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로더 신들의 전쟁-76화 (76/575)

00076  Game No. 76 전설이 되고 싶습니다.  =========================================================================

****

“괜찮으세요?”

놀랐다.

항상 나를 반겨주던 홀아비 냄새 물씬 풍기는 김도철 기자님 대신 안엔 전혀 뜻밖의 사람이 앉아 있었다. 혹시 내가 다른 방을 들어온 건 아닐까 싶어 다시 확인했지만 인터뷰실이 맞았다.

그렇다면 저기 앉아 있는 사람은 다른 기자?

여태 만나온 기자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내 또래 정도의 여자였는데 무언가 기자 특유의 피곤함이 아닌 들꽃 같은 풋풋함이 물씬 풍겼다.

인터뷰실의 공기 자체도 다르다.

담배 냄새와 홀아비 냄새로 가득했던 인터뷰실에 은은한 꽃향기가 감돌고 있다. 이게 여자의 향기라는 건가? 정..정신이 아득해진다.

그나저나 상대도 놀랐나보다.

나를 보고 물을 뿜으며 켁켁거리고 있었으니. 아직도 얼굴이 벌게 진 걸 보아 제대로 사레가 들린 모양이다.

나 때문에 그런 거라 생각하니 굉장히 미안해졌다.

“괜...괜찮아요.”

상대는 전혀 괜찮지 않은 표정으로 괜찮다고 말했다.

누가 봐도 안 괜찮은 상황 같지만 지금은 그냥 납득해야겠다. 뭐 내가 납득 안한다고 달라질 건 없지만.

조금 괜찮아졌는지 큼큼거리며 목소리를 호흡을 가다듬는 상대.

“이승우 선수 처음 뵙겠습니다. 이번에 이승우 선수와 인터뷰를 진행하게 된 김채하 기자라고 합니다.”

자신을 김채하라고 소개한 그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나도 함께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제가 많이 늦었죠? 이렇게 늦을 생각은 아니었는데 잠깐 일이 있어서 늦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오래 안 기다렸어요.”

빙긋 웃는 모습이 너무 예쁘다. 순간 넋을 잃을 뻔 했지만.

‘이러면 안되지.’

다시 제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손에 쥐고 있는 음료를 건넸다.

“오다가 뽑아왔거든요? 하나 드세요.”

거절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다행히 김채하 기자는 밝은 얼굴로 음료를 받았다.

“감사합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게 오렌지 주스인데. 어떻게 딱 오렌지 주스를 뽑아오셨네요!”

다행이다.

어떤 걸 고를까 고민하다 그냥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걸 뽑아왔는데. 상대도 입맛에 맞았나보다. 배시시 웃는 모습이 참 예쁘...아니. 지금 우리가 소개팅 같은 걸 하러 나온 게 아니잖아? 인터뷰하자. 인터뷰.

“처음 뵙는 기자분이시네요. 그래서 저도 조금 당황했어요. 순간 인터뷰실을 잘못 들어온 건 아닐까하고요.”

“아. 제가 선수 인터뷰를 단독으로 나온 건 처음이거든요.”

내 표정에 당황이 묻어나왔는지 김채하 기자가 화들짝 놀랐다. 도대체 왜 화들짝 놀라는 거지 싶었지만 왠지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했다.

전까지 다른 기자들과 함께 다니다 이번에 처음 나왔다며 잘 부탁한다고 덧붙였다.

오히려 제가 더 잘 부탁드립니다.

프로게이머는 기자들과 친하게 지내는 편이다. 아니 친하게 지낼 수밖에 없다. 정확히 말하면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같은 말이라도 억양에 따라 그 느낌이 다르다. 기자는 프로게이머의 말을 사람들에게 옮기는 역할을 한다.

만약 기자와 트러블이 있다면 항상 좋은 기사가 나올 수 없다. 물론 없는 일을 억지로 만들어 쓰진 않겠지만 언젠가 문제가 생겼을 때 제대로 역풍을 맞을 것이다.

“그렇군요. 일단 앉죠.”

서서 인터뷰를 할 이유는 없다.

왜?

다리 아프니까.

“아. 네.”

물끄러미 김채하 기자를 바라보았다. 살짝 어설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것도 잠시.

“그럼 본격적으로 승자 인터뷰 시작해볼까요?”

인터뷰가 시작되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변하며 본인이 기자라는 걸 증명하는 김채하였다.

