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0 Game No. 40 =========================================================================
김택윤이 위치한 C조에 내 이름표를 붙였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어차피 모두 상대하기 부담스러운 선수들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신들의 전쟁 매니저]를 적극 활용할 수 있는 동족전이 낫다고 평가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전에 S1에 있을 때 그나마 이겨본 상대이기도 했고.
정명혁은 조금 부담스러웠다. 정면 힘싸움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라면 B조에 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정명혁은 정면 힘 싸움보다 화차를 돌리거나 수송기능을 가진 금와를 여러 군데에 동시에 날리는 등 견제 위주의 플레이를 주로 펼쳤다.
그 컨트롤이 어찌나 정교한지 화차 2마리에 앞마당에 있는 모든 일꾼을 털린 선수가 있을 정도였다.
아무래도 변수가 있는 선수기에 부담스러웠다. 거기다 정명혁이 가장 잘하는 종족전이 용족이기도 했고. 용족전에 한해서는 결코 이영우에게 꿀리지 않았다.
A조는 이영우가 부담스러운 것도 있지만 형규가 있기 때문이 가고 싶지 않았다.
이미 이영우가 있는 곳.
큰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나와 형규 둘 중 1명은 짐을 싸고 집에 돌아가야 했다.
아직 현실적으로 이영우를 무너뜨릴 수 있는 실력은 아니다. D조 역시 제외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운의 종족은 마수다. 보통 마수는 운영형과 공격형으로 나뉜다.
이제운은 어디냐고?
놀랍게도 운영형과 공격형을 섞어놓은 모습을 보여준다.
무슨 말인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더 쉽게 말하자면 사기라는 말이다. 둘의 형태를 적절히 섞은 모습을 보여 주는가하면 같은 경기 내 에서도 공격적인 플레이와 운영을 자유자재로 변화시킬 정도의 유연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악몽이다. 악몽.
이제운 역시 이영우와 마찬가지로 세 종족전 가릴 것 없이 후드려 패는 실력을 지녔다. 애초에 리쌍은 맞붙는 것이 아니라 그랬다.
김택윤이 만만한 건 아니지만 동족전이기에 그나마 해볼만 하다고 판단했다.
-진 로열로더 후보들답게 두 선수 모두 선택에 망설임이 없습니다!
오늘도 일어난 포장.
사실 대단한게 아니다.
왼쪽으로 가도 지옥이고 오른쪽으로 가도 지옥이다.
정면을 바라보니.
어라? 거기도 지옥이네?
사면초가. 아. 노래가 울려 퍼지는 사면초가는 차라리 나은 상황이다. 사면지옥의 상황이니
-어떤 생각으로 C조에 들어간 겁니까?
나도 이제 패기를 보여주자.
“해볼만 하다고 생각해서 들어갔습니다.”
-해볼만 하다는 생각은 지금 4강에 오른 선수 중 김택윤 선수가 가장 약해보인다라는 말입니까?
무언가 사냥개에 의해 덫으로 몰아지는 토끼 같은 느낌이 들며 이건 아닌데 싶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정확히 그런 의미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네요.”
-김택윤 선수와 S1에서 함께 있었는데 그때 어땠나요?
“어떤 걸 말씀하시는거죠?”
-같은 팀이다 보니 연습 경기를 해보았을 것 아닙니까? 그때 전적이 어땠습니까?
“이기고 지고 했던 것 같아요. 동족전이다 보니.”
-아. 김택윤 선수. 이승우 선수가 팀에 있을 때 이기고 지고 했다는데 사실입니까?
화면은 김택윤 쪽으로 돌아갔다. 냉정함을 유지했던 이영우와 달리 김택윤의 얼굴은 살짝 붉게 상기 되어있었다. 다른 사람 같으면 신경을 썼을지 모르지만 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난 김택윤과 동기다. 1군과 2군으로 나뉘었기에 대화가 없었을 뿐 꽤나 친한 사이였다. 오랜 세월 같이해오면서 원래 김택윤의 얼굴이 쉽게 빨개진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이승우 선수가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기고 지고 한 건 맞지만 제가 훨씬 많이 이기고 조금 졌습니다.”
-그렇습니까? 이승우 선수. 김택윤 선수가 이렇답니다? 뭐가 사실입니까?
