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0 Game No. 80 기승전 PC방. =========================================================================
잘 나오면 톡 프로필 사진으로 걸어놔야지!
그렇게 부푼 꿈을 가진 채 바라본 사진.
“이게 뭐야?”
연호의 말이 곧 내 심정이었다.
화면에 비친 우리의 모습은 처음 찍었을 때와 너무 달라져 있었다.
사람이 아닌 공룡, 돌하르방, 도도리아가 화면 손에서 우릴 향해 방긋 웃고 있었다. 왜 이렇게 못생기게 변했지? 처음엔 안 이랬는데. 아니 찍힌 후에 보였던 찰나의 사진도 괜찮았는데?
내가 봤어. 내가 봤다니까? 밑장 빼기인가? 뭐지?
충격과 공포가 우리를 덮쳤다.
“지우자.”
연호의 빠른 판단.
무섭도록 이성적인 놈.
그렇게 우리가 함께 찍은 첫 번째 사진은 세상에서 사라졌다.
****
메리 포핀스를 나오는 우리의 표정은 왠지 모르게 우울했다. 10분 전까지만 해도 좋았다. 입장 할 때 해프닝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모든 것이 좋아졌었다. 마지막에 찍은 사진이 원흉이었다. 사진 같은 것 찍지 말고 그냥 좋은 기분으로 나올 걸.
정말 이상했다.
찍기 전엔, 아니 찍는 그 순간까지 괜찮았는데 왜 결과물이 그렇게 나온 거지? 혹 좌우반전의 문제일까 싶어 좌우반전을 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냉정하게 말하면 여전히 못생겼다. 세상은 냉혹했다. 온정 따윈 없었다. 차라리 좌우반전을 하지 않는 것이 나을 뻔 했다. 어떻게 보아도 못생긴 얼굴이라는 걸 확인하는 꼴 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현실직시.
우리는 일그러진 사진 하나만을 머릿속에 남긴 채 메리 포핀스를 빠져나왔다.
“이제 뭐하지?”
현실적인 고민이 우리를 덮쳤다.
놀아 본적이 없는 내가 다음 코스를 고를 리 만무했다.
그때 승대가 의견을 내놓았다.
“치킨에 맥주 한 잔 어때요?”
동시에 연호와 내 시선이 승대에게 쏠렸다. 서로 말은 없었지만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징그러운 놈.
지금 상태에서 또 뭘 먹자고?
배 속에 블랙홀 같은 거 있는 거 아냐?
터무니없는 소리가 아닐 수도 있다. 내가 신들의 전쟁 매니저를 얻었든 승대도 배 속에 블랙홀을 얻은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표정들이 왜 그래요? 아직 반도 못 먹은 거 같은데.”
반?
내가 알고 있는 의미가 맞는 거지?
입맛을 다시는 승대가 무섭게 보일 정도다.
“그건 반대야.”
“나도.”
이 녀석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긴 했지만 지금의 배상대론 무리다.
물 한 방울도 넘기지 못할 정도로 배가 가득 차 있었다. 억지로 술 한잔을 마시는 순간 오늘 먹은 음식이 무엇인지 다시 확인하는 사태가 오고 말 것이다.
“그럼 뭐하지?”
“글쎄요.”
승대의 표정이 우울하다. 더 이상 먹지 못한다는 사실이 슬픈 모양이었다. 물론 나와 연호는 그 표정을 철저히 외면했다. 너에게 장단을 맞추다간 우리가 죽게 생겼다.
“PC방 갈까?”
우리의 리더 연호가 다시 의견을 내놓았다.
PC방이란 말에 승대는 회의적인 표정을 지었다.
“밖에 나와서 까지 PC방을 가야겠어요?”
나도 고개를 끄덕여 승대의 의견에 힘을 실었다.
처음 나온 외출을 PC방으로 마무리하고 싶지 않다.
“그럼 뭐할래? 영화라도 볼래?”
흠. 영화라.
남자 셋이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보는 장면을 상상했다. 콜라를 쪼옥 쪼옥 빨면서 커다란 팝콘을 나눠먹는다. 그러다 팝콘통 안에서 손이라도 부딪치고. 동시에 시선이 마주치고.
뚜뚜루뚜 뚜뚜루뚜.
흠. 상상만으로 끔찍하군. 아까 먹었던 걸 확인 할 뻔 했어. 역시 연호는 현명하다. 지금 최적의 답을 내놓았군.
