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9 Game No. 49 =========================================================================
“여기서 혼자 뭐해?”
“진우냐?”
커피를 들고 있던 임주혁이 손을 흔들며 홍진우를 반겼다.
“너도 마실래?”
“난 괜찮아.”
“그럼 말고.”
“표정이 되게 심각해보이네? 뭐 생각 복잡한 거라도 있어?”
“아. 그냥 저번 경기 생각하고 있었어.”
여전히 발음이 흐린 홍진우였지만 임주혁은 완벽하게 홍진우의 말을 알아들었다. 콩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는 말이 딱 어울렸다.
“아. 올킬 한 애?”
임주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원래 형 팀이었다며? 그때도 그렇게 잘했어?”
임주혁이 고개를 저었다.
“잘하기는 했는데 이 정도는 아니었어. 플레이가 굉장히 유연해졌어. 예전엔 무난한 힘싸움은 잘했는데 심리전 쪽으로 파고들면 스스로 무너지는 스타일이었거든. 그래서 실력이 좋아도 1군으로 올리기는 힘들었지.”
임주혁의 기억 속에 있는 이승우는 장점만큼 단점도 뚜렷한 선수였다. 기본기는 있지만 심리전에 너무나 약했다. 조금이라도 멘탈이 흔들리며 경기를 그르쳤다. 하지만 저번엔 달랐다. 어떤 심리전을 걸어도 완벽하게 대응했다. 마치 거대한 철벽을 두드리는 기분이었다. 네가 뭘 해도 상관없다는 철벽같은 단단함이 느껴졌었다.
“그럼 요 최근 사이에 실력이 확 늘은거네?”
“그렇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되게 침착하드라. 난 내가 꽁으로 이긴 줄 알았는데.”
홍진우도 이승우를 칭찬했다. 순발력이 좋다. 만년 2군이었던 선수가 방송경기에서 그런 빌드에 당하면 당황하기 마련인데 정신을 빠르게 다잡더니 상황을 역전시켜버렸다.
하루 이틀 게임한다고 나오는 센스가 아니었다.
“이번에 양대리그 처음 진출했다고 했나?”
“응. 형네 팀 2군은 예선 안보내잖아. 알면서 뭘 물어봐.”
“진 로열로더 후보네.”
“그러게. 형도 로열로더 출신이잖아.”
임주혁 역시 몇 없는 진 로열로더 출신이었다. 애초에 로열로더라는 말을 만들어낸 장본인도 임주혁이었다.
“넌 전승 준우승 출신이잖아.”
“......”
예상 못한 까임에 콩, 아니 홍진우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전승 준우승.
압도적인 포스로 결승까지 진출한 후 맥없이 패배하는 선수에게 붙여지는 말이었다. 임주혁이 로열로더의 시초라면 홍진우는 전승 준우승의 시초였다. 그리고 그 전승 준우승의 대상이 임주혁이였다.
“그 이야기는 그만하자.”
“너는 까야 제 맛이지.”
짓궂은 임주혁의 농에 홍진우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서로 워낙 허물없이 친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가장 듣기 싫은 3연망 이야기까지 나올지도 모른다. 그건 정말 싫다. 아무리 농담이어도 말이다. 홍진우가 곧바로 화제를 돌렸다.
“어때?”
앞뒤가 잘린 말이었지만 임주혁은 이번에도 찰떡 같이 알아들었다.
이승우에 대해 묻고 있다는 것을.
임주혁이 손에 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사고 한 번 칠 것 같은데?”
임주혁의 얼굴에 장난기가 살짝 스쳐지나갔다.
“그치? 나도 그래. 느낌이 달라. 느낌이.”
그렇게 둘은 이승우에 대한 이야기를 한동안 더 나누었다.
****
S1 회의실.
“오늘도 올킬을 기록했더군.”
주운 감독의 말에 코치들 중 그 누구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함께 해온 세월이 적지 않다. 낮은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 잔잔히 깔린 짜증을 모두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장 눈치가 보이는 건 단연 권 코치였다.
도재열을 16강 결정전에서 이기고 올라갔을 때만 해도 이 정도로 엄청난 활약을 보일지 몰랐다. 동족전이었으니 그저 운이 좋은 줄로만 알았다. 헌데 아니었다.
이승우의 현재 활약은 운으로 치부하기엔 너무나도 빛났다.
