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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로더 신들의 전쟁-67화 (67/575)

00067  Game No. 67 예고 올킬.  =========================================================================

이재성의 지목을 받은 H조의 정인철이 무대 중앙으로 향했다. 그가 데려온 선수는 내가 전에 스파키즈 올킬을 할 때 상대한 적이 있는 이형민이었다.

왜 이형민을 데려왔는지 알 것 같다. 이재성이 환국전을 못하는 정인철을 데려간 것처럼 마수전을 잘 못하는 용족이기 때문일 것이다.

반대로 정인철의 용족전 승률은 매우 높고.

뒤 이어 허영우의 지목을 받은 현우 형이 박천기를 자신의 조에 데려왔다. 완벽히 실리를 택하는군!

박천기는 나와 형규처럼 이번에 처음으로 MSL 32강 본선에 오른 선수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나와 형규는 첫 예선에 첫 본선이라면 박천기는 정확히 7전8기, 8번의 도전 끝에 32강에 오른 선수였다.

팀은 우리와 다음 프로리그 경기를 하는 폭스 소속이었다.

팀 순위에서도 알 수 있듯 박천기는 그리 뛰어난 실력을 지닌 선수는 아니다.

4할 초반 대의 승률.

두터운 환국 라인과 달리 마수 선수층이 얇은 폭스에서 주전으로 나오고 있지만 패배할 때가 훨씬 많은 선수다. 박천기가 지목 당하자 관중들의 눈에 묘한 기대감이 어렸다.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등장과 동시에 엄청난 도발을 했기 때문이었다.

-육룡은 무슨. 도마뱀이지.

겨우 10글자였지만 어마어마한 파괴력이 있는 말이었다.

-자. 박천기 선수 박현우 선수에게 지목 당했습니다. 기분이 어떻습니까?

“그다지 좋지는 않네요. 육룡을 만나서 박살내주고 싶었는데. 그래도 같은 조에 한 마리가 있으니 그 한 마리 잡고 올라가겠습니다.”

한 마리로 지목당한 허영우의 얼굴이 살짝 벌게졌다. 웃고는 있지만 도발에 살짝 짜증 난 것처럼 보였다.

갑작스레 피어오르는 도발의 불씨.

-박천기 선수 생각이 이렇답니다. 허영우 선수.

마이크는 허영우에게 넘어갔다.

“어이없네요. 같은 조긴 하지만 어차피 만날 일 없어 보이는데.”

메시지는 간단하다.

자신은 승자조로 너는 패자조로.

확실히 경험이 많은 선수들답게 대처가 노련하다. 난 언제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답하지? 아까 이영우의 말에 완벽한 대처를 하지 못한 것이 후회되었다. 지금 마이크 주면 더 잘할 수 있을텐데.

후회해봤자 소용없다. 버스는 떠난 지 오래였다.

“뭐 사실 육룡, 육룡 하면서 뛰어주기는 하지만 솔직히 도토리 키 재기 아닙니까? 도토리묵을 만들어버리겠습니다.”

일순 도토리가 되어버린 육룡 선수들의 얼굴에 황당한 웃음이 번졌다. 개인이면 모를까 육룡이 한데 묶여 이런 도발을 받는 것은 익숙지 않을 것이다.

-특별히 만나고 싶은 육룡 선수가 있으십니까? 이왕 이렇게 마이크 든 거 시드권자들에게 어필 한 번 해보시죠.

“딱히 만나고 싶은 육룡은 없습니다. 어차피 다 거기서 거기라서. 누가 되었든 한 끼 식사라고 생각합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길 수 있는. 그나마 상대한다면 수장이라 불리는 김택윤 선수랑 붙고 싶네요.”

-조용히 앉아 있다 봉변을 당한 김택윤 선수에게 마이크를 넘겨주시죠.

-자. 박천기 선수가 본인과 붙고 싶다고 하는데요.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어. 별 생각 없어요. 그냥 조지명식이니까 본인 이름 알리려고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역시 김택윤.

최강자 라인답게 여유가 흘러넘친다.

-육룡에 대해선 이렇게 생각하시고 그럼 혹시 육룡은 아니지만 용족 최다 연승 기록을 갈아치운 이승우 선수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엥? 화살이 이번엔 왜 나한테 돌아 오냐?

내가 무슨 동네북이야?

전 시즌 우승자들부터 박천기까지.

왜 나를 가만히 안 두는거야?

내가 두 눈을 깜빡거리고 있는 사이.

“도마뱀 꼬리 정도로 생각합니다. 안중에도 없어요. 운이 좋아서 연승 했는데 뭐 사실 볼 건 없습니다. 보니까 다 쇼부, 아니 날빌로 이긴 거던데. 그딴 건 저한테 안 통합니다. 붙어봤자 무조건 이길 겁니다. 같은 조가 되면 그냥 16강 가라는 소리니 저야 땡큐죠. 요즘 운이 좋은 것 같은데 원래 별명이 승드셋과 몰수로더 아닙니까? 제가 원래 자리로 돌려보내겠습니다.”

