.
물론 그저 즐기는 수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각 선수의 장점과 단점, 오늘 경기력 등을 분석한 후 코치님들에게 제출해야한다. 다른 선수의 경기를 통해 여러 생각을 하고 만약 나라면 어떻게 반응했을까라고 고민하는 건 매우 좋은 훈련 중 하나였다.
지금도 나를 제외한 모든 팀원이 화면 앞에 앉아 경기 분석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긴장되네.
이번엔 꼭 잘해야지.
아무튼 이영우는 형규를 이겼다.
그 것도 압도적인 실력 차이로 말이지. 형규가 도택형명으로 불리며 아무리 잘나가고 있다고 해도 이영우를 상대하는 건 아직 역부족이었나 보다. 혹시나 하는 기대도 있었지만 역시나로 끝나고 말았다. 용족이면 모를까 마수로 이영우를 이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영우를 상대도 박빙의 상대전적을 보여주고 있는 이제운이 새삼 대단해보였다.
이미 이영우에게 패배한 내 입장에선 차라리 이영우가 3승을 해버리는 것이 좋다.
내가 이영우를 잡았으며 참 좋았을 텐데.
갑자기 속이 쓰리다.
그래. 이미 지난 일은 할 수 없다. 오늘 이기면 된다.
그러면 쓰린 속을 진정시킬 수 있겠지.
컨디션도, 체력도 모든 것이 완벽하다!
승우야. 하던 대로만 하자. 아자 아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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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컨디션 어때?”
“항상 똑같죠. 뭐.”
차분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이영우의 엷은 미소가 그려졌다. 이영우의 가장 큰 장점은 아직도 신들의 전쟁을 즐기고 있다는 것이다.
최고의 자리에 올라있음에도 취미활동으로 게임을 하는 아마추어처럼 말이다. 분명 엄청난 부담감이 짓누를 것임에도 이영우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그 부담감을 즐기는 스타일이다. 사람들이 비난을 하면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며칠 지나지 않아 그 비난을 환호로 바꿔버린다.
‘어쩜 저렇게 똑같을까?’
황 코치는 그런 이영우가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비록 자신보다 나이는 10살 이상 어리지만 어른처럼 느껴질 때가 간혹 있을 정도였다. 컨디션 유지는 생각보다 힘들다. 무쇠보다 단단한 멘탈이 아니라면 쉽게 흔들리기 마련이다. 이 점에서 이영우는 가히 최고라 할 수 있었다.
“오늘 빌드는 어떻게 가져가게?”
“흠.”
이영우가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러한 고민은 오래 가지 않았다.
“도감 더블 가려구요.”
이영우는 3일 연속 경기를 치르느라 조금 지쳐있었다. 이승우와의 경기를 빨리 끝내고 싶었다. 전에 붙어본 결과 생각보다 어려운 상대가 아니라고 느꼈다.
자신감을 넘치지만 실력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
이것이 이승우에 대한 이영우의 평가였다.
확실히 자신감이 넘치고 선이 굵은 플레이를 펼치니 프로리그에선 승승장구 할 수 있다.
개인리그는 프로리그와 다르다.
그 정도는 모두 한다. 거기에 자신만의 무기 하나 쯤을 더 가져야 활약할 수 있는 무대가 개인리그다. 오늘 선택한 빌드는 도감 더블이다. 전에 한 번 당했기에 이승우는 더욱 더 위축 될 것이다. 야심차게 준비한 제단 찌르기가 아무 피해를 입히지 못하고 허무하게 졌기에 이번엔 더욱 정석에 가까운 플레이를 할 수 밖에 없다. 보통 이영우와 상대하는 선수가 선택하는 건 공격적인 플레이 혹은 날빌이다. 본능적으로 후반으로 경기를 이끌어 가는 걸 꺼린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영우를 이길 수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걸 이영우는 역이용했다.
상대방의 불안한 심리를 꿰뚫고 방어에 모든 걸 걸었다. 뻔한 수지만 통했다. 이영우를 상대하는 선수는 홀로 신을 내며 공격하다가 제 풀에 쓰러지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이영우도 사람이다 보니 공격이 통해 무너뜨리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막아낸 수에 비하면 압도적으로 적었다.