차라리 1달만 더 데리고 있을 것을.
이런 후회가 권 코치의 머릿속에 수십, 수백 번 나타났다 사라졌다.
“이미 자나간 일이야 어쩔 수 없지. 다음 경기가 어디랑 하는지 다들 알고 있지?”
“네.”
“알고 있습니다.”
S1가 내일 프로리그에서 맞붙게 될 상대는 아스트로였다.
2연속 올킬을 기록한 이승우가 있는 아스트로.
“선발 엔트리는 어떻게 되지?”
“저희 팀은 현수가 나가고 아스트로에선 김승대가 나옵니다.”
“김승대라.”
주운 감독이 들고 있던 펜을 손으로 돌리며 중얼거렸다. 항상 동족전은 변수가 많다.
“요즘 현수 팀 내 랭킹전은 어떤가?”
“나쁘지 않습니다. 4등에서 5등정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1군 10여명 중 4~5등.
단순 수치로 봤을 땐 잘한다는 느낌을 받기 힘들다. 중간 정도라는 느낌이었으니까.
하지만 S1에서 거둔 성적이라면 말이 조금 달라진다.
S1 랭킹전에서 4~5등을 차지한 선수가 다른팀에 간다면 최소 2등 이상을 충분히 차지할 수 있다. 중하위권 팀에 가면 에이스 소리를 들으며 특급대우를 받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가장 최근에 벌어진 랭킹전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보인 선수는 임형규였다.
3위.
1위와 2위가 각각 정명혁과 김택윤이라는 걸 생각하면 실로 엄청난 성적이었다. 내부에서 산정한 포인트에서도 2등인 김택윤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런 임형규 뒤를 도재열과 어현수가 엎치락뒤치락하며 쫓고 있었다.
1,2 라운드와 달리 위너스리그는 경기장에서 즉각적으로 엔트리를 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기에 지금 회의는 출전 선수를 확정하는 것보단 현재 분위기가 좋은 선수를 파악하는 정도에서 진행되었다.
랭킹전 리플레이가 몇 개 재생되었고 각 코치별로 평가가 내려졌다.
그 후 서로 평가에 대한 토의가 바로 이어졌다.
“요즘 형규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명혁이든 택윤이든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스타일 자체가 방송 경기 스타일이기도 하구요.”
S1 1군 마수 코치인 최 코치가 임형규를 칭찬했다. 요즘 최코치는 기분이 상당히 좋았다. 자신이 알려주는 걸 스펀지 마냥 쏙쏙 흡수하는 제자, 임형규를 만났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실력이 느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명혁이도 폼이 상당히 올라와있습니다. 랭킹전 역시 꾸준히 1등을 하고 있고요. 기대 해봐도 좋을 듯싶습니다.”
1군 환국 코치인 최연규가 뒤이어 말을 꺼냈다.
최연규.
과거 괴물이란 별명으로 불렸던 선수 출신 코치로 무려 5회 우승을 차지한 정상 중에 정상급 프로게이머였다. 특이하게도 준우승은 단 1번도 없었다. 5번 결승에 올라 5번 우승을 차지했다.
최연규는 임주혁이 직접 발탁한 인물로 등장과 동시에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프로리그의 활약을 두말 할 것도 없고 개인리그를 휩쓸다 시피 했다. 적수가 없었다. 그렇게 최연규는 홀로 신들의 전쟁을 평정하고 최고의 신이 되었다.
그런 최연규의 플레이를 한 단어로 정의하자면 ‘압도.’라 할 수 있었다. 그 누굴 만나든 그는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상대방을 좌절시켰다. 특히 말도 안 되는 생산력으로 역 상성의 유닛을 깨부수는 것이 그의 특기였다.
그가 요즘 가장 아끼는 선수가 바로 정명혁이었다. 하루 하루 성장하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최연규의 전략을 다른 선수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반면 정명혁은 한 번만 말해도 완벽하게 알아들었다. 단순히 습득하는 것을 넘어 응용을 하라 정도였다.
최연규는 확신했다.
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손사래를 치겠지만, 현재 이영우의 라이벌이 될 수 있는 선수는 정명혁 뿐이라고.
“이 좋은 팀 분위기 계속 이어나가보자고.”