여태 나온 도발 중 가장 강력한 도발.

직접적인 단어를 피했던 임동원과 달리 박천기는 거침 없었다.

그래. 이 이야기가 왜 안 나오나 했다.

솔직히 내가 가지고 있는 소스는 도발을 하기에 너무나 좋은 것들이다.

하나만으로 역대급 실수인데 무려 2개나 가지고 있다.

그 것도 같은 경기에서 나온 것들로 말이다.

일명 승드셋이라 불리는 헤드셋을 거꾸로 쓴 것과 PPP실수로 인한 몰수패.

누군가는 분명 이야기할거라 생각했다. 애초에 도발상이 있는 곳이었으니까.

하지만 전혀 의외의 선수 입에서 나왔다. 임동원처럼 최소 우승을 차지거나 결승 무대에 오른 선수 혹은 도발로 유명한 선수들이 자극할 줄 알았다.

어쨌든 묵직한 한 방이 가슴을 틀어 박혔다.

아. 표정 관리 안 되는 거 같은데?

아무리 예상했어도 직접 듣는 것과 단지 예상하는 건 차이가 있다.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입가가 실룩인다.

잠깐. 이렇게 가만히 있을게 아니지?

방금 전 후회를 없앨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어느새 내 앞에 다가온 마이크. 난 주저 없이 마이크를 잡아들었다.

-이승우 선수. 표정을 보니 할 말이 많아 보이는데요?

-오늘 여기저기서 시달렸거든요? 우승자부터 해서 빠지는 곳이 없었습니다. 자. 마이크 가지고 계신가요? 이미 들고 있군요. 한 번 생각을 들어보죠. 어떠십니까? 이승우 선수?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네요. 임동원 선수도 이해가 안 간 건 마찬가지였지만 전 시즌 우승자니 그렇다 치고. 근데 박천기 선수는 뭘 믿고 저렇게 말하는지 모르겠어요.”

-지금 그 말은 상대하면 내가 충분히 이길 수 있다 이건가요?

“당연하죠. 이길 수 있습니다. 멀리 갈 것도 없어요. 다음 프로리그 경기가 폭스전이거든요. 그때 나오세요. 이겨 드릴테니까.”

마이크는 박천기에게 넘어갔다. 그가 능글맞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글쎄요? 만날 수 있으려나요? 그 전에 이승우 선수가 패배하실 거 같은데.”

내용, 표정, 말투가 3박자를 이루며 내 뚜껑을 열리게 했다.

“그럴 일 없을 거예요. 선봉으로 나가서 올킬 할 거니까요.”

내 말에 관중들이 술렁거렸다.

중계진 역시 환한 미소로 내 발언을 반겼다. 그래. MSL 입장에서 선수들끼리 치고 박는 건 아주 좋은 화젯거리지.

-이승우 선수 저런 말 할 자격이 있거든요? 이번 시즌에만 올킬을 2번이나 기록한 선수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자신있게 말하는겁니다!

흥분한 한종엽 해설위원님.

조금만 그 흥분을 가라앉히시지요.

일단 지르고 봤다. 뒷일이 어떻게 될지는 잠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저 능글맞은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 걸 1번 보고 싶었다.

그 순간.

[업적이 생성되었습니다.]

[예고올킬 0/4]

[실제 올킬에 성공 시 보상이 주어집니다. 보상 내용은 업적 달성시 공개됩니다.]

뭐야 이게?

초급도발에 이어 뜬금없이 생성 된 업적.

약간 얼떨떨했다.

이런 것도 업적으로 쳐주는거야?

저번엔 스킬을 하루에 2개 얻더니 오늘은 업적을 2개씩이나 얻었다. 엄밀히 말하면 2개를 온전히 얻은 건 아니다. 1개는 조건을 달성해야 보상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

그래도 이게 어디냐. 손 하나 까딱한 걸로 10개의 멘탈 스탯을 얻었다. 예고 올킬이면 이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 않은 보상이 주어질 것이다.

나와 박천기의 설전은 프로리그 올킬록이라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서서히 마무리되었다.

조지명식은 계속 이어졌다.

OSL에 비해 2배의 인원이 참가하다보니 시간 역시 오래 걸릴 수 밖에 없었다. 점점 길어지는 시간에 지루해할만도 하건만 중계진의 끊임없이 이어지는 입담에 관중들을 지루한 걸 모르고 조지명식에 빠져들었다. 그건 우리들도 마찬가지였다. 적당한 수위를 너무 잘 맞췄다. 너무 끓어오른다 싶으면 살짝 식혀주고 뜨뜻미지근하다 싶으면 불씨를 던지는 역할을 했다.

