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79 Game No. 79 식샤와 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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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야?”
“네. 얼른 들어오세요.”
난 놀란 눈으로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내가 아는 뷔페와 조금 다른 느낌이다. 내가 아는 뷔페는 커다란 홀에 음식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느낌이었는데 여기는 그런 곳보다 고급 레스토랑을 연상케 했다.
순간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1인당 7만원이라더니. 전에 갔던 고기뷔페의 4배가 넘는 금액이다. 거의 5배에 이르는 엄청난 금액.
도대체 어떤 음식이 있기에 이런 가격을 자랑하는 걸까?
한 번도 못 본 음식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을 것 같다. 각오를 해두자. 올라가서 연호와 승대에게 놀란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왠지 도 수코님과 함께 갔던 한정식 집이 떠오르는군.
그때도 충격을 받았는데 오늘 또 충격을 받았다.
“안 들어오고 뭐해요. 얼른 들어와요!”
오는 길에 들었는데 승대는 엄청난 대식가라고 했다. 연호가 말하길 벌꿀TV에서 개인 방송을 하는 먹방 BJ보다 잘 먹으면 잘 먹었지 못 먹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그 정도로 음식을 잘 먹을 줄이야.
평소 음식을 좋아하는 건 알았지만 그 정도로 음식을 잘 먹는 줄은 몰랐다.
“그래. 들어가!”
손짓하는 녀석들을 향해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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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
“어때? 쩔지?”
“여기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에요!”
안 놀라겠다고 또 한 번 다짐했건만 그 다짐은 채 1분을 가지 못했다. 연호의 말처럼 쩐다. 진짜 쩐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은 홀에 가지각색의 음식들이 군인처럼 각을 잡고 도열해 있었다.
한 눈에 모든 음식이 담기지 않을 정도다.
왼 쪽엔 중식 오른쪽엔 양식 등등 전 세계의 음식이 이곳에 모여 있는 느낌이다. 단순히 종류만 많은 것이 아니라 향, 빛깔, 퀼리티 등 모든 것이 보통 뷔페에서 봤던 음식보다 훨씬 뛰어났다. 비교하는 것 자체가 미안할 정도로.
태어나서 처음 보는 음식들도 부지기수였다.
이곳이 천국이구나!
만족스러운 내 표정에 연호와 승대의 얼굴도 덩달아 환해졌다.
“앗!”
그 중에 가장 먼저 내 눈길을 잡아끄는 음식이 있었다.
바로 자몽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자몽을 먹어본 건 서울로 온 이후부터다. 그 전까진 자몽이란 과일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자몽맛 음료수나 아이스크림을 먹어본 것이 전부였다.
S1에 와서 처음 자몽을 먹은 날.
나는 맛의 신세계를 알게 되었다.
이렇게 맛있는 과일이 있을 줄이야!
몇몇 팀원들은 너무 쓰다며 인상을 찌푸렸지만 난 그 특유의 자몽맛이 너무 좋았다. 마음 같아선 매일 매일 자몽을 먹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자몽은 너무 비쌌으니까!
그 비싼 자몽이 여기엔 잔뜩 널려 있었다.
자몽을 보니 침이 고였다.
전의가 불타오른다. 그래. 결심했어!
“여기 있는 자몽 내가 다 먹을 거야.”
난 조심스레 포부를 밝혔다.
“네?”
연호나 승대가 아닌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낯선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려 고개를 돌려보니.
“아.”
그 곳엔 태어나서 처음 보는 여자가 서 있었다.
그 것도 이상한 사람을 보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순간 일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잘못 되었다.
얘들은 어디 가고 다른 여자가 내 앞에 있는 거지?
상황 파악을 위해 고개를 두리번거릴 때.
“야. 거기서 뭐해? 빨리 들어와.”
언제 안으로 들어갔는지 연호와 승대는 저 앞에서 나를 향해 손짓을 하고 있었다. 이것들이. 갈 거면 같이 가지. 지들끼리만 가다니. 이렇게 챙겨 줄 거면 진작 챙겨줬으면 얼마나 좋아?
민망함이 온 몸을 덮쳤다. 부끄러움은 1+1 으로 딸려 왔다.
쥐구멍이 있다면 숨고 싶은 심정이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한테 이런 말을 하다니. 평소엔 자몽 구경도 못하는 사람 처럼!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이걸 누군가에게 밝힌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맛있게 드세요.”
여자는 나에게 덕담을 남기고 자리를 안내해주는 사람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분명 입으론 좋은 말을 하고 있었지만 눈빛은 다른 감정을 나타내고 있었다.
안타까움 한 스푼. 경계 두 스푼.
응원 세 스푼 정도?
“......”
지금이라도 나갈까?
다른 음식을 먹자고 할까?
뷔페라면 다른 곳도 많을 테니.
여기보다 더 비싼 음식도 상관없다. 그냥 이 곳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그 조차 뜻대로 되지 않았다.
