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59 Game No. 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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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했다! 정말 잘했어!”
“오늘 내가 1승해서 형이 조금 편하게 했던 거 알지? 꼭 기억해야 된다?”
선수석으로 돌아 온 나를 팀원들이 격하게 반겼다. 코치들부터 머리부터 등짝까지 상반신이 전부 털렸다. 모두 흥분했는지 힘 조절을 못해 살짝 아플 정도였지만 그래도 괜찮다.
오늘은 S1을 이긴 날이니까.
어느 누가 우리팀이 S1을 4:3으로 잡아낼 것이라 생각했을까?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있다면 우리 팀의 골수팬 정도?
팀에게도 의미가 있지만 나에게도 상당히 의미가 있는 날이다.
복수를 떠나 내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 시킨 것.
나를 방출한 것을 후회할 것이다.
이것으로 되었다.
“이기고 왔습니다. 감독님.”
감독님은 팔짱을 낀 채 흐뭇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잘했다.”
단 세 글자였지만 감독님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휴. 생각보다 경기가 잘 풀렸다.’
막혔다면 경기가 참 애매해졌을 것이다. 형규는 후반 운영이 좋다. 과거 1군 테스트에서도 김택윤을 패배 직전까지 몰고 갔었다. 처음부터 99제단을 선택한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러고 보니 전에 마지막으로 형규를 이겼던 전략이 99제단이었다. 그때 생각에 속이 좀 끓겠군.
“14연승 축하한다.”
“우리 팀에서 이런 대기록이 나올 줄이야.”
이번엔 코치님들의 축하 인사가 이어졌다. 확실히 코치님이다보니 오늘 당장의 결과보다 더 큰 것을 보고 있었다.
“14연승.”
너무 믿기지 않아 작게 소리를 내어보았다.
정말 내가 이 기록을 세웠다고?
TV에서 보면 부러워하던 이 기록을?
아직 신들의 전쟁 최다연승엔 하나 모자라지만 그래도 용족 최다 연승 기록을 무려 2경기나 늘려 버렸다. 아예 깨지지 않는다고 장담은 못하겠지만 한 동안 깨지지 않을 기록인 건 분명했다.
“네가 복덩이다. 복덩이!”
“오늘 S1 연패도 끊고 3연승도 달성하고! 사랑한다. 이승우!”
그렇게 난 팀원들의 격한 애정행각을 받으며 대기실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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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신들의 전쟁 커뮤니티에서 이승우에 대한 글이 폭발적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가장 많은 건 오늘 S1과의 경기 내용이었다. 본인이 방출 된 팀과의 경기에서 대장으로 나와 2킬을 달성하며 현재 팀의 승리를 가져왔다는 이야기와 정명혁과 임형규를 잡아 낸 경기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먼저 오늘 아스트로가 S1을 잡은 건 그야말로 기적 중에 기적이었다. 최근 아스트로는 S1을 만나기만 하면 약한 모습을 보여 왔다. 아니 굳이 S1이 아니더라도 상위권 팀을 만나면 제 힘을 써보지 못하고 꼬꾸라졌다. 하지만 이승우가 합류 한 이후 팀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3연승.
그 것도 위너스리그 3연승이다.
12승 가운데 이승우가 거둔 승수는 무려 10승.
말그대로 홀로 팀을 이끌고 있는 것이다. 팀의 분위기가 아무리 좋아도 S1을 상대하는 건 여간 부담스럽다.
10연패를 목전에 둔 위기 상황임에도 이승우는 침착했다. 오히려 S1을 상대로 초반 전략을 거는 승부수를 던졌다. 그리고 그 승부수는 완벽하게 먹혀들었다. 정명혁과 임형규라는, S1의 에이스 라인 도택형명 중 둘을 잡아내는데 채 15분이 걸리지 않았으니까.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은 당연했다.
이렇게 여러 글들이 주목을 받고 있었지만 그 중 가장 큰 관심을 받고 있는 글은 이승우 본좌론이란 제목의 글이었다.
아스트로와 S1의 경기가 끝난 후 신들의 전쟁 커뮤니티 중 가장 큰 사이트인 <신 이야기>에서 현재 베스트 게시물에 올라온 글이었는데 절대 어그로를 끌기 위해 올린 글이 아니었다. <신 이야기>에서 고정 닉네임으로 수년간 활동해 오며 좋은 평을 받고 있는 사람이 올린 글이었다. 평소 사람들의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자주 올리는 사람으로 경기 분석이나 선수 분석에 탁월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가 올린 글엔 이승우의 현재 기세와 걷는 길이 과거 본좌로 불렸던 이들과 흡사하다고 적혀 있었다.
늦은 나이지만 데뷔하자마자 1패로 위기를 맞이하였으나 그 후 연승 가도를 달리며 프로리그에선 전승을 개인리그에선 진 로열로더를 노리고 있다는 점.
경기력 역시 나무랄 곳 없이 훌륭하다는 점.