“아마 하도 오래 되서 김택윤 선수가 잊은 모양인데 2군에 저와 함께 있을 땐 제가 더 많이 이겼습니다.”
“아. 이승우 선수의 말이 맞아요. 하도 오래 되서 전 기억이 나지 않네요. 전 되게 빨리 1군으로 올라갔었거든요.”
설전.
우리야 나름 친한 사이였으니 이런 대화가 농담처럼 들리겠지만 중계진이나 관중들에겐 불꽃이 파바박하고 튀는 것 처럼 보였나보다.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
아무리 생각해도 나나 김택윤이나 낚시를 당한 기분이다.
하지만 어떠랴?
이게 다 리그의 흥행을 위해서인데. 충실하게 대답해줘야겠다.
내 인터뷰로 나름 깔끔하게 마무리 되었다. 그 후로도 시드권자를 제외한 모든 선수들의 조배치가 완료되었다. 중간에 신상운의 인터뷰 때 내이야기가 1번 더 언급되었다. 프로리그 올킬의 희생양 중 1명이 신상운이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과연 신상운이 내가 있는 C조에 이름을 붙일 것인가 붙이지 않을 것인가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내 아래가 아닌 D조에 붙였다. 나를 피하는 것이 아니냐는 짓궂은 중계진의 질문에도 신상운은 차분히 자신의 이유를 이야기했다. 어차피 나는 언제든 상대할 수 있는 신인, 그보다 전 시즌의 복수를 하겠다며 이제운이 있는 조로 향했다고 했다.
그 결과 A조엔 이영우, 형규, 김연훈, 김윤호가 B조엔 정명혁, 윤영태, 이재우, 현우형이 C조엔 김택윤, 구성재, 임동원과 내가 D조엔 이제운, 염우석, 신상운, 송병호가 속했다.
어느 하나 만만한 조가 없다.
과정을 조금 보태자면 4개 조 전부 죽음의 조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다.
-자. 1차 조지명식이 완료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것이 전부가 아니죠?
-가장 중요한 시드권자들의 권한 행사가 남아있죠. 현재 이렇게 나와 있지만 끝까지 이렇게 간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얼마든지 바뀔 수 있거든요.
앞으로 최대 7번의 변화가 생길 수 있다. 권한 행사는 자유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고. 가장 먼저 권한을 행사할 선수는 이제운이었다.
이제운이 무대로 올랐다. 이제운은 망설임이 없었다. 곧 바로 하나의 이름을 뜯어 자신의 조에 있는 선수와 바꿨다.
이제운이 자신의 조로 데려온 선수는 바로 임동원이었다. 그 자리엔 염우석이 대신 이동했다.
-이제운 선수. 임동원 선수를 데려왔습니다. 이유가 있습니까?
“이유라면 하나입니다. 저번 시즌 복수. 다시 한 번 붙고 싶네요.”
저번시즌 MSL 4강에서 이제운과 임동원이 맞붙었다.
결과는 임동원의 3:2 승리로 임동원이 결승에 진출해 우승을 차지했다. 이제운은 그때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흥미진진한 매치가 또 한 번 만들어지네요.
D조에 우승자만 무려 3명이다.
4명중 3명이 우승자라는 말이다. 유일한 비우승자 출신인 염우석은 개인리그 최고 성적이 8강일 정도로 개인리그에선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었지만 프로리그에선 전체 다승 5위에 위치할 정도로 엄청난 실력자였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내 머릿속에 떠 오른 하나의 생각.
‘죽음의 조.’
이미 택뱅리쌍 중 2명이 들어간 것만으로 죽음의 조라 불리기 충분했다.
뒤를 이어 김택윤과 정명혁이 무대에 올라왔지만 둘은 권한을 행사하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 진행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S1에서 진출한 3명의 선수가 모두 다른 조에 속해있었기 때문이었다. 혹 형규가 다른 조로 자신을 보내달라고 부탁하진 않았을까 싶었는데 그러지 않은 모양이다.
이제 남은 건 단 1명.
전 시즌 우승자 이영우.
그가 무대 중앙으로 향했다.
-앞선 두 선수는 권한을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이영우 선수는 어쩌실 겁니까?
“저는 권한을 행사를 할 예정입니다.”