변수는 단 하나.
예측과 반대로 후반으로 가져가는 빌드. 오히려 배짱을 부려 이영우를 꺾은 선수들도 있긴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변수일 뿐 문제나 위기는 되지 않는다. 평소처럼만 하면 무난히 승리할 수 있을 거라 이영우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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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화끈한 경기였습니다. 모든 경기가 하나하나 소장하고 싶을 만큼 재미있고 화끈했습니다!
-정말 선수들이 많이 준비했구나하는 것이 중계석까지 느껴질 정도입니다. 원 데이 듀얼 방식으로 탈락자와 진출자가 가려지다보니 모두 좋은 결과를 낼 순 없지만 탈락한 두 선수 모두 뛰어난 경기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좌절하지 않고 프로리그나 다음 MSL에서 모습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잘했습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눈앞에 있다면 엄지를 척 치켜 세워주고 싶은 심정입니다.
최승원 해설이 탈락한 박성찬과 박수천을 위로했다. 입바른 칭찬은 아니었다. 정말 그 둘은 뛰어난 경기력으로 관중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었다. A조가 아니었다면 충분히 통과하고도 남았을 경기력이었다.
-이제 A조의 경기가 끝나고 E조의 경기가 시작됩니다. E조에 속한 선수들도 아주 쟁쟁하죠?
-현재 최고라 불리는 선수가 E조에 속해있죠? 그리고 그 상대는 현재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는 용족 선수입니다.
-이승우 선수. 요즘 육룡보다 훨씬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프로리그에서도 용족 최고 연승 기록을 달성하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는데요. 하필 MSL 32강에서 이영우 선수를 만나고 말았습니다.
-이번이 첫 만남은 아니죠? 공교롭게도 OSL 16강 역시 같은 조에 속해있고 이미 한 차례 경기를 펼쳤습니다. 결과는 이영우 선수의 압승으로 끝났지만 이번 경기도 그러리란 법은 없습니다.
-최승원 해설위원께서 말한 것처럼 상대전적은 1:0으로 뒤쳐지지만 아직 겨우 1경기만 치른 상태입니다. 만약 오늘 이긴다면 균형을 맞출 수 있거든요? 제대로 자신감 찾을 수 있는거에요.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현재 이승우 선수 데뷔 후 환국전 성적이 무려 7승 1패입니다. 물론 1패가 이영우에게 당한 것이 뼈아프긴 하지만 그때의 실수를 본인이 깨닫고 고쳤다면 오히려 좋은 패배가 되었을거라 생각합니다.
-상대가 이영우 선수라 크게 의미없는 이야기가 아닐수도 있지만 어쨌든 전장 자체는 용족인 이승우 선수에게 웃어줍니다. 전장에 대한 연구가 잘 되어 있다면 모두가 놀랄만한 결과를 내놓을 수 있을거라 봅니다.
-자. 경기 준비가 완료되었다고 합니다. 운명의 갈림길에서 두 선수의 운명을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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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한다!”
승대의 외침과 함께 아스트로 숙소에 침묵이 찾아왔다. 연습실 중앙에 있는 거대한 화면엔 이승우와 이영우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이영우의 얼굴이 한결 더 편안해 보였다.
“진짜 짜증나겠다. 1번 같은 조 되도 짜증날 것 같은데 양대리그 다 같은 조 되다니.”
누군가의 말처럼 이승우의 조 편성 운은 최악이었다. 진 로열로더의 자격을 갖추며 당당하게 양대리그에 올라갔지만 함께 올라 온 선수들의 면면이 너무 화려했다.
자신이 시대의 최강자라는 걸 증명하겠다는 듯 이변 없이 올라올만한 선수들이 모두 올라온 것이었다.
역대 최강의 시즌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모든 조가 그런건 아니지만 대부분 4강이라 불러도 미들만큼 어마어마한 선수들이 16강, 32강에 몰려있었다.
아스트로 팀원 모두 이승우가 이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연습실에서 보여주는 모습이나 프로리그에서 보여주는 모습을 볼 때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하나 둘 셋!”
승대의 숫자 외침이 끝나는 순간.
“이승우 화이팅!”
거대한 외침이 아스트로 숙소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