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78 Game No. 78 첫 외출! =========================================================================
감독님의 갑작스런 호출.
어떤 이유로 날 찾으시는 거지?
몇 가지 짐작 가는 바는 있었다.
인터뷰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려나?
“저 승우입니다.”
감독실을 노크하면 조심스럽게, 하지만 큰 목소리고 말했다.
“그래. 들어와.”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문을 열로 안으로 들어왔다. 컴퓨터 화면을 보고 계신 감독님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내가 들어오자 감독님이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셨다. 그리고 밝은 미소를 지으셨다.
“인터뷰 잘 봤다.”
역시 가장 먼저 나온 이야기는 인터뷰에 관한 이야기였다.
“저도 감독님께서 하신 인터뷰 봤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하긴 무슨. 사실대로 말한 것뿐인데.”
감독님이 휘휘 손사래를 치셨다.
위너스 리그 전승을 달리고 있는 덕에 감독님도 따로 인터뷰를 하셨다. 그 인터뷰엔 내 칭찬이 절반이었다. 보는 내내 약간 부끄러울 정도로.
“네가 없었으면 우리가 여기까지 왔겠냐?”
전체 팀 승리의 90%를 내가 하긴 했다. 다른 팀원보다 기회를 잡았기에 그랬던 것 뿐, 육군전이나 폭스전에서 대장으로 나왔다면 골고루 승이 배분 되었을 것이다.
“그 동안 고생 많이 했다. 승우가 아스트로에 합류한지 얼마나 지났지?”
흠. 내가 여기 온지 얼마나 되었더라? 예선 끝나고 왔으니까 대충...
“한 달 조금 조금 안되었습니다.”
한 달이라.
시간이 빠르게 흘렀구나.
벌써 한 달이라니. S1에서 방출 된 것이 엊그제 같은데.
“그 동안 자유 시간은 있었고?”
“네.”
프로게이머라고 항상 연습만 하는 것은 아니다. 프로게이머도 사람이기에 적절히 휴식을 취해 줘야 한다. 선수 별로 휴식을 취하는 방식이 다르다. 정말 게임생각은 잊고 밖에 나가 신나게 오는 스타일이 있는가하면 방에서 조용히 쉬는 스타일도 있었다.
심지어 자유 시간에 연습실에서 신들의 전쟁을 하는 괴물도 있었다. 그 선수의 이름은 이영우였다. 괴물같은 놈. 얼마나 더 해먹으려고 그렇게 열심히 하나 모르겠다.
“그 시간에 뭐했어?”
“흠. 그냥 방에서 쉬거나 헬스장 가서 운동했습니다.”
“외출은?”
“운동하러 갈 때 빼고 딱히 나간 적 없습니다.”
난 방에서 쉬는 스타일이다. 딱히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S1 2군에 있을 때부터 그랬던 것이 습관이 된 것이다. 당시엔 이유가 있었다. 돈이 없었으니까. 다달이 받는 돈을 집에 보내고 나면 내가 쓸 돈이 없었다. 나가면 다 돈이다. 이동하는 것도 식사를 해결하는 것도. 하지만 숙소에 가만히 있으면 적어도 숙식은 해결이 된다.
다시 그때를 떠올리니 조금 불쌍하긴 했네.
돈이 없어서 밖에 못나가다니.
지금은 다르다.
돈은 많다. 연봉 자체는 적지만 승리 수당이 엄청나다.
그간 챙긴 승리 수당이 월봉보다 많을 정도였으니까. 얼마전 연봉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 적은 액수에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6년간 2군을 하긴 했지만 1군으로서 능력을 발휘한 것이 없어 그 정도 밖에 줄 수 없었다고 했다.
아스트로가 돈이 많은 팀이면 상관없다. 하지만 아스트로의 사정은 썩 좋지 않다. 어떤 스포츠든 리그 최하위에게 많은 후원이 있기란 힘들었으니까. 그렇기에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은 선수에게 너무 많은 돈을 주기 힘들다고 했다. 마음 같아선 최고 연봉을 제시하고 싶었다고 했다. 특히 감독님이 강력하게 그 의견을 주장하셨다고 했다. 고마웠다. 내 가치를 높게 평가해주셨다는 사실이.
물론 감독님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반대했다.
반대가 섭섭하진 않았다. 충분히 납득 할 수 있는 이유였다.
팀의 연봉 체계를 무너뜨리는 것.
자칫 팀의 와해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짓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괜찮다고 했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실력이 있다는 걸 팀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알게 되었으니까.
