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1 Game No. 41 =========================================================================
바로 로열로더.
이영우는 진 로열로더는 커녕 로열로더조차 해보지 못했다. 첫 번째 진출에 엄청난 기세를 뿜어내며 4강에 진출했지만 당시 우승을 차지한 대인배 김영준에게 아쉽게 패배하고 말았다.
사정은 MSL도 마찬가지였다.
첫 진출 당시 8강에서 리쌍의 이제운을 만나 탈락했다. 하필 당시 최고라 불리는 선수들만 만나 떨어지고 만 것이다.
그래. 네가 로열로더가 되지 못한 건 굉장히 분할 수 있어.
근데 왜 저 둘이 아니라 나하고 형규한테 화풀이를 하는거야? 도대체 왜? 슬쩍 형규의 얼굴을 바라보니 녀석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A조에서 1명의 진출자를 꼽으라면 누구나 이영우를 꼽는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최전성기만큼의 포스는 아니지만 그래도 현재 최고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영우를 떨어뜨리지 않는 한 나와 형규가 같이 8강에 올라가는 건 불가능하다. 이변이 없는 한 이영우는 8강에 진출할 것이다. 결국 남은 한 자리를 두고 셋이 피터지게 싸워야하는 상황이다.
-이승우 선수. 기분이 어떻습니까? 대놓고 이영우 선수가 실리라고 말하는데.
-현재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하고 싶은 말이 분명 있을 겁니다.
어떤 모습을 연출하고 싶지 않았다. 정말 내 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고 싶었다. 지금 이 말을 꺼내면 후회할지 모른다. 하지만 꺼내지 않아도 후회할 것 같았다.
그렇다면 한 번 질러봐야지.
“지금 그 선택 후회하도록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우오!”
“대박!”
반응은 즉각 왔다. 이영우의 도발에 정면으로 받아쳤기 때문이었다. 이미 모든 걸 질렀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일단 속은 시원했다. 눈이 마주친 형규가 살짝 엄지를 치켜 올렸다. 속이 시원한 표정이었다. 그 모습에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자. 그럼 최종적으로 확정 된 조를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흥미진진한 조지명식 이었습니다.
흥미진진하긴 했다. 그 대상이 내가 아니었으면 조금 더 재미나게 즐겼겠지만.
화면에 편성이 완료 된 조가 떠올랐다.
A조 : 이영우, 이승우, 임형규, 김윤호
B조 : 정명혁, 윤영태, 김재우, 박현우
C조 : 김택윤, 김연훈, 구성재, 염우석
D조 : 이제운, 임동원, 신상운, 송병호
-어느 하나 만만한 조가 없습니다. 선수들의 이름을 보십시오. 4강이라 해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로 아주 꽉꽉 들어차 있습니다.
-얼른 개막전이 펼쳐졌으면 좋겠습니다. 일주일을 어떻게 기다릴지. 벌써부터 몸이 달아오릅니다.
확실히 16명만 뽑다보니 선수들이 쟁쟁하다.
-그럼 다음 주 경기를 알려드리겠습니다.
화면이 새롭게 바뀌었다.
16강 1회차 경기 4개가 일렬로 쫙 떠올랐다. 내 시선이 꽂힌 곳은 개막전이었다.
-이영우 선수와 이승우 선수의 개막전으로 시즌2 16강의 화려한 막이 오릅니다!
-두 선수 그러고 보니 이름이 거의 흡사하네요. 영우, 승우. 이승우 선수가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다면 리쌍처럼 묶여서 불릴 수도 있습니다! 진 로열로더의 길을 걷고 있는 이승우. 그리고 그 길을 막으려는 이영우.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지 굉장히 기대가 됩니다.
역시. 엄재웅 해설위원님의 포장은 알아줘야한다. 어떻게 보면 개막전으론 흥행이 힘든 매치다. 아무리 내가 요새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고 해도 우승을 경함한 선수와 비교가 되지 않으니까. 그럼에도 엄재웅 해설위원님은 사람들이 재미있어 할 만한 요소를 찾아내었다.
‘어쩌다 상황이 이렇게 된 거지?’
원래대로라면 이영우와 개막전을 펼치는 선수는 내가 아니라 형규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영우는 내 이름을 자신의 이름 바로 밑에 붙여놓았고 그 결과 졸지에 난 개막전을 치르게 되었다.
갑자기 부담감이 막 생기는구나.
-이 것으로 조지명식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저희는 다음주 이시간, 경기와 함께 돌아오겠습니다.
-여태 껏 시청해주신 분들과 현장을 직접 찾아주신 관중 분들게 감사의 인사 전하겠습니다.