“왜 이렇게 멍 때리는 거야?”
“형. 저녁 시간 정해져 있어요. 입장 시간 기준이 아니라 여기 저녁 시간 끝나면 닫아요. 먹을 시간 얼마 없어요. 빨리 가요.”
어느새 돌아온 연호와 승대가 내 팔짱을 꼈다.
어? 이게 아닌데?
그리고.
“우리 자리로 가자!”
“갑시다!”
나를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다.
저기 잠깐 내 말 좀 들어줄래?
속에선 래퍼처럼 하고 싶은 말이 유창하게 터져 나왔지만 실제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어? 으? 정도였다. 사람이 너무 당황하면 말이 나오지 않는다던데. 그게 이 거구나.
그렇게 난 연호와 승대의 손에 이끌려 뷔페 복도를 걸었다.
도살장으로 가는 소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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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지었어? 왜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있어?”
자리에 앉을 때까지 푹 숙인 고개를 들지 못했다. 어디선가 그 여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을 것 같았다. 나를 가리키며 친구들에게 저 사람이 나한테 여기 있는 자몽을 다 먹겠다고 엄포를 놓았다고 수근 거릴 것 같았다.
죄를 짓진 않았지.
다만 쪽팔릴 뿐인지.
어떤 일을 당했는지 말해주고 싶은 마음은 없다. 앞으로 얼마나 큰 놀림거리가 될 지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도대체 그런 실수를 왜 한 거지?
“시간이 없어요. 빨리 빨리 먹으러 갑시다!”
이토록 적극적인 승대를 본 적이 없다. 전투력이 불타오르는 것 같다. 스카우터로 보면 제대로 측정하지 못하고 스카우터가 터져 나갈 것 같은 느낌.
“지금부터 먹어도 2시간 밖에 못 먹어.”
현재시간은 7시 30분.
저녁 시간이 6시 부터 9시 30분까지였는데 어느 시간에 오든 나가는 시간은 무조건 9시 30분이라고 했다. 즉 6시에 오면 3시간 30분 간 뷔페를 이용할 수 있고 8시에 오면 1시간 30분밖에 이용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음식이 굉장히 많아 다 맛보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긴 하지만 2시간이면 꽤 긴 시간이다.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승대가 음식을 먹는 걸 보니 전까지.
“너 음식 진짜 잘 먹는구나?”
“이 엉더는 아거 아죠.”
승대가 하는 말의 절반 아니 70% 이상은 들리지 않았다. 말투를 통해 행복해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뿐이었다. 승대가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니 생각나는 물건이 있었다.
진공청소기.
승대는 그릇 위에 놓여 있는 음식을 진공 청소기마냥 빨아드리고 있었다. 엄청난 속도다. 구경하느라 가져온 음식을 먹지 못할 정도. 연호가 말한 것처럼 벌집TV에 먹방 BJ보다 더 잘 먹는 것 같다.
벌집TV는 별도의 장비 없이 카메라만 있으면 개인이 방송을 할 수 있는 인터넷 방송 사이트였다. 초창기엔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모바일기기의 발전과 함께 요즘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상위 BJ들의 수입은 한 달에 1억을 찍어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을 정도였다.
여러 컨텐츠를 주제로 개인 방송이 이뤄지고 있었는데 그 중 먹는 방송의 줄임말인 먹방도 인기 있는 컨텐츠 중 하나였다.
과거엔 인터넷 개인방송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지만 요즘은 공중파 방송에서 연예인들이 인터넷 개인 방송을 하는 걸 정규 편성할 정도로 찾는 사람들이 많다. 해당 프로의 시청률 역시 동시간대 1위를 달리고 있을 정도로 매주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었다.
신들의 전쟁 역시 인기가 많은 컨텐츠 중 하나다.
많은 BJ들이 신들의 전쟁을 주제로 개인 방송을 하고 있었는데 은퇴한 전 프로도 있었고 프로와는 아예 연관이 없는 아마추어들도 있었다. 방송 주제 역시 다양했다. 신들의 전쟁 유즈맵으로 예능 방송을 하는 BJ도 있었고 팀플이라는 한 우물을 파는 BJ도 있었다.
별다른 컨텐츠 없이 주구장창 래더 게임만을 하는 BJ들도 있었다.
간혹 벌집TV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프로로 스카웃 당하는 경우도 있었기에 프로를 꿈꾸는 수많은 아마추어들은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기 위해 개인 방송을 했다.
나 역시 팀을 구하지 못하면 벌집TV를 통해 개인 방송을 할 생각이었다. 일이 잘 풀려 하지는 않았지만.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승대는 먹는 것도 먹는 것이지만 음식을 담아오는 것도 예술이었다.