이번 위너스 리그가 끝나고 연봉 협상이 있을거라고 했다. 그러니 너무 실망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사실 연봉에 대한 불만은 없었다. 아직 내가 세상 물정을 몰라 그런 걸지도 모른다.
사람이 좋다.
이 팀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래서 전혀 불만이 없었다. 물론 내 가치를 연봉으로 증명 받고 싶은 욕심이 없는 건 아니다. 당장이 아닐 뿐 언젠가는 내 가치를 연봉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그 것이 지금이 아닐 뿐이었다. 지금은 그냥 경기에 나가는 것 자체가 좋다.
경기에 승리하고 팬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그냥 좋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한 번도 안 나갔어?”
“네.”
감독님의 저 표정.
왠지 알 것 같다.
기가 막힐 때 짓는 표정이 딱 저 표정일 거 같은데?
순간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건가 싶었다.
“좀 나가서 기분 전환도 하고 오고 그래. 너무 팀에만 있으면 안 좋다.”
“네?”
“너무 숙소에서 붙어 있으면 축 쳐진다고. 가끔 나가서 신나게 놀다오는 것이 오히려 성적을 유지하는데 좋다. 연승이나 승률에 대한 부담감이 있는 모양인데 너무 연습만 몰두해도 좋지 않아.”
감독님?
조금 오해하신 것 같습니다만?
감독님은 내가 좋은 성적을 보여줘야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외출을 하지 않는다고 믿고 계신 듯 했다.
네버! 전혀 아니다.
감독님이 알고 계신 것이 오해라고 말하고 싶었다.
“저 사실 그게 아...”
아쉽게도 끝까지 말할 순 못했다. 중간에 감독님이 말을 잘랐으니까. 자르고 싶어서 자른 건 아니었다. 그냥 거의 동시에 말을 했을 뿐이다.
“오늘 나갔다 와라.”
“네?”
고개를 갸웃거리는 내 말에도 감독님은 아랑곳 하지 않으셨다. 바로 시계를 확인하시는 감독님.
“아직 시간 이르네. 나갔다 와라.”
“지금요?”
굉장히 갑작스럽다.
아무런 계획도 없는데 지금 나가라니.
나가서 방황하고 오라는 뜻은 아닐 테고. 놀다 오라는 뜻일텐데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아무 것도 없다. 내가 이렇게 재미없게 살아왔구나. 문득 후회가 들었다.
“어차피 내일 경기도 없고 월요일 저녁에 경기 있으니 오늘 밤 신나게 놀다 와라. 놀다가 늦으면 내일 오전에 들어와도 되고.”
잘 못 들은 거 같았지만 감독님의 표정을 보니 잘못들은 건 아닌 듯싶다.
외박을 해도 좋다니.
S1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예 외박이 불가능한 건 아니다. 휴가를 가면 외박은 가능하다. 하지만 외출을 나가서 외박을 하는 건 불가능했다. 아무리 늦어도 새벽 2시 내엔 들어와야 했다. S1 뿐만 아니라 다른 팀도 보통 이런 규율을 지니고 있다.
“좀 여유 좀 가지고 살아. 혼자가면 재미없지? 애들이랑 같이 가라. 돈은 걱정하지 말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감독님이 옷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설마?
“이 걸로 맛있는 거 사먹어라.”
역시 설마가 사람 잡는다.
감독님의 손에 들려 있는 건 신용카드였다.
반짝반짝 빛나는 신용카드.
내가 카드를 건네받기를 주저하자.
“이거 법인 카드야. 내 돈 쓰는 거 아니니까 걱정마라. 어차피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니 주저 말고 받아.”
전설의 법인카드.
S1에 있을 떄 들었다.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들이 외출을 나갈 때 쥐고 나간다는 카드.
무엇을 사먹어도 용서가 되는 무적의 카드.
그 카드가 지금 내 눈 앞에 있다니.
2번의 거절은 예의가 아니라고 어디서 들었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래. 마음 편하게 놀다 와라.”
난 법인 카드를 꼭 쥔 채 감독실을 빠져나왔다.
“어? 그거 법카네?”
지나가던 코치님이 내 손에 들려있는 법인 카드를 보았다.
“오~ 이승우. 좋겠는데?”
직접 보진 않았지만 어떤 상황인지 대충 눈치 채신 듯싶었다. 한 번에 알아채는 걸 보니 이런 경우가 자주 있었나보다.
딱히 할 말이 없어 바보처럼 웃었다. 좋다고 하기도 그렇고 안 좋다고 하는 건 더 그랬으니까.
