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55 Game No. 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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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하게?”
“혹시 모르니까요.”
난 조심스럽게 장비를 챙겼다. 아직 대장을 나갈 선수는 결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를 비롯해 모든 팀원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정명혁이라.’
연습경기를 몇 번 치러본 것이 전부.
하지만 용족전을 기가 막히게 한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정명혁이 용족전에서 가장 잘 활용하는 유닛은 단연 화차다. 몇 마리 되지 않는 화차로 앞마당의 용안을 싹 털어버릴 정도로 말도 안되는 컨트롤을 자랑한다. 보통 화차를 통한 일꾼 견제는 후반부로 갈수록 하기가 힘들어진다. 손이 갈 곳이 많아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명혁은 초반이나 중반이나 후반 가릴 것 없이 끊임없이 화차로 견제를 떠난다.
집요할 정도로 오는 견제에 대부분의 용족은 견디지 못하고 일명 ‘빡’ 러시를 감행하게 된다.
결과는?
당연히 차분히 기다리고 있던 정명혁의 승리지.
‘무조건 [날빌러]가 성공해야 돼.’
[날빌러]만 성공한다면, 그리고 연계 된 [지금 이 순간]까지 발동된다면 생각보다 쉽게 경기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만약 그 것이 아니더라도 최대한 스킬을 활용해 정명혁을 잡아낼 작정이었다.
그렇게 정명혁을 상대하기 위한 작전을 짜고 있을 무렵.
“대장으로 나갈 선수가 정해졌다.”
감독님과 코치님이 돌아왔다.
심호흡을 하며 감독님을 바라보았지만 어째 시선이 향하는 곳이 내가 아니다. 감독님 시선 끝에 있는 사람은.
“윤여준. 오늘 대장은 너다.”
그야 말로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제..제가 대장이요?”
지목당한 여준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여준이나 내가 팀에 들어오기 전 종종 경기에 나섰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대장전이나 에이스결정전에 나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건 여준이도 마찬가지였다.
녀석이 얼떨떨한 얼굴로 감독님과 코치진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지금 자신이 들은 걸 믿을 수 없다는 표정.
“네가 대장이 맞다.”
다시 한 번 말을 꺼낸 감독님.
종이를 꺼내 윤여준이란 이름을 적기 시작했다. 저 종이가 스텝에게 넘어가면 더 이상 엔트리를 수정할 수 없게 된다.
“감독님.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입이 열렸다.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감독님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진심을 담은 눈빛으로 감독님을 바라보았다.
“시간 없다. 이미 결정 된 문제야.”
“대장 선발은 다른 세트보다 시간이 더 주어진다고 알고 있습니다.”
난 뜻을 굽히지 않고 감독님을 바라보았다. 여준이를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 경기에 내보내는 건 이런 경기를 포기한다는 뜻과 마찬가지다.
조금이라도 승리를 쫓으려면 내가 나가야한다. 난 남들과 다른 걸 지니고 있었으니까 운만 따르면 팀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
모든 걸 솔직히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내가 이길 수 있는 자신이 있다는 건 전해야한다.
“잠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그래. 잠깐 대기실로 따라와.”
그렇게 말하곤 몸을 휙 돌려 사라지는 감독님. 도 수코님이 엔트리를 받기 위해 온 스텝에게 잠시만 기다리라고 말했다. 어차피 규정상 주어진 시간이었으니 문제는 되지 않았다.
난 그대로 감독님의 뒤를 따라갔다.
“왜 제가 나갈 수 없는 거죠?”
“컨디션 조절해야지. 오늘 저녁에 이영우랑 경기 있잖아. 벌써부터 힘 빼면 못써. 더군다나 같은 환국전이고. 전략 노출이 될 수도 있다.”
“정명혁도 경기 있잖아요? 걔도 오늘 경기 있는데 지금 나왔잖아요.”
“경우가 조금 다르다.”
“뭐가 어떻게 다른거 죠? 제가 잘 몰라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솔직히 전 지금 엔트리를 이해할 수가 없어요. 여준이를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아직 대장으로 나갈 정도는 아니잖아요. 더군다나 상대는 정명혁이고. 이길 수 있어요. 저를 내보내주세요.”