-앞으로 항상 좋은 경기를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클로징 멘트가 이어지며 길고 길었던 조지명식이 마무리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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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린다더니 시원하게 잘 지르던데?”
“놀리지 마세요. 아직도 심장이 벌렁벌렁 뛰니까.”
도 수코님의 말에 난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조지명식은 나름 무탈하게 끝이 났다. 일단 지르긴 했는데 시간이 조금씩 흐르니 후폭풍이 무서워졌다.
“수코님. 저 인터넷에서 잔뜩 까이고 있는 거 아닙니까?”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겁 없는 신인.>,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등등의 기사 타이틀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이 정도는 양반이다. 댓글로 더 심하게 까이고 있겠지?
“까이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대답은 현우 형에게서 나왔다. 형이 내 앞으로 자신의 휴대폰을 쓱 들이밀었다. 화면은 가장 큰 신들의 전쟁 커뮤니티 메인 페이지가 띄어져 있었다.
그리고 정면을 장식하고 있는 뉴스는.
<진 로열로더. 역대 최강에게 도전장을 내밀다.>
이런 제목을 지니고 있었다. 조회수 역시 압도적으로 높았다. 난 떨리는 손으로 기사를 클릭했다. 내용은 나와 형규가 조지명식에서 했던 발언이 중점적으로 담겨 있었다.
악플이 많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의외로 좋은 내용의 댓글이 많았다.
이영우에게 그렇게 시원하게 말하는 선수는 정말 오랜만에 본다는 댓글까지 있을 정도였다.
“어때? 괜찮지? 너 되게 잘 한거야. 아까 갈 때 는 긴장된다고 하더니. 되게 잘하네.
“형. 저 잘한거에요?”
“그래. 진짜 나 처음 조지명식때 생각하면.”
현우 형이 말을 하다 말고 순간 몸서리를 쳤다. 그 모습만 봐도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날의 기억이 현우 형에겐 흑역사라는 걸.
“잘했다. 정말 잘했다. 감독님도 잘했다고 문자 보내주셨다.”
도 수코님도 한 마디 거들어주었다.
이제야 안심이 된다.
“그렇다면 정말 다행이네요.”
긴장이 풀린 난 그대로 의자에 몸을 묻었다.
****
“잘했다. 승우야!”
숙소로 돌아 온 난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그 중 감독님의 얼굴이 가장 환해보였다.
“우리 팀에서 그렇게 패기 있는 인터뷰가 나올 줄이야. 정말 잘했다. 그래. 요즘 기세도 좋은데 움츠릴 필요 없지!”
“그래. 잘했어. 언제 그렇게 말해보냐?”
“형. 저라도 그렇게 말했을 거 같아요.”
“완전 멋있었다니까요?”
“그나저나 경기 준비 겁나 해야겠네. 후회하겠다고 말해놓고 니가 후회하면 어떡하냐?”
난 연호를 찌릿 노려보았다.
그래. 넌 항상 이렇게 초를 치지.
나의 눈빛에 연호가 장난이라며 내 등을 손으로 탁탁쳤다.
“아프니까 그만해.”
“장난인 거 알지? 내가 너 좋아하는거 알지?”
그만 좋아해줬으면 좋겠다고 톡 쏘아 붙이려는 찰나.
“거기까지. 우리 내일 위너스리그 경기 있는 거 알지?”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었다.
팀원들의 얼굴에 깔려있던 장난기가 싹 사라졌다.
“그리고 내일 경기가 육군 타이거즈라는 것도?”
기회다. 이건.
1승으로 기분 좋게 시작한 위너스리그.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2연승으로 기분 좋게 앞서갈 수 있다. 임주혁, 홍진우, 박효석 등등이 육군 타이거즈에 버티고 있지만 충분히 이길 수 있다.
“내가 선봉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봤어.”
모두의 시선이 감독님의 입에 쏠렸다. 육군 타이거즈 전에서 선봉의 의미는 중요하다. 상승세만 타면 올킬까지 갈 수 있고 최소 2킬 이상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실제로 가장 많은 올킬을 당한 팀이 육군 타이거즈였다.
모두들 선봉에 대한 욕심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없는 건 아니다.
“이번 육군전 선봉은.”
말을 멈춘 감독님이 팀원들을 둘러보았다.
어? 순간 나와 시선이 마주친 감독님.
“이승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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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감독은 육군 타이거즈 전을 앞두고 많은 고민을 했다. 과연 누구를 선봉으로 내세울 것인지.
모두들 탐내는 자리다.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올랐던 선수는 단연 박현우다.
비록 낮은 순위에 팀이 위치하긴 했지만 현우는 자신의 몫을 해주었다. 나갈 때마다 승리를 한 건 아니지만 6할에 가까운 승리를 가져오며 팀이 최하위로 내려가는 건 막아주었으니까.