어떻게 저게 쓰러지지 않고 고이 담을 수 있는거지 싶을 정도로 접시에 음식이 탐처럼 쌓여있었다. 놀라운 건 다른 성질의 음식은 절대 한 접시에 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단순히 음식을 많이 먹는 걸 넘어 굉장한 미식가였다. 승대가 알려주는 대로 음식을 먹으니 그냥 먹었을 때보다 훨씬 맛있었다.
전문성이 물씬 풍겨 나오는 승대를 보니 혹시 녀석이 가장 큰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은 이 분야가 아닐까 싶었다.
나와 연호가 식사를 마쳤을 때도 승대는 한참 음식을 입에 밀어 넣고 있었다. 누군가 뒤를 쫓는 것 마냥 급하게 음식을 먹고 있었는데 혹 체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런 걱정을 살짝 내비췄지만.
“개아나여.”
승대는 짧고 굵게 본인의 상태를 표현했다.
여전히 입에 음식을 가득 문 채로.
‘자몽 먹을까?’
입맛을 다시며 자몽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맛있게 생긴 자몽이 나를 유혹했지만 선뜻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까 전 던진 선전포고 때문이었다.
자몽 가지러 갔다 그 여자를 만나면 굉장히 민망할 것 같았다. 실제로 아까 음식을 가지러 갔을 때 그 여자와 살짝 마주쳤다.
‘으.’
그때 여자의 표정이 다시 생각남과 동시에 손발이 오그라들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자몽을 포기할 수 없었다. 내가 왜 긴장을 해야 하는지 모르지만 심호흡을 한 후 자몽을 가지러 갔다. 주변을 슥 둘러보니 그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뭐가 다행인지 모르지만 참 다행이었다. 그렇게 접시에 한 가득 자몽을 담고 자리로 돌아오는 와중.
‘아.’
그 여자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땅에 뿌리라도 박힌 듯 우뚝 멈춰버린 다리.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아. 원수는 아니지. 어쨌든 여기서 딱 만나다니.
잠깐? 내가 이렇게 위축 될 필요는 없잖아?
그리고 오늘 자몽을 먹고 가지 못하면 두고두고 후회 할 것 같았다.
난 당당히 자몽이 가득 담긴 접시를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누군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지지만 착각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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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몽은 맛있었다.
정말로.
잠깐의 부끄러움을 견디고 자몽을 가져 온 건 오늘 최고의 선택이었다.
“더 이상은 못 먹겠다.”
자몽을 끝으로 난 백기를 들었다. 시간은 어느새 9시가 넘어 있었다. 나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식사를 마친 상태로 함께 온 사람과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며 소화를 시키고 있었다.
연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물론 예외는 있었다.
“쟨 지치지도 않나 보네.”
승대는 자리에 없었다. 새로운 접시를 든 채 음식이 놓인 공간을 하이에나처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징하다.
그렇게 먹고도 또 음식을 먹다니.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냐. 6시부터 왔어도 지금부터 먹었을 놈이야.”
연호에게 승대의 모습은 익숙한 듯 했다. 놀라기는커녕 당연한 것처럼 승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접시 3개에 음식을 가득 담아 온 승대.
“20분 남았어. 다 먹을 수 있겠어?”
걱정이 되어 물었지만.
“형. 저 김승대에요.”
괜한 물음이었다. 가슴을 쫙 펴고 한 손으로 가슴을 팡팡 두드리는 승대의 모습은 위풍당당했다.
그리고 정확히 10분이 흐른 후.
“이제 좀 먹은 것 같네요!”
“...괴물이네.”
승대는 가져온 음식을 다 먹었다. 어떻게 이렇게 먹고도 또 음식이 들어가지? 더군다나 승대는 지금 배가 완전히 차지 않은 모양이었다. 빈 접시와 음식이 있는 공간은 번갈아 바라볼 정도였으니까. 만약 음식 정리 시간이 아니었다면 승대는 또 다시 음식을 가져와 먹었을 것이다. 시간이 9시 20분이 넘으니 새로운 음식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기념으로 사진이나 한장 찍자.”
연호의 제안.
그거 좋지!
이렇게 나온 것이 처음이니 사진 한 장 남겨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좋아요.”
“그래 말 나온 김에 한 방 찍자.”
의자를 끌어 연호와 승대와 나란히 섰다.
그리고 휴대폰 카메라를 향해 각자 가장 자신 있는 표정을 지었다. 오? 나름 괜찮은데?
뷔페의 어두운 조명 덕분에 한층 분위기가 더해졌다.
“찍습니다.”
연호의 신호와 함께 지금 지을 수 있는 가장 멋진 표정을 지었다.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찍힌 사진.
찰나를 보는 프로게이머들이다. 찍히는 순간 화면에 비친 사진을 보았다. 괜찮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정도로 괜찮은 사진이 나온 것 같다.
나만의 착각이 아니었다. 연호와 승대의 얼굴도 밝았다.
모두 기대에 찬 얼굴로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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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자몽은 제가 미친듯이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