“기록도 관리 해야지.”
“기록이요?”
“그래. 기록. 연승 중이잖아. 타이긴 하지만 일단 용족 최다 연승은 했고. 프로리그 연승기록이나 위너스리그 연승기록도 얼마 안 남았잖아? 오늘 경기 쉬고 폭스전 준비하자. 오늘은 그냥 개막전만 생각하자.”
순간 머릿속이 띵하고 울렸다.
기록이라. 그래. 기록이란 정말 중요하다. 결국 남는 건 기록뿐이니까.
하지만.
“전 제 개인기록보다 팀이 더 먼저에요. 그리고 이기면 되잖아요. 이기면. 이기면 기록 안 깨지잖아요.”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기록이 깨지는 건 내가 졌을 때 이야기다. 이기면 된다. 이기면 기록은 깨지지 않는다. 오히려 늘릴 수 있다.
컨디션 관리?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경기를 나가지 못한다면 오히려 컨디션은 바닥을 칠 것 같았다. 난 이런 내 감정을 솔직히 다 이야기했다.
감독님은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그저 나와 눈을 마주치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 슬슬 엔트리 제출해야한답니다.”
문이 살짝 열리고 그 사이로 도 수코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시간이 그렇게 지났다보다. 한 번 더 어필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다는 걸.
“저 정말 이길 수 있어요. 오히려 S1이라서 더 자신 있어요. 제가 6년간 있던 팀이잖아요. 어떤 스타일인지 진짜 잘 알고 있어요. 누가 나오든 다 이길 수 있어요. 그리고 승대랑 현우 형이 2승 만들어줬잖아요. 제가 올킬 해야만 게임 끝나는 상황 아니잖아요? 둘이 만들어준 2승 이대로 날릴 수 없어요. 조금 더 의미 있는 기록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굉장히 빠른 속도로 할 말을 내뱉었다. 다급한 심정이 그대로 묻어나왔다.
그 순간 감독님과 눈이 마주쳤다.
더 이상 말은 필요 없었다.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설사 져서 기록이 깨져도 상관없다. 아무리 신들의 전쟁 매니저가 있어도 전승가도를 달릴 거라 생각은 하지 않는다. 지금처럼 이기는 날이 있으면 언젠가 지는 날도 있겠지. 겨우 이런 이유로 피하고 싶지도 않다. 패배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패배에서도 분명 배울 것이 있다.
그 동안 여러 핑계를 대고 많이 피해왔다. 보탬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방해만 되었었다. 이제는 다르다. 대부분 지기는 했지만 아스트로에서 정명혁과 경기를 여러 번 해본 사람은 내가 유일하다.
“승우야.”
“네. 감독님.”
“자신 있냐?”
순간 눈이 번쩍였다. 감독님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심경에 변화가 생긴 것이 분명했다. 난 확신을 담은 어조로 입을 열었다.
“네. 이길 자신 있어요.”
깊은 고민에 빠진 감독님의 얼굴.
난 출전하고 싶다는 갈망을 담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 나가라.”
감독님이 종이에 적힌 이름을 펜으로 직직 그었다. 그리고 그 옆에 내 이름을 적어 넣었다.
됐다!
“감사합니다. 감독님.”
난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흥분했다. 흥분해서 평소보다 목소리가 높았다. 간단히 말해 도가 지나쳤다. 팀을 위해서 라곤 하지만 버릇없이 대든 꼴이었다. 아무리 감독님이 좋은 분이긴 하지만 충분히 화가 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런 걱정과 달리 감독님의 아무렇지 않은 듯 피식 웃으며 내 어깨를 손으로 두드렸다.
“아니다. 오히려 내가 미안하다. 선수가 이런 의지를 지니고 있는데 감독이란 사람이 경기를 거를 생각부터 하고 있으니. 정말 너를 위한 길이 뭔지 알았다.”
대장전 출전을 허락받은 난 힘찬 걸음으로 선수석으로 돌아왔다. 가장 먼저 향한 곳은 키보드 가방이 있는 내 자리가 아닌 여준이가 앉아 있는 곳이었다.