“그냥 PC방 가자.”
동의 1표.
“같은 생각입니다.”
동의 2표.
만장일치로 우린 다음 행선지를 PC방으로 정했다.
****
PC방을 오면서 다짐한 것이 있다. 절대 신들의 전쟁을 하지 않겠다고. 무조건 다른 게임을 하겠다고.
어차피 연습실에선 신들의 전쟁만 할 수 있을 뿐 다른 게임을 할 수 없다. 프로게이머라고 항상 신들의 전쟁이 재미있는 건 아니다. 가끔 다른 게임을 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팀에선 철저하게 신들의 전쟁만을 할 수 있게 관리했다.
이유가 있었다.
과거 우승까지 경험했던 선수의 성적이 갑자기 하락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이유를 몰랐다. 그저 슬럼프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 선수는 다른 온라인 게임에 빠져 신들의 전쟁 연습을 등한시 하고 새벽 늦게 몰래 그 게임을 했던 것이다. 신들의 전쟁 연습을 하다 보니 자연 실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고 거기에 더해 늦게 자다보니 컨디션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다.
해당 선수가 우승까지 하고 결승도 수차례 올라간 베테랑 선수였기에 팀에서 믿고 두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그 후로 연습실에서 타 게임을 하는 것이 금지되었을 뿐만 아니라 연습실 PC에 타 게임의 깔려있기만 해도 페널티가 주어졌다.
신들의 전쟁 프로게이머들이 다른 게임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오직 휴가나 외출을 나왔을 때뿐이었다.
우리 팀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PC의 다른 게임을 물론 모바일 게임까지 엄격하게 통제 되었다.
그래. 이참에 다른 게임도 실컷 즐겨보자!
우리는 PC방 자리에 앉으면서 또 한 번 다짐했다.
절대 신들의 전쟁을 하지 않으리!
하지만.
“야. 거기서 그렇게 하면 어떡해? 나 죽었잖아.”
“미안해요. 그렇게 하려고 했던 게 아닌데.”
“야야. 지원. 아 씨! 늦었잖아!”
FPS 게임도.
“야. 왜 내 길을 막아? 다른 애 길을 막아야지!”
“미안! 나도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라.”
“야야. 쟤 지나간다. 미사일 쏴. 미사일. 나한테 쏘면 어ㄸ거하냐!”
레이싱 게임도.
“젠장.”
우리는 전패했다.
그 밖의 다른 게임도 마찬가지였다. 축구 게임도 야구 게임도 심지어 물 풍선을 가지고 상대를 해치우는 게임도 우리는 모두 패했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오해가 있다.
프로게이머라면 모든 게임을 잘할 거라는 오해.
물론 천부적으로 게임을 잘하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모든 프로게이머가 그런 건 아니었다. 보통 자신이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는 게임만 잘 할 뿐 다른 게임은 젬병인 경우가 많았다.
아쉽게도 우리 셋은 천부적으로 게임을 잘하는 재능을 지니고 있지 못했다.
“으...”
키보드 위에 살포시 올라간 연호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어떤 심정인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나도 온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으니까.
프로게이머는 승부욕이 강하다.
항상 이기고 싶어 한다. 그렇기에 프로게이머가 된 거다.
하루 종일 지니까 이기고 싶어졌다.
완벽하게 이기고 싶어졌다. 상대방에게 절망을 안겨주고 싶었다. 그때 공중에서 연호와 승대와 두 눈이 마주쳤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지만 눈빛으로 모든 걸 알 수 있었다.
이기고 싶다.
무조건 이길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그 것.
다짐은 깨라고 있는 거라고 누가 그랬던가?
다짐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패배감 그리고 분노가 그보다 훨씬 컸다.
그렇게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동시에 신들의 전쟁을 클릭했다.
****
“그래. 이 맛이지!”
“형. 9시 쪽으로 지원가요. 난 5시 마저 끝낼 테니까.”
“오케이!”
키보드 때리는 소리가 PC방을 가득 메웠다. 우리는 모든 열정을 지금 이 순간 쏟아내고 있었다.
우리는 신들의 전쟁을 접속했다. 그리고 먹잇감을 찾아 헤맸다. 일단 래더는 하지 않기로 했다. 마지막 양심이기도 했지만 장비도 우리 장비도 아니었기에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할 수 없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혹시 A등급과 게임을 해서 지기라도 다면 그 전의 게임을 졌던 것보다 더 화가 난다.