단순 힘싸움이나 대규모 물량 전투가 아닌 전략적인 승부를 걸줄 안다는 점.
어떤 스타일을 해도 자신의 것처럼 소화한다는 점.
마지막으로 이 모든 걸 승리로 끝냈다는 점.
일단 14연승으로 리쌍으로 불리는 이제운과 삼김마수 중 1명인 김재만과 같은 기록을 보유하게 되었다.
역대 공동 2위.
올해 데뷔한 선수가 보여주는 퍼포먼스라고 하기엔 굉장한 것이었다.
처음엔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라는 생각으로 글을 클릭했던 사람들도 내용에 빠져 글을 다 읽을 때쯤엔 정말 이승우가 본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지금 당장 본좌라는 말은 어디에도 없었다. 다만 오늘 이영우를 잡고 15연승을 한다면 그 기세를 타 진 로열로더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말이 적혀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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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뭐먹을래? 감독님이 너 제대로 먹이라고 했거든? 햄버거나 김밥 같은 건 말하지도 마라.”
경기가 끝난 후 난 숙소로 복귀하지 않았다. OSL 경기가 있기 때문이었다. 숙소로 복귀했다 다시 드림 스튜디오로 오기엔 시간이 애매했다. 그래서 도 수코님과 따로 나온 상태였다.
“흠. 너무 많이 먹으면 오히려 경기에 방해 될 것 같아서요. 간단히 먹고 싶은데.”
“그래? 그럼 그래야지.”
전 시즌 준우승자인 정명혁을 오늘 이기긴 했지만 운이 많이 따르긴 했다. 만약 정명혁이 가장 안전한 빌드를 선택했다면 이처럼 쉽게 이길 수 없었을 것이다. 이영우 역시 마찬가지다. 정말 온 우주의 기운이 나에게 몰려야 이영우를 이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럼 그냥 한식 쪽으로 먹자.”
“좋아요. 한국인은 밥심 이라잖아요.”
음식 메뉴는 곧바로 정해졌다. 도 수코님이 근처 한정식 집을 찾아 차를 몰았다. 이야. 이거 내가 들어가도 되나 모르겠네.
내가 생각한 한식, 그 중에서도 간단한 한식은 제육볶음이나 김치찌개 같은 거였는데 도 수코님의 생각은 조금 다른 모양이었다. 우리가 들어간 곳은 한 눈에 보기에도 고급스러운 한정식집이었다.
다른 테이블에 음식이 나오는 것이 보였다.
‘도대체 이게 어딜 봐서 간단히지?’
내가 생각했던 그 어떠한 것보다 많은 수의 반찬이 상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흔히 쓰는 표현인 상다리가 부러질 것 같다는 말이 너무 잘 어울렸다.
너무 많이 먹으면 방해가 될 것 같단 생각은 이미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린지 오래였다. 직접 음식을 보고 냄새를 맡으니 먹어도 될 것 같다. 아니 먹어야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자리에 앉는 순간 마른 침이 꼴깍 삼켜졌다.
“뭐 먹을래?”
“이런데는 그냥 하나만 파는거 아니에요?”
“보고 골라.”
대답에 피식 웃는 도 수코님. 그리곤 메뉴판을 건네주셨다. 메뉴는 총 4가지. 춘하추동이었는데......헐.
“....되게 비싸네요?”
가격이 상상 초월이다.
내가 호사라고 생각했던 백반의 가격도 이 가격의 1/10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순간 0이 하나 잘못 붙었나 의심했을 정도였다.
“비싸면 좀 어때. 편하게 먹자. 편하게. 오늘 너 아니면 S1 잡고 3연승 할 수 있었겠냐?”
분명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팀원들 빼놓고 저희들끼리만 먹어도 될까요?”
“걔네도 너처럼 잘하면 데려와서 먹일 거니까 걱정 안 해도 된다.”
듣고 보니 그럴싸하다. 오늘 승리의 보상이자 개인리그 잘하라는 응원이라 생각해야겠다.
“못 고르겠냐? 이리 내봐.”
말과 동시에 메뉴판을 빼앗아가는 도 수코님.
“추 정식으로 2인 가져다주세요.”
빛과 같은 속도로 주문을 완료했다.
“왜 추 정식 고르셨어요?”
추 정식은 동에 이어 2번째로 비싼 세트 메뉴였다.
“동은 비싼 거 같고 하는 싼 거 같아서.”
“그렇군요.”
도 수코님은 사람을 묘하게 설득시키는 재주를 지녔다. 이상하게 들리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역시 그럴싸했다.
잠시 후 푸짐한 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TV에서나 보던 음식이 이렇게 눈앞에 차려지다니! 지금 당장 죽어도 여한이.....아. 이건 아니다. 죽으면 맛있는 음식을 못 먹잖아?
“우와.”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가족들도 함께 왔음 좋았을텐데.’