지루할 틈이 없었다. 그렇게 1차적으로 모든 조 편성이 완료 되었다.

이제 남은 건 시드권자의 권한행사 뿐이었다.

-이제 조지명식도 마지막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정말 열기가 여기까지 느껴질 정도입니다.

-선수들의 열정이 얼마나 가득한지 알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열정이 고스란히 경기로 반영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자. 그럼 이제 D조의 김윤호 선수부터 권한을 행사하도록 하겠습니다. 김윤호 선수 권한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잠시 고민하던 김윤호는.

“H조의 김우종 선수와 G조의 윤영태 선수의 위치를 바꾸겠습니다.”

권한을 행사했다.

H조에 속해있는 정인철과 김우종, 그리고 지금 말하고 있는 김윤호는 모두 IBX 소속의 선수였다. 지금 권한 행사는 실리나 명분이 아닌 같은 팀의 선수가 한 조에 묶여 있는 걸 떨어뜨리기 위해서였다. 아무래도 한 조에 같은 팀 선수가 같이 있으면 불편할 수밖에 없다. 특히 팀에서 연습 상대를 구할 때 너무 난감해지는 것이다.

김윤호의 권한 행사로 현우 형의 조에 있는 육룡 중 1명이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대신 채운 김우종.

위치를 바꾼 김우종의 얼굴엔 만족스런 웃음을 퍼져있었다.

하긴. 김우종의 마수전은 일품이다.

현재 마수전 최다연승 기록을 지니고 있는 선수가 바로 김우종이었다. 이 사실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마수전을 가장 잘하는 용족이 누구냐는 질문에 백이면 백 모두 김택윤의 이름이 나올 것이다. 그렇기에 마수전 최다 연승기록 역시 김택윤이 가지고 있는 줄 아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아니다. 승률 자체는 김택윤이 김우종보다 훨씬 높지만 연승기록은 김우종이 보유하고 있었다.

12연승.

김택윤의 기록은 9연승이었다. 김우종 같은 경우 12연승을 한 후 5할대를 유지하고 있지만 김택윤은 6연승 하고 1패, 8연승하고 1패식의 비교적 낮은 연승 기록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프로리그만 하는 김우종보다 개인리그에서 다전제를 치르는 김택윤이 아무래도 부담이 갈 수 밖에 없다. 전략적으로 올인을 하거나 포기하는 세트가 있을테니까.

이런 점에서 이영우는 참 괴물이다.

프로리그, 개인리그 할 것 없이 다 잘하면서 연승 기록까지 모두 보유하고 있으니까.

어쨌든 마수전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김우종의 상대는 최약체로 평가받는 박천기. 아무리 육룡을 포함한 모든 용족을 도발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없던 실력이 갑자기 생기는 건 아니다.

김윤호의 권한 행사는 거기까지였다. 그 다음 나온 이제운은 본인의 조에 만족한다고 했다.

이제 가장 큰 권한을 지닌 우승자와 준우승자의 차례가 되었다.

이들의 선택은 파격적이었다.

일단 준우승자인 김연훈은 각각 OSL과 MSL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적이 있는 차영화와 김우현을 본인의 조로 데려왔다.

자발적 죽음의 조를 만들어버린 것이다.

임동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최종적으로 MSL에서 우승한 적이 있는 박수천을 자신의 조로 데려왔다.

결국 처음 포부를 밝혔던대로 우승자 출신의 조가 완성되었다.

그렇게 해서 최종적으로 완성 된 조는.

A조 : 임동원, 송병호, 박성찬, 박수천

B조 : 김연훈, 정명혁, 차영화, 김우현

C조 : 이제운, 김택윤, 염우석, 임형규

D조 : 김윤호, 최태양, 어현수, 장유철

E조 : 이영우, 이승우, 신상운, 황정호

F조 : 김재만, 도재열, 김진철, 김대형

G조 : 히영우, 박현우, 박천기, 김우종

H조 : 이재성, 정인철, 이형민, 윤영태

이랬다.

이 중에 절반은 32강에서 탈락하게 된다. 명확하게 진출자가 보이는 조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조도 많았다.

어느 곳 하나 만만한 곳이 없구나.

임동원이 자리로 돌아가기 전 김택윤이 형규나 자신의 위치를 바꿔 달라했지만 임동원은 눈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오히려 S1끼리 경기가 재미있겠다는 말로 응수했다. 김택윤 입장에서 짜증이 나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우승하지 못한 본인을 탓할 수 밖에.

-자. 정말 흥미진진한 매치가 완성되었습니다.

-이야기거리도 굉장히 많았던 조지명식이었죠? 과연 선수들이 절치부심해서 어떠한 경기를 보여줄지 너무 기대가 됩니다. 오늘의 설전만큼 경기력이 나온다면 역대 최고의 MSL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럼 저희는 토요일 밤 7시에 A조의 경기를 들고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길고 길었던 조지명식이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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