멘탈 초전박살.
0.0000000001%의 확률보다 낮겠지만 그런 확률이 있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가 선택한 것은 팀플이었다.
그 것도 일방 공개방에서.
<3:3 사냥터 @@@@>
<3:3 사냥터 개촙만>
<3:3 사냥터 오늘 밤샐 기세!!!####>
같은 방제를 골라 들어갔다.
절대 지지 않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프로게이머인 우리가 이런 방을 들어가도 될까 살짝 죄책감이 들었지만.
“형. 저희가 프로게이머긴 하지만 개인전 프로게이머잖아요. 팀플은 제대로 배운 적이 없으니까요.”
승대가 내놓은 기적의 논리로 모든 죄책감은 봄볕에 눈 녹 듯 사라졌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우리는 팀플을 따로 연습한 적이 없었다.
우리는 승승장구했다.
패배란 단어는 더 이상 없었다. 아무리 팀플을 해본 적이 없었어도 기본기가 있었기에 벌집TV에서 팀플을 전문적으로 방송하는 초 고수 BJ들이라면 모를까 공개방에 있는 이들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가끔 쌍욕도 먹었지만 아무렇지 않았다. 우린 프로다. 이 정도 욕으로 멘탈이 흔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얼마나 잘하면 저렇게 욕을 할까 낄낄대며 웃었다. 악플로 멘탈이 달련 된 것이 좋은 일인지 안 좋은 일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확실히 도움이 되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나를 비롯한 연호와 승대의 얼굴에 사라졌던 미소가 다시 감돌기 시작했다. 여유도 생겼다. 90도로 허리를 세우고 다른 게임을 했을 때와 달리 반쯤은 의자에 몸을 묻은 상태였다.
이기기 위해 악을 쓰지 않아도 된다. 그냥 뽑고 가면 끝이다. 프로게이머가 잘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최적화였다. 아마추어와 같은 시간을 게임해도 훨씬 많은 자원을 채취하고 더 높은 테크를 올리고 더 많은 병력을 생산하는 것.
“크하하하! 같은 수의 용아로 날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연호는 반쯤 광기에 사로잡혀 있었다. 승대라고 다를 건 없었다. 굳이 저렇게 절망감을 줄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마견으로 철저히 상대를 유린하고 있었다. 내가 상대였다면 마우스를 집어 던졌을 정도였다.
그때였다.
“저기 프로게이머 아냐?”
“누구?”
“저기 있는 사람들.”
우리는 시선을 교환했다.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긴 것이다. 뷔페에선 이런 일이 없었다. 조명 자체가 어둡기도 했지만 가격대가 워낙 비싸 유니폼을 벗은 프로게이머를 알아볼 만한 연령층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PC방은 다르다.
신들의 전쟁은 항상 PC방 랭킹 1위를 달리고 있는 게임.
이 PC방에서도 우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신들의 전쟁을 하고 있고 그들 중 대다수, 아니 전부라고 해도 좋은 사람들이 신들의 전쟁 프로리그와 개인리그를 즐겨보고 있다.
굳이 유니폼이 없더라도 우리의 얼굴을 알고 있는 이들이다.
“맞는 거 같은데?”
“저기 제일 왼쪽에 있는 사람 이승우 아냐?”
“어? 진짜?”
내가 네 친구냐?
슬쩍 얼굴을 보니 20대 초반의 대학생들인 것 같았다. 어쨌든 나를 가장 먼저 알아보니 기분이 좋았다.
“슬슬 나가야겠지?”
“그게 좋겠죠?”
아까처럼 마음 편히 게임을 즐기는 건 이제 불가능하다. 괜히 신경 쓰이고 괜히 찔리고 괜히 기분이 이상해질 것이다. 아직 사람들이 긴가민가하고 있을 때 PC을 빠져나가는 것이 좋았다.
수군대는 사람을 뒤로 한 채 우리는 PC방을 빠져나왔다.
============================ 작품 후기 ============================
내일 IBX 전으로 찾아뵙겠습니다.
IBX엔 이승우와 OSL 2차전에서 맞붙는 김윤호가 있죠.
과연 미리보는 16강전이 나올 수 있을지!
기대해주세요.
추천과 댓글은 저를 기쁘게 합니다.
많은 추천과 댓글 기다리겠습니다!ㅎㅎ
그럼 모두 좋은 하루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