“오늘 4승을 거두시면서 용족 다승 TOP 10에 이름을 올리시게 되셨네요.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벌써 14승이라니.

1,2 라운드를 치르지 않았음에도 위너스 리그에서 승리를 쓸어 담은 덕에 다승 랭킹에 드디어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이러다가 전체 TOP 10 안에도 오르는 거 아냐? 항상 TV에서만 보던 랭킹에 이름이 올라간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쿵쾅거렸다.

프로리그 다승 10위.

종족별 다승 순위도 아니고 전체 다승 순위 10위 안에 들어간다는 건 엄청난 일이다.

“프로리그 14연승. 그리고 3회 올킬. 이런 좋은 활약을 펼칠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흠. 일단 가족이 크죠. 제 존재 이유가 가족이니까요. 가족들이 아니었다면 악착같이 2군을 버티지도 않았을 거예요. 한 1,2년 하다가 때려 쳤겠죠. 설사 버텼다 하더라도 승드셋과 몰수패 사건 때 때려 쳤을 거예요.”

가족.

말하는 것만으로도, 아니 떠올리는 것만으로 코끝이 찡해지는 이름이다. 엄마와 동생이 아니었다면 난 지금 이 자리에 올 수 없었다. 최고의 프로게이머가 되기 위해 아등바등 노력하지도 않았을 테고 방출 당한 후 새 팀을 찾으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 모든 행동의 이유는 가족이다.

가족 다음으로 큰 힘은.

“그 다음은 팀이죠. 아스트로. 방출 당한 저를 받아줬거든요. 사실 조건 자체가 좋은 건 아니에요. 훨씬 더 좋은 조건의 팀들이 많죠. 하지만 감독님의 눈빛이 저를 움직였어요. 이 팀이라면 함께 해도 좋다고.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고.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그 때의 선택이 옳았어요. 그때로 돌아간다면 당시의 저를 칭찬해줄 거예요. 옳은 선택 잘했다고. 전 지금이 너무 좋아요. 제 인생에서 가장 좋은 순간이에요.”

좋은 감독님. 그리고 좋은 코치님들.

좋은 팀원들까지.

지원이 조금 약한 것이 흠이지만 사람들로 뒤 덮고도 남을 정도다. 지원이야 성적이 잘나오면 좋은 스폰서 잡고 빵빵하게 받을 수 있는 거니 크게 문제 될 건 없다.

나를 보며 김채하 기자가 미소 지었다.

“이승우 선수는 참 행복한 사람이군요.”

****

기자가 바뀌었다고 인터뷰 내용이 달라질 건 없었다. 평이한 질문이 이어졌고 나 역시 모범 답안을 내놓았다. 그래도 여자라서, 그 것도 내 또래의 여자라서 전보다 분위기가 한층 밝긴 했다. 내용 자체만 본다면 여느 때와 같이 평범한 인터뷰긴 했지만.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너무 빤히 바라보았나보다. 김채하 기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뭐가 묻긴요. 그냥 예뻐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요.

내가 이렇게 여자와 단 둘이 있어 본 게 얼마만이지?

젠장. 초등학교 이후로 처음이잖아? 도대체 난 뭐하고 산거지? 처음으로 인생에 회의가 생겼다.

“아. 그런 건 아니에요. 잠깐 무슨 생각하느라.”

“그러시구나.”

“그슨대가 앞마당으로 닥쳤을 때 어떠셨나요?”

자. 정신 차리자. 정신.

지금은 인터뷰다. 인터뷰! 괜히 엄한 소리나 오해받을 짓을 했다간 온갖 커뮤니티에 기자에게 치근덕대는 극악무도한 선수라는 이야기가 도배 될 것이다.

“딱히 위기라고 느낀 적은 없었어요. 그냥 준비한대로 하면 된다는 생각? 막을 수 있는 러시라고 판단했구요.”

“와. 정말 대단하네요. 그 짧은 순간에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시다니!”

오해말자. 이승우.

내가 좋아서 이런 게 아니라 직업 상 웃어주고 있는 것뿐이다!

그렇게 얼마나 인터뷰가 진행되었을까?

계속해서 예상한 질문이 나왔고 막힘없이 준비한대로 답했다. 김채하 기자가 노트북을 치는 소리가 인터뷰실을 가득 메웠다. 내가 말하고 있는 걸 그대로 옮기고 있는 중이다. 한글자도 빼먹지 않겠다는 듯 눈엔 불꽃이 화르륵 피어 있었다.  내가 게임을 할 때보다 타자치는 속도가 훨씬 빠른 것 같다.  그러니 기자겠지?