“그럼 재밌게 놀아.”
“넵!”
법인 카드를 쥐고 방으로 돌아온 순간 두 번째 걱정이 시작되었다.
‘누구랑 나가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얼굴은 3명.
현우 형, 연호, 승대다.
왠지 셋 다 안 나갈 것 같다.
특히 연호.
분위기가 좋지 않다.
9연패부터 시작해서 악플까지. 모든 것이 좋지 않다. 그때 연호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감정을 지니고 있다면 별로 나가고 싶어 하지 않을 것 같았다.
‘요즘 많이 우울해보이던데.’
다른 사람들도 좋지만 연호만은 반드시 함께 나가고 싶었다. 맛있는 것 먹고 재밌는 추억을 함께 만들고 싶었다. S1에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 모든 추억은 숙소에만 머물러 있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추억을 만들고 싶었다.
‘밑져야 본전이지.’
일단 연호에게 말을 걸어보기로 마음먹었다.
****
“콜. 가자!”
“형. 좋아요!”
아무도 가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건 착각이었다. 2명이 내 파티 초대에 응했다. 그 것도 아주 격한 반응과 함께.
첫 번째 파티원으로 낙점 된 사람은 연호였다.
걱정했다. 연호가 그냥 연습실에 남아 연습하겠다고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의외로 쉽게 내 제의를 받아들였다. 본인이 원해서라기보단 나와 함께 하기 위해 외출을 결심한 듯싶었다.
역시 좋은 친구구만!
두 번째 파티원은 승대였다. 녀석 역시 밝은 표정으로 단번에 제의를 승낙했다. 다른 팀원들에게도 물어봤지만 각각의 이유로 나갈 수 없다고 했다. 2군이나 제대로 경기를 나서지 못하는 1군을 데리고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각자의 이유로 함께 나가지 못하게 되었다.
현우 형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늘은 그저 숙소에서 쉬고 싶다고 했다. 연호와 승대까지 달라붙어 설득했지만 완강했다.
결국 숙소를 나가게 된 사람은.
“오늘 배터지게 먹자.”
눈빛을 반짝이며 신발은 신고 있는 연호와.
“당연하죠. 아까 저녁에 이상하게 배가 고프지 않더라니. 이런 일이 있으려고 배가 안 고팠나봐요. 미친 듯이 먹어 치우죠!”
그 옆에서 굳은 의지를 다지고 있는 승대.
“난 여기 와서 첫 외출이다. 재미나게 놀아보자!”
나까지.
총 셋이었다.
더 많은 인원이 함께하지 못한 건 아쉬웠지만 그래도 가장 친한 셋이 나가게 되어 좋았다.
우리는 전장에 나가는 병사들처럼 이글거리는 눈빛과 장엄한 분위기를 풍기며 숙소를 빠져나갔다.
****
“요 앞에 제가 정말 맛있는데 알고 있는데.”
“아. 거기?”
“네. 거기요.”
몇 번 함께 가봤는지 승대가 말한 곳을 연호는 아는 눈치였다. 왠지 모를 소외감이 느껴지는데?
뭐 이번에 함께 가면 다신 소외감을 느끼지 않겠지.
기분이 좋다보니 긍정! 긍정의 힘이 마구 솟는다.
“어딘데. 나도 좀 알려줘.”
“아아. 너는 한 번도 안 가봤지. 미안. 메리 포핀스라고 되게 맛있는 곳 있어.”
“거기 뷔페인데 일반 뷔페랑 다르게 진짜 진짜 맛있는 음식을 엄청 많아요.”
저 하늘의 별처럼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승대가 설명을 덧붙였다.
뷔페라.
안 가본지 좀 오래되었다. S1에서 2군 선수들과 함께 고기 뷔페를 갔던 적이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 정도로 맛있어?”
“당연하죠! 이런 기회가 아니면 갈 수 없어요. 무조건 가야해요!”
“갈 수 없다니? 이유가 있어?”
“아아. 거기가 좀 비싸거든요. 처음 갔을 때 지금처럼 법인카드로 갔던 곳이라 제 돈으로 가기엔 조금 아깝거든요.”
“얼만데?”
이미 비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떠한 액수가 나와도 놀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그 다짐은.
“7만 원요.”
10초 만에 무너졌다.
“뭐? 7만원?!”
거울을 보지 않아도 내 표정이 어떤지 알 수 있다. 아마 세상에서 가장 놀란 사람의 표정을 짓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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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시간 맞춰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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