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2 Game No. 42 =========================================================================
그래도 어쩌겠어. 도발도 했으니 열심히 준비해야지.
그러는 사이 대기실에 들어왔다. 앞에 놓인 과자를 먹으며 당을 보충하는 도중.
“이승우 선수. 1주차 MVP로 선정되셨거든요? 경기 시작하기 전 시상식 있어요.”
스텝이 깜짝 놀랄만한 소식을 전해왔다. 무어라 대답도 하기 전에 바람처럼 사라지는 스텝. 바쁘긴 어지간히 바쁜가보다.
“이야. 올킬이 크긴 큰가보다. MVP라니.”
“그럴 수밖에 없지. 저번 주 펼쳐진 프로리그에서 올킬이 승우 1번 밖에 안 나왔는데. 축하한다.”
감독님의 말씀처럼 1주차 위너스리그에서 올킬은 내가 기록한 것이 전부였다. 혹시나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정말 받게 되니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한턱 제대로 쏴야겠다!”
“오늘 승리하면 승우 형이 한턱 쏘는 겁니까?”
경기가 시작되기 30분 전. 우리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경기장으로 향했다.
“사람 진짜 많네.”
관중석을 둘러보던 연호가 혀를 내둘렀다. 아직 경기가 시작하기도 전인데 빈 자리를 찾기 힘들정도로 관중석을 꽉 차있었다.
이게 바로 육군 타이거즈의 힘이었다.
다른 팀원들은 선수 대기석으로 향했고 난 무대 옆으로 향했다. 시상식은 바로 시작되었다.
“프로리그 3라운드 1주차 주간 MVP 시상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주간 MVP에 선정 된 이승우 선수는 무대 위로 올라와주세요.”
관계자의 말이 끝난 후 난 무대 위로 올라갔다.
-짝짝짝.
관중석에서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마음이 흐뭇하다. 이런 좋은 일로 무대를 오르는 건 언제든지 땡큐다.
프로리그 주간 MVP라는 판넬과 함께 작은 상패가 주어졌다. 추가로 20만원의 상금도 주어졌다.
관중들의 힘찬 박수소리와 함께 난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내 손은 끊임없이 상패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상패엔 <2015프로리그 3라운드 1주차 MVP 이승우>라고 새겨져 있었다. 내 이름이 박힌 상패를 받게 될 줄이야. 아직 믿기지 않았다.
“그러다 닳겠다. 닳겠어.”
연호의 말에 난 피식 웃었다.
“좋냐?”
“좋지. 엄청나게.”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면서 단 1번도 상패를 받아보지 못했다. 6년 내내 2군 생활을 전전했으니 상패를 받은 적이 있을리가 없었다. 애초에 우승한 기록 자체가 커리지 매치를 제외하곤 없었다. 그 사이 팀이었던 S1이 프로리그에서 몇 번 우승하긴 했지만 난 2군이었기에 내 이름은 트로피에 새겨지지 못했다.
프로게이머로서 처음 받은 상.
누군가에겐 작은 상이겠지만 나에겐 그 어떠한 것보다 큰 상이었다.
****
-안녕하세요. 위너스리그 중계를 맡은 캐스터 박상철.
-해설의 박광춘.
-해설의 한종엽입니다.
-자 오늘도 여러분들이 기대하는 매치업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바로 아스트로와 육군 타이거즈의 대결이죠.
-비록 프로리그 순위에선 가장 밑을 형성하고 있는 두 팀이지만 붙었을 때마다 재미있는 경기를 보여주었거든요.
-요즘 아스트로의 상승세가 무섭습니다. 아직 1승 밖에 거두지 못했지만 다른 팀들이 두려워하고 있다고하죠?
-맞습니다. 단 1승이지만 그 1승이 올킬입니다. 아스트로 역사상 최초의 올킬이죠. 현재 가장 좋은 기세를 보이고 있는 이승우 선수가 이번에도 선봉으로 출전합니다. 오늘도 1주차 MVP를 수상했거든요? 이승우 선수 1명 합류했을 뿐인데 2라운드까지의 아스트로와 위너스리그의 아스트로는 전혀 다른 팀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승우 선수를 보며 다른 선수들도 자극을 받아 더욱 더 좋은 성적을 낼지도 모릅니다.
-이야. 처음부터 아주 힘을 주는데요? 스파키즈를 올킬했던 선수를 육군 전 선봉으로 내보낸다. 이건 최소 3킬 이상은 하고 오라는 뜻 아닙니까?
