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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로더 신들의 전쟁-43화 (43/575)

00043  Game No. 43   =========================================================================

-아주 뛰어난 플레이입니다. 반응 속도가 좋아요. 감이 살아있다는 이야기거든요?

-지금 무리해서 들어가면 안 됩니다. 무리해서 들어갔다가 병력을 잃으면 초반에 벌어놓은 승점 다 잃습니다.

언덕 위에 이승우의 병력이 자리 잡은 걸 확인한 박효석은 무식하게 들이받는 선택 대신 병력을 뒤로 빼고 확장을 하나 추가로 가져갔다. 그러면서 이승우가 가져갔을만한 확장 지역에 용아 1마리를 보내 체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박효석 선수. 현명합니다. 박광춘 해설위원이라면 들어 갔을 텐데요.

-우승자 출신은 확실히 다르네요.

-맞습니다. 저라면 그냥 다 갖다 박았을 텐데요.

박광춘 해설위원은 모든 걸 내려놓았다.

반박할 말도 없고 힘도 없었다. 하지만 모든 걸 포기한다고 되는 건 아니었다.

-방송에서 박았다는 표현을 쓰시면 안 되죠.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빠른 사과.

그리고.

-박효석 선수 확장 가져갑니다. 최선의 선택이죠?

빠른 화제 전환.

경기 해설과 박광춘 놀려먹기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사람들에게 큰 재미를 주었다. 박진감 넘치는 해설과 달리 경기는 조금 지루하게 흐르고 있었다.

병력 조합도 다채로워졌다.

단순 용혼, 지룡 조합에서 이젠 발업 된 용아와 하늘성소 테크 유닛들이 추가되었다.

서로 큰 덩어리의 병력들이 움직이는 일은 이제 없었다. 대신 운룡에 태운 지룡이나 비렴이 공중을 활보하기 시작했다.

견제가 시작 된 것이다.

먼저 움직인 건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박효석이었다.

-비렴 떨어집니다! 천벌!

그러나.

-이승우 선수 엄청난 반응속도입니다. 비렴이 보이는 순간 바로 용안을 빼버렸죠.

그 화면만 보고 있었다는 듯 빠른 대처로 용안을 3마리밖에 잃지 않았다. 반면 박효석은 지룡과 비렴을 모두 잃었다. 오히려 박효석의 손해였다.

처음의 유불리는 이제 사라졌다.

이젠 1방 싸움에서 누가 승리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좌우된다. 견제 자체도 이를 위한 것이다. 일꾼이 줄면 추가 생산이 늦어지고 그 결과 전장에 충원되는 병력의 수가 줄어들게 된다.

-이승우 선수도 견제 들어가죠.

당한 걸 갚아주겠다는 듯 이승우의 운룡이 공중을 누비기 시작했다. 상대의 본진에 흑완 1마리를 내려놓은 운룡이 앞마당 쪽으로 향했다.

용광포가 지어져있긴 했지만 이승우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콰르르릉.

천둥소리와 함께 철 자원과 신전 사이에 천벌 2방이 내려 꽂혔다.

아무 것도 모르고 열심히 일을 하고 있던 박효석의 용안들.

-콰콰콰콰.

시원한 소리와 함께 그대로 터져나갔다.

-당한 걸 배로 아니 몇 배로 갚아주는 이승우 선수입니다!

그제야 견제를 받은 걸 알아 차렸는지 박효석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2마리 비렴의 킬수는 무려 20킬.

전부 일꾼이니 엄청난 이득을 거둔 것이다.

그 이후로 이승우의 견제는 계속되었다. 상대적으로 손이 느린 박효석은 이승우의 견제를 모두 막아낼 수 없었다. 결국 계속해서 피해를 입고 마는 박효석.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박효석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져 제대로 자원을 채취하는 곳에 거의 없을 정도였다.

-이승우 선수 집요합니다!

-정말 지독한 견제입니다. 분명 상황은 박효석 선수한테 유리했거든요? 무난히 흘러가는 판을 그대로 깨버립니다.

-지금 또 운룡 날아가죠?

알고도 못 막는 견제.

박효석의 입장에선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운룡만 날아온다면 쉽게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승우는 그러지 않았다. 주 병력과 함께 동시에 운룡을 보낸 것이다.

견제를 막는데 온 신경을 집중하면 중앙 싸움에서 대패할 수가 있다. 견제로 게임이 끝나지 않는다. 하지만 중앙 싸움에서 패배한다면 게임은 아예 끝나버린다.

박효석의 패배로.

이승우는 끊임없이 묻고 있었다.

중앙과 멀티.

둘 중 어느 걸 선택하겠냐고?