“미안하다.”
과정이야 어떻게 되었든 결과적으로 여준이의 출전 기회를 내가 뺏은 셈이 되었다. 2군 생활을 오래해서 안다.
경기에 출전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 것도 대장전이라는 중요한 자리에 내보내는 감독님의 마음이 무엇인지.
1군이 될 가능성이 있으니 미리 큰 자리를 경험해보라는 것.
소중한 경험의 기회를 내가 빼앗은 것이니 미안한 건 당연했다.
“아. 아니에요. 형. 저도 사실 부담스러웠어요. 대장으로 나가는 건.”
일단 표정으론 진심 같아 보였다. 불편해보였던 방금 전과 달리 조금 여유가 감돌았다.
그래도 뺏은 건 뺏은 거다. 이걸 갚을 길은 단 하나다.
나와 여준이의 눈빛이 허공에서 맞 부닥쳤다.
“반드시 이길게. 반드시 이기고 돌아올게.”
여준이가 빙긋 웃었다.
“응원할게요.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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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감독은 복잡한 눈으로 부스를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부스 안에서 장비를 연결하고 있는 이승우를 보고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던 간절한 눈빛.
혹시 예선장에서 이승우의 영입을 제시하던 눈빛이 그러하지 않았을까하고 이재명 감독은 생각했다.
‘부끄럽군.’
잊고 있었다. 자신이 왜 감독이 되었는지.
선수들의 열정이 좋았고 승부가 좋았다.
그래서 감독이 됐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걸 잊었다. 팀이 하위권이다 보니 어떻게든 1승을 따내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의도적으로 강팀과의 정면 대결을 피했다. 차라리 4:0으로 지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적도 있으니까.
어느 순간 목표는 우승이 아닌 탈꼴찌로 변해있었다.
이승우와 대화를 한 후 깨달았다. 무엇이 먼저인지.
그렇게 식었던 열정이 다시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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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아스트로에서 남은 선수는 대장, 한 선수뿐입니다.
-팀의 승리를 가져오려면 최소 2킬을 해줘야하는데 지금 아스트로에서 그럴만한 선수는 1명밖에 없죠.
-그렇습니다. 아스트로에서 대장으로 이승우 선수를 선택했습니다.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는 선택이었죠. 근데 듣자하니 중간에 작은 사건이 하나 있었다던데. 맞나요?
-전해 듣기로 원래 아스트로의 대장은 이승우 선수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오늘 저녁에 있는 OSL 개막전을 위해 다른 선수가 출전하기로 되어있었답니다. 하지만 엔트리 제출 직전 이승우 선수가 직접 출전을 희망했다고 합니다.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선수라면 모름지기 이런 패기를 지니고 있어야합니다. 상대가 누구든 피하지 않는 성격. 요즘 이승우 선수가 왜 기세가 좋은지 알 것 같네요.
김태영 해설위원의 얼굴은 흐뭇함 그 자체였다. 그는 실력보다 성격을 중요시하는 해설위원이었으니까. 개인리그를 이유로 프로리그 휴식을 취하는 선수도 있는 판국에 오히려 스스로 나서겠다고하니 얼마나 예뻐보이겠는가?
항상 신연호가 나올 때도 애정을 가지고 해설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신연호 역시 성실 하면 빠지지 않는 선수였으니까.
백이면 백 오늘 OSL 개막전에서 이승우에 관한 이 이야기를 꺼낼 것이다. 지든 이기든 상관없이 말이다.
-사실 정명혁 선수도 오늘 OSL에 출전하거든요? 이런 선수들 모두 위너스 리그에 나온다는 건 오늘 경기를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경기가 시작하기도 전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릅니다. 전장에 대한 이야기 잠시 나눈 후 양 선수 입장완료 하는 대로 경기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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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연참할까 말까 고민했는데 그 전편과 전전편 추천 해주시리라 믿고 3연참 가봅니다!(혹시 추천 잊으셨다면 뒤로 돌아가서 해주시고 오시면 감사합니다! ㅎ)
그럼 모두 좋은 하루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