-분명 그런 생각을 아스트로 감독은 하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호락호락하게 당해 줄 육군이 아닙니다.
-최하위긴 하지만 언제나 의외성을 지니고 있는 팀이 바로 육군 타이거즈입니다. 저번 시즌에도 포스트 시즌이 급한 팀들에게 고추가루를 팍팍 뿌렸거든요. 과연 이번에도 올킬로 기세등등한 아스트로에게 승리를 따낼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육군에선 박효석 선수가 선봉으로 나왔습니다.
박효석.
결승에서 임주혁 선수를 꺾으며 가을의 전설을 만든 장본인이자 정파 용족의 시초로 분류되는 선수다. 영웅이란 별명을 지니고 있으며 시원시원한 플레이와 잘생긴 외모 덕에 남자 팬, 여자 팬 가릴 것 없이 모두에게 인기가 많은 선수였다.
인기만으로 따지자면 육군 타이거즈는 어느 팀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실력은 팀 순위가 말해주고 있듯 그리 좋지 못했지만.
사실 이들의 경기력은 팬들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들이 경기 부스 들어가 경기를 펼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일이었다. 육군 타이거즈로 입대하기 전 원래 팀에서 거의 경기에 나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말이 좋아 정신적 지주지 실상은 후배들에게 밀려 출전하지 못한 것이었다. 야박하다고 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들은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였으니까.
프로는 실력으로 모든 걸 말한다.
팀에 승리를 가져다 줄 수 없는 선수가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었다. 팬들의 아쉬움이 극에 달할 무렵 육군 타이거즈가 생겼다. 그리고 올드게이머들이 매 경기 프로리그에 나오는 걸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사람들의 향수를 불러일으켰고 육군의 경기가 있는 날 더 많은 관중이 경기장은 찾는 일로 이어지며 win-win의 상황이 되었다.
-과거 정상에 올랐던 용족 선수와 현재 기세가 좋은 용족선수! 그림이 딱 나옵니다.
-과연 신인의 패기로 경기가 끝날지 아니면 경험에서 나오는 노련한 플레이가 승리를 가져올지 지금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 둘 셋. 박효석 화이팅!”
“하나. 둘. 셋. 이승우 화이팅!”
카운트다운이 시작되며 각 선수를 응원하는 함성이 울려 퍼졌다. 물론 박효석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훨씬 컸지만 중요한 건 이승우를 응원하는 팬들이 하나 둘 씩 생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
-박효석이 아무리 경험이 많다고는 하지만 피지컬적으론 널 따라올 수 없을거다. 최대한 무난하게 가서 중반 이후에 난전을 이끌면 승리를 가져올 수 있을거다.
부스에 들어오기 전 감독님이 해주신 조언이다. 충분히 공감이 갔다. 과거 우승을 차지하고 결승에도 여러 번 진출했을 정도로 화려한 전성기를 보냈던 박효석 선수지만 말 그대로 과거의 영광일 뿐이다.
냉정하게 지금 실력을 평가하자면 1군 주전이라고 부르기엔 턱없이 부족한 실력이다.
‘방심만 하지 않으면 된다.’
전략적인 빌드에 당하지만 않으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
오늘도 최대한 스킬을 자제할 생각이었다. 너무 스킬에 의존해 원래의 감각을 잃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언젠가 스킬이 아닌 내 감에 의해 경기를 펼쳐야 할 날이 올 것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충분히 대비할 생각이었다.
거기에 더해 체력도 관리해야한다. 스파키즈전과 상황이 다르다.
상황에 따라 올킬을 충분히 노려볼 수 있는 팀.
‘첫 경기가 중요하겠어.’
여기서 얼마나 체력을 아낀 후 승리를 거두느냐에 따라 올킬 여부도 달라질 것이다. 스킬을 적게 사용하거나 아예 사용하지 않는다면 소모되는 체력은 적다. 꾸준한 운동 때문에 줄어든 것이다. 아쉽게도 아직 스킬 사용 시 줄어드는 체력의 수치는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경기 시 소모되는 체력의 양이 줄어든 것으로 보아 스킬사용 관련 체력소모도 줄어들 듯 싶었다.
첫 번째 맵은 2인용 전장인 태백산맥이었다.
‘꼼꼼하게 정찰해야겠어.’
2인용 전장의 가장 큰 특징은 시작과 동시에 상대방의 위치를 알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렇기에 도박적인 수가 상당히 자주 나온다. 그렇기에 난 평소보다 빠른 타이밍에 용안을 빼 정찰을 보냈다.