현재 상위권 팀의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는 선수라면야 양 쪽 다 선택함과 동시에 오히려 견제를 보내는 운영을 했겠지만 그렇게 하기엔 박효석의 역부족이었다. 상대적으로 중요한 중앙에 신경을 더 쓸 수밖에 없었다.

-아. 박효석 선수 더 이상 버티지 못하죠.

-그래도 잘 싸웠습니다.

결국 경기는 이승우의 승리로 끝이 났다.

자원을 제대로 채취하지 못하니 회전력 싸움에서 밀려버린 것이다.

아쉬운 듯 고개를 떨어뜨리는 박효석.

분명 이길 수 있는 타이밍이 있었다.

조금 만 더 침착했더라면.

조금만 더 냉정했더라면.

지금와서 후회해봤자 소용없는 일이었다.

관중들이 환호성으로 박효석의 투혼을 칭찬했다. 물론 이승우에 대한 칭찬도 잊지 않았다.

“역시 오늘도 잘하는구나!”

“잘한다. 잘해!”

“오늘도 올킬 가자!”

관중들의 흥분 섞인 칭찬에도 이승우는 거만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대신 방금 경기를 펼친 박효석과 관중들을 향해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대선배인 박효석에 대한 예의를 지킨 것이다.

****

“잘했다.”

“감사합니다.”

난 팀원들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가장 끝에 서있는 감독님은 나를 보며 흐뭇하게 웃고 계셨다.

“다음 상대도 해볼 만하다.”

“누구에요?”

감독님이 씨익 웃었다.

“2세트에 나올 사람은 이미 운명으로 정해져 있지. 홍진우다.”

****

나는 한결 밝은 표정으로 부스로 돌아왔다.

-잘했다. 지금처럼만 하자.

감독님은 별 다른 주문이 없으셨다. 그저 지금처럼 평정을 잃지 않고 차분히 플레이하라는 말이 전부였다. 팀원들 역시 엄지만 척 내밀 뿐이었다.

스스로 평가하자면 플레이가 완벽하지는 않았다.

지금보다 빠르게 경기를 끝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돌다리를 두드리고 건너는 심정으로 조심스럽게 플레이했다.

확신이 설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이는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단점이 될 수도 있다.

프로게이머는 가끔 눈에 보이는 상황보다 자신의 직감을 믿고 움직여야 했다.

그런 차이가 S급과 그 밑 단계를 구분한다고 했다. 특히 승률이 높지 않지만 우승을 경험한 선수들이 대부분 이런 성향이었다.

‘그래도 스킬을 사용하지 않고 이긴 걸로 만족하자.’

스킬을 사용하지 않은 덕에 체력소모가 적었다. 이대로 한다면 스파키즈 전처럼 레벨 업이란 운이 없어도 4경기를 모두 치를 수 있을 듯 했다. 감은 계속해서 경기를 치르다보면 늘겠지.

실제로 멘탈 관련 능력치의 성장은 스킬을 사용하지 않을 때 더 크게 이루어졌다. 스킬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해결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닐까 싶었다.

‘홍진우 선수라.’

다음 상대는 홍진우 선수다.

1세트에 경기를 했던 박효석 선수에 이어 홍진우 선수라니.

내가 이런 전설들과 경기를 펼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처음 프로게이머의 꿈을 꾸기 시작한 때가 임주혁 선수와 홍진우 선수의 결승전 날이었다. TV로만 보던 사람과 직접 경기를 하는 것이 아직 믿기지 않았다.

****

-자. 2번째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에 육군 타이거즈 쪽에서 차봉으로 내보낸 선수는 홍진우 선수입니다.

-과거 임주혁 선수의 라이벌로 수많은 결승전을 치른 선수죠.

-비록 우승이 없기는 하지만 결승에 올랐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준우승도 굉장히 잘한 겁니다.

-박광춘 해설위원님은 현역 시절 결승에 올라본 적 있으신가요?

-네?

기승전박광춘.

예상치 못한 공격에 박광춘이 당황했다.

-결승에 올라가보신 적 있으십니까?

-뭐. 올라가 본적이 있기는 한 거 같은데...

박광춘이 말을 어물쩍거렸다.

결승에 진출한 적이 있긴 하지만 가장 권위가 높은 양대 리그의 결승전은 아니었다. 공식 리그라기 보단 이벤트리그에 가까웠던 리그에서 결승에 올라 임주혁과 대결을 펼친 적이 있긴 했다.

-양대 리그에서요?

질문은 집요하고 매서웠다.

이미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 한 말투.

그래. 이건 답정너다. 답정너.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된다는. 박광춘은 운명을 받아들였다.