놓칠지 모르는 억양의 미묘함까지 잡아낼 생각으로 노트북 옆엔 켜져 있는 녹음기가 놓여 있었다.

단독 인터뷰가 처음이라고 했는데 생각보다 잘하는 것 같다.

딱딱하게 정해진 질문만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편안하게 대답을 할 수 있게 잘 유도해준다. 리액션 역시 굉장히 좋고. 정말 내 말을 집중해서 듣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보니 준비한 것 이상으로 이야기가 술술 나왔다.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 같은 느낌?

그냥 김도철 기자님이 아니라서 그렇게 느끼는 것 같기도 하지만 어쨌든 기자긴 하지만 여자와 단 둘이 있으니 나름 좋긴 하네.

“오늘의 하이라이트 질문이네요. 어떻게 그런 세레모니를 준비하게 되었는지 알 수 있을까요?”

드디어 기다리는 질문이 나왔다.

가장 많이 준비한 질문이기도 했다.

“먼저 일단 저를 위한 세레모니기도 해요. 승드셋과 몰수패. 솔직히 아예 지워버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잖아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럼 차라리 그때의 일을 끄집어내서 난 이제 아무렇지 않다. 더 이상 그때의 내가 아니라다라는 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정말 대단해요!”

김채하 기자의 감탄.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먼저 일단 저를 위한 세레모니기도 한다는 말은 다른 이유도 있다는 뜻인가요?”

확실히 기자는 기자다. 미묘한 억양의 차이를 바로 잡아내었다.

“네. 저희 팀의 연호가 요즘 분위기가 별로 좋지 않거든요.”

“저번 패배까지 해서 총 9연패를 기록 중이죠.”

“맞아요. 그 것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고 있어요. 그래서 그 친구를 위해서 한 세레모니기도 해요. 내가 이렇게 힘든 사건을 아무렇지 않게 털고 일어난 것처럼 연호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할 수도 있구요.”

“연습실에선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나 봐요?”

“네. 연습실에선 정말 잘하고 있어요. 그 실력이 방송에서 채 반도 발휘되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아쉬워요.”

장난기는 싹 뺐다.

“그렇군요. 전혀 몰랐어요. 아. 이건 실례인가요? 죄송해요.”

“아뇨. 괜찮아요. 김채하 기자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모를거에요. 연호가 얼마나 연습실에서 잘하는지. 저도 많은 걸 배우고 있어요.”

이건 살짝 부풀리긴 했다. 그래도 연호에게 배우는 것이 있긴 했다. 많다고 하기 조금 부족하지만.

“신연호 선수의 활약을 기대해 볼 수 있을까요?”

난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조만간 지금의 부진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멋지게 날아오를 겁니다.”

진심이다.

함께 승리를 해서 승자 인터뷰를 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앞으로 신연호 선수를 비롯한 아스트로 모든 선수의 활약을 기대할게요.”

“감사합니다.”

“이제 정말 마지막 질문입니다. 정말 즐거운 인터뷰 시간이었어요.”

어느 덧 인터뷰를 마칠 시간이 되었다. 시계를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흐른거지? 시간을 삭제당한 기분이다.

“네.”

“앞으로의 계획과 각오를 묻고 싶습니다.”

각오.

평소 승자 인터뷰 땐 앞으로도 개인리그와 프로리그에서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었다. 가장 무난한 멘트였기에 처음부터 하나 정해 놓고 계속 쓰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왠지 조금 특별하게 말하고 싶다. 누가 지켜보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런지 모르겠다.

딱히 잘 보일 사람도 없는데.

그냥 조금 다른,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고 싶어졌다.

“저는 앞으로.”

근데 정말 이런 말해도 되려나?

막상 말할 때가 되니 살짝 고민 되었다. 건방져 보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모르겠다.

그냥 지르자.

“전설이 되고 싶습니다.”

============================ 작품 후기 ============================

어제 컨디션이 너무 안좋았습니다.

그래서 오후 10시에 자면서 예약 연재를 걸어놓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확인하니...

으..오타 투성이더군요. 죄송합니다.

오늘은 왠지 전설이 되고 싶셉습니다가 떠오르는 하루네요.

여러분들의 추천, 선작, 댓글은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저에게 큰 힘을 주세요!

재미있는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그럼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길.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