“선수들 역시 투지를 불태우고 있습니다. 이승우의 대기록 상대가 우리팀이 될 수 없다면서요.”
권 코치의 말에 최연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습니다. 이승우에게 1명이라도 패배한다면 두고 두고 언급이 될 테니까요.”
누군가에게 명예로운 기록이 다른 이에엔 불명예스러운 기록이 될 수 있다.
상대와 승부를 가리는 스포츠이기에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다.
S1에건 져서는 안 되는 이유가 있었다. 김택윤의 기록을 지켜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팀의 자존심이 걸려 있었다.
승부에 있어 이보다 좋은 자극제는 없었다.
“그건 그렇지. 잘해서 연승가도 달려보자고.”
현재까지 분위기는 아주 좋다. 이 분위기만 이어나가면 된다. 그 후 다음 경기에 사용되는 전장 분석을 끝으로 회의가 마무리 되었다.
****
수요일.
오늘은 주말과 같은 시간인 오후 1시에 위너스리그가 있었다. 사람이 거의 없는 이른 시간에 경기가 열리는 이유가 있었다. 6시 30분에 같은 장소에서 OSL이 하기 때문이었다. 팀원 전체의 얼굴에 결연한 의지가 흐른다.
오늘 상대는 S1.
난 분명 아무렇지 않은데 팀원들의 시선이 나에게 꽂힌다. 이글거리고 타오르는 시선이.
“야. 오늘 꼭 이기자. 복수하자. 복수!”
“그래요. 형. 형을 방출한 S1에게 패배를 안겨주는 겁니다!”
“오늘 승우 이영우랑 개막전 있으니까 아예 우리끼리 끝내버리자. 어때?”
“그거 최고네!”
“좋다. 좋아. 일단 첫 경기에 나가는 승대가 2킬하고 현우 형이 2킬해서 깔끔하게 마무리하자.”
“형은요?”
승대의 질문에 연호가 씨익 웃었다.
“난 뒤에서 응원하마.”
어이없는 시선이 연호에게 꽂혔지만 연호는 어깨를 으쓱이며 시선을 회피했다.
이렇듯 주변에서 더 난리였다. 아예 섭섭한 감정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S1의 입장을 이해한다. 내가 S1의 코치진이었어도 같은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솔직히 당시의 난 1군 가능성이 희박했다. 그 정도 하는 정도의 선수는 S1에 차고 넘쳤다. 지금의 변화도 신들의 전쟁 매니저를 얻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난 S1의 선택을 더욱 더 이해한다.
“기분 어때?”
“네?”
“S1이랑 경기하는 기분.”
현우 형의 질문.
난 잠시 떠올려보았다. 지금 내 기분은 어떻지?
“크게 다르지 않아요. 스파키즈 전이나 육군 전처럼.”
대답에 현우 형이 빙긋 웃었다.
“다행이네. 오늘 우리도 진짜 열심히 할거야. 너한테 모든 짐을 맡기지 않을 거다.”
현우 형의 눈빛이 달라졌다. 평소 착하고 온화한 느낌은 사라지고 승부사의 기운이 감돌았다.
“그러니까 우리 오늘 반드시 이기자.”
결연한 의지가 그대로 전해졌다.
****
우리는 경기시작 시간보다 50분 먼저 경기장에 도착했다. 일찍 도착한 것 같다고?
아니다. 이 것 저 것 준비하다보면 시간이 금세 흐른다. 어느새 20분 후면 경기 시작이다. 선봉 출전이 예정 된 승대가 자신의 키보드와 마우스가 들어있는 가방을 멘 채 서있었다.
“승대야. 긴장하지 말고. 알겠지?”
“그 말 들으니 더 긴장되네요.”
“하고 싶은 거 다하고 와라. 이기면 더 좋고.”
감독님의 응원을 받으며 승대가 부스로 향했다. 오늘 첫 경기에 출전하게 된 승대의 얼굴이 긴장으로 잔뜩 얼어있다.
상대가 S1이니 충분히 긴장할 만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변수가 존재하는 마마전이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S1에서 나오는 어현수가 동족전에 약하다는 것도 승대에게 웃어주는 부분이었다. 상대의 종족이 정해진 이후 코치들과 머리를 쥐어 짜내 오늘 쓸 빌드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 전략이 어떤 전략인지 정확히 모르지만 통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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