-양대 리그는 아닙니다.

박광춘의 양대 리그 최고 커리어는 4강.

사실 이것도 훌륭한 성적이다. 4강 문턱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은퇴하는 선수가 수두룩했으니까. 하지만 그건 박상철에게 중요한 사실이 아니었다.

-자. 2세트 준비 모두 끝났죠?

또 박광춘을 놀려먹는데 성공한 박상철 캐스터의 목소리가 굉장히 밝다.

-2세트 전장은 나주평야입니다.

-용족이 유리한 전장인데 홍진우 선수가 2세트에 나왔다는 건 분명 노리고 것이 있다는 겁니다.

이미 목적은 달성했다. 어차피 경기 초반엔 딱히 해설할만한 것이 없다. 올인성 빌드를 선택하지 않는 한. 그냥 선수들에 대한 소개나 농담 같은 걸 하는 시간이었다.

초반엔 무난하게 흘러갔다.

어디까지나 초반은.

이승우는 용무관으로 앞마당 입구를 좁히는 심시티를 한 후 무난하게 앞마당 멀티에 신전을 가져갔고 홍진우 역시 9마견숲을 지은 후 앞마당에 소굴을 폈다.

아직까지는 서로 무난했다.

정찰로 조금 빠른 마견숲을 발견한 이승우.

앞마당에 용광포 하나를 더 늘려주는 안전한 선택을 했다.

상대는 폭풍마수라는 별명을 지닌 홍진우.

갑작스레 튀어 나온 마견 떼에 허무한 패배를 당할지도 몰랐다. 조금 돈을 쓰더라도 안전하게 가겠다는 마인드였다.

-이승우 선수 용광포 하나 더 늘려주죠?

-좋은 선택입니다. 괜히 배짱부렸다가 배 찢어지거든요. 특히 홍진우 선수가 그런 꼴을 못 보는 성격을 지녔습니다. 상대가 조금이라도 짼다 싶으면 득달같이 달려드는 선수거든요.

-지금도 마견 계속 찍고 있네요.

원래라면 일벌레를 찍어야 할 타이밍.

하지만 홍진우는 꾸준히 마견을 찍어주었다.

다른 마수들과 확실히 다른 플레이였다. 보통 땡 그슨대 같은 초반 찌르기를 하더라도 지금처럼 마견을 많이 뽑지 않는다. 차라리 일벌레를 더 찍어주어 후반을 도모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홍진우는 달랐다.

가난한 운영, 몰아치는 운영의 시초답게 일벌레 따위는 거의 뽑지 않았다. 얼마나 일꾼이 적은지 철 자원보다 훨씬 적은 일꾼이 자원을 채취하고 있을 정도였다.

-일벌레 더 이상 안 찍죠? 2소굴에서 한 번 몰아칠 생각인가요?

한종엽 해설이 흥분한 목소리를 외쳤다. 옵저버 역시 홍진우의 본진과 앞마당을 번갈아 보여주며 더 이상 일벌레를 뽑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 순간.

-지금 타이밍에 벌써 마굴을 올립니다?

마굴은 소굴을 진화시킨 건물로 가시귀, 닷발귀 등 마수의 중급 유닛을 생산할 수 있는 건물을 짓기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건물이었다.

마수 입장에서 반드시 올려야하는 건물이긴 하지만 지금 올라갈 타이밍은 아니었다. 애초에 지금 정석으로 굳어진 빌드와 많이 벗어났다. 올인성 그슨대로 아니고 초반에 용광포를 강제하는 땡 그슨대도 아니다. 그렇다고 5소굴 운영이나 6소굴 운영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변칙적인 플레이.

보통 다른 마수들은 이 타이밍에 타 스타팅 앞마당을 가져가며 심시티를 구축한다. 과거 마수는 단순 물량 혹은 가난한 플레이로 주목을 받았지만 어느 기점을 넘긴 순간 최고 테크인 군락의 유닛을 활용하는 운영형 종족으로 바뀌었다. 더 이상 그슨대, 가시귀 단순 물량으로 전장을 장악하는 경기는 나오지 않았다. 최소의 유닛과 완벽한 심시티로 상대의 공격을 막고 그 사이 테크를 올리고 일벌레를 뽑으며 후반을 준비하는 운영.

대부분의 마수가 이런 플레이를 선호했다.

하지만 홍진우는 달랐다.

자신만의 빌드.

자신만의 타이밍으로 상대의 목숨을 노린다.

그야말로 폭풍전야.

아직은 평화로운 나주평야에 폭풍이 몰아칠 준비가 되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여러분들의 사랑에 힘입어 오늘도 12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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