-그렇다면 인터뷰에 앞서 권한을 먼저 행사해주시기 바랍니다. 인터뷰는 조가 확정 지어진 후 이어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전현석 캐스터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이영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이름표가 붙어있는 판 앞으로 향했다. 모든 조를 손으로 한번씩 훑는 이영우. 그의 손이 스칠 때마다 해당 선수의 몸이 조금씩 움찔했다.
모두들 강한 선수들이지만 특히 이영우는 피하고 싶었으니까.
근데 어째 좀 불안한데?
자꾸 시선이 C조에 꽂히는 것 같기도 하고. 착각이겠지? 그렇다고 말해줄래?
그때 이영우가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하나의 이름표를 향해 서서히 손을 뻗었다.
‘맙소사.’
이영우가 뜯어 낸 이름표는 내 이름표였다.
혹 잘못 본 건 아닌가 싶어 한 번 보고 또 보고 다시 봐도 이승우 세 글자는 변함이 없었다.
결국 나와 김연훈의 자리가 뒤바뀌었다.
너무한 거 아냐?? 이번 시즌에 처음 올라온 둘을 나란히 자신의 조로 데려오다니.
-앗. 첫 번째 권한은 이승우 선수를 본인의 조로 데려오는데 사용했습니다!
관중들이 술렁거리는 것이 느껴진다. 의외의 선택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선택. 잠시 판을 바라보던 이영우가 미련없이 몸을 돌려 중앙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뭐하는거야! 장난이었다고 말해줘. 그냥 나를 놀리기 위한거였다고. 다시 원래 내 자리로 돌려내란 말야.
아직 이영우는 2번의 권한이 남아있다. 내 생각대로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영우는 움직일 생각이 없어보였다.
-권한 행사가 끝난 것입니까?
“네. 다른 조는 건들일 것이 없습니다.”
쐐기가 박혔다.
아. 잔인한 사람.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나를 A조로 불러들여 온 건지 들어나 보자.
-자. 정말 의외의 선택입니다. 본인의 조에 이승우 선수를 데려 왔거든요? 무슨 이유가 있나요?
-이승우 선수도 여기 있습니다만. 객관적으로 현재까지 보여준 모습으로 봐서는 본인보다 밑 단계로 평가받는 선수거든요? 그런 선수를 굳이 데려왔다는 건 명분보다 실리를 추구했다고 봐도 되는 겁니까??
실리와 명분.
조지명식이 있을 때마다 항상 나오는 말이다.
거창한 명칭에 비해 담고 있는 내용은 간단하다.
실리는 자신보다 확실히 약한 상대를 자신의 조로 데려오는 것이고 명분은 전 시즌이나 전전 시즌에서 자신을 떨어뜨리거나 다른 방송에서 자신을 도발할 사람을 데려오는 것을 말했다. 보통 후자가 사람들이 기대하는 매치이기도 했다.
“철저하게 실리를 택했습니다.”
이영우의 거침없는 대답이 나왔다.
“전 시즌에 우승할 때 너무 힘들게 우승했어요. 이번에는 조금 쉽게 8강에 올라가고 싶습니다.”
어느 정도 예상을 했지만 그 말을 직접 듣자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확 치고 올라왔다. 날 그렇게 본다 이거지?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내가 이영우를 만나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야. 이영우 선수. 자신감이 상당한데요?
-이영우 선수는 사실 어느 선수를 지칭해 그렇게 말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선수이긴 하죠.
그 말엔 나도 공감이지만 막상 그 대상이 내가 되니 속이 살짝 끓어올랐다.
“그리고 지금 16강에 올라온 선수 중 진 로열로더 후보가 딱 둘이잖아요. 제가 못한 기록을 다른 사람이 하는 걸 보고 싶지가 않아요. 그래서 둘 다 떨어뜨리려고요.”
모든 기록을 갈아치운 이영우지만 그가 딱 하나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 있다.
============================ 작품 후기 ============================
금빛참치 님 asdasdd12 님 만인의소시 님 피로젖은하늘 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그리고 제가 적은 줄 알았는데 적지 못했더군요.
서평을 남겨주신 프리 메레오 님도 감사합니다.
조아라에서 받는 추천? 서평은 처음이네요.
오늘은 민족 대명절인 추석이었습니다.
모두들 맛있는 것 많이 드셨나요?
저는 썩...
그래도 독자분들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모두 좋은 하루 되시길.