현우가 없었다면 2라운드까지 얻은 4승도 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종족 역시 환국이기에 안정적이다. 그간 에이스 역할을 잘해온 현우에게 육군 타이거즈를 맡겨볼까 했지만.
‘자꾸 마음에 걸린단 말이지.’
이상하게 이승우의 얼굴이 계속 아른거렸다. 현재 팀 내에서 이승우만큼 기세가 좋은 선수는 없다. 아니 전 팀을 찾아봐도 몇 명 없을 것이다. 그 정도로 승우의 기세가 좋다.
이런 상황에서 육군 타이거즈라는 보약을 먹게 되면 더 좋은 상황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그래서 이런 결정을 내렸다. 이것이 옳은 선택이 될 지 그른 선택이 될 진 아직 모른다.
‘내일이 되면 알게 되겠지.’
어떤 결과가 나오든 후회는 없다.
사실 이승우가 허무하게 패배한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들지 않았다. 그 만큼 이승우가 보여준 것이 컸다. 그리고 반드시 자신의 믿음에 부합하리라 생각되었다.
눈빛.
처음 만났을 때의 눈빛과 달라지지 않았다.
아직 태울 것을 찾는 불길처럼 거세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런 선수는 무섭다.
“일단 선봉은 승우로 정해졌고. 차봉부터는 아직 확실히 정하지 않았다. 모두 자신이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준비하도록. 자. 내일 경기가 있으니 오늘은 적당히 먹고 자도록 하자.”
“네!”
“알겠습니다. 감독님!”
“그렇다고 너무 빨리 먹지 말고. 체한다. 체해.”
마지막까지 농을 던지며 이재명 감독님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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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봉.
솔직히 기분이 좋다. 상대가 육군이었으니 더욱 더.
하지만 조금 미안한 감정도 들었다.
“조금 미안하네요.”
“도대체 뭐가?”
내 사과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현우 형.
“왠지 제가 나갈 자리가 아닌 것 같아서요.”
“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현우 형이 피식 웃으며 치킨 조각을 나에게 내밀었다. 난 고개를 꾸벅 숙이며 치킨을 받았다.
“네가 보여주는 모습이 좋으니까 널 선봉으로 내 보낸 거지. 혹시 내 자리를 빼앗았다고 생각하는건 아니지?”
난 순간 움찔했다. 정곡을 찔린 기분.
육군전 선봉은 앞뒤로 개인리그가 없다면 보통 팀의 에이스가 나온다. 승을 챙겨주기 위해서 말이다.
왠지 현우 형의 승리를 내가 뺏는 느낌이었다.
“다른 사람 경기에 못나가도 좋으니까 시원하게 올킬 해버려. 못해도 상관은 없고. 우리가 뒤에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맞아. 형. 이참에 기록 세우는 것 어때? 2연속 올킬.”
“그 것도 좋겠다. 2연속 올킬 가지고 있는 사람도 얼마 없잖아. 네가 확 해버려.”
“좋은 생각 같습니다.”
금세 주변이 시끄러워졌다.
난 팀원들 하나씩 둘러보았다. 장난기가득한 얼굴에 진심이 묻어있었다.
‘정말 난 좋은 팀에 들어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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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하긴 뭐 하루 뒤가 경기인데 빠르나 느리나 그게 그거겠지. 어쨌든 여유롭게 준비를 끝낸 우리팀은 경기가 열리는 히어로 센터로 향했다. 내 입장에선 몰수패를 당한 드림 스튜디오보다 이곳이 더 끌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성적 역시 1패를 안고 있는 드림 스튜디오와 달리 히어로 센터에선 전승가도를 달리고 있었으니까. 터가 나한테 잘 맞나보다.
내가 여기서 몇 연승을 했지?
예선까지 포함하면 8연승.
만약 오늘 올킬이라도 하는 날엔 12연승까지 하게 된다.
팀에 합류하게 되면서 쓸모가 없어지긴 했지만 나에겐 버프가 하나 있다.
바로 집택신.
한 장소에서 20연승을 하게 되면 방송국에서 20연승은커녕 10연승도 하지 못 할 거라 생각했는데 어쩌면 할 수도 있을 것도 같았다.
‘MSL은 무조건 꿀조 걸려야하는데.’
아예 승부를 포기한 건 아니지만 이영우와 대결에서 승리를 한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형규나 김연훈은 어느 정도 준비를 한다면 상대할 수 있지만.
이영우의 플레이는 정말 놀랍다.
맵핵을 켜고 있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마치 해설을 듣고 있는 듯 정답만을 골라 플레이했다.
이런 선수를 다음 주에 만나야한다니. 눈앞이 깜깜해지는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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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모두 좋은 하루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