집에 있는 엄마와 동생 생각도 동시에 났고.
요즘 집에 전화를 하면 분위기가 아주 좋다. 내가 활약을 하고 있는 걸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꾸준히 내 경기를 챙겨본다고 했다. 각자의 생활이 있기에 생방송으로 보진 못하지만 저녁식사를 할 때 함께 본다고 했다.
엄마와 동생 모두 경기를 볼 줄 모르지만 해설을 통해 대충 분위기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파악한다고 했다. 내 칭찬을 하면 좋아하고 쓴 소리를 하면 슬퍼하고. 그 모습이 왠지 상상되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경기 시청을 마친 후 동생이 내 이름을 여기저기 검색해본다도 했다.
듣자하니 요즘 커뮤니티에 내 이름을 검색하면 칭찬 일색이라고 했다. 경기 결과도 다 승이고.
축하한다는 엄마와 동생의 말에 괜히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진작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잘되는 아들, 오빠를 보여줘 기분이 좋았다.
‘나중에 꼭 같이 와야겠다.’
음식은 맛이 좋았다. 휴식 기간이 되면 꼭 엄마, 동생과 여기를 같이 오고 싶었다.
그렇게 식사를 거의 마쳤을 때 쯤.
“오늘 경기 어떨 것 같냐? 아까 물어보려다가 체할까봐 다 먹은 후에 물어본다.”
“글쎄요. 쉽지는 않겠죠?”
솔직히 아직 감이 안 잡힌다. 가장 궁금한 건 내 스킬들이 이영우에게도 통할 수 있을까하는 것이었다. 일단 정명혁과 도재열에게 통한 것 보면 어느 정도 먹힐 것 같긴 했지만 이영우가 경기하는 것 보면 스킬을 써도 밀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안 될 거라는 건 알지만 너무 부담 갖지 마. 상대가 이영우라고 생각하고 게임하면 얼어붙어서 아무 것도 못해. 그냥 래더에서 만난 환국 선수라고 생각하고 해.”
하하. 남의 일이라고 말 되게 쉽게 하시네요. 도 수코님.
그래도.
“최대한 노력해봐야죠.”
일단 붙어봐야 결론을 내릴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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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도착한 아스트로 선수들은 묘하게 분위기가 다운되어 있었다. 평소라면 팀이 이겼다며 치킨 노래를 불렀을 신연호는 아무 말 없이 자기 방으로 들어갔고 1승을 거둔 김승대 역시 묵묵히 연습실로 향했다.
조금 이상하긴 했다. 보통 팀도 아니고 S1을 잡은 날이다. 그럼에도 선수들은 고개가 갸웃거려질만큼 차분했다.
“여준아. 잠깐 시간 좀 되니?”
“네. 괜찮아요!”
박현우는 바로 윤여준을 불렀다.
현재 아스트로의 주장은 박현우다. 그럴 리 없겠지만 만약 감독이나 코치들에게 무슨 문제가 생기면 팀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 바로 박현우다. 동시에 선수를 전반적으로 관리하는 책임도 있었다.
둘은 음료수 한 캔씩을 가지고 조용한 곳으로 향했다.
“조금 아쉽지?”
“네?”
“오늘 경기. 대장으로 나갈 수 있었잖아.”
“아. 그거요?”
박현우가 윤여준을 부른 이유는 간단했다. 오늘 경기 출전 무산으로 기분이 다운되지 않았을까 해서였다.
“전 오히려 다행이었어요. 부담이 컸거든요. 그 상황에서 나가기 힘들 것 같다는 말을 할 수도 없고. 기회가 자주 오는 건 아니잖아요. 이번 기회를 거부하면 다시는 기회가 안 올 것 같기도 하고. 또 나가자니 말도 안되게 패해서 다시는 경기에 못나올 수도 있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승우 형이 나서줘서 고마웠어요.”
대장이라는 말에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팀의 승패를 좌우하는 자리. 아직 윤여준은 그 무게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박현우가 윤여준의 얼굴을 살폈다. 다행히 꾸며내는 말이 아닌 진심으로 보였다.
“그럼 다행이고. 너무 부담스러워할 필요는 없어. 그만큼 네가 연습실에서 잘하고 있다는 소리니까. 그러니까 감독님이 널 그만큼 눈 여겨 보고 계시다는 거니까 자신감을 가져.”
“감사해요. 현우 형.”
“그래. 생활하다가 어려운 거 있으면 언제든 나 찾아와. 무슨 이야기를 해도 감독님께 말씀드리지 않을 테니 속에 있는 말 다해도 좋아. 절대 혼자 끙끙 앓을 필요 없어. 알겠지?”
“넵! 알겠습니다. 주장님!”
윤여준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그래. 가봐. 이제. 경기장 갔다 왔으니 푹 쉬고 컨디션 올라가면 다시 연습시작하자.”
윤여준과의 상담을 마친 박현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그가 향한 곳은 신연호의 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