가장 먼저 확인해야하는 곳은 앞마당에서 중앙으로 향하는 언덕 좌우.
일반적인 정찰 경로를 벗어난 지역이라 놓치기 쉬운 부분이었다. 다행히 전진되어 지어진 건물은 없었다. 내가 선택한 빌드는 1제단 이후 용의 신전을 올리면서 제단을 3개까지 늘려준다. 용의 신전이 완성되면 탐지 능력을 지닌 현룡을 뽑아주며 모인 용아로 압박을 해주는 빌드.
이 빌드가 지는 빌드는 딱 하나.
1제단 앞마당 이후 제단을 3개까지 늘려주는 빌드 뿐이었다.
설마 그건 아니겠지?
****
-빌드가 갈렸는데요?
-공격적인 빌드를 선택할 줄 알았던 박효석 선수가 의외로 빠르게 멀티를 가져갑니다.
-키야. 역시 감이 살아있네요.
-동시대에 전성기를 맞이했었던 박광춘 해설위원님은 감이 죽었는데 박효석 선수는 아직도 살아있네요.
-거기서 제 이야기가 왜 나옵니까?
-뭐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아니..
-자. 경기 외적인 이야기는 그만하고 이제 경기에 집중해주시죠.
박상철 캐스터가 박광춘 해설위원의 말을 싹둑 잘랐다. 관중석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온게임TV 해설들에 비해 MBS게임 해설들은 방송 중간 중간에 농담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어찌나 잘 노는지 이들의 드립 영상이 편집되어 커뮤니티에 올라올 정도였다.
-빠르게 멀티를 가져간 박효석 선수에 비해 이승우 선수 정석적인 빌드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러시거리 역시 빠른 편이 아니기에 찔러봤자 크게 이득을 보지 못하죠.
1제단 앞마당 이후 3제단을 늘리는 빌드가 용신(용의 신전)3제단을 잡아먹는 이유는 하나다.
생산 된 용아의 수는 같은데 전자는 멀티가 있고 후자는 멀티가 없다는 것.
철 하나에 붙을 수 있는 일꾼의 수는 어차피 1마리다. 아무리 일꾼이 많아봤자 동시에 자원을 채취할 수 없다는 말이다. 결국 자원차이는 곧 물량과 테크의 차이로 이어진다. 초반에 적었던 물량과 느렸던 테크를 금세 따라붙는 것이다.
동족전이라면 그 차이는 더욱 더 크다.
-이승우 선수 지금 앞마당 확인합니다. 표정을 보니 몰랐다는 표정이죠?
-공격을 들어가거나 뒤늦게라도 멀티를 먹고 후반을 도모해야합니다.
-박광춘 해설위원님께선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저라면 한방의 사나이 아니겠습니까? 당연히 공격을 들어가죠.
-그래서 현역 때 그렇게 지셨군요.
-......
박상철 캐스터의 공격에 박광춘 해설위원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문제는 맞는 말이라 반박할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박광춘 해설위원이 부들거리거나 말거나.
-역시 이승우 선수 박광춘 해설위원과 다른 선택을 하네요.
놀림은 계속 되었다.
-이승우 선수 입장에서 무리하게 공격을 가서 경기를 잃느니 천천히 따라가겠다는 생각을 한 듯싶습니다. 그게 옳죠. 차분하게 자신의 길을 잘 가고 있습니다.
확실히 멀티를 빠르게 먹은 덕에 박효석의 물량이 조금 더 빠르게 폭발했다. 한 눈에 봐도 둘의 병력 차이가 눈에 보일 정도였다.
어느 정도 싸워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는지 박효석이 전 병력을 이끌고 남하하기 시작했다.
-박효석 선수 움직입니다. 물량으로 유명세를 탔던 선수 답게 지금도 물량이 상당합니다.
-이승우 선수 언덕으로 올라가서 맞이해야죠? 앞마당에서 저 병력 그대로 맞이하면 집니다. 지형 이용해서 최대한 잘 싸워야합니다.
-박효석 선수 많아요. 정말 많아요.
중앙을 지나는 박효석의 병력이 시야확보를 위해 띄어 논 이승우의 현룡에 걸렸다.
빠르게 반응하는 이승우의 병력.
한종엽 해설위원의 말처럼 유리한 지형을 먼저 선점했다.
============================ 작품 후기 ============================
갇뎀 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오늘은 조금 양이 많습니다.
요즘따라 추천수와 댓글 수가 줄고 있어 조금 슬프네요.
모두 좋은하루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